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느헤미야 성문 하나님 말씀] 성벽재건의 문을 통한 성도들의 신앙자세(느 3:1-32)

체데크 2020. 5. 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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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느헤미야 성문 하나님 말씀 중에서 느헤미야가 성벽과 성문을 재건한 것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관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성문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고 성도들이 이 문을 통해서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벽재건의 문을 통한 성도들의 신앙 자세(느 3:1-32)

 

명제: 성벽의 문은 성도들의 신앙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말씀해 준다.

목적: 성벽의 문을 재건하는 것은 신앙의 재건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살게 되므로 예루살렘의 성전이 무너지고 백성들은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70년이 지난 후에 스룹바벨과 에스라가 다시 백성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은 무너졌고 성벽의 성문은 불탄 채로 남아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느헤미야가 듣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하고 아닥사스다 왕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무너진 성벽을 건축할 수 있도록 재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항상 사탄의 방해가 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방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성벽이 재건되는 것을 사탄이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느헤미야에게 힘을 주어 52일 만에 성벽을 재건하게 됩니다. 52의 숫자는 50 + 2인데 50은 기쁨, 구원, 안식, 성령, 이라는 의미이며 2는 분할, 증인, 연합, 성자, 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성벽을 재건했는데 52일 만에 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성벽 재건을 기뻐하시고 성령의 도우심과 함께 성벽을 재건한 자들에게는 기쁨이 있고 구원과 안식이 있으면서 성벽을 통하여 어둠의 자녀와 빛의 자녀가 나누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벽을 재건한 자들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주님을 온 세상에 증거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성벽 재건에 힘을 쏟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숫자가 31명입니다. 31의 숫자적 의미는 하나님의 자손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자들은 버림받은 자손이라면 성벽 재건에 힘을 쏟은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을 받고 안식을 얻게 되며 하나님께서 기념 책에 기록해 놓으시고 큰 상급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도 무너진 나의 신앙을 세워야 합니다. 무너진 믿음을 다시 세워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로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지고 성벽이 불탄 모습을 보고 우리도 가슴 아파하면서 세워나가야 합니다. 교회에 어려움이 있는 것을 보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한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닙니다. 재정이 어려우면 재정으로 보태고 일손이 부족하면 열심히 일하여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성벽의 재건과 문을 세우는 것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세워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영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첫 번째, 양문

느3:1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첫 번째 문은 양문입니다. 양문을 건축한 사람은 대제사장 엘리아십입니다. 제사장들이 양문을 건축하여 문짝을 달았습니다. 이 양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문입니다. ‘양’ צאן(촌 6629) 양, 목자, 목축하는 자,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양이라는 뜻과 목자라는 뜻이 함께 쓰이고 있습니다. 이 양은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요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 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양의 문을 건축하고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문을 통과해야 구원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는 양문 곁에 베데스다 연못이 있었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성전에 들어가고 싶어서 물이 동할 때에 병 고침을 받고 양의 문을 통과하여 성전에 들어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양문을 건축한 자들은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입니다. 이것은 대제사장의 사역을 가지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건축한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자들이 성전에 들어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문’ שער(샤아르 8179) 성문, 문,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ער(샤아르 8176) 쪼개다, 떼어놓다, 값을 매기다, 평가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문은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문입니다. 이 문을 통과하는 자만이 구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문을 통하여 세상의 사람과 하나님의 사람이 나누어지게 됩니다. 신약시대에는 양의 문에서 성전에 쓰일 양을 팔았던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흠이 있는 것들은 값을 매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흠이 없는 양은 성전에서 제물로 드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누고 따로 구분 지었던 곳이 양의 문입니다. 사람들이 흠이 있는 양을 가지고 오면 성전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양이 평가를 받았던 장소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10: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양의 문을 통과하지 않고 다른 데로 가는 자들은 절도며 강도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흠이 없는 양을 가지고 오지 않고 더럽고 추한 양을 가지고 와서 양의 문을 통과하려고 하는 자들은 구원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쪼개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밖에서 울며 이를 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먼저는 예수그리스도의 문을 통과하여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느헤미야 7장 강해 설교말씀] 예루살렘 성 방비 책임자(느 7:1-73)

