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7장 성경주석 설교말씀은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참 지혜의 잠언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한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더 낫다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생활의 지혜를 받아 살아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생활에서 필요한 참 지혜의 잠언(전 7:1-29)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음(1-4)
• 7:1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아름다운 이름이란 명예 영광심으로 얻은 이름이 아니라 자기 인격이 신앙으로 만들어져서 그 실력으로 얻은 이름을 가리킨다. 이것은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그 이유는 보배로운 기름은 얼마 후에 없어지나 신앙으로 만들어진 인격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에서의 명예 영광을 구하지 말고 그 인격이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만들어지기를 힘써야 한다. 그것은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아름다운 인격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높여줄 날이 온다. 혹 이 세상에서 몰라주어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빛날 것이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이 세상 사람들은 출생하면 기뻐하고 죽으면 슬퍼한다. 그러나 성도는 출생하는 날보다 죽는 날이 더 낫다. 왜냐하면 출생하는 날은 이 세상에서 고생하기 시작하는 날이요 죽는 날은 이 세상의 고난을 끝마치고 천국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신랑이고 우리는 신부인데 죽는 날은 신부가 신랑 되는 예수님 앞으로 가는 날이요 사모하고 기다리던 아버지의 집에 가는 날이니 얼마나 좋은 날인가? 그 나라는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나 눈물이 없이 영생 복락을 누리는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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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눈물과 한숨과 고통과 질병과 죽음과 환난과 핍박과 괴로움이 가득한 곳이며 출생하는 날은 그 모든 고생을 하기 시작하는 날이다. 그런데 죽는 날은 그 모든 고생과 수고를 끝마치고 낙원(천국)으로 가는 날이니 얼마나 기쁜 날인가? 사도 바울은 세상을 떠나 주와 함께 살기를 늘 소원했고(빌1:23), 또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했다(빌1:21).
• 7: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세상 사람들은 잔치집에 가는 것은 좋아하고 초상집에 가는 것은 꺼려한다. 그러나 사실은 초상집에 가는 것이 더 낫다. 초상집에 가면 인간의 결국을 생각해 볼 수 있고 또 자기의 종말을 생각하게 되므로 지나온 과거를 살펴보며 잘못을 회개하게 되고 친국 갈 준비를 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잔치집에 가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뿐이요 신앙의 유익은 별로 없다.
• 7:3-4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자기의 죽음을 생각하고 자기의 되지 못한 면이나 죄를 붙들고 슬퍼하는 것이 웃음보다 낫다. 죄와 허물을 안타까워하며 슬퍼하고 근심하며 회개하면 청결한 마음이 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로설 날이 오고, 하나님 앞에 갈 준비를 잘 하게 된다. 그러나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디모데전서5:6에 “일락 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만 있다. 그들은 지나친 연락을 즐기다가 그 몸이 쇠약해지고 재산도 탕진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 앞에 바로 살려고 힘쓰고 죄를 회개함과 인생의 죽음과 내세를 생각하며 거기에 대한 준비를 한다. 이것이 마음이 초상집에 있는 것이다.
책망을 듣는 것이 노래 듣는 것보다 나음(5-7)
• 7:5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지혜자가 바른 책망을 해줄 때에 그 책망을 들으면 마음에 가책을 받고 회개하고 바로 고치게 될 것이다. 에베소서5:13에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고 했다. 그러나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은 들을 때에는 귀에 즐거우나 듣고 난 다음에는 방탕하기 쉽고 심령에 아무 유익이 없다.
• 7:6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어리석은 자의 웃음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 소리와 같다. 가시나무 타는 소리는 질서와 규율이 없이 요란한 소리를 낼뿐이다.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자기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다.
• 7:7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느니라
탐심이 들어오면 마음이 어두워져서 지혜가 다 없어진다. 뇌물을 받으면 명철이 없어지고 그 눈이 어두워져서 일을 굽게 하고 불의한 일을 하게 된다(출23:8; 신16:19; 잠17:8). 야고보서1:15에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다.
