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아입니다. 구원자를 믿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합니다. 성도는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갈릴리 Galilee-갈릴리에 대한 편견
요 7:52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
예수께서는 본격적인 갈릴리 전도 사역과 함께 유대 지방, 그 중에서도 특히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두루 돌아다니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요 1:35-3:36). 따라서 갈릴리의 젊고 능력 있는 참 선지자로 알려진 예수와 예루살렘의 고루하고 독선적인 종교 지도자들의 일대 격전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갈릴리에서 온 예수님을 홀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방 땅 가까이에 있던 변두리 갈릴리를 얕보았기 때문입니다. 갈릴리는 메시아는커녕 일개 선지자조차도 출현할 만한 곳이 될 수 없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편견은 당시 유대의 황폐한 영적 상태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오늘날 경건한 생활을 소홀히 하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 영적 교훈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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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편견은 인간의 판단이 낳은 어리석은 결론입니다
1) 헛된 인간의 우월성으로 인함
종교 활동의 근본 출발이 자기 부인에서가 아니라 자기 의(義)에서 비롯되는 것은 위험합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이 율법에 명한 바를 가장 바르고 완전하게 준행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만이 거룩하고 경건한 존재로서 천국에 합당한 자들인 양 착각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그릇 평가했으며,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갈릴리와 같은 변방의 사람들을 업신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애와 긍휼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그들은 무시했던 것입니다. 사실 참 신앙인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자신의 무가치함과 부족함을 깨닫게 되고, 그럼으로써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점점 겸손해지게 됩니다(마 16:24).
2) 그릇된 기대와 소망으로 인한 오해임
예수님은 출생부터 공생애 내내 유대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메시아는 예루살렘에서 화려하게 출생해야 하고, 또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현실적인 올무와 압제들에서 풀려날 것으로 믿었습니다. 결국 해방자로서 정치적 메시아를 고대했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갈릴리 출신이요, 한낱 목수의 아들에 불과한 예수를 무시했고, 그분의 신성을 인정치 않았습니다(요 1:46). 이처럼 자기 기대와 바램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자기의 생각과 편견이라는 협소한 테두리 안에 하나님을 가두어 두려는 것은 인간의 지나친 오만이며, 착각입니다.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을 인간이 어찌 감당할 수 있단 말입니까?(행 17:24-25)
2. 그 편견은 인간적인 구원 가치관에서 기인되었습니다
1) 눈 앞의 구원만을 소망했던 유대인들임
로마의 압제하에서 신음하던 유대인들에게는 한 가지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메시아에 대한 소망이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그분이 로마 제국을 전복하고 율법에 기초한 이상적인 나라를 건설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군사, 정치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 화려하고 웅장한 정복자로서의 메시아 상(像)을 꿈꾸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오직 눈앞의 구원, 물질적 행복만을 추구했음을 반증해 줍니다. 따라서 그들은 로마 제국에 무력으로 대항치 못하고, 반란을 도모하지도 못 하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그릇된 신앙인은 물질적이며 육체적인 소원 성취만을 바라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만을 좇는 인간은 결단코 하늘의 신령한 것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2) 영원한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님이심
예수께서는 정치적 메시아를 소망하던 유대인들 앞에 연약한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사 53:1-3). 정식 율법 교육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변방 갈릴리 지방의 목수 출신이라는 초라한 배경을 가지고 그들 앞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유대 민족은 그러한 예수를 메시아로, 참 선지자로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 민족에게 가장 시급한 구원의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분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영적 어두움에 빠진 유대 민족을 지도할 참 선지자요, 죄와 절망에서 해방시켜 주실 만왕의 왕이시며,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그들은 눈앞의 구원만을 바랬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3. 그 편견은 교만과 무지의 열매입니다
1) 교만했던 종교 지도자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갈릴리에서 오신 예수를 영접하지 못한 이유는 영적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굳어진 종교적 지식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판단하려 들었습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교만한 자는 결코 하나님을 영접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 보내신 참 선지자를 환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자신의 죄인됨을 겸손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총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사람에게 찾아가십니다(눅 18: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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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율법에 무지했던 것임
구약의 율법 내용에는 메시아가 비천한 모습으로 오실 것이라는 예언이 있습니다(사 53장). 그런데 이런 내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치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율법을 단지 지식적으로만 알았지, 진심으로 그 율법에 순복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앞에 자신을 철저히 순복 시키고 성령의 조명하심에 따를 때, 영적인 무지와 신앙적인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정녕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라고 토로했던 시편 기자의 그 겸손한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삼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더욱 깊이 알아가며,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 예수를 더욱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유대인들은 갈릴리 출신의 주님을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교만과 아집과 편견으로는 그리스도 예수를 나의 주님이요, 구원자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그분 앞에 설 때, 또 순전한 심령으로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해 들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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