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오늘은 성경 숫자 중에 1부터 3까지의 의미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보겠습니다.
◎ 1 수론(數論)
1을 나타내는 말에는 하나, 한 번이라는 뜻을 가진 기수 אחד‘에하드’(unity)와 첫째, 장자라는 뜻을 가진 서수 ראשון‘리숀(primacy)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리숀은 우두머리 정상, 가장 좋은 것, 앞 시작, 총수, 처음 등의 의미를 가진 명사로 쉬에서 파생한 단어로, 이전의, 첫째의, 최고의, 정월, 처음, 첫날, 먼저 등의 뜻을 포함하고 있다.
성경에서 1이라는 숫자는 1없이는 아무 수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기본수이며, 모든 수는 1(하나)에 의존한다. 그래서 1은 시작을 뜻하며 그것 자체로서 완전해서 그 어떤 다른 수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 독립하기 때문에 홀로 서있으며 독특하며 불가분을 표시한다. 1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첫 번째 알파벳인 א‘알레프’는 시작과 우두머리를 상징한다. ‘황소’(ox, bull)를 의미하는 알레프는 원래 ‘소머리’를 본뜬 모양이다. 소를 의미하는 알레프의 복수형은 אלף‘엘레프’로 ‘일천’(one thousand)을 뜻하기도 한다.
특히 하나님과 연관하여 사용될 때는 ‘무한한’(infinite), ‘셀 수 없는’ (innumerable)의 의미가 더해진다. (출20:6, 34:7, 신5:10, 렘32:18, 벧후3:8-10, 시90:4, 계20:2,5). 또한 알레프는 헬라어로 알파에 해당하는 알파벳이다. 이 알레프와 알파는 수(數)로는 1000뿐만 아니라, 1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더불어 1이라는 값을 가진 알레프와 알파는 ‘처음(first)’ 또는 시작‘(beginning)’ ‘근본’(origin, source), 기력의 시작이라 여겨지는 ‘장자’(firstborn)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1수는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 가운데 첫째이며, 먼저이고, 모든 것을 산출했으며, 모든 것이 그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홀로 서고 모든 것에 독립하여 계신다. 그는 스스로 만족하시며 부족이나 둘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오직 하나뿐이다.. 구속과 구원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다. 그것을 처음으로 밝힌 것은 그의 말씀이었다. (창3:15) 그것을 처음으로 의도하신 것은 그의 의지였다. 그것을 성취하신 것은 그의 권세였다.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양상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며 〈한〉 분이시니” (신 6:4)
“남자와 여자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며” (창 2:24)
“온 땅의 구음이 〈하나〉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창 11:1)
“놋 갈고리 오십을 만들고 그 갈고리로 꾀어 연합하여 〈한〉 막이 되게 하고” (출 26:11)
“이 중에 〈하나〉에 허물이 있을 때에는” (레 5:5)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서” (레 26:26)
“너희 중 너희와 우거 하는 타국인이나 〈한〉율례니” (민 15:15)
“그 막대기들로 서로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여” (겔 37:17)
“모든 산에서 그들로 〈한〉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겔 37:22)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 (겔 37:24)
◎ 2 수론(數論)
2를 나타내는 말에는 두 번째를 의미하는 서수 שני‘쉐니’와 둘을 의미하는 기수 שנים‘쉐나임’이 있다. 쉐니는 이튿날, 차자, 우편의 뜻을 포함하고 있으며, 쉐나임은 반복하다, 다시 행하다, 가르치다, 입으로 전하다 등을 뜻하는 שנה‘샤나’에서 유래된 단어로 쌍, 갑절, 양편 등의 뜻을 가진다.
그래서 히브리적 표현에서 2는 곱하다, 반복하다, 두 번째 행하다 등을 의미한다. 종교적 전통에서 2는 절대적인 신성이 분리되고 분열되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 〈2〉혹은 〈둘〉이라는 수사가 나타나는 경우는 아래와 같다.
