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사무엘상 20장 구약 강해설교] 요나단이 다윗과 언약함(삼상 20:1-42)

체데크 2022. 5. 17. 08:04
반응형

사무엘상 20장에서는 다윗은 사울 왕의 눈을 피하여 본격적으로 도망치게 됩니다. 다윗이 라마 나욧에 도망쳐서 요나단에게 말합니다. 자기는 잘못이 없는데 네 아버지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상호 보호 계약을 맺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암호를 결정하고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지를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결국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헤어져야 합니다. 다윗은 이제부터 사울 왕으로부터 도피를 시작하게 됩니다.

 

요나단이 다윗과 언약함(삼상 20:1-42)

 

[1-4]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와서 요나단에게 . . . .

다윗이 사무엘과 함께 라마 나욧에 피신해 있었을 때, 사울이 직접 다윗을 잡기 위해 그 곳에 왔으므로 다윗은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나와 요나단을 만나 말했다.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부친 앞에서 나의 죄가 무엇이관대 그가 내 생명을 찾느뇨?” 요나단은 그에게 말했다. “결단코 아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내 부친이 크고 작은 일을 내게 알게 아니하고는 행함이 없나니 내 부친이 어찌하여 이 일은 내게 숨기리요? 그렇지 아니하니라.” 요나단은 그의 부친이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치 아니하리라”고 맹세하며 말한 것(19:6)을 믿고 있었던 것 같다.

다윗은 다시 맹세하며 말했다. 맹세는 상대가 자기 말을 믿지 않을 때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는 내가 네게 은혜받은 줄을 네 부친이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로 이를 알게 하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걸음뿐이니라”고 말했다. 다윗은 이처럼 죽음의 경계선에서 피신하는 삶을 살았다. 다윗이 맹세하며 자신의 위험한 처지를 말할 때, 요나단은 비로소 그의 말을 인정한 것 같다. 그는 그에게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해 그것을 이루리라”고 대답했다.

[5-11]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일은 월삭인즉 내가 . . . .

다윗은 요나단에게 말했다. “내일은 월삭[초하룻날]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해야 할 것이나 나를 보내어 제3일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네 부친이 만일 나를 자세히 묻거든 그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해 거기서 매년제를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하라. 그의 말이 좋다 하면 네 종이 평안하려니와 그가 만일 노하면 나를 해하려고 결심한 줄을 알지니 그런즉 원컨대 네 종에게 인자히 행하라. 네가 네 종으로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케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게 죄악이 있거든 네가 친히 나를 죽이라. 나를 네 부친에게로 데려갈 것이 무엇이뇨?” 다윗은 요나단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네 종이라고 세 번이나 표현하였다.

요나단은 말했다. “이 일이 결코 네게 있지 아니하리라. 내 부친이 너를 해하려 결심한 줄 알면 내가 네게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그는 다윗을 해하려는 마음이 없었다. 다윗이 요나단에게 네 부친이 혹 엄하게 네게 대답하면 누가 그것을 내게 고하겠느냐?”고 말하자, 그는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고 말하며 두 사람이 들로 갔다.

[12-17]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 . . .

요나단은 다윗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거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때에 내 부친을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보내어 네게 알게 하지 않겠느냐? 그러나 만일 내 부친이 너를 해하려 하거늘 내가 이 일을 네게 알게 하여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부친과 함께하신 것같이 너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니 너는 나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나로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버리지 말라.”

13절의 원문은, “만일 내 부친이 너를 해치기를 기뻐하신다면 여호와께서 요나단에게 그렇게 하시고 더 하실지어다. 그러나 나는 네 귀에 알려 너로 가게 하리니 네가 평안히 갈 것이며 여호와께서 내 부친과 함께하신 것같이 너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KJV이 비슷함)고 번역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 요나단은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라고 했다. 요나단은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다.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섭리는 신기하였다. 사울은 다윗을 잡아죽이려 혈안이 되어 있었지만, 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편이었고 다윗을 살게 할 생각을 확고히 하였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을 대적하는 자를 치시기를 맹세하며 소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울의 칼날로부터 이런 방법으로 보호하셨다.

[18-23]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일은 월삭인즉 . . . .

요나단은 다윗에게 말했다. “내일은 월삭인즉 네 자리가 비므로 네가 없음을 자세히 물으실 것이라. 너는 사흘을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그 일이 있던 날에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내가 과녁을 쏘려 함같이 살 셋을 그 곁에 쏘고 아이를 보내어 가서 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살이 네 이편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올지니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살이 네 앞편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영토록 계시느니라.” 요나단은 하나님 앞에서 다윗을 살리며 자유로이 가게 할 뜻을 분명히 하였고 그것을 알려줄 방책까지 제시했다. 요나단은 그것이 자기가 그를 보내주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신다”고 표현하였다. 그는 다윗을 위한 일이 하나님의 일임을 믿었다.

[24-29] 다윗이 들에 숨으니라. 월삭이 되매 왕이 앉아 . . . .