느헤미야 7장에서는 예루살렘 성 방비 책임자를 선정하여 세웠다. 예루살렘에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켰다. 또한 바벨론에서 1차로 귀환한 자들의 명단을 기록했다. 예루살렘 성 방비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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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어문

느3:3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두 번째 문은 고기의 문입니다. 이곳에서 생선을 파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잡아온 생선을 이곳에서 판매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어문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양의 문을 통과하여 들어온 자들은 많은 고기를 잡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문’ דג(다그 1709) 물고기,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דגה(다가 1711) 수가 늘어나다, 번식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어문을 통하여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성전으로 들어가 구원을 받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많은 물고기는 하나님의 아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잡았던 그물 속에 153마리의 물고기가 있었습니다.

마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지금은 네가 갈릴리에서 고기를 낚고 있지만 앞으로는 고기 대신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난 후에는 설교를 통하여 삼천 명 오천 명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도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데 쓰임 받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단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양의 문을 통과하여 구원받은 자들은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이제부터 많은 세상의 물고기들을 잡아서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데 하나님의 나라에서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복음의 그물을 가지고 세상의 바다로 나가 많은 고기들을 잡아오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옛 문

느3:6 옛 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세 번째 건축하는 문은 옛 문입니다. 이 문은 제일 처음에 세워진 문입니다. 가장 오래된 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옛적에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갔던 그 길을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현대의 빠른 과학기술에 물들어 있어서 옛것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옛것이 없으면 지금의 것도 없는 것입니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옛것을 알아서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옛것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옛 문을 통하여 우리는 믿음의 선진들이 갔던 길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옛 문’ ישן(야샨 3465) 낡은, 묽은, 오래된, 이라는 뜻입니다. 옛날의 오래된 선진들의 믿음을 기억하여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르호보암 왕은 옛날의 오래된 경험이 풍부한 장로들의 말을 듣지 않고 신세대 젊은이들의 말을 들어 실패한 왕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의 말을 듣고 믿음을 세워나가라는 것입니다.

렘6: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길에 서서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를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령에 평강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길을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고통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옛적 신앙의 길을 제시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의 말을 들은 르호보암처럼 나라가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믿음의 선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쉼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의 삶에서 생명의 삶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옛적 길입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이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길을 무시하고 가다가 결국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길을 가시렵니까? 옛적에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길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가시렵니까? 그러면 결국은 영원한 지옥의 불 못으로 던져지고 고통의 삶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 골짜기 문

느3:13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주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까지 성벽 천 규빗을 중수하였고

이 골짜기 문은 유다 왕 웃시야 왕 때에는 망대를 세웠던 곳이고 힌놈의 골짜기로 통하는 문입니다. ‘골짜기 문’ גיא(가예 1516) 골짜기,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גוה(게바 1466) 교만함, 오만, 높임,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골짜기 문은 교만했던 것들이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겸손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오만함과 스스로 자랑하여 교만한 생각과 행동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낮아지는 것입니다.

사40:3-4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외쳤던 말씀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라고 복음을 외치는 것입니다. 이때에 골짜기는 돋우어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골짜기는 교만하고 오만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으로 깨지고 자아가 부서지고 인격이 하나님의 인격으로 변하여 겸손한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오만방자하게 굴었다면 골짜기 문을 통과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배우고 겸손하게 되어야 합니다.

벧전5:5-6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은 겸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며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고 말씀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높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교만하거나 오만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는 더 철저하게 겸손해야 합니다. 그럼 오만하거나 교만한 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하고 거부하여 우습게 보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교만입니다. 이렇게 교만 떨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가 심판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사람 앞에서도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분문

