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여호와 이름] “여호와 체바오트(יהוה צבאות)”(삼상1:3)

체데크 2020. 7. 2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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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호와 이름 중에서 여호와 체바오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여호와 체바오트(יהוה צבאות)”(삼상1:3)

 

명제: 만군의 여호와는 전쟁의 하나님이시며 군대의 하나님이시다.

목적: 주님은 구원받은 자의 대장이시며 사탄과 싸워 승리하신 분이다.

 

사사시대는 신앙의 격동기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자신의 소견대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온데간데없고 모든 사람들이 육적인 일에만 정신이 팔려 살고 있습니다. 십자가 복음은 사라졌고 세상의 왕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세상의 제왕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왕이 되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필요 없다고 하면서 인간의 왕을 요구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손길을 뿌리치고 인간의 능력과 의로 살아가려고 하는 시대입니다. 지금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사라져 가고 인간의 능력과 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지만 인간은 이것조차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면서 하나님의 자리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선택받은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사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왕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갈 때에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십자가 복음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엘가나입니다.

‘엘가나’ אלקנה(엘카나 511) 엘가나이며 laE(엘 410) 하나님, 이라는 뜻과 קנה(카나 7069) 세우다, 건립하다, 만들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사사시대의 엘가나는 사라져 가는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세우는 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으로 눈을 돌리면서 살아갈 때에 자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건립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온전하게 영적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무너진 하나님의 제단을 세우고 만들고 쌓아서 온전한 제사가 될 수 있도록 힘썼던 사람입니다.

 

현재 시대는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과학과 문명에 빠져 이것이 신과 같은 존재처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물질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도 세상과 발을 맞추어 눈에 보이는 스펙을 쌓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영적인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지 않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엘가나와 같은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따르고 세워서 온전한 제사가 하나님께 드려지도록 노력하는 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예배는 육적으로 보이는 예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강단에서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선포되어 영혼을 깨우고 살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 엘가나와 같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엘가나의 신앙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엘가나는 항상 실로에 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삼상1:3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엘가나는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갔습니다. 그 이유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고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엘가나가 실로에 올라갔다고 기록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들은 실로에 올라오기를 싫어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게 됩니다. 농경시대에 들어온 백성들은 농사의 신인 바알을 섬기는 이방인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각 마을마다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것을 본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각 마을에서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엘가나는 예루살렘 북쪽 약 32Km 떨어진 실로에 가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이곳에는 광야에서 가지고 왔던 법궤가 있는 장소입니다. 엘가나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자신의 성읍에서 매년 실로로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경배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편하게 자신의 성읍에서 바알을 섬기지만 엘가나는 달랐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성막이 있는 실로로 올라온 것입니다. 이곳에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있었습니다.

‘실로에’ שילה(쉴로 7887) 실로이며, שלה(샬라 7951) 평안하다, 형통하다, 휴식하다, 안심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실로는 어떤 곳입니까? 영혼의 쉼과 안식이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며 평안함이 있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 형통의 복을 받는 장소입니다. 세상의 근심이 있다 하더라도 주님 앞에 나오면 안심이 되고 육신은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영혼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수18: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에 회막을 세웠으며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

 

실로는 어떤 곳입니까? 여호수아 군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복 전쟁을 할 때에 이스라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 회막을 세웠던 곳입니다. 여호와의 성막을 세워서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도록 했던 장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있는 곳이 바로 실로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은 지금의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실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하여 영혼의 평안을 허락하는 장소입니다.

 

창49: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야곱이 자신의 아들들에게 예언을 할 때에 유다에게는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않기를 예언했습니다. 이것이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른다고 했으며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실로가 오시기까지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실로’라는 단어도 שילה(쉴로)입니다. 현재 우리의 교회는 실로에 임재하시고 있는 주님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엘가나가 실로에 올라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은 현재 구원받은 자들이 어느 곳에 있든지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주일에 하나님의 처소인 교회로 나와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우상을 섬기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죄악의 자리에서 일어나 빛의 자리인 주님이 계신 교회로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실로에 나와서 엘가나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엘가나의 신앙을 높이시고 칭찬해 주시는 것입니다.

