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여호와의 이름] “엘 로이(אל ראי)”(창16:13)

체데크 2020. 7. 6.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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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여호와의 이름 중에서 엘 로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엘 로이(אל ראי)”(창16:13)

 

명제: 여호와 하나님은 각 개인을 살피시는 하나님이다.

목적: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받은 백성을 살피시고 보호해주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큰 민족을 이루어 주겠다고 약속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지 10년이 되었지만 자신의 자녀는 없습니다. 자녀가 있어야지 큰 민족을 이룰 수가 있는데 현재 자신의 처지를 보면 자녀가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래가 아브람에게 제안을 합니다. 자신은 자녀를 낳지 못하니 자신의 여종 하갈에게 들어가 자녀를 얻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제안입니다. 이때에 아브람은 사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하갈과 동침하게 됩니다. 하갈은 아브람과 동침하여 임신을 하게 되었고 하갈은 자신의 주인인 사래를 멸시하게 됩니다. 자신이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주인도 몰라보고 있습니다. 신앙에서 이런 자들이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자신의 처지가 낮을 때에는 조용하다가 자신의 직분과 지위가 높아지면 전에 있던 상관도 몰라보고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와 같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나의 원죄를 회복시켜주시고 영원한 죽음에서 살려주셨는데 이제는 내가 회복되었다고 주님을 배신한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힘들 때에는 교회에 나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삶을 살다가 세상에서 일이 풀어지고 복을 받아서 물질의 형편이 나아지면 점점 세상으로 돌아가는 이런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신이 임신한 것 하나만 가지고 자신의 주인인 사래를 멸시하고 깔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래는 하갈을 학대하게 되었고 하갈은 주인인 사래의 눈을 피하여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율법주의자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하나님께 대적하면 결국은 쫓겨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갈은 율법주의자의 대표입니다. 사래는 복음주의자의 대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사래에게 아이를 허락하지 않아서 하갈을 통해서 아이를 얻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갈은 겸손하게 자신을 사용하여 아이를 낳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구원의 기회가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주인을 험담하고 모욕하고 핍박을 했던 것입니다.

 

이 시대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기회를 주셨다면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얻을 기회를 주십니다. 하갈을 통해서 아브람의 씨를 얻으려고 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율법주의자들에게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명을 얻을 기회를 주셨는데 이 기회를 얻었다고 사래와 같은 사람들을 정죄하고 핍박하면 안 됩니다. 선택함을 받았지만 아직 구원의 확신이 들어가지 않아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을 무시하고 모욕하면서 정죄하면 안 됩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쫓겨나게 됩니다.

 

하갈이 사래의 눈을 피하여 광야로 도망을 쳤습니다. 광야를 방황할 때에 하나님은 하갈을 살피시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갈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면서 네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갈이 임신한 아이는 아브람의 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하갈에게도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갈은 아브람의 씨를 소유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갈을 보고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람의 씨를 보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착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래에게도 나중에 이삭을 주어 축복하시지만 하갈에게도 복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율법주의자들에게도 하나님이 살피시고 복을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일단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의 씨를 가진 하갈도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처럼 율법주의에 빠져서 자신의 의로 나가려고 하는 자들도 육적인 축복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영적인 복은 받지 못하지만 육적인 축복은 교회 안에서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약속하신 것은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다는 의미입니다. 율법주의자의 고통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육적인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영적인 구원의 은혜의 축복은 받지 못했습니다. 이 축복은 사라와 이삭이 받게 됩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씨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육적인 축복은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교회 안에 있는 하갈과 이스마엘과 같은 율법주의자들도 이 땅에서 살 동안에는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갈이 아브람의 씨를 임신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이 씨는 영적인 하나님의 대를 잇는 이삭과 같은 씨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지는 못합니다. 영원한 구원의 은혜는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라와 이삭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온전히 소유한 구원받은 백성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항상 자신의 위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의지가 먼저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가 바로 하갈과 이스마엘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도 이 땅에서는 은혜를 주시고 축복도 허락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쩌면 이런 자들이 사라와 이삭과 같은 자보다 더 큰 복을 이 땅에서 받아 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복음을 가진 자들은 이런 자들의 축복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영원한 천국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율법주의자는 이 땅에서의 복은 있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은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하갈은 사래가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자신이 더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갈이 사래를 무시하면서 살게 됩니다.