느3:14 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분문은 성전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처리하던 문입니다. 이 문은 똥 문이라고 하여 더럽고 추한 것들을 처리하던 장소입니다. 이곳에서 나병환자들과 거지들이 구걸하던 장소입니다. 이렇게 거름더미에 있던 자들을 귀족의 반열에 세워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분문’ אשפת(아쉬포트 830) 똥 더미, 거름더미,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פה(샤파 8192) 발가벗겨 버리다, 드러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분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죄악 가운데 있었던 가장 추악하고 똥과 같은 존재들이 발가벗겨지듯이 완전하게 추악한 삶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병환자와 거지들은 사람들에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모든 수치가 드러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똥 문을 통과하여 들어왔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하게 죄가 씻겨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원죄가 완전하게 사라진 것입니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전에는 오물 쓰레기 같은 존재였습니다. 거지와 같은 추악한 삶을 살고 있었던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 보혈이 나를 완전하게 깨끗하게 씻겨주셨고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추악한 더러운 거지의 삶은 사라졌습니다. 이제부터는 귀족의 삶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113:7-8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고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주셔서 지도자의 반열에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똥 문 곁에서 살아야 할 나의 인생을 주님께서 대신 똥 문이 되어주시고 나는 귀족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삼상2: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고 빈궁한 자를 똥물이 튀기는 곳에서 올려주셔서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해 주셨습니다.거름더미’라는 단어가 אשפת(아쉬포트)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리고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해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아니면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귀족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추악하고 더러운 똥 문의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죄악의 삶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고후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이제 똥 문에서 나왔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아버지를 존경하며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영과 육이 더러운 똥 문의 삶에서 벗어나 항상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구원받기 전의 생활은 기억도 하지 마십시오. 거지 같은 꼴은 상상도 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모두 청산하여 주셨습니다. 이제 깨끗한 세마포만 입고 다니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느헤미야 4장 주일설교말씀] 느헤미야의 경계태세(느 4:16-23)

느헤미야 4장에서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경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무장을 하면서 성벽을 재건하고 있다.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한 손에는 병기를 잡고 한 손에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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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샘 문

느3:15 샘문은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고 덮었으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왕의 동산 근처 셀라 못 가의 성벽을 중수하여 다윗 성에서 내려오는 층계까지 이르렀고

이 문은 다윗 성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분문에서 약간 북쪽에 있는 곳입니다. 샘 문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생수가 터져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이 충만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샘 문’ עין(아인 5869) 눈, 샘, 목전, 주목하다, 흘러나오다, 라는 뜻입니다. 샘 문을 통하여 흘러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를 마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생수를 마지않으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 생수를 마심으로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요7:38-39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까? 성령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이 아직 제자들에게 계시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백성들은 성령의 임재가 있는 것이고 영원한 생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들음으로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눈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께서 주목하여 보시는 것입니다. 늘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하나님은 주목하여 보고 있습니다.

창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모든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때에 노아만큼은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신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께’라는 단어가 עין(아인)입니다.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 발견되었습니다. 노아의 삶이 성령님이 이끄시는 데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노아를 주목하여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이제부터 세상의 우상의 술을 마시지 말고 방탕한 삶을 살지 말며 오직 성령님으로 인하여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똥 문 다음에 샘 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똥 문과 같은 삶에서 구원을 얻은 백성들은 이제부터 샘 문과 같은 성화의 삶을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부터는 샘 문과 같은 곳으로 통과하여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에 대하여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수문

느3:26 (그 때에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주하여 동쪽 수문과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내민 망대까지 이르렀느니라)

수문은 기혼 샘의 바로 서쪽에 있었습니다. 이 문을 통과하여 성전에 쓰일 물을 길어 다니게 된 것입니다. ‘수문’ מים(마임 4325) 물, 샘물, 원천, 이라는 뜻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이 없으면 사람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고 나면 끊임없이 생수를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사35: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연못과 같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되는데 물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전에는 뜨거운 사막처럼 황폐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물이 솟구쳐 올라오는 분천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생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면 메마른 땅도 광야도 옥토로 변하는 것입니다. 생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믿은 자들은 옥토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느8:1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수문 앞 광장에서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 책을 낭독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성벽이 재건되지 않아 완전하게 무너져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벽이 재건되고 나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전에는 예수님에 관하여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는데 지금 에스라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라’ עזרא(에즈라 5830) 에스라,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עזר(아자르 5826) 돕다, 도와주다, 도움을 얻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에스라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에스라는 율법의 말씀을 통하여 백성들의 영적인 눈을 열어주고 있는 인물입니다. 지금까지 영적인 눈이 어두워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에스라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고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말씀을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하심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놀랬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도움을 받아 구원을 얻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 일을 하게 하는 사람이 바로 에스라입니다.

