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요셉 설교문 중에서 떡 관원장의 최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떡 관원장의 최후(창 40:16-23)
명제 : 떡 관원장은 율법주의 신앙 자를 의미한다.
목적 : 율법주의자들은 복음의 떡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고 누룩 들어간 떡을 바친다.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사흘 안에 당신의 직분이 복직되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서 바로 왕을 섬길 것이라고 요셉이 말했습니다. 옆에서 같은 날 꿈을 꾸었던 떡 굽는 관원장이 요셉의 꿈 해석을 듣고 자신의 꿈도 해석해 달라고 합니다. 자신도 꿈 해석이 되지 않아 답답하던 차에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이 좋게 해석되었기 때문에 자신도 마음에 소망을 갖고 요셉에게 꿈을 해석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우리는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되어 바로 왕을 섬기게 되고 떡 굽는 관원장은 바로의 생일날에 죽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깨달아야 될 말씀이 무엇일까요? 술 맡은 관원장은 만세전에 선택받은 자를 의미하고 떡 굽는 관원장은 선택받지 못한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세전에 선택받지 못한 자는 율법의 의로 하나님 앞에 나가려고 합니다. 이런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부인하는 자이기 때문에 결국 마지막 종말 때에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의 불 못으로 던져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술 맡은 관원장이냐! 떡 굽는 관원장이냐!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고 나의 공로를 부인하는 것이냐!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부인하고 나의 의를 앞세우는 것이냐의 차이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가 어떠한 신앙인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창40:16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떡 굽는 관원장이 옆에서 요셉의 꿈 해몽을 듣고 술 맡은 관원장의 꿈 해석이 좋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 요셉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합니다. 나도 꿈에 흰 떡 세 광주리를 보았는데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떡 관원장은 떡을 구워서 바로 왕에게 바쳤던 사람입니다. 이런 자가 죄를 지었다는 것은 떡을 잘못 구웠기 때문입니다. 떡 굽는 관원장이 꾼 꿈에는 흰 떡 세 광주리가 자신의 머리에 있습니다.
‘흰 떡’ (חורי호리 2751) 흰 떡, 흰 빵, 이라는 뜻이며 (חור하바르 2357) 창백해지다, 실색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암시적으로 말씀합니다. 떡 굽는 관원장의 머리에 흰 떡 세 광주리가 있다는 것은 이것 때문에 떡 굽는 관원장에게 위기가 닥칠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얼굴이 창백해질 때가 언제입니까? 내가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 어리둥절하고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으며 몸은 사시나무 떨 듯이 아연실색하게 됩니다. 떡 관원장의 머리에 있었던 흰 떡은 떡 맡은 관원장이 죽어야 될 운명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 떡 굽는 관원장의 머리에 있었던 흰 떡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떡 굽는 관원장은 율법주의자를 의미합니다. 술 맡은 관원장과 똑같이 죄를 지었지만 바로의 생일날에 죽게 됩니다. 그렇다면 바로에게 떡을 구워서 나갔는데 바로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율법주의자들이 떡을 구워 하나님 앞에 나갔는데 이 떡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성경에서 떡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합니다. 이 떡은 (לחם레헴 3899) 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חורי호리) 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에서 이곳에 한 번 사용됩니다. 이 떡도 흰 떡은 맞지만 왕이 원하지 않는 떡을 의미합니다.
고전5:7-8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술 맡은 관원장처럼 구원받은 자는 누룩 없는 사람입니다.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해서는 묵은 누룩을 버려야 합니다. 누룩은 율법의 의를 상징합니다. 유월절 양이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죄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명절을 지킬 때에 묵은 율법의 누룩으로 하지 않고 율법의 행위의 의로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떡으로 유월절 명절을 지켜야 합니다.
떡 굽는 관원장이 꾼 꿈에 자신의 머리에 흰 떡이 있었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떡이 아니라 겉으로는 깨끗한 것 같지만 속은 더러운 율법의 누룩으로 떡을 만들어 바로에게 바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율법주의자들이 겉으로는 깨끗하고 순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행위의 떡을 만들어 하나님 앞에 나갈 때에 하나님은 이 떡을 절대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생명의 떡을 받으십니다.
창40:17 맨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떡 굽는 관원장의 윗 광주리에는 바로 왕을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었는데 새들이 와서 광주리에서 떡을 먹었습니다.
