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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사울의 신앙 비교] 육의 사람 사울과 영의 사람 다윗의 신앙비교(삼상10:23, 삼상16:12)

체데크 2020. 7. 29.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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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다윗과 사울의 신앙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육의 사람 사울과 영의 사람 다윗의 신앙비교(삼상 10:23, 삼상16:12)

 

명제 : 사울은 율법적 신앙이요, 다윗은 복음적 신앙을 의미한다.

목적 : 나는 사울과 같은 신앙인가? 아니면 다윗과 같은 신앙인가?

 

우리는 오늘 육적인 신앙을 가졌던 사울과 영적인 신앙을 가졌던 다윗을 통해서 나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 앞에서 어떠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뿐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나의 신앙을 점검할 수 없습니다. 이 시간 사울과 다윗을 통해서 현재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신앙과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깨닫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사울은 겉 사람을 표현하고 다윗은 속 사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삼상10:23 그들이 달려가서 거기서 그를 데려오매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컸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자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선택하게 됩니다. 사울이 뽑혀서 백성들 앞에 나왔을 때에 사울은 그가 백성 중에 서니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 컸다고 말씀합니다. 그럼 먼저 우리가 사울이라는 이름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울’ שאול(샤울 7586) 사울, 이라는 뜻이며 שאל(샤알 7592) 구하다, 요청하다, 간구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사울의 이름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사울이 왕이 된 것은 인간들의 요청과 요구와 간구가 있었기 때문에 세워진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 아니라 인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세워진 왕입니다. 이미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나라의 왕들을 모방하여 눈에 보이는 왕을 자신들도 세워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있습니다. 주님이 나의 왕인데 세상의 눈에 보이는 통치자를 세워달라고 하면 결국 세상의 통치자 때문에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어깨 위만큼’ מעל(마알 4605) ~이상으로, 위로, 라는 뜻이며 עלה(알라 5927) 높여지다, 올라가다, 오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사울이 다른 사람들보다 어깨 위만큼 컸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육의 사람인 사울은 하나님을 높이기보다는 자신을 더 높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호령하기를 원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높여야 할 왕이 자신을 높이고 자신의 업적을 높이면 안 됩니다. 구원받은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높여야 하는데 인간 자신을 높이고 모든 것을 내가 호령하려고 한다면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울은 왕이 된 후에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신을 높이는데 치중했습니다. 다음은 다윗을 알아보겠습니다.

삼상16: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 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자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기름을 붓게 됩니다. 다윗의 모습을 보면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이름을 살펴보겠습니다.

‘다윗’ דוד(다비드 1732) 다윗이라는 뜻이며 דוד(도드 1730) 가장 사랑하는 자,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가장 사랑받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한 왕입니다. 인간의 요청에 의해서 선택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자는 영적인 바라의 삶을 살게 됩니다. 다윗을 표현할 때에 빛이 붉다는 것은 속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빛이 남을 의미합니다. 눈이 빼어나다는 것은 아름답다는 것을 말하고 깨끗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속 사람의 눈이 깨끗하여 순결한 것만 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들도 구원받고 원죄가 사라지면 바라의 속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한 모습만 보게 됩니다. 얼굴이 아름답다는 것은 속 사람의 모양이 선하고 좋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도 영의 사람이 되면 속 사람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형상으로 변화를 받게 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사울처럼 인간의 율법적 행위로 받지 않았습니다. 다윗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의지로 받게 되었습니다.

둘째, 사울은 길갈에서 왕으로 세워지고 다윗은 헤브론에서 세워졌습니다.

