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아브라함 설교문] 아브람과 아브라함의 차이점(창 17:5)

체데크 2020. 7. 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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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아브람과 아브라함의 차이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브람과 아브라함의 차이점(창 17:5)

 

명제 : 아브람은 거듭나기 전의 사생애 기간이고 아브라함은 거듭난 후의 공생애 기간을 의미한다.

목적 : 우리도 아브람과 같은 사생애의 기간과 아브라함과 같은 공생애의 기간이 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에게 민족의 아버지이며 믿음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에게도 많은 믿음에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름을 바꾸어주신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 안에는 있었지만 거듭나지 못한 상태의 사생애를 의미하는 기간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온전한 구원을 얻지 못한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온전한 구원을 받은 상태를 말하는 공생애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에는 들어왔지만 율법의 행위에 빠져있는 사생애 기간의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는 모르면서 자신의 의에 빠져 열심을 내는 신앙의 기간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깨닫고 하늘로부터 거듭나는 아브라함과 같은 공생애 기간의 신앙생활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가 온전한 구원을 받은 상태입니다. 신앙의 정체성이 바뀐 것을 말합니다.

아브람은 자신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했던 때라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얻은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현재 내가 아브람과 같은 사생애 기간의 신앙생활을 하는지 아니면 아브라함과 같은 공생애 기간의 신앙생활을 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아브람과 아브라함의 신앙이 어떻게 달랐는지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들어보겠습니다. 아브람의 이름에 있을 때의 신앙생활은 어떠했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횃불 언약 아래에 있었습니다.

창15: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언약을 하셨습니다. 아브람이 아들이 없어서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고 할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네 몸에서 나올 자가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람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서 하늘의 별을 보여주면서 네 자손이 이와 같이 많아질 것이라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 후에 아브람이 하나님께 제물을 가지고 드렸습니다. 해가 지고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고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하나님이 횃불을 통해서 언약하셨음을 확인시켜주신 것입니다.

창15: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횃불이 고기 사이로 지나가고 나서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너의 자손에게 주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언약’ (ברית베리트 1285) 언약, 계약, 협정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횃불을 통해서 아브람에게 후손들에게 땅을 주겠다고 언약하시면서 계약서를 쓰듯이 계약과 협정서를 각각 나누어 가진 것을 말합니다. 고대 근동에 고기 사이로 횃불이 지나간 것은 확실한 언약을 의미하며 둘 중에 하나가 계약을 파기하면 그 사람도 쪼개진 고기처럼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횃불 언약은 하나님이 지나가셨기 때문에 확실히 언약을 지키겠다는 다짐입니다.

(ברית베리트)라는 단어가 70인 역에는 (διαθηκη디아데케 1242) 언약. 유언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람이 횃불 언약 아래에 있다는 것은 유언장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아직 자신의 것으로 땅을 소유받지 못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자손들에게 땅을 주겠다고 언약함으로 유언장을 써주셨습니다. 횃불 언약에 있는 사람들은 현재 상속을 받지 못하고 유언만 받아 놓은 상태입니다.

히9:16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유원한 자가 죽어야 만이 상속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아브람처럼 횃불 언약에만 있다면 구원을 유언으로만 받아 놓은 상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상태의 신앙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의 땅을 상속받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는 천국을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 유언한 자가 아직도 살아있기 때문에 유언장만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히9:17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 유효하고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습니다. 아브람과 같이 사생애 기간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천국을 언약받았는데 유언으로만 받아 놓은 상태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는데 아직도 죽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을 때 유언장은 바로 효력을 발휘하여 천국을 내 것으로 상속받게 됩니다.