 

하지만 사라가 이삭을 낳고 난 후에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사라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대를 이어갈 생명인 이삭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상황은 달라집니다. 하갈의 교만과 자만은 꺾이게 되고 사라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래와 같이 하나님께 선택을 받아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지 못한 자라도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을 살피시는 것처럼 사래를 살피셔서 이삭을 주시는 것처럼 때가 되매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나에게 주실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갈을 살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합니다. 율법주의자를 살피시는 하나님이 왜 사래와 같은 복음을 소유하려고 하는 자를 살피지 않겠습니까?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살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창16: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하갈이 사래의 눈을 피해 광야로 도망을 쳤습니다. 하갈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도와줄 사람도 없고 이대로 광야에 있으면 죽어야 될 상황입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나타나셔서 살 길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사래에게 돌아가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래의 마음을 풀어놓았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나를 살피시는’ (ראה라아 7200 동사, 칼, 분사능동, 남성, 단수) 보다, 감찰하다, 살피다, 주목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갈의 삶에 깊이 들어오셔서 감찰하고 있었습니다. 사래에게 했던 행동들과 말들을 모두 살피시고 주목하여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갈이 사래에게 학대를 받고 사래 앞에서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도 하나님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하갈이 광야에서 방황할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위로하시고 다시 사래에게 들어가서 복종하라고 해답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 해답을 받은 하갈이 자신의 아들의 이름도 받고 내가 힘들고 지칠 때에 하나님이 나를 감찰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살피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70인 역에는 (επιδιδωμι에피디도미 1929 동사, 분사, 현재, 능동태, 주격, 남성, 단수) 건네주다, 전하다, 내주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επι에피 1909) ~을 근거로 하여, ~ 때문에, 라는 뜻과 (διδωμι디도미 1325) 주다, 하사하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을 살피신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아브람의 씨인 이스마엘을 임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하갈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직접 현재 하갈을 챙기시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바로 주님의 마음입니다.

 

눅24: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에 떼어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이때에 이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았습니다. 영적인 눈이 덮어 있다가 예수님이 주신 생명의 떡을 먹고 눈이 열렸습니다. 주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으며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주시니라는 단어가 (επιδιδωμι에피디도미)입니다. 주님은 이와 같이 우리들을 지켜주시고 보호하시고 함께 동행하셔서 감찰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안이 열리지 않았을 때는 예수님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십자가 복음의 떡을 주셔서 이제는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나와 항상 함께 동행하시고 지금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ראה라아 7200 동사, 칼, 분사능동, 남성, 단수. 공성, 1인칭, 단수) 보다, 감찰하다, 살피다, 주목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갈은 광야에서 어떻게 자신이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었느냐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전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감찰하고 살피시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주의자들에게도 하나님은 만나주시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하지만 이들은 온전하게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복음으로 돌아서지 않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로 하나님 앞에 나와 온전하게 회개하고 구원을 얻어야 합니다.

 

70인 역에는 (όραω호라오 3708 동사, 분사, 과거, 수동태, 목적격, 중성, 복수) 보다, 관찰하다, 나타나다, 보이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과거로부터 계속해서 하갈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갈의 생각과 행동을 관찰하시면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광야로 도망을 쳤을 때에 하나님이 스스로 하갈에게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보려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자신의 의로 하나님 앞에 나가려고 힘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하갈도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보려고 했지만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갈에게 나타나시니 하갈이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 이유가 수동태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나타나신 목적은 아브람의 씨인 이스마엘을 예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 아들을 잘 낳을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주의자나 복음을 가진 자나 모두가 살피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내 주셔야 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율법주의자들도 열심히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히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원죄의 죄인이 구원에 이르게 되었고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모든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게 됩니다. 이때가 바로 재림하실 때입니다.

여기에서 나타나시리라는 단어가 (όραω호라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속해서 감찰하시고 보호하시며 지키십니다.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함께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땅에 두 번째 나타나실 때에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 구원을 받은 자들은 절대 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성도들을 견인하셔서 올바른 길로 가게 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나를 감찰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갈과 같은 율법주의자들에게도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축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교회에 있을 때에는 복을 받게 됩니다. 하갈이 아브람의 씨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적인 아들을 낳았으니 하나님은 하갈을 감찰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율법주의자들도 사랑하시고 감찰하시면서 보호해 주시는데 진정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사래와 같은 자들은 얼마나 더 사랑하고 있겠습니까?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면 나는 사래와 같은 자입니다. 아직 이것이 밖으로 표출이 되지 않아 약속만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만세전에 선택함을 받은 언약의 백성입니다. 이 백성이 아직 이 땅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함으로 이삭과 같은 생명을 갖지 못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어주시고 이삭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주셔서 주님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게 하셔서 이삭과 같은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 자들은 더 이상 걱정하지 마시고 주님이 나와 함께 동행하셔서 도와주시고 감찰하시며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견인하여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주님과 함께 영원한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하나님은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시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와의 이름] “엘 샤다이(אל שדי)”(창17:1)

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호와의 이름 중에서 엘 샤다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엘 샤다이(אל שדי)”(창17:1) ♣명제: 여호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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