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반갑습니다. 오늘도 복음 빵집에 방문해 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한자 속에 숨어 있는 창세기의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히브리어도 상형문자이기 때문에 알파벳마다 의미가 있는 것처럼 한자도 그림 문자이기 때문에 한자마다 뜻이 있습니다. 한자의 기원을 알면 히브리어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이 문자에 간직되어 있는 창세기 1~10장 이야기
1. 한자의 역사
누가 한자와 같은 문자를 만들었는가? 지나(支那)의 한족이었는가? 아니다! 한국인의 선조인 욕단 족속이다. 원시 한자의 창안자가 동이족(한국인)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홍수 이후 동양으로 가장 먼저 천동(遷動)해서 정착한 사람들은 한국인의 선조인 욕단 족속이었다. 한자의 기원을 지금까지의 연구로는 갑골문자에서 찾는데, 갑골문자가 나온 곳은 은허라고 하는 곳으로 하남성 안양현의 소둔이라는 지방이다. 이곳은 동이족의 땅이었다.
이것은 한자의 기원문제와 주인 문제를 풀게 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한자의 모체인 갑골문자가 동이겨레의 땅에서 출토되었다는 것은 원시 한자의 창안자가 지나의 한족이 아니라 한국인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동이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 갑골(甲骨) 문화였다. 갑골은 거북의 등껍질이나 소의 주걱뼈에 글자를 새긴 것으로, 기원전 2,500년 무렵 발해 연안 북쪽에서 시작되어 중원지방으로 들어가 은나라에서 꽃을 피우게 되었다. 은(殷)나라는 동이족이 중원 땅으로 들어가 세운 나라였다(B.C. 18세기).
우리는 한자의 역사에 대해서 커다란 오해를 하나 하고 있다. 그것은 한자를 지나인의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지나를 아시아 문화의 패권국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지나인들의 오래된 희망사항일 뿐이다. 오늘날 알파벳을 사용하는 영어가 세계의 공용어가 되었다고 해서 알파벳을 “앵글로색슨 문자”라고 해도 될까?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이다. 원시 알파벳의 창안자는 페니키아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자를 ‘한자’로 부르는 것 역시 역사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원시 한자의 창안자는 지나의 한족이 아니라 한국인의 선조였던 동이족이었기 때문이다.
한자는 수천 년에 걸쳐 중원과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 한국인의 선조인 동이족이 만들었던 것을 지나의 한족이 자기들의 글로 삼은 것이다. 따라서 엄격히 말하자면 한자는 ‘한자’가 아니라 ‘동이문자’ 내지는 ‘아시아 사인’(Asia Sign)이라고 해야 타당한 것이다. 한자는 지나의 한족만이 소유하고 발전시켜 온 글자가 아니다. 이 기호를 만드는데 우리의 선조가 깊이 관여했고, 또 긴 시간을 사용하면서 우리의 생각과 숨결을 불어넣었다..
아시아에서 상형문자인 한자를 처음으로 만들었고 사용했던 사람이 동이겨레이기 때문에, 현존하는 한자 5만 3천 5백 25자의 발음 부호인 반 절음(反切音)이 모두 우리말 기준으로 옥편(자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나인은 1918년 11월에 주음자모(注音字母)라는 표음문자(表音文字) 40자(현재 37자)를 제정하여 옥편 상의 전통 깊은 “반 절음”과 전혀 다르게 한자 발음을 표기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현상이 아닐 수 없으니, 한자가 본래 그들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자는 그 모체인 갑골문자 전후 때부터 동이족의 소산인 것이다. 이것이 갑골문자 이래 한자에 이르는 인류 최대의 표의문자로서의 한자가 모두 우리말 이두문(吏讀文)으로 발음기호∼반 절음이 표기되어 온 이유이다.
