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자료

[성경용어 성경공부]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보는 예배

체데크 2021. 2. 2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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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 용어 성경공부 중에서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보는 예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 생활을 하게 됩니다. 예배는 드리는데 예배의 용어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배를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깨닫고 나서 예배를 드리면 예배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모르고 예배를 드리는 것과 알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성도의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禮拜)

 

인간이 제일 먼저 하나님 앞에 해야 할 일은 예배이다. 교회에 나오면 우리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사람들도 어른에게 절을 하면서 예의를 갖춘다. 인간들은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감사의 예의와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자가 예배를 외면한다는 것은 배은망덕한 행위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짓이다. 내가 구원받았다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기뻐하면서 즐거워함으로 나와야 한다. 성도는 예배를 통해서 영혼의 안식을 얻고 신앙이 성장하게 된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는 반드시 예물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표현이 예물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예물을 감사하여 하나님께 드리게 된다.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받은 삭개오도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예수님을 따랐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림으로 신앙고백을 하게 된다. 나의 생명을 살려주신 예수님께 우리는 아까울 것이 없는 존재다. 우리가 예배의 정의를 원어를 통해서 깨달아 보자.

헤브라이즘 관점에서의 예배

우리가 구약에서 말씀하시는 예배가 무엇인지를 헤브라이즘 관점에서 알아야 한다. 예배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는 정확한 예배의 의미를 알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 그 예배가 더 귀하게 느껴질 것이다.

창22: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지시하셔서 이삭을 모리아의 한 산에서 드리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모리아의 산에서 바치기 위하여 종들과 함께 갔다. 모리아 산에 가까이 왔을 때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내가 이삭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여기에서 ‘예배하고’라는 단어가 שחה(샤하 7812) 엎드리다, 절하다, 경배하다, 섬기다, 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모리아의 산으로 가서 자신을 납작 엎드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예배를 드림으로 경배하고 섬겼다. 예배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대로 기뻐하시는 뜻대로 드려지는 것이 예배이다. 인간의 생각으로 인본주의 사상을 집어넣어 드리는 것은 예배가 아니다.

아브라함은 지금까지 이스마엘을 낳고 율법적인 인본주의에 빠져 살았다. 하지만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신 후에는 인간의 생각은 버리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생각으로 바뀌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로 예배를 드렸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었던 예배가 무엇인가? 이삭을 인간의 생각을 갖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여 드린 것이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은 인신 제사를 받지 않는다. 만약에 아브라함이 자신의 생각대로 하나님은 아들을 받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자신 마음대로 제물을 바꾸었다면 하나님은 정말 그 예배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이삭을 믿음으로 모리아 산에서 바쳤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미 숫양을 준비하여 놓으시고 이삭을 잡지 못하게 하셨다.

헤브라이즘의 관점에서 예배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드리는 것이 예배이다. 예배에 세상의 것을 더 가감하여 드리면 이것은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가 되지 않는다. 현재 강단에서의 예배가 세상의 인본주의적인 예배가 된다면 하나님은 받지 않는다. 인간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예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아니다. 예배는 아브라함처럼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는 것이 예배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바쳤더니 숫양을 준비해주시고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았다. 그 이유가 예배를 드린다는 문법이 히트파엘 강조 재귀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온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은혜로 축복을 더하여 주셨다. 그럼 현재 우리의 예배는 어떠한가? 아브라함처럼 믿음을 가지고 내 생각과 달라도 순종함으로 예배에 나오고 있는가? 아브라함은 자신의 소중한 아들을 예물로 가지고 나왔다. 나는 무엇을 예배에 하나님께 바치고 있는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아까운가? 헌물을 드리는 것이 아까운가? 예배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게 된다.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절하여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우상에게 절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항상 내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해야 한다.

신4:19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의 피조물들에게 미혹당하여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고 하셨다. 사람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지치고 힘들 때면 어떤 존재들을 의지하고 싶어 진다. 이럴 때에 피조물을 섬기지 말라고 하나님은 경고하고 있다.