“하나님이 〈두〉큰 광명을 만드시고 큰 광명으로 낮을,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창 1:16)
“한 남자가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고” (창 2:24)
“각기 ‘암수 한 쌍씩’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노아에게로 나아왔고” (창 6:19-20)
“이스라엘 백성이 〈두〉마음을 품어서 죄를 범했으며” (호 10:2)
“여호와의 사자가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렀으며” (창 22:15)
“야곱의 양들이 〈두〉떼나 이루었으며” (창 32:10)
“한 땅에 〈두〉종자를 섞어서 뿌리지 말도록 하였고” (레 19:19)
“죄를 정죄할 때 한 증인으로만 하지 않고 〈두〉증인을 세웠으며” (신 19:15)
“다윗이 모압을 쳐서 〈두〉줄 길이의 사람을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렸으며” (삼하 8:2)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증거판은 〈둘〉이고” (출 31:18)
“속죄 물은〈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이며” (레 5:7)
이상과 같은 〈둘〉이라는 수사는 없으나 의미상 〈둘〉을 지시하는 내용은 허다하니, 출애굽기 8장 32절에는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에 구별을 둔다”고 했고, 창세기 첫 장에는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었으며,” 하와는 창조의 둘째 인간이며 구약성경에는 옛 계약과 새 계약이 있고, 제사 시에는 두 마리의 새가 있어 한 마리는 살해되고 한 마리는 방면되었으며, 두 마리의 염소가 있어 한 마리는 살해되고 한 마리는 방면된다. (레 14:5-8, 16:8)
그리고 구별되는 이름은
가인과 아벨이 있으며 (창 4:1-2), 이스마엘과 이삭이 있고 (창 16:11, 17:19)
야곱과 에서가 있으며 (창 25:25-26), 와스디와 에스더가 있으며 (에 1:9, 2:7)
여인의 후손과 사단의 후손이 있고 (창 3:15), 정과 부정이 있다 (레 10:10).
그리고 창세기 19장에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상이 있는데, 그 기사는 두 가지 모습으로 가득 차있다. 즉〈두〉천사 (19:1), 늙은이와 젊은이의〈두〉연령층 (19:4), 〈두〉딸 (19:8), 크고 작은〈두〉무리들 (19:11), 들과 산의〈두〉장소 (19:17), 유황과 불로 파괴하는〈두〉행위(19:24), 집과 동굴의〈두〉거주지 (19:3,30), 모압과 벤암미의〈두〉자녀 (19:37,38), 이 밖에도 모세와 아론, 갈렙과 여호수아, 엘리야와 엘리사 등〈두〉수를 내용으로 하는 것은 허다하다.
이상과 같이 〈두〉수는 ‘구분(division)과 분리(seperation)’와 ‘차이(difference)와 보완(replacement)'을 그 공통근의(共通根意)로 갖는다.
2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파벳 ‘베트’는 집 모양을 나타낸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브리어 베트는 헬라어로 ‘베타’에, 영어로는 알파벳 ‘B, b' 에 해당한다. 숫자의 의미로는 베트와 베타 모두 2 또는 2000에 해당하는 알파벳이다.
성경에서 2라는 수는 증거의 수로, 두 사람의 증인이 있을 때 참으로 증명 된다. (민 35:30, 신 17:6, 요 8:17, 계 11:1-4), 빛으로 오신 예수님도 자신에 대한 증인으로 보내신 자 하나님과 예수 자신이 두 증인이라는 것을 강조하셨다 (요 8:18). 둘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δεύτερος‘듀테로스’로 둘째, 두 번, 다시, 두 번째의 사람 또는 물건 등을 의미 한다. (마 22:26,29, 고후 3:12, 히 8:7, 계 2:11). 단순히 둘, 이틀을 의미하는 δύο‘뒤오’라는 말도 있다.
한편 둘이라는 수는 주님의 초림과 재림과 관련해서도 사용된다. 초림에 대하여서는 고전 15;47에 ‘하늘에서 오신 둘째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재림과 관련해서는 완전한 구원을 위해 다시 오시는 주님이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고 기록되어 있다. (히 9;28).