C. H. Kang과 Nelson은 “누가 언어를 기록할 수 있는 문자를 발명하였는가에 대해 확실하지 않으나 이 발명가에 대한 영광은 일반적으로 창힐(蒼頂)에게 돌려졌다”고 말하고 있다. 창힐(蒼頂)은 은나라 사람이었다. 그러나 은나라에 대해 오늘날 지나 학자들은 지나인의 조상인 화하족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아니라 한국인의 조상인 동이족의 나라라고 말하고 있다. 지나의 현대 학자인 대만 대학의 임혜상 교수는 은나라가 우리 배달 동이겨레임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옛 책들에서 말하기를, 순임금이 동이 사람이요, 제나라 환공을 도와 이적(夷狄)을 물리친 관중(管仲)이 또한 동이겨레의 한 갈래인 내이 사람(萊夷人)이요, 또 근래에는 여러 학자들이 은나라가 동이겨레임을 고증하고 있다. 그런데 진시황이 산동 6제후들을 통일한 뒤에, 동이가 모두 흩어져 일반 백성이 되었다”(임혜상, 중국 민족사, 상권, 제1강, 중국 민족의 분류, 제3절, 各系族略設(二), 東夷系漢族來源之二).
또한 지나 학자 강량부(姜亮夫)는 그의 책 「하·은 민족교」에서 말하기를, “은나라는 옛 동방 민족의 겨레 이름인데, 이 은(殷)자가 곧 이(夷)자와 같은 것이다”라고 하고, 또 이에 대한 증거로서 설문(設文)에서 “이(夷)는 동방 사람이다”라고 한 말과, 서전(書傳)의 태서(泰誓)에서 은나라 “주 임금(紂王)이 비록 억조(億兆)의 동이 사람들을 가졌으나, 그는 이미 마음과 덕을 잃어버렸다”는 말과, 또 묵자의 비명편(墨子, 非命篇)에서 “주이(紂夷)가 하나님 섬기기를 즐겨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서, 은나라가 동이의 나라임을 고증하였다.
그리고 강량부는 은나라와 조선(朝鮮)과의 관계를 밝히기 위하여, 조선 사람의 전설과 은나라의 시조 설(殷契)의 탄생의 전설이 서로 같음과 또 옛날에는 요동(遼東)과 조선 반도 사이가 아직 깊은 바다로 변하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은나라는 지나인의 조상인 화하족의 나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한자의 시작은 어떤 특별한 사람들을 통하여 대체적으로 동아시아 역사의 아주 초창기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대홍수 이후 동양으로 가장 먼저 천동(遷動)해서 중원 및 한반도를 개척, 지배한 사람들은 한국인의 선조인 욕단 족속이었다. 따라서 아시아에서 그림문자를 고안하려는 최초의 노력이 동이족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단재 신채호는 한자가 우리 한민족 선조들의 소산이었음을 그의 책 「조선상고사」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한자의 수입도 기록 이전의 일임이 명백하다. 왕검이 아들 부루를 보내어 도산(塗山)에서 우(禹)를 보고 금간옥첩(金簡玉牒)의 문자를 가르쳐 주었은즉, 이 문자가 곧 ‘한자’일지니 조선이 한자를 연습함이 기구(己久)함을 볼 것이니라”고 하였다.
우리가 문자(文字)라고 하는 것은, 문(文)은 그림을 자(字)는 글자를 의미하는데 글의 유래가 그림으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자로 ‘文’과 ‘字’를 나누어 하나로 붙여 쓰지만 우리말의 ‘글’은 ‘그림’에서 글이 나왔음을 이미 함축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 문자의 기원이 지나인보다 한국인이 앞서 있었을 것이라고 최남선은 논평하고 있다.