여기에서 피조물에게 미혹당하여 경배하지 말라고 했는데 ‘경배하며’라는 단어가 שחה(샤하)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내가 내 자신을 잘 안다고 하지만 나도 어느 순간에 거짓된 우상에 미혹되어 이것을 경배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눈에 보이는 것이 마음에 더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도 히트파엘 강조 재귀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상을 섬김으로 마음에 안도감이 오고 평안함을 찾기 때문에 더 우상에게 매달리게 된다. 하나님은 이것을 경고하고 있다. 결국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의 구분은 예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현재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구원받은 자이다. 하나님께 절하고 경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짓 그리스도의 복음에 빠져 그곳에서 피조물을 섬기고 있다면 구원받지 못한 자이다. 현재 내가 섬기는 교회에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는 교회는 거짓된 교회이며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예배를 드리는 곳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 온전한 마음을 가지고 경배하며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 나의 소중한 시간과, 재물을 가지고 나와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보통 예배를 드릴 때에 모자를 쓰고 드리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우리가 어른들에게 절을 할 때에 모자를 쓰고 절을 하지 않는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때에도 모자를 벗고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지금 내가 드리고 있는 예배는 어떠하며 어떤 마음으로 드리고 있으며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헬레니즘 관점에서의 예배

우리가 헤브라이즘 관점에서 예배를 보았으니 헬레니즘 관점에서의 예배는 무엇인지를 배워보자. 신약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배는 무엇일까?

요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수님께서 부정한 사마리아 땅으로 가셨다. 모든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생각했던 사마리아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기다렸다.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에 물을 뜨러 왔을 때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이 여인은 예배에 관하여 예수님께 질문하게 된다. 보통 이 여인을 창녀라고 생각하지만 이 여인은 창녀가 아니다. 보통 창녀는 마을에서 살 수가 없다. 부정한 여인이기 때문에 마을에서 살게 놔두지 않는다. 그리고 창녀는 예배에 관하여 관심도 없고 메시아가 누군지 관심도 없다. 하지만 이 여인은 메시아에 대하여 관심이 있고 예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해주시고 이 여인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은 예배에 관하여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시면서 지금은 예루살렘도 아니고 그리심 산도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이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는데 바로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예배드리는 자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고 예배드리는 자들을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있다.

여기에서 ‘예배하는’이라는 단어가 προσκυνεω(프로스퀴네오 4352) 예배하다, 경의를 표하다, 경배하다,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προς(프로스 4314) ~을 향하여, 라는 뜻과 κυνεω(퀴네오) 입 맞추다, 라는 뜻의 합성어이다. 그럼 헬레니즘의 관점에서 예배는 무엇인가?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나가서 그분께 입을 맞추는 행위가 예배이다. 유대인들은 사랑하는 자에게 입을 맞추었다.

하지만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 나와 입을 맞춤으로 팔았다. 이런 자는 잘못된 예배를 드린 자의 예표이다. 내가 하나님께 나와서 거짓된 복음을 속에 감추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이것은 가룟 유다와 같이 예수님께 입을 맞춤으로 팔아버리는 것과 같다. 현재 이단들이 교회에 들어와 거짓된 사상을 가지고 자신이 거룩한 것처럼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도 가룟 유다처럼 예수님을 팔고 있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마음과 육체까지도 경건하게 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나가서 입을 맞추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겉으로는 거룩한 척했지만 속에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겉과 속이 다른 자들은 온전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수가 없다. 현재 내가 거짓된 사상을 가지고 있고 우상을 섬기고 있으면서 예배시간에만 거룩한 척하고 있다면 이것은 외식하는 자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믿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고 속으로는 이단사상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입을 맞춤으로 팔아버리는 것이다. 현재 하나님은 하나님께 온전히 입을 맞춤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찾고 계신다.

그럼 누가 거짓된 우상과 입을 맞추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입을 맞춤으로 팔게 되는가?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이다.

계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 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짐승에게 경배하게 된다. 거짓된 우상에게 경배하여 피조물을 섬기게 된다. 이단의 교주를 섬기면서 교회에 나와 거룩한 척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이 사람은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이다.

여기에서 경배하리라는 단어가 προσκυνεω(프로스퀴네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는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에 피조물인 거짓된 교주의 우상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와서 예수님께 입을 맞추게 된다. 이것이 예배이다. 그렇다면 현재 여러분들은 누구와 입을 맞추고 있는가? 세상의 권력과, 재물과, 우상과, 거짓된 교주와, 입을 맞추고 있는가? 이것이 더 소중하여 예배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 말씀을 통해서 끊어야 한다.

그럼 예배란 무엇인가? 헤브라이즘 관점에서는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드림으로 복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께 엎드려 절하고 경배함으로 경건하게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드려지는 것이 예배이다. 헬레니즘 관점에서는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로 나와 주님과 온전하게 입맞춤으로 드려지는 것이 예배이다. 우리는 두 가지 모두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구약의 관점에서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 예배이고 신약의 관점에서는 인간인 내가 하나님께 나가서 입을 맞춤으로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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