‘구운’ (אפא아파 644 동사, 칼, 분사능동, 남성, 단수) 굽다, 요리하다, 라는 뜻입니다. 떡 굽는 관원장은 바로 왕을 위하여 열심히 떡을 구워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떡을 새들이 와서 먹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왕이 먹을 수 없는 떡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레6:17 그것에 누룩을 넣어 굽지 말라 이는 나의 화제물 중에서 내가 그들에게 주어 그들의 소득이 되게 하는 것이라 속죄제와 속건제같이 지극히 거룩한즉
하나님께 소제를 드릴 때에 누룩을 넣어 굽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소제의 제물로 떡을 구워서 하나님께 드릴 때에 누룩을 넣으면 부풀어 오르게 되고 뜨거운 광야에서 쉽게 변질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굽지’ 라는 단어가 (אפא아파)입니다. 떡 굽는 관원장이 만든 흰 떡은 자신의 의도대로 누룩을 넣어 구운 떡을 의미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이 구원을 받는데 자신의 행위의 의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떡에 누룩을 첨가하여 떡을 구워서 하나님께 나갑니다. 이런 자는 저주를 받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떡 굽는 관원장은 거짓된 누룩을 첨가하여 떡을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떡으로 거짓된 율법의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떡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창40:18-19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요셉이 떡 굽는 관원장의 말을 듣고 꿈을 해석합니다. 세 광주리는 사흘이며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어 나무에 달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 후에 새들이 와서 당신의 몸을 뜯어먹게 될 것이라고 해석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떡 굽는 관원장은 바로의 생일날에 죽게 될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신약에서 떡 굽는 관원장의 실체를 보겠습니다.
마27:38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예수님이 유월절 날에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의 옆에는 강도 둘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편은 누구의 성취일까요? 술 맡은 관원장의 성취입니다. 좌편은 떡 굽는 관원장의 성취입니다. 둘 다 강도이지만 우편의 강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구원을 받아 낙원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좌편의 강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모욕하여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떡 관원장도 좌편의 강도처럼 원죄의 죄인으로서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때가 언제입니까? 바로의 생일날입니다.
창40:20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
삼일 후에는 바로의 생일입니다.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머리를 들게 했습니다. 머리를 들게 했다는 것은 죄를 용서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날이 바로의 생일날입니다. 이 날에 술 맡은 관원장은 용서를 받고 떡 굽는 관원장은 용서를 받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신 날도 유월절입니다.
우리도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처럼 원죄의 죄인입니다. 이런 죄인이 언제 용서를 받았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유월절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원죄를 용서함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했던 떡 굽는 관원장과 같은 율법주의자들은 유월절 날에 좌편의 강도처럼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생명의 떡을 먹어야 합니다.
창40: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바로의 생일날에 술 맡은 관원장은 원래의 직분으로 회복되어 바로 앞에서 잔을 다시 올려드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원죄의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원죄가 사라졌고 다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날이 바로 유월절 날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도 만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있었던 때로 회복된 날입니다. 그럼 떡 굽는 관원장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40:22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떡 굽는 관원장은 나무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해석해 준 대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복음을 의지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습니다.
신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성경에서 나무에 매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매달아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의 땅을 더럽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나무에 매달려 죽게 됩니다.
에8:7 아하수에로 왕이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하만이 유다인을 살해하려 하므로 나무에 매달렸고 내가 그 집을 에스더에게 주었으니
하만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이려고 하다가 나무에 매달려 저주를 받았습니다. 떡 굽는 관원장과 같은 자들은 거짓된 율법의 행위의 누룩을 함께 넣어 흰 떡을 만들면 안 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떡으로만 가능합니다. 율법의 의를 주장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저주하고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이런 자는 좌편의 강도와 같이 떡 굽는 관원장과 같이 하만과 같이 나무에 매달려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술 맡은 관원장과 같은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무에 매달려 나의 모든 원죄의 죄악들을 담당하시고 주님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나는 원죄를 발견하려고 해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십자가에서 매달려 나 대신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떡 굽는 관원장은 율법주의자를 상징합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바로 왕에게 나가 목숨을 건지려고 했지만 바로의 왕이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떡을 만들었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겉으로는 흰 떡처럼 깨끗하고 순전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속으로는 율법의 누룩을 첨가하면 안 됩니다.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누룩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만이 가능합니다. 인간의 의는 전혀 들어가지 않은 100% 순수한 복음이며 무교병으로 가능합니다. 이제 나의 생각을 첨가하는 모든 누룩을 제하여 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약성경 원어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리아 산 설교문] “모리아에 바쳐진 후 이삭의 삶의 변화”(창22:2) (0) | 2020.07.09 |
---|---|
[아브라함 설교문] 아브람과 아브라함의 차이점(창 17:5) (0) | 2020.07.09 |
[성탄절 설교문] “내년 이맘때”(창18:10) (0) | 2020.07.08 |
[아담 설교문] “신부라 부르리라”(창2:21-25) (0) | 2020.07.07 |
[요셉 설교문] “술 관원장이 받은 복음”(창40:9-15) (0) | 2020.07.07 |
[요셉 설교문]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이 감옥에 갇힘”(창40:1-8) (0) | 2020.07.06 |
[여호와의 이름] “엘 로이(אל ראי)”(창16:13) (0) | 2020.07.06 |
[여호와의 이름] “엘 샤다이(אל שדי)”(창17:1) (0) | 2020.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