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누가복음 24장 설교문] “예수님의 부활은 영의 부활이 아니라 영화로운 몸의 부활이다”(눅24:36-43)

체데크 2020. 9. 24. 16:38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누가복음 24장 설교문 중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영의 부활이 아니라 영화로운 몸의 부활이다.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영의 부활이 아니라 영화로운 몸의 부활이다”(눅24:36-43)

 

명제: 예수 그리스도는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셨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도 예수님처럼 영화로운 몸의 부활을 소망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의인의 모습으로 오셔서 죄인들의 죄를 뒤집어쓰시고 십자가에서 무참하게 저주받고 죽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시고 죄인들에게도 외면당하셨으며 한 명도 주님이 가시는 그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지 않고 오직 예수님 혼자 묵묵하게 고난의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장렬하게 순교하시고 죄인인 나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면 끝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3년 반 동안 따라다니던 제자들도 예수님의 죽음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으로는 부활의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 자신의 눈으로 보니 믿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 번도 누군가 부활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부활의 사건이 나의 사건으로 믿어지십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내 죽음이 되어야 하고 주님의 부활이 내 부활이 될 때에 나에게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신앙생활은 헛된 것입니다. 교회를 나와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나와 상관이 없고 예수님의 부활이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더 이상 신앙생활을 유지해 나갈 이유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있다면 빨리 신앙을 점검하고 주님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다고 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많은 이단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영의 부활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화로운 몸의 부활이라고 하면 자신들의 교주가 메시아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성경에 영화로운 몸의 부활이라고 반드시 기록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영의 부활이라고 믿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은 영의 부활이 아니라 확실한 영화로운 몸의 부활이라는 것을 믿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의 부활이 아니라 영화로운 몸의 부활이라는 사실은 왜일까요?

 

첫째,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축복해 주셨습니다.

 

(눅 24: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모여 대화하고 있는 곳에 나타나셔서 먼저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축복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영으로 부활하셨다면 제자들의 눈에 보이지도 않고 축복을 선포할 수도 없습니다.

 

‘가운데 서서’ ίστημι(히스테미 2476) 서다, 멈추다, 작정하다, 확정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넋이 빠져있고 두려워하며 낙심되어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강의 은혜를 주시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과 함께 하시기로 작정이 되어 있고 하나님의 확정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분은 성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 스스로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성부 하나님의 계획과 예정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난 사건이 실제로 있으며 이 사건은 이미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낙심되어 있는 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말씀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이르시되’ λεγω(레고 3004) 말씀하다, 이야기하다, 선포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현재 제자들의 마음은 공황상태입니다. 정신적 지주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난 후에 앞으로 살아갈 일이 캄캄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는데 현재 예수님이 죽으시고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의 마음에 평강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걱정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왜 부활했는지 또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듯이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평강을 주시고 말씀해 주시니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강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찾아와 말씀하신 사건이 실제로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서 있을 때에는 과거 시제를 쓰고 있지만 지금은 현재시제를 쓰고 있습니다. 부활할 것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일어났고 현재는 제자들에게 눈에 보이도록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실제 눈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강의 축복을 선포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실제적으로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정확하게 문법으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소망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무의미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거나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을 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나와 항상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에게 현재에 나타난 것처럼 나에게도 현재 이 시간 함께 동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둘째, 부활하신 예수님은 살과 뼈가 있습니다.

 

(눅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평강의 축복을 주시는데도 마음에는 아직까지 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주심에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생각과 주님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고 지금까지 죽었던 자가 살아난 일이 역사적으로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믿지 못한다면 부활하신 주님과 나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부활하신 주님이라는 것을 확신 있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너희들을 위해 내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자신의 손과 발을 보라고 확인시켜 주시고 있습니다.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주님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까지도 예수님이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신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믿음으로 아무리 믿어보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셔야 만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만져’ ψηλαφαω(프셀라파오 5584) 만져보다, 손을 대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ψαλλω(프살로 5567) 노래하다, 찬송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직접 명령하셔서 자신의 손과 발을 보고 또한 만져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확신 있는 믿음을 심어주시기 위함입니다. 이들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화로운 몸을 만진다는 것은 바로 영원한 생명 되시며 이제 영원한 대속을 이루시고 영원한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송하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을 받은 자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영화로운 몸을 만질 수 있는 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예정되어 있는 자들이 만질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만이 영화로운 부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מוש(무쉬 4184) 느끼다, 만지다, 깨닫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명령을 받은 자들이 주님의 손과 발을 만지면서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신 것을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힘으로 주님을 만지면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주님의 부활하신 몸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만지고 싶어도 만질 수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들은 절대 부활의 영광을 잊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활의 소망을 주시고 깨닫게 하셔서 마지막 날에 주님과 같은 영화로운 몸의 부활을 소망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부활하신 주님은 음식을 잡수셨습니다.

 

(눅 24:41-43)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예수님께서 자신이 부활했다는 것을 직접 제자들에게 증거 해주시고 난 후에도 제자들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확신 있는 증거로 먹을 것을 가지고 오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영은 음식을 먹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구운 생선을 잡수시고 있습니다.

‘잡수시더라’ φαγω(파고 5315) 잡수시다, 식사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모습을 믿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직접 음식을 드시면서 확인시켜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드시지 않아도 되지만 믿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믿을 수 있도록 확인시켜 주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으로는 절대 음식을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셔서 직접 음식을 드신 사실이 역사적으로 실제 존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음식을 드실 것이 이미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었고 현재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음식을 드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영으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께서 육으로 부활하지 않고 영으로 부활했다고 믿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주님은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확실히 손과 발에 못 자국이 있습니다. 부활하셨을 때도 확실하게 못 자국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에 동참해야 합니다. 죄로 인하여 죽은 자들은 이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성경은 확실하게 예수님의 부활이 육신의 부활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이단의 사설에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영의 부활이라고 말하는 어처구니없는 자들의 말을 듣지 말아야 합니다. 이들의 말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있으며 거짓말을 일삼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의 말에 미혹되어 이단 집단으로 가는 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이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셨다고 증거 해 주시고 있는데 이것을 믿지 못하고 거짓된 이단의 사설에 놀아나는 자들은 결국 영원한 심판의 불 못에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나라 설교문] “복음의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눅14:15-24)

안녕하세요. 오늘은 하나님 나라 설교문 중에서 복음의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복음의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눅14:15-24) ● 명제 : 교회는 예수 그리

cdk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