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4장 기도 말씀은 예레미야가 유다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하는 내용이 기록되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에게 가뭄을 내리겠다고 예레미야에게 말씀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유다 백성을 위해서 중보기도 하게 된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중보기도에도 징계를 내리겠다고 했다. 금식을 할지라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님이 회개할 기회를 주었을 때 회개해야 하는데 유다 백성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예레미야의 중보기도(렘 14:1-22)
한재를 당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음(1-9)
• 14:1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유다 나라에 가뭄의 재앙이 임하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의 죄 값으로 온 재앙이다.
• 14:2-6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곤비하여 땅에 앉아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에 오르도다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길으라 하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 머리를 가리우며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 머리를 가리는도다 들의 암사슴은 새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어버리며 들 나귀들은 자산 위에 서서 시랑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아득하여 하는도다
그 가뭄이 너무 심하여 ①그 재해가 유다 전국에 미쳤다(2절上). ②성문의 무리가 물이 없어 곤비하였다(2절中). ③예루살렘이 물이 없어 부르짖는 소리가 하늘에 사무치게 되었다(2절下). ④귀인들도 그 권세로 물을 구하고자 하나 구하지 못하게 되었다(3절上). ⑤하인들은 물을 길어오지 못하므로 부끄러워 머리를 가리우게 된다(자기 사명을 다하지 못했으므로) (3절下). ⑥지면이 갈라져 밭가는 자가 부끄러워 머리를 가리운다(4절). ⑦새끼를 사랑하는 들의 암사슴조차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그 새끼를 내어버린다(5절). ⑧들나귀들이 빨리 왕래하여 풀을 잘 구해 먹었으나 이제는 풀을 구하지 못하여 눈이 아득해졌다(6절). 이로 보아 가뭄이 얼마나 극심한가를 잘 알 수 있다. 그들의 죄 값으로 인하여 이와 같이 극심한 한재가 온 것이다.
선지자 엘리야 때에도 이스라엘이 범죄했기 때문에 3년 6개월 동안 큰 한재를 만났다(왕상17-1장; 약 5:17). 또 이것은 성도가 죄를 범하면 그의 심령이 고갈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아모스8:11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했다. 죄로 말미암아 오는 영적 가뭄과 말씀의 기갈이 큰 한재이다. 심령이 메말라 사랑이 식어지고, 기쁨과 만족이 없는 것도 한재이다.
학개1:9-11에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가뭄이 오지 않았나 생각해 보고 회개해야 한다. 초대 교회시대의 영적 은사가 풍성할 때에 비하면 오늘날 성도들의 영계(靈界)가 한재를 만난 것이 확실하다. 또 지금은 엘리 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회귀하였던 것처럼 (삼상3:1) 진리가 메마른 때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나타나 은사를 주시고 말씀을 주실 때에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의 회개 운동을 일으켰다. 우리도 우상을 버리고 회개하여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가 그리스도와 그 말씀으로 생명을 삼아야겠다.
• 14:7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거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예레미야가 유다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회개하고 부르짖는 기도이다. ‘우리의 죄악’ ‘우리의 타락’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한 것은 선지자가 그 백성의 죄에 대하여 공동 책임을 느끼면서 하는 기도이다. 하나님의 종들이 그 백성의 죄에 대하여 공동 책임을 지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도가 대개는 매를 맞은 다음에야 하나님께 돌아와 진정으로 회개하여 부르짖게 된다. 마치 탕자가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돼지 먹는 쥐엄 열매를 먹게 되었을 때에 아버지의 집을 생각하고 돌아오게 된 것과 같다(눅15:11-20) .
교회에는 망한 사람, 망할 사람, 망하지 않을 사람의 세 종류의 교인이 있다. 망한 사람은 실패와 낙망을 당하여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사람이다. 망할 사람은 믿음을 잘 지키지 않으나 세상적으로는 잘되는 사람이다. 믿음을 잘 지키지 않으면서 세상적으로 잘되어 나가는 사람은 앞으로 망하게 될 것이다(12:1; 시73:2-16, 욥21:7-13 참조). 망하지 않을 사람은 세상 것이 잘되는 때에도 믿음을 잘 지키는 자이다. 진리를 순종하고 영적인 면이 잘되는 길로 나아가면서 육신이 잘되는 사람은 망하지 않는다. 교회 안에 낭패와 실망을 당한 뒤에 주께로 나오는 자가 제일 많이 있다. 그 다음에 앞으로 망할 자도 많이 있다. 그러나 망하지 않을 자는 매우 적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잘되어 풍부하고 평안할 때에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부요하고 평안하면 그것을 의지하고, 교만하며 안일주의에 빠져 믿음을 잘 지키지 않는다.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나님께 나아와 자기의 타락을 깨닫고 자기의 죄를 찾아 회개하는 자에게는 살 길이 열린다.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했다. 우리도 날마다 자기의 죄를 찾아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으로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신다(시51:17).