모든 일을 참고 오늘의 할 일을 바로 하라(8-10)
• 7: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큰 일을 시작하고 중간에서 그만두는 것보다 작은 일이라도 끝까지 참고 견디면서 그 일을 성공시키는 것이 낫다. 일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인내하면서 그 일을 끝맺어야 한다. 시작하는 것도 중요 하지만 끝맺는 것은 더 중요하다. 더구나 옳은 일을 시작했으면 어떠한 환난과 고난이 와도 잘 참고 계속해서 그 일에 열매를 맺어야 한다.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끝까지 참는 자가 모든 일에 성공하고(약1:12),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약4:6).
• 7: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노를 품으면 하나님께 기도가 안 된다. 상대방이 잘못하고 자기가 아무리 잘했어도 노를 발하면 벌써 실패이다. 잠언16:32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했다. 아무리 노할 일, 섭섭한 일, 속상한 일이 있어도 노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노하면 마귀에게 지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격동받고 노할 일이 생길 때에 노하지 말고 잘 참는 자가 지혜로운 사람이다. 노를 품는 자는 미련한 자이다.
• 7: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
사람들이 대개는 현재 불만에 살면서 과거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미련한 생각이다. 성도는 과거를 잊어버리고 현재에 자족을 배우며 자기 할 일을 바로 해나가며 내세의 소망을 바라보아야 한다. 지나간 세월을 아무리 자랑하거나 추억해도 쓸데없다. 그것은 믿는 일에 아무 도움이 안 되며 마귀에게 속는 일이다. 과거의 일은 회개와 현재의 경건생활을 위한 경험적 지식으로 삼을 뿐이다(딤전1:13).
성도는 현재에 당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가장 은혜되고 유익하고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 준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쓴 것이나 단 것이나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다. 또 감당치 못할 것은 주지 않으신다(고전10:13). 그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여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인격으로 만드시려고 하시는 것이다(약1:2-4).
돈보다 지혜와 지식이 귀중함(11-12)
• 7:11 지혜는 유업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하도다
여기 지혜는 하나님을 섬기는 지혜, 영적 지혜를 가리킨다. 유업은 영구히 계속되는 소유를 가리킨다. 햇빛을 보는 자는 이 세상에 사는 자를 가리킨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지혜인 그 말씀대로 사는 자는 세상의 모든 소유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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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2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지혜, 지식은 성경 말씀을 깨달아 아는 것이다. 이 지식이 더욱 아름답고 유익함은 그것을 얻은 자의 생명을 보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지키면 영적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다. 돈이 육신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진노하는 날에는 아무 유익이 없고(잠11:4)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요한복음5:39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라고 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사람이 고칠 수 없음(13-14)
• 7:13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는 사람이 변경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굽게 해놓으신 것을 사람이 곧게 펼 수 없다. 굽은 것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곳에 굽은 대로 사용해야 하고 곧은 것은 곧은 것을 필요로 하는 곳에 사용해야 한다. 굽은 사람은 굽은 대로 사용하고 거기서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구부러진 사람 때문에 속상하면 믿는 일이 안 된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바른 말을 해주고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옳다.
•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장래 일을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려고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형통하다고 늘 형통하겠거니 생각해서는 안 되며 곤고하다고 해서 늘 곤고하겠거니 생각하면 안 된다. 곤고한 날이 지나면 형통한 날이 오고 형통한 날이 지나면 곤고한 날이 올 줄 알아야 한다. 그 러므로 형통한 날에 안일주의와 방종에 빠지지 말고 앞날에 올 환난을 준비해야 되고, 곤고한 날에 회개하며 믿음으로 이기며 소망을 가져야 한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이것은 좋은 시대에 선하게 살라는 뜻이다. 성도는 좋고 평안할 때에 앞날에 올 환난을 생각하여 선하게 살며 믿음을 준비하여야 한다. 좋은 시대에 세상에 빠져서 믿음 준비하지 못한 자는 환난이 올 때에 이기지 못한다.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곤고한 날에는 자기의 죄를 깊이 생각해 보고 자기 죄를 찾아 회개하여야 한다. 사람이 형통할 때는 자기 죄를 깊이 찾아 회개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곤고할 때는 죄를 찾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탕자가 형통할 때는 방탕했으나 곤고할 때 자기의 죄를 깊이 생각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갔다(눅15:11-21). 그러므로 성도는 형통한 날에 선하게 살며 믿음 준비를 잘해야 하고 곤고한 날에는 낮아져서 회개하며 하나님을 찾아나가서 영적 생명의 길을 걸어야 한다.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장래에 평안할 지 곤고할지 하나님께서 알지 못하게 하셨다. 그 이유는 알지 못하여야 믿음을 지키겠기 때문이다. 장래가 형통할 줄 알면 방심하기 쉽고 장래가 곤고할 것을 알면 그것을 염려하여 현재에 감사하지 못하고 낙망하기 쉽다. 그러므로 성도는 장래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날그날 믿는 일을 잘하며 그것으로 족한 줄 알아야 한다(마6:34).
