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복음 빵집을 찾아주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하나님 말씀 중에서 아브라함의 신앙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세겜에 머물렀을 때와 헤브론에 머물렀을 때의 신앙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창12:6, 13:18)
♣명제: 아브라함의 여정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알 수 있다.
♣목적: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우리도 아브라함의 여정을 통해 믿음을 배우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1장에 하나님의 구속사의 계보를 따라 이름을 나열하게 됩니다. 홍수심판이 일어나고 인간들은 모두 죽게 됩니다. 그러나 노아의 88 가족들은 살아남게 됩니다. 이 가족들을 통해 하나님은 새롭게 인류를 번성시켜 나갑니다. 그러면서 노아의 후손 셈을 통해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고 있습니다. 구속사의 결정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12장부터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이스라엘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시게 됩니다. 인류의 번성을 말씀하시다가 이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이방 땅인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뽑아내셔서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선택의 역사입니다. 모든 사람을 쓰시는 것 같지만 한 명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점차적으로 좁혀 가는데 시작은 아브라함을 통해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태도 노아가 구속의 역사라고 말하지 않고 아브라함을 족보에 쓰고 있습니다.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 시작점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의 시작도 아브라함이고 영적인 구원받은 백성들의 시작점도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속의 역사의 시작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우상이 많은 갈대아 우르에서 선택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가나안 땅으로 떠나게 됩니다.
창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가게 됩니다. 조카 롯도 아브라함과 함께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하란 땅은 어떤 곳입니까?
‘하란’ חרן(하란 2771) 하란,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חרר(하라르 2787) 불타다, 마르다, 태우다, 노하다, 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하란 지역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서 문화와 문명이 발달되었던 도시입니다. 이곳에는 달을 숭배하는 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지구라트라고 하는 달을 숭배하던 신전들이 있었습니다. 세상적인 문명이 발달되었던 도시이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장소이며 불타 없어질 곳이고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곳은 한 곳도 없으며 영적으로 모두 메말라 버린 도시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떠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볼 때에 우리도 세상의 죄악 된 장소에서 하나님은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잘나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란 땅에서 아무 조건 없이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습니다. 나도 구원받을 조건이 하나도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뽑히게 된 것입니다. 우상의 숭배지에 계속 있으면 나는 반드시 심판을 받아 죽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선택하셔서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해 주시고 구원의 은총을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들어간 곳이 가나안 땅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전혀 가보지 않은 미지의 땅으로 인도되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창 12: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라함이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함께 가나안 땅을 향하여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가나안’ כנען(케나안 3667) 가나안,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כנע(카나 3665) 낮아지다, 항복하다, 복종하다, 뉘우치다, 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신 것은 지금까지 하란 땅에서 죄 가운데 살았던 것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쳐서 복종하고 우상을 섬겼던 자신의 아버지 데라의 품에서 살면서 우상에 젖어있었던 것들을 뉘우치고 온전하게 주님만을 따라 살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의 자리에서 자신이 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 앞에 복종하여 사는 곳인 하나님이 준비하신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이 땅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사는 이스라엘 땅이 됩니다. 이 땅은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으면 절대 살 수 없는 땅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잠시도 살 수 없는 땅입니다. 날씨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건기와 우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지 않으면 절대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복종하고 항복하여 온전하게 주님을 따라가는 땅이 바로 가나안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교만해지면 하나님은 비를 내리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가뭄이 들어 먹을 것이 전혀 없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시지 않으니 먹을 것이 없게 됩니다. 가뭄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원래 강수량이 많아서 먹고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비를 내리시지 않으니 살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남 유다는 광야의 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왕이 나타날 때는 먹을 것이 풍성해지고 더욱더 강성 해지는 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면서 살아야 하는 땅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창 12: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지나 처음 도착한 곳이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입니다. 이때에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이 땅을 차지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방의 객입니다. 이 땅에서 정착하려면 힘이 듭니다. 먼저 있던 사람들의 눈치를 보아야 합니다. 이때에 아브라함은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의 신앙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세겜’ שכם(셰켐 7927) 세겜,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כם(샤캄 7925) 아침 일찍 일어나다, 진지하게 행하다, 끊임없이, 부지런히, 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아브라함이 세겜이라는 땅에 가게 됩니다. 이방인의 땅에서 열심히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하루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면서 진지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타지에서 살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열심히 일해야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신앙이나 세상의 일이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부지런히 끊기 있게 하나님께 경배하며 일을 하게 되는 것을 세겜이라는 땅을 통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땅’ מקום(마콤 4725) 장소, 땅, 성전,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קום(쿰 6965) 세우다, 자기 소유가 되다, 확정되다, 성취하다, 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세겜 땅은 하나님께서 성전과 같은 거룩한 장소로 허락한 곳입니다. 이곳에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약속하시는 장소입니다.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현재 아브라함이 있는 이 땅을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확정되어 자신의 소유가 된 땅입니다. 인간이 준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입니다. 이 땅은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이 됨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이곳에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게 됩니다.
‘모레’ מורה(모레 4176) 모레,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ירה(야라 3384) 가르치다, 교훈하다, 알게 하다, 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세겜 땅 모레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일이 막막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깨달아 알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교훈을 삼아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신앙의 훈련도 받아 하나님께 인정을 받게 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머무르면서 아브라함이 거주하고 있을까요?