• 14:8-9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 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행인같이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놀라 벙벙하는자 같으시며 구원치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오히려 우리 중에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이시다. 그러므로 아무리 큰 환난과 곤고를 만나도 회개하고 낙심치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끝까지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건져 주신다. 성도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대로 믿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부르짖을 때에 구원해 주시고 권고해 주신다.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부끄러움을 당치 않게 하신다(49:23; 롬10:11). 이사야45:22에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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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류하는 자 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행인 같이 하시나이까 하나님이 주인이시요 이스라엘의 목자로서 항상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셔야 할 터인데 어찌 이스라엘 백성을 내 버리고 떠난 것 같이 하시나이까 하는 탄식의 기도이다. 하나님이 하룻밤을 지내고 떠나시는 분과 같고 아무 힘이 없어서 놀라 벙벙 하는 자 같으며 힘없는 용사처럼 이스라엘을 구원치 않으시고 왜 내버려두시느냐고 탄원하는 기도이다. 또 하나님은 우리 중에 계시고 이 백성은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구원해 달라는 기도이다(9절).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는 유다 백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열방에 알려진다는 뜻이다.
어그러진 길로 가며 기도하는 것은 듣지 않으심(10-12)
• 14:10-12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선지자의 기도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답변한 것이다. 그 내용은 유다 백성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길로 가며 그 발을 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앙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였으며, 하나님 앞에 잘못된 행실을 금하지 않고 여전히 그 길로 가며 회개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재앙을 만나도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지 않고 그들이 금식하며 기도를 할지라도 하나님이 듣지 않으신다. 그들을 위한 선지자의 기도도 듣지 않고, 그들이 번제와 소제를 드려도 받지 않으신다. 잠언28:9에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고 했다.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 말씀을 떠나 어그러진 길로 나아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칼과 기근과 염병을 보내어 멸망시킬 수밖에 없다.
성도가 어그러진 길에서 돌이키고 죄악을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기도할 때에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 말로만 회개한다고 하지 말고, 말씀대로 원수 맺은 것을 풀어주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회개해야 한다. 이사야58:6에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거짓 선지자와 그 말을 듣는 자가 다 멸망함(13-16)
• 14:13 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가 거짓으로 예언하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슬퍼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백성들이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에 미혹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나아가는 것을 볼 때에 참선지자는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거짓 선지자들은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이곳에 확실한 평강을 주신다”고 백성들을 속이고 있다. 이것은 예레미야의 예언과는 정반대이다. 예레미야는 죄를 지적하여 책망하고 칼과 기근과 염병이 온다고 경고했다.
마찬가지로 어느 시대에나 거짓 선지자들은 죄를 책망하지 않고 환난을 말해 주지 않고 “평안하다, 잘된다”고만 말해 준다. 듣기 좋은 말, 사람의 귀에 즐겁고 사람의 욕심을 채워 주는 말만 한다. 오늘날도 교역자들이 성도들에게 믿음을 지키기 위해 고난받는 것은 말해 주지 않고, “평안하다, 잘된다, 세상에서 잘되고 복 받는다”는 것만 말해 주는 자는 거짓 선지자들이다. 잘못된 교역자들이 죄에 대한 책망이나 회개는 말하지 않고 잘된다, 복 받는다고 하여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연보만 많이 내면 축복 받는다고 외치는 것은 악한 일이다. 하나님은 범죄한 백성에게 환난이 온다고 말씀하시고 그 날을 준비하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참 선지자는 첫째, 환난을 경고하고 백성들에게 준비하게 한다. 선지자는 자신이 먼저 그 환난을 미리 바라보고 그 환난을 통과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먼저 피땀 흘린 기도로 십자가를 통과하셨다. 우리도 환난이 오기 전에 환난을 준비하고 마음으로 통과해야 한다.
둘째, 먼저 자기 죄를 늘 통회하며 (딤전1:15; 고전15:9),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죄의 무서움과 죄를 멀리 하라고 가르친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한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가감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한다.
에스겔2:4-7에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지니라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그 말을 두려워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지어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라고 했다(겔3:11,27). 이것이 참 선지자가 가는 길이다. 교역자는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려고 힘쓰지 말고 성경 말씀을 그대로 전하여 신령한 양식을 나눠주고 영을 살려 나아가는데 힘써야 한다. 또 죄를 책망하여 바로 서게 하고 책망한 후에는 위로해 주고 싸매 주어 소망을 갖게 해야 한다.
• 14: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보냄을 받지 아니 하였으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고 복술과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예언하였다.
거짓 예언은 하나님이 명하지 않았는데 제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예언하는 것을 가리킨다. 거짓 계시는 하나님이 계시로 보여 주시지 않았는데 자기가 본 환상과 이상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잘못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복술 거짓 선지자들은 점치는 것처럼 사람의 길흉(吉凶)을 말해주고 앞날을 점친다. 오늘날도 “하나님께 받아 지시한다” “예언한다”는 것은 다 이와 같은 것이다.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신구약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신다. 그러므로 성경에 맞지 않는 계시나 지시나 환상이나 예언을 하는 것은 다 마귀의 역사이다.
