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요한복음 17장 설교문] “영생을 앎의 축복”(요17:1-5)

체데크 2020. 9. 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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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복음 17장 설교문 중에서 영생을 앎의 축복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영생을 앎의 축복”(요 17:1-5)

 

명제 : 영생의 축복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받게 된다.

목적 : 나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인간은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나면 때가 되매 죽어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원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왔습니다. 사람에게는 육체적 죽음이 있고 영적 죽음이 있고 영원히 죽는 죽음이 있습니다. 육체적 죽음은 영혼과 육이 분리되는 죽음입니다. 영적 죽음은 육체는 살아있지만 영혼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입니다. 영원히 죽는 죽음은 지옥의 불 못에 던져지는 죽음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육체적 죽음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육체적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 아니라고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은 영생을 얻는 복을 받았습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영생의 복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영생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고 믿고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만 나왔다고 해서 신앙생활의 연륜이 많다고 해서 영생의 복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 영생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영생이 무엇인지 모르고 다니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내가 영생의 복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영생을 어떻게 받았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영생을 깨닫고 영생의 복을 받는 이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요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시고 이제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자들에게 말씀을 마친 후에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말씀합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시고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때가’ ώρα(호라 5610) 시간, 때, 시점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때가 언제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가 가까이 왔음을 말씀합니다. 이때는 행동으로 옮겨서 실천하는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고통당하시고 선택받은 자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습니다.

 

‘이르렀사오니’ ερχομαι(엘코마이 2064 동사, 직설법, 완료, 능동태, 단수, 3인칭) 오다, 나타나다, 이르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려야 할 시간이 임박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나게 됩니다. 때가 되지 않았을 때는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해도 주님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때가 오니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야 합니다. 이 시간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간이며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처럼 시간이 마지막까지 왔음을 말합니다. 완료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는 사건은 주님이 영화롭게 되는 일이고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아버지를 영화롭게’ δοξαζω(독사조 1392 동사, 가정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 찬양하다, 영화롭게 하다, 칭송받다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는 것이며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는 아버지로 칭송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영광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가정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는다면 하나님 아버지는 영광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아버지는 영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반드시 만세 전부터 아들을 통하여 영광 받으실 것이 확정되어 있습니다.

 

과거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주님과 하나님은 언제 나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까? 내가 창세 전에 선택받은 것을 믿고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님과 하나님이 영광을 받게 됩니다. 만약에 이것을 내가 믿지 않고 나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영광을 받지 못합니다. 지금 내가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께 창세 전에 선택받은 자라는 것을 믿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로 만이 구원이 있다는 것을 믿을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게 됩니다.

요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위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주님은 기도하기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위를 아들에게 주셨다고 기도합니다. 주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선포합니다.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διδωμι(디도미 1325 동사, 직설법, 완료, 능동태, 단수, 2인칭) 주다, 허락되다, 타고나다라는 뜻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여주셨습니다. 구원받기로 허락된 자들이고 친자로 태어난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창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나를 예수님에게 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직설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한 번 붙여주신 자는 절대 구원이 취소되지 않습니다. 완료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생명 책에 한 번 올라간 자는 다시 지워지지 않습니다. 죄의 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다시 생명 책에 이름이 올려지지 않습니다. 그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붙여주신 때가 언제입니까? 창세 전입니다.

 

엡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나는 창세 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을 받았습니다. 나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나를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붙여주셨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주님을 안 것이 아니라 이미 창세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서 안 것은 현상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예수님에게 주신 것은 나에게 영생을 주시려고 붙여주셨습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면 나는 절대 살아나지 못합니다. 나의 원죄를 주님이 가져가셨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졌고 흠이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인간에게 영생은 중요합니다. 죄로 인하여 유한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때에 주님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하나님이 보낸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씀합니다. 주님 안에는 영생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라고 해서 모두가 영생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γινωσκω(기노스코 1097 동사, 가정법, 현재, 능동태, 복수, 3인칭) 알다, 이해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체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내가 영생을 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로만 듣고 실제로 만나보지 못한 사람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에 관하여 말로 들었다면 얼굴을 보고 직접 만날 때 정확하게 안 것입니다. 주님과의 만남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만난 기억은 없습니다. 말을 귀로만 들었지 얼굴을 본 적은 없습니다. 이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참 하나님과 주님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습니다. 가정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을 만난 적이 없지만 열심히 교회에 나와 귀로 들은 것이 있기 때문에 만났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현재 시제는 내가 현재 알고 있는 것이 제대로 만나서 아는 것인지 착각 속에 아는 것인지를 정확하게 분별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욥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우리가 욥의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욥은 철저한 율법주의 신앙관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의로운 자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때가 되면 자식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 정도로 거룩한 사람입니다. 이런 욥이 고난을 당하고 나서 고백합니다. 전에는 주께 대하여 귀로만 들었는데 이제는 직접 눈으로 주를 본다고 고백합니다. 안다는 것은 귀로만 들었다고 아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직접 만나고 동행할 때 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영생을 알아야 하는데 참 하나님과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영생을 아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믿지 않으면 영생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요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자신이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했다고 말씀합니다. 이미 십자가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다고 먼저 선포합니다. 그럼 우리가 언제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할 때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맡겨진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모든 일에 충성한다 할지라도 주님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보내주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주님께 의탁하면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루어’ τελειοω(텔레이오오 5048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 1인칭) 완성하다, 수행하다, 끝내다라는 뜻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신 때가 언제입니까? 십자가에서 순종하여 죽으셨던 때입니다. 주님은 실제로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부여받은 사명을 하나도 빠짐없이 율법을 완성하시고 끝내셨습니다. 창세 전에 선택받은 자들을 구원하려고 십자가에서 임무를 완수하셨습니다. 십자가 사역은 오직 주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과거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인간은 원죄의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하나님이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달릴 제물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율법을 십자가에서 완성하셨고 선택받은 자들의 원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은 자는 원죄에서 해방되었다고 끝나면 안 됩니다. 그다음은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요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주님은 아버지여 창세 전에 자신이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를 이 세상에서도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가졌던’ εχω(에코 2192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단수, 1인칭) 가지다, 소유하다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 전부터 하나님과 동등 되는 영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미 하나님이기 때문에 영광 받을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실제로 창세 전부터 하나님과 같은 영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입니다. 이 영화는 계속해서 세상 끝날까지 가지게 됩니다.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이 하나님입니다. 이미 영광 받으실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고 이 세상에 육체의 몸을 가지고 종의 형상으로 오셨습니다. 나의 모든 원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서 죽이면서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생을 안다는 것은 성부 하나님은 창세 전에 나를 영생 주기로 선택하여 그리스도 안에 붙여주신 것을 알고 체득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지만 나를 위해서 종의 형체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고 체득해야 합니다. 영생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우리는 이 시간 깨달았습니다.

 

영생을 받지 못하면 영원한 지옥의 불 못으로 던져져 영원히 고통 중에 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생을 이미 받았습니다. 영생을 받은 자는 이 세상의 자랑과 쾌락에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아갑니다. 영생을 모르는 자들은 이 세상의 것이 전부이지만 영생을 아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전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전부입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은 영원한 시간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시간이 전부라고 살아가는 자들은 미련한 자들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영생을 알았으니 주님과 한평생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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