삼상11:15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인간의 요청이 있어서 사울이 왕으로 뽑혔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았습니다. 길갈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사울이 길갈에서 왕으로 세워지는 영적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길갈’ גלגל(길갈 1537) 길갈이라는 뜻이며 גלל(갈랄 1556) 굴리다, 옮기다, 의탁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사무엘은 백성들이 인간을 왕으로 세우는 요청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세우라는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길갈에 내려가 나라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고 있습니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지막으로 진을 쳤던 장소이며 애굽에서 수치당했던 수치가 떠나간 장소입니다. 이런 장소에서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들과 고통의 짐을 굴려주기 위해서 왕으로 세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만을 의탁하고 자신의 모든 인간적인 생각은 주님께 옮기고 주님의 의를 받아들여야 함을 말합니다. 길갈에서 온전하게 인간의 생각은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뀌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치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정욕을 버리지 못했고 율법적인 신앙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적인 신앙을 하는 자들의 표상이 사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원죄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옮겨주시고 굴러가게 하셨는데도 율법적인 신앙을 가지고 자신의 의로 주님 앞에 나가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이 사울과 같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길갈에서 사울이 왕이 된 것처럼 구원받으면 안 됩니다. 자신의 의를 내세우고 율법을 통해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만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다윗이 왕으로 세워진 헤브론을 알아보겠습니다.

삼하5: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다윗은 때가 되매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이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나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온전한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습니다.

‘헤브론’ חברון(헤브론 2275) 헤브론이라는 뜻이며 חבר(하바르 2266) 결합하다, 연합하다, 교제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헤브론은 어떤 곳입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고 머물렀던 장소입니다. 이곳에 다윗이 있으면서 유다를 통치하고 있을 때에 사울 왕의 편에 섰던 장로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자신들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연합되어 교제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때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다윗처럼 영의 사람으로서 헤브론과 같은 장소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고 복음의 줄로 결합되어 주님과 교제하고 있으면 때가 되매 하나님은 나를 세워주십니다. 영의 사람은 모든 일을 나의 위주로 풀어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인생이 됩니다. 현재 내가 서 있는 곳이 헤브론과 같이 주님과 연합되는 장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고 다윗은 항상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삼상15: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하나님께서 아말렉 민족들과 모든 소유를 진멸하라고 사울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아말렉의 아각 왕과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과 기름진 것과 어린양은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것은 남겨두고 하찮은 것은 진멸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명령을 준행하지 않았습니다.

‘후회하노니’ נחם(나함 5162 동사, 닢알, 완료, 공성, 1인칭, 단수) 후회하다, 애석하게 하다, 유감으로 생각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요구에 의해서 사울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자신의 의지로 모든 것을 풀어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믿고 왕으로 세웠지만 애석하게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닢알형을 쓰고 있다는 것은 사울 왕에 의해서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나 아프고 한탄스러우며 왜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웠을까? 라고 하는 한숨에 처한 것을 의미합니다.

혹시 우리의 신앙이 사울 왕과 같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교회의 사명자로 세운 것을 후회스럽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구원받게 하려고 하는데 자신의 의만 주장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정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한탄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인생을 보시고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전제 조건입니다. 율법의 행위적 구원이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계속해서 율법의 행위적 구원을 주장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나를 보실 때에 개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사울과 같은 율법적인 행위주의자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다음은 다윗을 알아보겠습니다.

삼하7:1-2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다윗은 주변의 원수를 무찌르고 나서 궁에서 평안함을 주셨을 때에 나단 선지자를 불러서 말합니다. 나는 백향목 궁전에서 사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아직도 천막에 있다고 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가 천막에 있는 것을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을 때에 먼저 주님을 생각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평안함을 주시고 육적으로 복을 주셨는데도 자신만 생각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교회를 생각해야 되고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롬8:5-8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사울과 다윗을 보면서 나의 신앙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울은 육의 사람이기 때문에 육신의 일을 생각합니다. 다윗은 영의 사람이기 때문에 영의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입니다. 결국 사울은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다윗은 나이가 들어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불렀습니다. 육신의 생각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율법적 구원을 주장한다면 이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도 하나님의 말씀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고 높이는 데는 열정적이었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데는 소극적이었습니다. 육신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사울 왕과 같은 율법적 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영의 사람인 다윗의 신앙을 따라 속 사람이 구원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신 것을 후회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창세전에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나를 이 땅에서 선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의 의는 모르고 나의 의만 주장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나를 보시면서 애통해하시고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사울의 신앙에서 다윗의 신앙으로 바뀌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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