둘째, 아브람은 이스마엘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창16: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여 아들을 낳게 됩니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원하는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의 생각에 어쨌든 엘리에셀도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는데 자신의 씨에서 나왔으니 상속자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생애 기간에 있는 신앙생활은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일을 하려고 합니다. 율법적인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낳으매’ (ילד얄라드 3205 와우접속사. 동사, 칼, 미완료, 여성, 3인칭, 단수) 낳다, 생기게 하다, 산고를 겪다라는 뜻입니다. 하갈은 아브람과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많은 산고를 겪어서 이스마엘을 탄생시켰습니다. 그 아들은 아브람과 동침하여 생기게 되었습니다. 사생애 기간의 신앙생활은 자신의 능동적 행동으로 열심히 일을 해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려고 합니다.

70인 역은 (τικτω틱토 5088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단수, 3인칭) 낳다, 해산하다라는 뜻입니다. 아브람으로 있을 동안에 낳은 아들은 이스마엘입니다. 이스마엘은 육적 아들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직설법은 실제로 육적 아들을 자신의 힘으로 낳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미완료 시제는 아브람과 같이 사생애 기간에 있을 때에 하는 모든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육적 아들만 낳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듭나지 못한 삶은 하는 행동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만 짓는 행동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도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탄생이 되는데 마리아가 아들을 낳는데 예수라고 이름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낳으리니’라는 단어가 (τικτω틱토)입니다. 주님도 사생애의 육체의 아들로 태어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상속자를 주시겠다고 아브람에게 약속하셨지만 유언으로만 받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급하게 상속자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사래의 종인 하갈과 동침을 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사생애 기간의 신앙생활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이 좋다고 말하지만 하는 행동 자체는 하나님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행동을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듭니다. 믿음이 유언받은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유언한 자가 죽은 것을 믿지 못하니 결국 이스마엘만 낳고 있습니다. 이것이 율법주의적인 신앙생활입니다. 이런 신앙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16: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던 때가 아브람의 나이가 86세입니다. 그 이후로 13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율법주의 신앙은 하나님의 뜻대로 가지 않고 자신의 정욕대로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율법주의자들이 언약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유언장만 받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것으로 상속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런 신앙은 아직도 원죄 가운데서 숨을 쉬지 못하고 있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아브람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신앙은 어떤 신앙인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할례 언약 아래에 있었습니다.

창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할례를 받으라’ (מול물 4135 동사, 닢알, 부정사절대형) 잘라내다, 할례를 행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고 나타나지 않다가 99세에 나타나셔서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고쳐주시고 할례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의 포피를 잘라내어 언약의 증표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닢알형은 할례를 받는데 자신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할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 포피를 반드시 잘라내야 함을 말합니다. 부정사절대형은 아브라함에게 속한 모든 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포피를 잘라낼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후손들도 포피를 잘라내야 합니다.

70인 역은 (περιτεμνω페리템노 4059) 할례를 행하다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περι페리 4012) ~을 위하여라는 뜻과 (τεμνω템노) 자르다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하나님이 할례를 아브라함에게 받으라고 한 것은 너 자신을 위하여 할례를 행하여 포피를 자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할례는 아무나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자가 할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람에 있을 때는 이스마엘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마엘에게 할례를 행하였을 때는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어주신 후에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아브람은 사생애 기간이기 때문에 할례 언약 안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거듭나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할례 언약을 받으면 자신의 몸에 영원한 구원의 증표가 생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횃불 언약 아래에 있을 때는 구원에 대한 증표가 없습니다. 그럼 구원받은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신앙 안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나서 할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할례가 없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도 아니고 천국도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골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아브라함의 공생애 기간에 들어온 사람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습니다.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내가 아직도 아브람의 사생애 기간에 있다면 율법의 할례를 육체에 받음으로 천국을 유언으로만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나면 아브라함처럼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아 영원한 구원의 증표를 소유하여 천국을 상속받게 됩니다. 예수님도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사생애 기간에는 육적 할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공생애 기간에는 영적 할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아들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할례 언약을 받은 자들은 유언이 효력을 발휘하였습니다.