참고로 열한 번째 히브리어 알파벳인 ‘카프’와 열 번째 헬라어 알파벳인 카파는 20이라는 수의 값을 가지며, 스무 번째 히브리어 알파벳인 ‘레쉬’와 헬라어 알파벳 ‘로’는 200이라는 수의 값을 가진다.
◎ 3 수론(數論)
3을 나타내는 말에는 셋이라는 뜻의 기수 שלוש‘솰로쉬’와 셋째라는 수 שלישי‘쉘리쉬’가 있다. 헬라어로는 τρείς‘트레이스’가 있다. 이 3수는 포괄적으로 완성과 완결의 수로 이해된다. 구약성경에서 3은 거룩한 완전수이며 완성수로, 처음과 중간과 끝, 연합 및 협력, 승인 및 허가의 뜻이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제례의식에서 완전무결함을 의미하는 수이다. 고대인들은 우주와 하늘과 땅(지상), 지하의 세계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성경속의 수의 신비, 연합공보 출판부, p.57).
숫자 3에 해당하는 세 번째 히브리어 알파벳인 ג‘김멜’은 헬라어로는 γ‘감마’에 해당하며, 3 또는 3,000이란 수의 값을 가진다. 특히 성경에서 3이라는 수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곧 하늘의 수로 하나님의 완전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구약 성경에서 〈3〉혹은 〈3〉이란 숫자가 나타나는 경우는 아래와 같으나 곧,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는 〈3〉년 된 암소와 〈3〉년 된 암염소와 〈3〉년 된 수양을 잡아라” (창 15:9) “이스라엘 백성이 매년 〈3〉차례 절기를 지키며” (출 23:14)
“각종 나무를 심거든 〈3〉년 동안은 그 열매를 따지 말라” 고 했고, (레 19:23)
“살인자나 죽임을 당한 시체를 만진 자는 제〈3〉일과 제 7일에 몸을 깨끗이 하라 (민 31:19)
“다니엘은 하루 〈3〉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했으며” (단 6:10)
“엘리야는 죽은 시신 위에 몸을 〈3〉번 펴서 엎드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며” (왕상 17:21)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천사는〈셋〉이었으며” (창 18:2)
“애굽의 술 관원이 꿈에 본 포도나무는 가지가 〈셋〉이며” (창 40:10)
“솔로몬의 궁전은 창들이 〈3〉줄로 있는데 창과 창이 〈3〉층으로 서로 대하였고” (왕상 7:4)
“다니엘은 〈3〉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였으며“ (단 10:”3)
“다윗에게...혹 〈3〉년 기근일지, 혹 네가 〈3〉달을 대적에게 패하여 대적의 칼에 쫓길 일일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온역이 〈3〉일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대상 21:12)고 했고
〈3〉성읍에 〈3〉을 더해서 늘리기로 되어 있는 도피성 (신 19:7,9)과
성막은 뜰 성소 지성소의 〈3〉구분으로 되어 있고 (출 26:33, 27:9)
아론의 축복에서 여호와의 이름이 〈3〉번 나오고 하나님의 축복행위가 〈3〉번 이루어 질 것” (민 6:24~26)을 단언했고
출애굽기 3:14절의 “나는 ........이다”는 확대하여 과거, 현재, 미래에 미치게 된다. (계 1:4, 4:8)
또한 구약성경에는 수많은 삼총사가 있으니 셈과 함과 야벳(창 5:32),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출 6:16),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 등등이 있다. 약속의 땅(가나안)이 완전한 자연임을 증거 하는 귀국한 정탐꾼의 보고에 의하면 〈3〉가지였으니, 포도, 석류, 무화과였다 (민 13:23).
그리고 〈3〉수로 완성된 신성화의 아름다운 모습은 문둥병의 완치나 제사장의 성결 의식에서 볼 수 있다. 그때에는 피와 기름을 붓는데 피를 오른쪽 귓밥에, 오른손 엄지에, 그리고 오른발 발가락에다가 발랐다 (레 14:14). 이와 같은〈3〉중(重) 성결화는 하나님께 듣고, 하나님께 봉사하고,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기 위함이었다.