그밖에 문정창, 천관우, 임승국 등 많은 역사학자들이 한문은 한족(漢族)의 글자가 아니라 우리의 문화유산임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북한의 대표적인 역사학자인 김석형 박사 역시 한문은 ‘한문’(漢文)이라는 터무니없는 논리와는 무관하게 고조선의 문자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대만 중국문화대학 중문연구소에서 갑골문자와 갑골학을 연구하고 갑골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상명여대의 중어중문학과 교수인 김경일 박사 역시 한자는 동이족의 글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한민족의 선조인 욕단 족속은 홍수 후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니므롯의 위협으로부터 셈계의 일신신앙을 지키기 위해, 니므롯과 함께 서부 바벨론으로 가는 홍수 생존자들로부터 갈라섰다. 그들은 동양의 산악지대(파미르고원→ 천산산맥→ 알타이산맥)를 넘어, 마침내 ‘스발’(시베리아∼만주)에 이르렀다. 동방의 새 땅으로 이동해 와서 삶의 터전을 잡은 일신교도들이었던 그들은 창세기 1장부터 10장까지의 사건들을 잊지 않기 위해 그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해서 보존하고자 했다. 그것이 이른바 한자라고 부르는 상형문자의 기원이 되었고, 바로 이것이 ‘글’의 유래인 것이다. 즉 최남선의 지적과 같이 우리말의 ‘글’은 ‘그림’에서 글이 나왔음을 이미 함축하고 있으므로, 그림 문자인 한자는 바로 우리 겨레의 소산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몇 가지 ‘글’을 살펴본 것처럼 창세기 1장부터 10장까지의 사건들이 약 100여개의 문자 가운데 정확하게 묘사되어져 있다. 동아시아 대륙의 선주민이요, 처음 개척자였던 고대 한국인은 그들의 시대로부터 약 7~10세기 후에 모세가 기록한 성경 가운데 나타난 홍수 이전의 사건들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고대 한국인은 성경 첫 장도 기록되기 전에 창세기 1장부터 10장까지의 사건들을 그림으로 표현하여 보존했던 것이니, 이는 우리 배달 동이겨레가 동양의 ‘스발’(시베리아∼만주)로 갔다고 성경에 기록된 셈족의 현저한 가지 욕단의 직계 자손임을 명백히 입증해 주는 것이다.
상형문자인 일부 한자들 가운데 창세기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자주 언급해 왔으나, 싱가포르에서 활동했던 지나(支那 ․ china) 사람 C. H. 강 목사와 미국인 넬슨(Ethel R. Nelson) 박사는 그것을 체계적으로 함께 연구해 책으로 집필하였다. 그들은 “창세기의 발견”(The Discovery of Genesis)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책에서 창세기 1장부터 10장까지의 사건들이 들어 있는 한자들을 자세히 분석 ․ 설명했는데, 그것은 20세기 성경고고학적 최대의 발견이라고 호평을 받았다(C. H. Kang & E. R. Nelson, The Discovery of Genesis, USA : Concordia Publishing House).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아담부터 노아 홍수까지의 성경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이 분명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그 책에서 몇 가지 중요한 상형문자들을 발췌, 소개해 보겠다.
'구약성경 원어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 숫자의 비밀] 7. 8. 9의 성경 숫자의 개념 (0) | 2020.05.05 |
---|---|
[성경 속의 수론] 성경의 숫자 4. 5. 6의 개념 (0) | 2020.05.05 |
[성경에 나타난 숫자의 의미] 성경 숫자 1부터 3까지의 의미 (0) | 2020.05.04 |
[한자와 창세기] 창세기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 특별한 한자들 (0) | 2020.05.04 |
[성경 숫자 설교문] 성경에 나타난 숫자에 대한 의미 (0) | 2020.05.04 |
[이사야 14장 계명성 하나님 말씀] 아침의 아들 계명성(사14:12-14) (0) | 2020.05.03 |
[히브리어 상형 의미 설교말씀] 도움과 갈빗대 (0) | 2020.05.03 |
[느헤미야 성문 하나님 말씀] 성벽재건의 문을 통한 성도들의 신앙자세(느 3:1-32) (0) | 2020.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