히9:17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유언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유언이 유효해졌습니다. 구약에서는 유언만 했지만 신약에서는 유언하신 분이 죽었기 때문에 내 것으로 상속되었습니다. 내 것으로 명의가 되었기 때문에 누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서 죽었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천국이 바로 나에게 상속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만천하에 선포해야 합니다. 율법에 빠진 사람들은 아직도 아브람과 같이 사생애 기간을 살면서 유언만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교회에서 천국을 유언만 받고 있다면 평생 유언으로 끝나고 상속받지 못합니다.

둘째,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창21: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 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 하여 이삭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람이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이삭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름을 주셨습니다.

창17: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같이 공생애 기간의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에게 이삭과 같은 생명을 허락해 주십니다. 사래도 사라가 되었을 때에 이삭을 낳았습니다.

‘낳은’ (ילד얄라드 3205 관사. 동사, 닢알,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낳다, 생기게 하다, 산고를 겪다라는 뜻입니다. 사라도 사래의 사생애 기간에 있을 동안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하나님이 사라로 이름을 바꾸어 주시면서 이삭을 낳았습니다. 공생애 기간에 있을 때 생명을 낳게 되었습니다. 관사는 그 아들 이삭을 낳았다는 의미입니다. 닢알형은 사생애 기간의 아들인 이스마엘은 칼형으로 자신의 의지로 낳은 아들이지만 이삭은 하나님의 의지로 허락하여 낳은 아들을 의미합니다. 완료 시제는 사래의 사생애 기간에 있을 때는 전혀 주시지 않다가 사라의 공생애 기간에 있을 때 이삭을 온전하게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남성은 사라를 통해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의 아들을 허락해주셨다는 의미입니다.

70인 역은 (γινομαι기노마이 1096) 생겨나다, 일어나다, 되다, 만들어지다, 행해지다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생기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니 기적 같은 일이 만들어졌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했던 사래가 하나님이 나타나 사라로 이름을 바꾸어주시니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아 아브라함의 신앙을 하는 자들은 어떤 신앙을 가지게 될까요?

엡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전에는 아브람처럼 사생애의 신앙생활을 하던 자들이 하늘로부터 거듭난 후에 아브라함의 신앙이 됨으로 이삭과 같은 생명을 낳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가까워졌느니라’라는 단어가 (γινομαι기노마이)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의 생명을 얻는 기적이 나타난 것처럼 나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삭과 같은 영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허락한 온전한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무엇을 행하였습니까?

창21: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팔 일 만에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영원한 언약의 증표를 만들었습니다. 하늘로부터 거듭난 사람들도 이삭처럼 구원의 증표인 그리스도의 할례가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구원의 증표인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럼 아브람과 아브라함의 이름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창17: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하나님이 99세에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이제는 아브람이라 하지 말고 아브라함이라 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브람은 (אברם아브람 87)입니다. ‘고귀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אברהם아브라함 85)입니다. ‘많은 무리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아브람과 아브라함의 단어 중에 특이한 것은 (ה헤)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숨구멍이라는 상형에서 온 알파벳입니다. 아브람의 사생애 기간에는 숨구멍이 열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숨구멍을 열어주시니 아브라함의 공생애 기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아브람처럼 아직도 율법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유언으로만 받고 있는 상태입니까? 율법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결국에는 지옥의 심판을 받는 신앙입니까? 이렇게 평생을 신앙생활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이스마엘만 낳는 신앙만 하게 됩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께 대적하는 무리의 아버지가 됩니다. 언약된 백성인 이삭을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자가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숨구멍을 열어주어 하늘로부터 거듭난 공생애의 신앙생활을 의미합니다.

원죄에서 숨구멍이 열리니 이삭과 같은 하나님이 원하는 생명을 낳게 됩니다. 거듭난 후에 하는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이고 주님께만 찬송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신앙 자가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할례를 받아 구원의 증표를 평생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아브람으로 있을 때는 구원의 증표인 할례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아브람의 죽어있는 사생애의 신앙이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생명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전적인 사역을 하는 공생애의 신앙생활을 하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탄절 설교] “내년 이맘때”(창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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