‘상수리나무’ אלון(엘론 436) 상수리나무,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אול(울 193) 권세 있는 자, 힘, 이라는 뜻에서 왔습니다. 아브라함이 상수리나무에서 거주했던 이유는 바로 권세 있는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며 기도하면서 부지런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방인들은 이런 상수리나무에서 이방제사들을 많이 드렸습니다. 하나님보다도 눈에 보이는 나무를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자신의 신앙을 권세 있는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제단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던 아브라함의 신앙은 어떠했습니까? 새벽 일찍 부지런하게 일어나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늘 상수리나무에서 하나님을 기다렸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말씀으로 교육받고 이 말씀을 자신의 삶속에서 적용하면서 살았습니다. 이제 우리도 아브라함의 신앙을 배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오직 주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이나 생활면에서 부지런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새벽에 주님을 찾고 만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항상 영적으로 깨어 주님과 교통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아브라함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던 아브라함에게도 인생의 시련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기근입니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먹을 것이 부족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자신들의 가족을 데리고 내려가게 됩니다. 애굽은 영적으로 보면 세상을 의미합니다. 기근이 올 때에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는 육신적은 생각을 먼저 하고 애굽으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도 대단한 것 같지만 결국 우리와 같은 성격을 가진 죄인에 불과합니다. 애굽으로 내려가 사래도 애굽의 바로 왕에게 빼앗길 뻔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 구해주시고 애굽에서 하나님의 백성인 아브라함은 수치를 당하고 애굽에서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어 다시 가나안 땅으로 올라오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현재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힘들고 고난이 찾아왔다고 세상으로 눈을 돌려 가면 세상의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당하고 수치를 당해 결국은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가나안 땅으로 올라오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은과 금과 가축이 풍부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가지고 온 재물 때문에 조카인 롯과 아브라함은 함께 동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재물이 서로를 시기 나게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롯과 함께 살고 싶지만 롯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 아니면 재물 때문에 뼈아픈 이별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롯은 서로 이별하게 됩니다. 우리들도 재물 때문에 가족 간에 불화가 일어나는 가족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떠난 직후에 장막을 헤브론으로 옮기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왜 장막을 헤브론으로 옮기는 것일까요?
창 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헤브론’ חברון(헤브론 2275) 헤브론,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חבר(하바르 2266) 결합하다, 연합하다, 교제하다, 약조하다, 라는 뜻입니다. 조카 롯은 소돔과 고모라 지역으로 갔지만 아브라함은 헤브론 지역으로 장막을 옮겼습니다. 헤브론 지역은 높은 산악지대로 살기에 불편한 도시입니다. 하지만 문화와 문명에 익숙한 롯은 요단지역을 선택하여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영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결합되지 않고 연합하지 않으면 애굽에서의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늘 교제하기를 원했으며 이제부터 하나님과 묶여서 하나가 되어 다시는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따라갈 것을 하나님과 약속하는 신앙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반드시 세상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묶여 있어야 합니다. 물속에 빠져 있는 사람이 구명조끼가 답답하다고 벗어던지면 물속으로 가라앉아 죽게 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십자가 복음을 벗어 버리면 안 됩니다. 생명줄이기 때문입니다. 늘 주님과 교제하고 연합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마므레’ ממרא(마므레 4471) 마므레,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מרא(마라 4754) 때리다, 채찍질하다, 배반하다, 반역하다, 라는 뜻에 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수치를 당한 후에 자신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악 가운데 반역하여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채찍에 맞아 고통당하신 예수님을 떠올리면서 하나님과 연결되기를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다시 세상으로 가지 않겠다는 아브라함의 결단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입니다.
헤브론 마므레 지역에서도 상수리나무에서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늘 함께 하기를 원하면서 생활가운데서도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연결되어 교제하는 삶 속에 하나님은 상수리나무에서 아브라함을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창 18: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하나님께서 상수리나무에서 아브라함을 만나주시기 위해 나타나셨습니다. 채찍에 맞고 고난당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신앙생활을 했더니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 주셨습니다.
‘나타나시니라’ ראה(라아 7200) 감찰하다, 뵙다, 사모하다, 경외하다, 준비되다, 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생활을 하나님께서 감찰하시고 하늘에서 마므레 상수리나무에 있는 아브라함을 만나러 찾아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고대하던 하나님을 뵙게 되었으며 늘 자신의 신앙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모하면서 기다렸던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으며 이미 이삭을 주시기로 작정하시고 준비된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다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만나기 위해 즉시 내려오시게 되며 아브라함이 만나고 싶다고 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삭을 약속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주권으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지 않으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전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다가 이제는 직접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완전하게 눈에 보이게 만나 주시고 있습니다.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구원시켜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이 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아브라함의 신앙 여정을 보았습니다. 상수리나무에서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부지런히 믿음을 지켜나갔던 아브라함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할 때도 있었습니다. 고난이 닥치면 하나님을 먼저 찾는 것보다 자신의 생각이 우선일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패를 한 후에는 다시 하나님과 연결하고 결합하여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신앙생활을 했더니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시고 만나주시러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고민하고 있던 이삭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이제 주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평소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시간 아브라함의 신앙을 기억하여 주님을 따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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