허탄한 것 실지가 아닌 헛것을 예언한다는 것이다.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거짓 선지자들은 진리에서 떠났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서 지어낸 말로 예언한다. 자기 마음에도 그것이 진실과 진리가 아닌 것을 알면서 예언한다. 그것이 자기 마음의 속임이다. 진실하고 하나님 말씀에 서 있는 성도는 그런 선지자에게 속지 않고 그들을 떠난다.
• 14:15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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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보내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지도 않고, 칼과 기근이 임하지 않는다고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칼과 기근으로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지 않고 거짓 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하므로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게 하였기 때문이다.
• 14:16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거짓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 그대로 믿은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칼과 기근에 붙여 망하게 한다고 하셨다. 또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멸망하게 되는 이유는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받는 자가 그의 가족까지도 그 길을 걷게 했기 때문이다. 이사야9:16에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라고 했다. 거짓 선지자와 그를 따라가는 자가 함께 망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 진리를 바로 분별하며 옳은 진리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이 망할 것을 인하여 선지자의 눈물 흘리는 기도(17-22)
• 14:17-18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을 인하여 망함이라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다 땅에 두루 다니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도다
처녀 딸 내 백성 유다 백성이 처녀와 같이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이다.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이 거짓 선지자의 미혹을 받아 망하게 될 것을 예레미야가 미리 바라보고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다. 거짓 선지자는 “잘된다”, “평안하다”고 외치며 하나님의 심판을 말해 주지 않으므로 백성들이 평안하고 잘될 줄로 알아 방심하고 있다가 환난이 올 때에 갑자기 망하게 될 것을 생각 할 때에 예레미야가 가슴이 아프고 답답해서 밤낮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참 선지자는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그들이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에 안타까워한다.
성도는 먼저 자기를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누가복음23:28에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했다. 환난 때에 베드로와 같이 예수를 부인하는 자가 되지 않겠는가를 생각해 보고 믿음 없는 것을 회개하면서 날마다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죄 가운데에서 망하게 될 것을 생각하여 안타까워하며 교회가 거짓 선지자의 미혹으로 타락되어 가는 것과, 앞으로 그로 인하여 다 망하게 될 것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야 한다.
• 14:19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 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받기를 기다려도 놀람을 보나이다
본 절부터는 유다 백성을 위한 예레미야의 기도이다. 우리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여 하나님께 호소하며 “우리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우리를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하였다. 하나님이 시온(예루살렘)을 치시고 치료하지 않으시는 것을 예레미야가 볼 때에 하나님이 유다를 온전히 버리신 것과 같이 생각되고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는 것과 같이 보여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받기를 기다려도 놀람을 보나이다 유다 백성이 치료받기를 원하며 평강을 원하여도 그것이 오지 않으므로 안타까워서 호소하고 있다.
• 14:20 여호와여 우리가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예레미야가 백성을 대신하여 그들의 죄와 조상들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기도를 하였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이 들어주시고 그 상처를 싸매 주신다. 잠언28:13에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고 했다.
• 14:21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위를 욕되게 마옵소서 우리와 세우신 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자기들의 행한 죄를 보면 마땅히 멸망받아야 되겠으나 주의 이름과 주의 영광과 주의 언약을 보시고 긍휼히 여겨 구원하여 달라는 기도이다. 유다 백성은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주의 영광이 달려 있다. 그들이 잘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들이 잘못하면 하나님께 욕이 돌아간다. 그러므로 그들이 죄 값으로 망하는 것은 마땅하나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하나님의 언약이 폐한 바 될까 봐 안타까워하며 구원해 달라고 예레미야가 기도한다.
주의 언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구원의 약속이다. 예레미야의 기도는 이기주의가 아니고 하나님 중심의 기도이다. 또 주의 이름과 주의 영광과 주의 언약을 위한 기도이다. 성도는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롬14:8). 이기주의로 자기 하나 잘되려고 기도하는 것은 죄요 악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이루어져 하나님의 나라가 잘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에 이용당해야 한다.
• 14:22 열방의 허무한 것 중에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가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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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의 허무한 것은 우상을 가리킨다. 우상이 아무리 많고 크다고 해도 그것은 비를 내리게 할 수 없다. 비를 내리게 할 수 없다는 것은 천체기상(天體氣象)을 주장하지 못한다는 말이며 영적으로는 신령한 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상은 우리 심령을 살리지도 못하고 평안도 주지 못하고 기쁨도 주지 못한다. 비를 내려 주실 수 있는 운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장하시며 비와 이슬을 내려 주셔서 만물을 자라게 하신다. 또 하나님은 성도에게 신령한 양식을 주시고 참된 위로와 평강을 주신다.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앙망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풍성한 비를 땅에 내려 오곡백과(五穀百果)를 주시고, 신령한 은혜로 신령한 열매를 풍성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를 계속 앙망하는 자는 이 모든 것이 점점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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