느8:8-10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에스라가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백성들이 모두 깨닫고 우는 것입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의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들의 마음이 찔림을 받아 울게 되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울지 말라고 말하면서 지금은 여호와의 성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날은 거룩한 성일인데 종교 달력으로는 나팔 절기에 해당하는 날입니다. 나팔 절기는 민간 달력으로는 새해의 시작입니다. 에스라는 율법 책을 낭독하여 주고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날은 일곱째 달 초하루입니다. 지금까지 죄악 가운데 갇혀있던 자들이 나팔을 불어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을 주님께서는 재림하셔서 임하게 되는데 나팔을 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문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먹고 마심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샘물처럼 솟구쳐 나오는 것입니다.

요6:50-51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떡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떡을 먹으면 굶주리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살을 먹는 자들은 영원히 주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복음입니다.

요6: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우리 안에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되며 마지막 날에 주님이 다시 부활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주님의 참된 양식인 살과 참된 음료인 피를 마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2장 예수님 말씀] 예수님의 생애(눅 2:40-52)

누가복음 2장에서는 예수님이 성장한 것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사생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라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셨다고 말씀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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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마문

느3:28 마문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마 문은 예루살렘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문입니다. 이 문은 수문과 양문 사이에 있는 곳입니다. 과거에 마 문은 말이 통과하던 문입니다. ‘마문’ סוס(수스 5483) 말, 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말은 힘과 전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권능과 권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전쟁에 나갈 때에 말을 타고 가서 승리하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은 전쟁과 능력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계9:16 마병대의 수는 이만 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거짓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수를 이만 만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마병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거짓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힘이 세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마 문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로 탄생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딤후2:3-4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백성들이 되었다면 이제는 예수님의 좋은 병사로 탄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고난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병사로 복무하는 자들은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데 세상의 일에 얽매여 못한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병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사는 인생이 그리스도의 군사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가 된 사람들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벽의 마 문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유다의 아하시야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달랴가 유다의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그때에 왕의 자손들을 모두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아달랴의 폭정이 6년 동안 이루어지고 이때에 바알의 우상이 들어오고 여호와 신앙은 사라지게 됩니다. 7년째에 여호야다라는 인물이 나타나 아달랴를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왕하11:15-16 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를 거느린 백부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를 대열 밖으로 몰아내라 그를 따르는 자는 모두 칼로 죽이라 하니 제사장의 이 말은 여호와의 성전에서는 그를 죽이지 말라 함이라 이에 그의 길을 열어 주매 그가 왕궁의 말이 다니는 길로 가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였더라

여호야다가 백부장들에게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아달랴와 그의 무리를 죽이는데 여호와의 성전에서는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곳에서 더러운 피를 흘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을 열어주었는데 아달랴가 왕궁의 말이 다니는 길로 가다가 거기서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곳이 바로 마 문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여호야다와 같은 복음의 진리 말씀으로 무장한 자들은 아달랴와 같은 거짓된 복음을 전하는 우상숭배자들을 처단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아달랴가 죽은 곳이 마 문입니다.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6년 동안 우상을 섬기게 했지만 결국은 구원받은 여호야다와 같은 자들에 의하여 힘과 권능의 상징인 마 문에서 심판을 받아 죽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이 있는 자들은 거짓된 비 복음을 전하는 이단들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 떨 것이 없습니다. 이들은 반드시 십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처단하기 때문입니다.

아홉 번째, 동문

느3:29 그 다음은 임멜의 아들 사독이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동문지기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가 중수하였고

아홉 번째 문이 동문입니다. 이 문은 동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광명한 새벽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문이기도 합니다. ‘동문’ מזרח(미즈라흐 4217) 동쪽, 해 뜨는 쪽,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זרח(자라흐 2224) 임하다, 비치다, 떠오르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동쪽은 해가 비치는 쪽입니다. 어둡고 탁한 세상을 진리의 빛으로 밝혀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빛이 임하여 영원한 죽음에 있던 자들에게 빛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이 빛을 받은 자들은 모두가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지 못한 자들은 결국 어둠에 싸여 죽게 되는 것입니다.