이상의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3〉수는 질적으로 본 거룩한 완전수(完全數: perfect)이며, 완성수(完成數: completeness)로서, “동위(同位: co-ordination, 처음과 중간과 끝)”의 개념을 가졌으며, ‘연합(聯合) 및 협력(協力: union)', 승인(承認) 및 허가(許可: approbation)'의 뜻을 지닌다. (엄원식 교수의 구약성서의 수신학, p.53) 그리고 기독교에서 3위1체의 교리가 확립된 후 “〈3〉이란 숫자는 하늘의 수로 하나님의 완전성을 나타낸다.” 라고 할 수 있다.
노아 방주가 3층으로 만들어진 이유
방주의 3층 구조와 레위기 3중 구조를 보아야 한다. 레위기에는 거룩한, 정결한, 부정한과 같은 단어들이 중심단어로 사용된다. 레위기는 거룩하지 않은 모든 것은 속된 것이고, 속된 것은 정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구분한다. 또한 ‘거룩’은 ‘속된’의 반의어이며 정한 것은 부정한 것의 반대어이다.(레12~15장)
히브리 사고방식에서 만물은 정하지 않으면 부정하고, 거룩하지 않으면 속된 것으로 규정한다. 성경은 만물을 거룩한 것과 정한 것, 그리고 부정한 것, 3중 구조로 구별한다. 이러한 만물의 3중 구조는 노아 방주의 모습을 보여주며 방주의 3층 구조는 인류(인간)의 성화 과정을 예표 한다.
방주의 하층부와 레위기의 부정함
창세기는 방주에 들어간 부정한 짐승이 어디에 있었는지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레위기를 통해 하층부에 들어갔다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게 만든다. 방주의 하층부는 만물의 부정과 연관되며 타락한 인간의 상태를 상징한다.
방주의 중층부와 레위기의 정결함
정결한 짐승은 노아의 방주 중층에 들어갔으며, 이것은 죄악 된 상태와 거룩한 상태의 중간과정을 의미한다. 레위기에서 정함(깨끗함)이란 거룩함과 부정함 사이의 중간상태를 말하는데 정결은 순결을 의미하지만 레위기에서는 정상이란 개념으로 사용된다.
방주의 상층부와 거룩함
레위기의 표어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4~45, 19:2, 20:26)이다. 거룩함은 율법의 순종과 제사 등을 통해 달성된다. 거룩한 상태는 거룩한 삶으로 표출된다.(골1:22, 벧전1:15) 방주 상층부에 있던 노아의 가족은 속된 것(정한 것과 부정한 것)에서 벗어나 거룩한 상태(그리스도의 형상)에 있는 인류, 성화의 과정을 거쳐 영화의 상태에 있는 천국 백성을 의미한다. 3층으로 된 노아방주는 타락한 인류 구속의 과정을 예표 한 것이다.
구약에서 삼일의 모형들
예수님의 모형인 이삭도 삼일의 기간을 통과했다.(창22:4) 아브라함과 이삭이 걸은 3일간의 길은 고민과 갈등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독자 이삭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예표가 되었다.
선지자요나는 니느웨 성에 전도하기 위해 삼일 길을 걸었고, 삼일 길을 걸은 요나의 심판의 메시지를 통해 니느웨 성 사람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이루어졌다. 요나의 삼일 길은 온전한 구원을 위한 과정이었다.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하다 물고기 뱃속에서 3일간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3일 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표 한다.(마12:40)
삼일은 영적인 구원의 기간 상징
‘삼일’ 이란 시간적 표현은 구약성경에 여러 번 나타나는데 숫자 3은 성경적 상징으로 하늘의 수로서 완전수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완전성을 3이란 숫자를 통해 표현하며, 사도 바울은 하늘이 세 하늘로 구성되어 있다고 증거하고, 3층으로 만들어진 노아의 방주는 구원의 완성이 세 단계로 이루어질 것을 상징한다.(성경속의 수의 신비, 연합공보 출판부, p.6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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