다윗은 들에 숨었다. 월삭이 되어 사울 왕이 앉아 음식을 먹을 때 왕은 평시처럼 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았고 요나단은 서 있었고 아브넬은 사울의 곁에 앉았고 다윗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러나 그 날에는 사울이 아무 말도 아니했다. 이는 그가 그에게 무슨 사고가 있어서 부정한가보다, 정녕히 부정한가보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튿날 곧 달의 제2일에도 다윗의 자리가 비었으므로 사울은 아들 요나단에게 물었다. “이새의 아들이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뇨?” 요나단은 사울에게 대답했다. “다윗이 내게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간청하여 가로되 청컨대 나로 가게 하라. 우리 가족이 그 성에서 제사할 일이 있으므로 나의 형이 내게 오기를 명하였으니 내가 네게 사랑을 받거든 나로 가서 내 형들을 보게 하라 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사 자리에 오지 아니하였나이다.”

[30-34] 사울이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고 그에게 이르되 . . . .

사울은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며 말했다. “패역부도[패역하고 반항적인]의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니라.”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고 죽이려 한 이유는 분명하였다. 그것은 백성이 다윗을 더 사랑하므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왕권이 위태하여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요나단이 그 부친 사울에게 대답하였다.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단순한 마음을 가진 요나단은 아버지의 그런 정치적 염려나 그로 인해 죄 없는 다윗을 죽이려는 불의하고 악한 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요나단의 항의하는 말을 들은 사울은 그를 치려고 단창을 던졌다. 요나단은 그 부친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았다. 그는 심히 노하여 식사 자리에서 떠났고 달의 제2일에는 먹지 아니하였다. 이는 그 부친이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해 슬퍼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친구에 대한 진실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35-39] 아침에 요나단이 작은 아이를 데리고 다윗과 정한 . . . .

아침에 요나단은 작은 아이를 데리고 다윗과 약속한 시간에 들로 나갔다. 요나단은 다윗과 약속한 대로 행하였다. 그는 아이에게 말했다. “달려가서 나의 쏘는 살을 찾으라.” 그는 아이가 달려갈 때 살을 그의 위로 지나치게 쏘았다. 아이가 요나단의 쏜 살 있는 곳에 이를 즈음에 요나단은 아이 뒤에서 외쳤다. “살이 네 앞편에 있지 아니하냐?” 요나단은 아이 뒤에서 또 외쳤다. “지체말고 빨리 달음질하라.” 요나단의 아이가 살을 주워 가지고 주인에게로 돌아왔으나 그 아이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요나단과 다윗만 그 일을 알았다.

[40-42] 요나단이 그 병기를 아이에게 주며 이르되 이것을 . . . .

요나단은 그 병기를 아이에게 주며 이것을 가지고 성으로 가라”고 말했다. 아이가 간 후, 다윗은 곧 바위 남쪽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하였다. 다윗은 왕자 요나단에게 겸손히 예의를 갖추었다. 그런 후에 그들은 피차 입맞추고 같이 울었고 다윗이 더욱 심하였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말했다.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요나단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며 다윗과 약속한 바를 그대로 지켰다. 그는 다윗을 평안히 가게 했다. 다윗은 일어나 떠났고 요나단은 성으로 들어왔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와 섭리를 믿자.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라마 나욧까지 찾아왔고 다윗은 그를 피하여 다니는 신세이었고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걸음뿐이니라”고 말할 정도이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은 요나단에게 격노하며 단창을 던졌을 때 분명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신기하게도 사울의 아들 요나단을 통해 다윗을 피신케 도우셨다. 요나단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며 다윗을 위하였고 다윗의 대적을 저주하였고 다윗을 평안히 가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이 모든 일이 다윗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를 믿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맹세를 지키자. 요나단은 하나님 앞에서 다윗이 평안히 가게 할 것을 약속했고 맹세했고(12-13, 17) 그 맹세를 지켰다. 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후에 다윗도 요나단과의 맹세를 지켰다. 그는 요나단에게 남은 아들인 므비보셋을 선대하여 요나단 때문에 그에게 은총을 베풀었고 사울의 사환 시바와 사울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주었고 므비보셋은 항상 다윗의 상에서 먹었고 다윗은 그를 자신의 아들들 중 하나처럼 대우했다(삼하 9:1, 7, 10-11). 사람이 맹세를 지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증거이다.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맹세를 지키자.

셋째로, 우리는 진실한 우정, 진실한 인간 관계를 만들자. 요나단과 다윗의 관계는 신앙 안에서 맺어진 진실한 우정의 관계이었다. 그것은 심히 아름다운 인간 관계이었다. 본장의 이야기는 마음의 감동과 눈물이 없이 읽기 어려운 내용이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였다고 18장에서도 두 번 증거하였고(18:1, 3) 본장에서도 증거하였다(17절). 요나단은 왕권에 대한 이기적 욕심을 가지고 그릇된 판단을 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또 다윗은 요나단에게 겸손한 예의를 가지고 대하였다(7-8, 41).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는 세상적 이해관계가 없는, 순수한 신앙적, 사랑의 관계로서 우리의 본이 된다.

[창세기 41장 구약 강해설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됨(창 41:1-57)

 

[창세기 41장 구약 강해설교]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됨(창 41:1-57)

창세기 41장에서는 바로가 꿈을 꾸게 됩니다. 바로는 꿈이 너무나 생생하여 애굽의 점술가들과 현인들을 불러 해석하기를 원했는데 한 명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

cdk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