말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오르게 됩니다. 여기에서 ‘떠올라서’ 라는 단어가 זרח(자라흐)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치료하는 광선이 비추게 되는데 영원히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죽었던 영혼들이 빛을 받아 치료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옥 같은 죄악의 삶에서 나와 송아지처럼 기뻐서 뛰게 되는 것입니다.

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예수 그리스도는 동쪽에서 떠오르는 광명한 새벽 별과 같은 존재입니다. 가장 어두울 때에 함께하셔서 빛을 주시는 태양처럼 이 세상에 임하신 것입니다. 나도 태양의 빛을 받았기 때문에 살아났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태양의 빛이 나에게 임하여 추하고 더러운 모든 죄들이 사라졌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빛 때문에 나의 모든 원죄가 사라지고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103: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시편 기자는 동이 서에서 먼 것과 같이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겨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해 뜨는 동쪽에서 태양이 떠서 나의 모든 더러운 죄를 씻겨주시고 서쪽으로 물러가게 해 주신 것입니다. 해가 지면 어둡게 되지만 이제부터 구원받은 백성들에게는 어둠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항상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6장 강해 설교말씀] 바벨론이 예루살렘 공격 예언(렘 6:1-30)

예레미야 6장 강해 설교말씀은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공격할 것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말을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니 이방 백성을 통해서 징계하고 있다. 완고하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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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기 때문에 나를 따르는 자들은 절대 어둠에 다니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기 때문에 다시는 죄악으로 인하여 죽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에 거하기 때문에 죄악의 자리에 있지 않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더 이상 구원이 취소되지 않고 어둠에 있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열 번째, 밉갓문

느3:31 그 다음은 금장색 말기야가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 느디님 사람과 상인들의 집에서부터 성 모퉁이 성루에 이르렀고

열 번째 문인 밉갓 문은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문입니다. 이 문은 양문으로 연결되는 곳이고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는 곳에 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밉갓문’ מפקד(미프카드 4663) 함밉갓,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פקד(파카드 6485) 살피다, 벌을 주다, 심판하다, 권징하다, 징벌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밉갓 문은 지정된 장소로서 장로들이 모여 사건을 재판하던 장소입니다. 우리가 밉갓 문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진리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명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임명하여 주셨습니까? 성도의 직분입니다. 이 직분을 소홀히 하여 아직도 세상에서 정신 못 차리고 살면 하나님은 심판대 앞에 세워 징벌하여 형벌을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어 있습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이 태어나서 한번 죽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육신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로부터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도 두렵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거나 떨지 않아도 됩니다. 성도의 신분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빌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고 있지만 이미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자로서 살아가기 때문에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는 사람은 세상의 사람이지만 하늘의 소망을 두는 사람은 하늘의 시민권자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계22:3-5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하늘의 시민권자들은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임명하신 것입니다. 이곳은 밤이 없습니다. 항상 여호와 하나님의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등불과 태양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항상 나에게 비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영원히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할 것이 준비되어 있고 임명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라고 성도의 직분을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하는 모습을 통하여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 성전을 세우고 문을 만드는 것을 통하여 나의 신앙도 재건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이 무너져 황폐해져 있다면 빨리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양문을 통과하여 들어오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을 받은 확신이 있다면 항상 샘 문과 수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와 성화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어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전도의 문입니다. 많은 백성들을 하나님 앞에 오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려면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을 받으려면 항상 마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말이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듯이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잠을 자지 않으려면 골짜기 문과 옛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옛 문을 통하여 믿음의 선진들의 말씀을 잘 듣고 골짜기 문을 통하여 겸손하게 주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오만불손하게 교만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만해지지 않으려면 똥 문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장 추악했던 삶을 기억하여 다시는 그곳으로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똥 문을 기억하면 나의 현재의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문을 통과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받고 밋갑문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천국의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서 살아갈 것이 확정되어 있는 성도들입니다. 이제부터 성벽의 문을 통과하여 항상 주님과 하나가 되어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가서 7장 복음 설교말씀] 성숙된 신랑과 신부의 사랑(아 7:1-13)

아가서 7장 복음 설교말씀은 성숙된 솔로몬 신랑과 술람미 신부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한다.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성숙한 술람미 신부에 대해서 노래를 부른다. 신랑인 솔로몬 왕도 술람미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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