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누가복음 24장 설교문]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모습”(눅24:13-20)

체데크 2020. 9. 24. 19:37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누가복음 24장 설교문 중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모습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모습(눅24:13-20)

 

명제: 엠마오로 가는 자의 모습은 우리의 신앙을 대변하고 있다.

목적: 현재 나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으로 엠마오로 가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안식일에 무덤에 들어가게 됩니다. 금요일에 예수님께서 죽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에 일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안식일이 끝난 주일 새벽에 여자들이 향품을 가지고 가서 예수님의 몸을 씻겨드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덤의 돌은 옮겨져 있고 예수님의 시체는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일 새벽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씻겨드리기 위해서 무덤에 갔던 자들이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제자들도 놀라 예수님을 장례 했던 무덤으로 달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서 삼일 만에 부활하신 사건을 보고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확인하고 빈 무덤을 보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엠마오로 가는 두 사람도 각자 뿔뿔이 흩어지고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엠마오로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의 신앙의 자세도 고취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진리가 무엇일까요?

 

첫째, 엠마오로 가는 영적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눅24:13-14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나 되는 마을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그 날은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날을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주일날 새벽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자들입니다. 이 자들이 예루살렘에 있다가 엠마오로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날은 안식 후 첫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금요일 저녁에 시작하여 토요일 저녁에 끝납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유월절을 지키려고 왔다가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고 장사 지낸 것까지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안식일 때문에 엠마오로 가지 못하다가 지금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엠마오’ Εμμαους(엠마우스 1695) 엠마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ים(옘 3222) 온천, 따뜻한 봄,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가 יום(욤 3117) 낮, 날, 일평생, 생일, 영원히,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엠마오로 가고 있는 두 제자들을 보면서 영적인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엠마오는 따뜻한 우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장소입니다.

 

현재 제자들은 모두가 정신이 없는 상태에 있습니다. 평생 자신과 함께 있을 것과 같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죽으심과 부활에 관하여 말씀은 하셨지만 제자들의 신앙은 육체의 고통에서 건져주시는 부활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삶을 회복시켜주시고 로마의 압제에서 건져내 주시는 부활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어 빈 무덤을 보고 다들 놀랍게만 여기고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죽으신 것과 무덤에서 살아나신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완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육적인 것에만 생각하고 맞추기 때문에 나의 주로 고백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현재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고 있음에도 깨닫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엠마오의 뜻을 통해서 깨달은 수 있는 것은 이제부터 주님께서 고통의 죄악 가운데 있던 모든 죄들을 모두 사라지게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엠마오는 따뜻한 온천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샘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물은 따뜻한 온천과 같은 것입니다. 추운 겨울에 모든 물들이 얼어붙어 있는 것처럼 심령이 죽은 영혼들을 주님의 따뜻한 십자가 진리의 복음으로 녹여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차가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임하면 녹아져 버리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엠마오로 가면서 주님의 이야기를 하지만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그들의 심령은 따뜻한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그 속에 임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직접 주님의 십자가 사건에 관하여 말씀을 들려주었을 때에 차가웠던 심령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뜨거운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엠마오에는 매일 주님이 함께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온천과 같은 주님의 사랑과 말씀이 나를 떠나지 않고 일평생 함께 하여 주시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태양이 되어 주셔서 어둠이 사라지고 영원히 생명 되신 주님과 함께 하고 있는데 이 날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생일과 같은 날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영적 생일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신앙과 믿음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영적으로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매일같이 주님이 함께해주시고 영원히 주님은 나를 떠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머리로만 믿고 있다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입니다. 아직 말씀만 알고 있지 믿음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함께하여 깨닫게 해 주셨을 때에는 하늘로부터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엠마오로 가면서 주님을 만나고 영적으로 거듭난 성도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영적인 눈이 멀어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눅24:15-16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서로 예수님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장사 지내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도 서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옆에서 함께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마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주님도 함께 그들 중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현재 동행하고 있음에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육적인 구원자로만 알고 있으면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도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진전 영적인 눈이 열려있지 않으니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눈이 가려져있다는 것입니다.

 

‘동행하시나’ συμπορευομαι(쉼포류오마이 4848) 동행하다, 함께 가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주님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사건을 목격하고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동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도 함께 계셨고 부활하신 후에도 함께 계시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이들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두 제자들과 예수님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리고 한 번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엠마오로 갈 때까지 함께 해주시고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두 제자들과 동행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선택받은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 동행하시면서 이들을 보호하시고 영적인 눈이 멀어있는 것을 직접 뜨게 해 주셔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현재 나와도 이렇게 함께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세전에 선택하여 주셔서 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영원한 천국에 갈 때까지 함께 동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가리워져서’ κρατεω(크라테오 2902) 체포하다, 붙잡다, 꽉 붙잡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κρατος(크라토스 2904) 힘, 능력, 세력,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눈이 가려졌다는 것은 사탄의 세력에 의하여 강하게 붙잡혀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하도록 감옥에 감금되어 체포되어 있는 것처럼 영적인 눈이 멀어져 있는 것입니다. 사탄의 미혹에 아담과 하와가 넘어가 있는 것처럼 눈이 멀어진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아담이 먹음으로 눈이 멀었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세력의 미혹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깨달으려고 해도 깨달을 수 없도록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권능을 통하여 이런 자들의 눈을 열어주시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의 눈이 멀어져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것도 예수님이 열어주시지 않으면 절대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는 상태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영적인 눈이 멀게 된 것은 외부의 영향력 때문입니다. 하와도 뱀의 미혹에 빠져서 눈이 멀어지게 되었고 아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우리들도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탄의 미혹에 빠져 영원한 죽음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예수님께서 열어주시니 예수님을 보게 되어 영원한 생명으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셋째, 제자 중에 글로바라는 인물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눅24:18-20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두 명의 제자가 엠마오로 가고 있습니다. 그중에 한 명이 글로바라는 인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말하고 있는 관심 주제에 관하여 물으셨습니다. 그랬더니 두 사람들이 슬픈 얼굴을 하고 머물게 됩니다. 그중에 한 명인 글로바가 예수님께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루살렘에 있었으면서도 이런 중요한 사건을 알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큰 충격이었고 부활하신 사건도 엄청난 파장을 주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알 정도로 큰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일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시자 글로바가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입니다.

 

‘글로바’ Κλεοπας(클레오파스 2810) 글로바,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κλεος(클레오스 2811) 영광, 칭찬, 이라는 뜻과 πατηρ(파테르 3962) 아버지, 라는 뜻입니다. 글로바는 ‘영광의 아버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육적인 예수님의 사건에 관하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이 멀어져 있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글로바의 눈을 열어주시지 않았다면 영원히 예수님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글로바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육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통해 영적인 눈이 열리고 영광의 아버지를 찬양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제자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강권적으로 눈을 열어주셔서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이름을 생명 책에 기록해주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교회생활을 하면서 글로바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이야기와 사건만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육적인 신앙에 매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신앙은 달라지게 됩니다. 마음이 뜨거워지게 됩니다. 그 장소가 어디입니까? 엠마오입니다. 엠마오에서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마음이 뜨거워진 것입니다. 이제부터 엠마오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 중심과 뜨거운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할 것을 엠마오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뜨거운 은혜가 넘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마리아인 비유 설교문] “나는 친자의 신앙인가? 양자의 신앙인가?”(눅10:25-37)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마리아인 비유 설교문 중에서 나는 친자의 신앙인가? 양자의 신앙인가? 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나는 친자의 신앙인가? 양자의 신앙인가?”(눅10:25-37) ♣명제: 사마리

cdk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