지나치게 의인이나 지혜자가 되지 말라(15-18)
• 7:15 내가 내 헛된 날에 이 모든 일을 본즉 자기의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자기의 의는 인본주의 의를 가리킨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고 의인이 하나도 없다(롬3:10). 그런데 사람이 몇 가지 의로운 일을 행하고 그것으로 자기가 의인인 줄 알고 교만해지면 패망하게 된다. 이사야64:6에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라고 했다.
자기의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 악인 중에는 세상에서 장수하는 자도 있다는 것이다. 그 악인은 결국 그 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된다.
• 7: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케 하겠느냐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며 지나친 의는 성경 말씀보다 지나치게 나가는 행동을 말한다. 성경 말씀보다 더 잘하려고 하는 것도 죄요 성경에 미달한 것도 죄이다(過不及이 罪다). 죄값은 사망이다. 성경보다 지나치게 의인이 된 자는 인본주의 자요 교만한 자이니 결국은 망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경이 가라는 데까지 가며 성경이 서라는 데서 서야 한다. 성경을 표준 해서 행하고 성경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성경보다 지나친 지혜자는 뱀의 지혜를 받은 자이니 하나님의 지혜를 버린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패망한다.
• 7: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 말며 우매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된다는 것은 성경을 부인하고 악하게 나가는 사람을 가리킨다. 성경보다 지나친 의인도 망하고 성경보다 지나친 악인도 망한다. 하나님은 성경을 표준하여 심판하신다.
우매자도 되지 말라 성경보다 지나친 자는 다 우매자이다. 성경대로 하는 자만이 지혜 있는 자이다. 기한 전에 죽는다는 것은 성경을 떠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갑자기 망한다는 것이다.
• 7:18 너는 이것을 잡으며 저것을 놓지 마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이것을 잡으라는 것은 성경 의식이 내포하고 있는 신령한 진리를 잡으라는 것이요, 저것을 놓지 말라는 것은 십일조와 같은 제도와 규례도 버리지 말라는 뜻이다. 또한 율법주의 혹은 의식주의로 나가기 위해 신령한 진리를 놓아서는 안 된다. 마태복음23:23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성경을 지나쳐 의인이 되는 것과 율법을 멸시하는 악한 길(올무)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사람의 저주하는 말을 경히 여기라(19-22)
• 7:19 지혜가 지혜자로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 영적 지혜를 가리킨다. 이 지혜는 믿음으로 얻고 또 성경 말씀을 깨달음으로 얻는다. 이 지혜는 얻는 자로 하여금 성읍 가운데 열 유사보다도 능력 있게 한다.
유사는 중견(中堅) 인물을 가리킨다. 범사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열 유사나 열 방백보다 뛰어난 인물이 된다. 믿음을 지킨 다니엘은 바벨론 모든 박사보다 10배나 나았다(단1:20).
• 7:20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로마서3:10에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했다. 아무리 옛날 성현들이 의를 행했다고 해도 성경을 다 지키지 못했으니 죄인이다. 또 과거에 하나님을 경외한 모든 의인들도 성경 표준에 도달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의의 표준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요 말씀대로 완전히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표준에 도달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누구나 자기를 의인으로 자처하거나 스스로 섰다 하는 자는 교만한 자요 외식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죄를 찾아서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힘써야 한다.
• 7:21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대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다른 사람이 나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하지 않는가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잠언29:25에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고 했다. 사람의 말을 듣고서 두려워하거나 분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듣고 따라가며 내가 하나님 앞에 할 바를 바로 행하고 양심대로 행하면 된다. 사도행전4:19에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 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했다.
