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8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거짓으로 회개하는 죄를 말씀하고 있다. 진정한 회개가 없으면 안 된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지 못한 죄를 책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는데도 감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도 죄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감사하지 않은 죄와 우상숭배 죄(시 78:34-72)
34-72절, 하나님께서 징벌하심
[34-39절] 하나님이 저희를 죽이실 때에 저희가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 그러나 저희가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 분(忿)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 저희는 육체뿐이라.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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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음식을 탐하던 자들을 죽이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다.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반석이시며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다. 사람은 징벌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그의 율법을 배운다. 성도에게 주시는 고난은 그의 영적 성장을 위해 유익하다(시 119:67, 71).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는 온전치 못하였다. 그들은 입으로 하나님께 아첨하며 그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다. 행함이 없는 회개는 하나님께 대한 아첨에 불과하다. 그것은 감히 하나님께 거짓말하는 것이 된다. 또 하나님께 향하는 그들의 마음에는 정(定)함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에 성실치 않았다. 그들에게는 환경에 따라 변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견고한 마음이 없었고, 하나님의 언약을 성실히 지키며 그의 율법에 순종함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긍휼과 자비로 그들의 죄악을 사하셨고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으셨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셨고 그의 분노를 다 발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신 까닭은 인생이 육체뿐이며 가고 다시 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 있다.
[40-42절] 저희가 광야에서 그를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고. 저희가 돌이켜 하나님을 재삼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격동하였도다. 저희가 그의 권능을 기억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구속(救贖)하신 날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의 죄를 사하셨고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셨고 그의 분노를 다 발하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러 번 광야에서 그를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하였다. 교만한 자는 반복하여 하나님께 반항하고 범죄하며 그를 슬프시게 하고 근심시킨다.
또 이스라엘 백성은 ‘돌이켜’(KJV) 하나님을 시험하였다. ‘돌이켜’라는 원어(와예슈부)는 ‘반복하여’(NASB, NIV)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격동하였다’는 원어(히테우)는 ‘표시하다’ ‘제한하다’(KJV)는 뜻이 일반적이고, 또 ‘괴롭게 하다’(NASB, NIV)는 뜻이 언어학자들의 추측으로 제안되기도 하였다(BDB). ‘제한하였다’는 말은 아마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였다는 뜻일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의 능력을 믿는 것인데,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고 의심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실상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며 그 자체가 죄이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권능을 기억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대적에게서 구속(救贖)하신 날도 생각지 않았다. 그 구속의 날이란 그들이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건짐을 받았던 날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내리는 열 가지 재앙을 눈으로 보았었고 홍해를 통과하는 기적을 체험하였었다. 만일 그들이 그 일을 기억했었더라면, 하나님을 알았을 것이며 믿었을 것이며 경외했을 것이며 범죄치 않았을 것이다.
[43-53절] 그때에 하나님이 애굽에서 그 징조를, 소안 들에서 그 기사를 나타내사 저희의 강과 시내를 피로 변하여 저희로 마실 수 없게 하시며 파리 떼를 저희 중에 보내어 물게 하시고 개구리를 보내어 해하게 하셨으며 저희의 토산물을 황충에게 주시며 저희의 수고한 것을 메뚜기에게 주셨으며 저희 포도나무를 우박으로, 저희 뽕나무를 서리로 죽이셨으며 저희 가축을 우박에, 저희 양떼를 번갯불에 붙이셨으며 그 맹렬한 노와 분과 분노와 고난 곧 벌하는 사자들을 저희에게 내려 보내셨으며 그 노를 위하여 치도(治道)하사[길을 만드사] 저희 혼의 사망을 면케 아니하시고 저희 생명을 염병에 붙이셨으며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 기력의 시작을 치셨으나 자기 백성을 양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떼같이 지도하셨도다. 저희를 안전히 인도하시니 저희는 두려움이 없었으나 저희 원수는 바다에 엄몰되었도다.
12절에서도 말했지만,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서 애굽의 소안 들에서 징조와 기사를 나타내셨음을 말한다. 소안은 고센 땅의 중심도시인 타니스로서 라암셋(창 47:11; 출 1:11; 12:37)과 같은 도시인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거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눈 앞에서 애굽 사람들에게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었다. 본문은 그 중에 몇 가지만 언급한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강과 시내를 피로 변하여 마실 수 없게 하셨고(제1재앙), 파리 떼를 그들 중에 보내어 물게 하셨으며(제4재앙), 개구리를 보내어 해하게 하셨고(제2재앙), 메뚜기와 황충으로 그들이 수고한 토산물을 먹게 하셨고(제8재앙), 우박과 서리로 그들의 포도나무와 뽕나무, 가축과 양떼를 죽이셨다(제7재앙). 마지막으로, 그는 맹렬한 노로 벌하는 천사들을 그들에게 내려보내 애굽의 모든 장자를 치셨다(제10재앙).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양떼같이 안전하게 인도하여 내셨고 그들의 원수인 애굽 사람들은 홍해 바다에 빠져 죽게 하셨다(출 14:27-29).