 

‘만군의’ צבא(차바 6635) 군대장관, 싸움, 전쟁, 무장하다, 라는 뜻입니다. 엘가나는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러 실로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사사시대의 많은 사람들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버렸지만 엘가나는 자신의 군대장관이 되시며 전쟁과 싸움에 능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70인 역은 σαβαωθ(사바오드 4519) 큰 군대, 라는 뜻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큰 군대가 되셔서 나를 지켜주시고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환난 풍파가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싸워주셔서 승리하게 하시고 영적인 무장을 시켜주셔서 사탄의 무리들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실로와 같은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예배하며’ שחה(샤하 7812 전치사. 동사, 히트파엘, 부정사연계형) 엎드리다, 절하다, 경배하다, 섬기다, 라는 뜻입니다. 엘가나는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세상의 바알과 아세라 신이 전쟁에 능하고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경배하고 있지만 엘가나는 다릅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만 자신을 엎드리고 절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만군의 주님만을 위해서 예배를 드렸더니 자신의 아들인 사무엘을 통해서 자신도 영광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히트파엘 강조 재귀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드려야 합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세상의 물질을 따라간다 하더라도 나는 오직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따라가야 합니다.

 

70인역은 προσκυνεω(프로스퀴네오 4352 동사, 부정사, 현재, 능동태) 예배하다, 경의를 표하다, 경배하다, 라는 뜻이며 προς(프로스 4314) ~에서부터, ~을 향하여, 라는 뜻과 κυνεω(퀴네오) 입 맞추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엘가나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하고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입맞춤을 의미합니다. 그럼 우리들은 어떠한 예배가 되어야 합니까? 오직 주님을 향하여 경배를 드리며 지금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에 나가서 주님과 입을 맞추는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입은 아무나 맞추지 않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자와 입을 맞추게 됩니다. 영적으로 우리들은 주님의 신부입니다. 신랑과 신부가 입을 맞추는 것은 사랑의 증표입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주님과의 입맞춤이며 사랑의 표시라는 것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우리가 예배를 드리지 않고 세상에 있다면 주님과의 입맞춤은 사라지고 우상을 섬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따라와서 주님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과 예물을 드렸습니다. 여기에서 ‘경배하고’라는 단어가 προσκυνεω(프로스퀴네오)입니다. 예수님께 경배하는 단어에 사용하고 있으며 사탄을 경배하라고 할 때에도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입을 맞추지 않는 자는 사탄에게 입을 맞추는 자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들은 주일에 예배를 드림으로 주님과 입을 맞추어야 합니다.

‘제사를 드렸는데’ זבח(자바흐 2076 전치사. 동사, 칼, 부정사연계형) 희생을 드리다. 제사를 드리다, 잡아드리다, 라는 뜻입니다. 엘가나는 실로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데 빈손으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희생제물을 가지고 올라가서 제물을 잡아드렸습니다. 거룩한 동물을 가지고 올라가서 하나님께 잡아서 드렸습니다. 이 동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각 마을에서 짐승을 잡아 바알과 아세라 신에게 바쳤지만 엘가나는 정결한 짐승을 잡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신을 위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리고 있습니다.

 

70인역은 εξ Αρμαθαιμ(엑스 아르마다임)이 나오는데 이것은 에브라임으로부터 나와서 실로에서만 예배를 드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70인 역은 더 정확하게 에브라임의 장소가 아닌 실로에서만 엘가나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세상으로부터 나와서 교회에서만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입니다.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승리하신 날이며 원죄에서 죽었던 내가 살아난 날입니다. 이 날을 위해서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나와서 주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제사를 드렸다는 것의 70인 역은 θυω(뒤오 2380 동사, 부정사, 현재, 능동태) 제사하다, 제물을 바치다, 희생되다, 죽이다, 라는 뜻입니다. 엘가나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실로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물을 죽이고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것도 지금 당장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지금 당장 주일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고전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자는 누룩이 없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묵은 누룩을 버리고 새 언약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의 양이 되어 주셔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희생되셨느니라’는 단어가 θυω(뒤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이 되셨습니다. 나의 원죄를 위해서 죽으셨고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엘가나는 항상 실로에 올라가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제물을 바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도 실로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 안 됩니다. 인간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장소에 있으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주님을 구원자로 믿지 않는 곳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모두가 거짓된 예배입니다. 실로가 아닌 다른 장소에 있기 때문에 영혼에 쉼이 없는 것입니다. 안식이 없기 때문에 항상 두려운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단에 빠져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이것은 영혼에 안식이 없는 예배입니다. 거짓된 우상을 섬기는 예배입니다. 또한 내가 율법주의에 빠져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도 안식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에 나와야 만이 안식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제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엘가나는 사사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인간을 왕으로 섬기려고 할 때에 실로에 찾아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려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죄로 죽었던 자를 위해 십자가에서 싸워주셨습니다. 영원한 승리를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만군의 여호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겨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을 섬기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니라 실로와 같은 복음이 있는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세상의 물질을 따라가는 것도 아니며, 인간을 섬기는 것도 아니며, 문명을 섬기는 것도 아닙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러 항상 실로와 같은 교회로 나오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브라함 설교]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창13:14-18)

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아브람 설교 중에서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보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창13:14-18) ● 명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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