사람은 공연히 저주하기도 하고 칭찬해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저주할 때 섭섭하게 생각해도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는 것이고, 칭찬해 줄 때 교만해도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는 것이다. 고린도전서4:3-4에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이 저주하고 위협 공갈하고 정죄하는 것은 매우 작은 일이다. 주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겠는가 주님의 심판대에 설 때에 어떻게 판단받겠는가가 문제이다.
• 7:22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
다른 사람의 저주를 받을 때에 자기도 가끔 과거에 다른 사람을 저주한 일을 반성하여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의 저주는 매우 작은 일로 여겨야 되고 또 그것은 없는 것과 같이 여겨야 한다.
모든 것을 통달할 자가 없음(23-25)
• 7:23-24 내가 이 모든 것을 지혜로 시험하며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지혜자가 되리라 하였으나 지혜가 나를 멀리 하였도다 무릇 된 것이 멀고 깊고 깊도다 누가 능히 통달하랴
솔로몬이 참된 지혜를 알려 하고 더욱더 지혜자가 되려고 많은 애를 썼으나 지혜가 멀어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혜는 심오하여 다 알 수 없으며 무한하여 다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혜는 알면 알수록 모를 것이 더 발견된다. 사람은 모든 것을 알 것 같아서 아무리 공부하고 연구하고 찾아보아도 결국에는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된 것은 만사가 이루어진 비밀을 가리킨다. 만물의 원리는 멀고, 깊고 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아무도 이것을 통달할 수 없다. 얼마나 멀고 깊은 지 알 사람이 없는 것이다. 삼라만상, 천지만물을 사람이 아무리 연구해도 다 알 수 없다. 지극히 적은 부분만 알 뿐이다.
• 7:25 내가 돌이켜 전심으로 지혜와 명철을 살피고 궁구하여 악한 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이 미친 것인 줄을 알고자 하였더니
솔로몬은 전심으로 지혜를 써서 깨달은 결과 악한 것은 어리석은 것인 줄 알았다. 이는 악의 결과는 멸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악을 행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것이요 어리석은 것은 미친 것이다. 미친 것은 제 정신대로 바로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바른 정신대로 산다면 악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자는 여인의 올무에 걸림(26)
• 7:26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
여인은 요한계시록17:1에 있는 음녀와 같은 여인을 말하는데 인본주의 세상을 가리킨다. 이 세상주의는 음녀와 같아서 올무와 그물로 사람을 잡고 손이 포승 같아서 모든 사람을 결박하여 멸망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거기에 걸려들면 사로잡히고 결박당하여 끌려가게 된다. 또 음녀들은 입에서는 꿀이 떨어지고 태도는 아주 친절하고 사랑이 넘치고 무슨 큰 행복과 위안을 줄 것같이 미혹한 다. 그러나 음녀에게 걸리면 새가 그물에 걸리듯이 사망으로 끌려가게 된다. 잠언7:27에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고 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믿음으로 바로 사는 자이다. 하나님을 순종하여 믿음으로 사는 자를 하나님도 기뻐하시며 음녀의 올무와 결박에 걸리지 않게 해 주신다. 그러나 죄인은 음녀에게 빠져서 패망하게 된다. 잠언22:14에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고 했다. 하나님이 음녀에게 빠지지 않게 해 주셔야 그 미혹에 들지 않는다. 성도가 평소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힘을 쓰고 바로 믿으려고 힘을 쓰면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 음녀의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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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출생과 인간의 꾀(27-29)
• 7:27-28 전도자가 가로되 내가 낱낱이 살펴 그 이치를 궁구하여 이것을 깨달았노라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은 다음(以下)에 언급한다.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한 남자를 얻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찾았다는 뜻이다. 이사야9:6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했다. 또 갈라디아서3:16에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다. 이는 한 남자 되는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성도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해 주고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 주실 것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5:5에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이 말씀은 구속을 실현시킬 자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이다.
• 7:29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었는데 사람은 많은 꾀를 내어 스스로 자기가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사람을 정직하게 창조하셨으나 그 정직한 대로 살지 못하고 사람이 많은 꾀를 내어 스스로 웅덩이에 빠지는 것이다. 고린도전서3:19에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 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을 믿고 .양심을 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만 구원을 받고 살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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