[54-58절] 저희를 그 성소의 지경 곧 그의 오른손이 취하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또 열방을 저희 앞에서 쫓아내시며 줄로 저희 기업을 분배하시고 이스라엘 지파로 그 장막에 거하게 하셨도다. 그럴지라도 저희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며 반항하여 그 증거를 지키지 아니하며 저희 열조같이 배반하고 궤사를 행하여 속이는 활같이 빗가서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구출하신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다. 그는 그들을 그 성소의 지경 곧 그가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그의 능력의 오른손으로 취하신 산으로 인도하셨다. 그는 거기 거하던 가나안 족속들, 심히 우상숭배적이며 음란하였던 이방 족속들을 그들 앞에서 쫓아내셨고 그 땅을 분배하여 이스라엘 지파들로 거기서 그들의 장막에 거하게 하셨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땅 정복과 땅 분배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 곧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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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그들은 배은망덕하였다. 그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의심하고 시험하였고 하나님께 반항하며 그의 율법과 증거를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같이 하나님을 배반하였고 하나님 앞에 거짓을 행하였다. 즉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되이 회개하였고 거짓되이 신앙을 고백했던 것이다. 그들은 마치 속이는 활같이 빗나갔다. 특히, 그들은 산당에서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노를 격동하였다. 불경건과 우상숭배는 모든 죄의 근원이다. 거기에서부터 모든 부도덕한 죄들이 나온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할 때 악에서 떠날 수 있다(잠 16:6).
[59-64절]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그 능력된 자를 포로에 붙이시며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그 백성을 또 칼에 붙이사 그의 기업에게 분내셨으니 저희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저희 처녀에게는 혼인 노래가 없으며 저희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저희 과부들은 애곡하지 못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지만, 사람이 회개치 않고 패역을 부릴 때 마침내 그에게 진노하신다. 하나님의 진노는 참으로 무섭다. 그는 이스라엘의 우상숭배하는 말들을 들으시고 진노하셨고 그들을 크게 미워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실로에 세우셨던 그의 성막을 버리셨다. 그가 친히 명하시고 세우신 성막(聖幕), 그에게 거룩히 드려진 성막이라 할지라도, 그는 그것을 버리셨고 그것을 떠나셨다.
또 그는 그의 능력을 베푸셨던 자들을 포로에 붙이시며 그의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셨다. 61절의 원문은 “그의 힘을 포로로 주셨다”인데, 그것은 그가 그의 능력을 보이셨던 그의 백성을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다는 뜻이라고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심판과 징벌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이전의 하나님의 능력은 지금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의 범죄함 때문이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을 칼에 붙이셨고 전쟁에서 죽게 하셨다. 그는 자기 기업된 그들에게 분내셨으며 그 청년들을 불에 타 죽게 하셨다. 또 그 처녀들에게는 혼인 노래가 없어졌다. 혼인은 처녀들에게 가장 기쁜 일인데, 그러한 기쁨의 일이 사라졌다. 존귀한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졌다. 그들의 과부들은 애곡하지 못했다. 포로 상태에서는 장례식을 치루는 일도, 심지어 우는 자유도 가지지 못했다. 이스라엘 땅은 죽음과 슬픔의 그림자로 뒤덮혔다.
[65-72절] 때에 주께서 자다가 깬 자같이,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같이 일어나사 그 대적을 쳐 물리쳐서 길이 욕되게 하시고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 그 성소를 산의 높음같이, 영원히 두신 땅같이 지으셨으며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저를](원문, KJV, NASB, NIV)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톰 레바보)[마음의 온전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 이방인들에게 패하여 죽임을 당케 하셨다. 그러나 잠잠하시던 그는 자다가 깬 자같이, 포도주로 인해 외치는 용사같이 일어나셔서 그 대적들, 즉 이스라엘을 핍박했던 이방 나라들을 쳐 물리치셨고 영원한 수욕을 당케 하셨다. 하나님께서 깨어 일어나시면 원수들은 패하여 물러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장막도 버리셨다. 그는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않으셨다. 그 증거는 실로에 세워진 성막이 더 이상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지 않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에브라임을 버리셨다. 그 대신에, 그는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 거기에 그의 성소를 높은 곳같이, 영원히 세우신 땅같이 지으셨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택하시고 거기에 성소를 세우신 것은 그의 전적인 긍휼이었다. 또 그는 그의 종 다윗을 양치는 자리에서 취하셔서 그의 기업된 백성 이스라엘을 기르는 자가 되게 하셨다. 다윗은 마음의 성실함과 지혜로운 손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인도하였다.
본 시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능력의 구원을 잊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을 능력으로 구원하셨다. 그는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애굽에서 놓여나게 하셨고 홍해에서 그들을 건져주셨고 애굽인들을 몰살케 하셨고 가나안 땅을 정복케 하셨고 그 땅을 열두 지파에게 분배해주셨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우리의 삶에서도 때때로 체험한 하나님의 능력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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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우리는 인간의 전적인 부패성과 무능력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참된 회개를 힘쓰자.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에 진실함과 정함이 없었고 언약에 불성실했고 거듭 범죄하였고 하나님께 반항하였고 우상을 섬겼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셨고 그들을 대적들에게 붙이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 번 그의 진노를 돌이키셨고 그들을 용서하셨다.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에 근거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의지하고 모든 죄를 멀리하고 다윗처럼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자.
[성경인물 원어설교문] 아하시야(아하즈야 274) 여호와께서 잡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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