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학개 1장 강해 설교문] “주님이 임하실 성전을 건축하라”(학1:1-6)

체데크 2020. 9. 8.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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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학개 1장 강해 설교문 중에서 주님이 임하실 성전을 건축하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주님이 임하실 성전을 건축하라”(학1:1-6)

 

명제: 무너진 성전에는 임하지 못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목적: 예수 그리스도가 임하실 성전을 세워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신부로 선택하셔서 이 세상의 본보기로 보여주셨습니다. 많은 이방인들에게는 우상이 신랑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신랑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육체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신부를 만나기 위한 장소를 만들라고 명령하셨는데 이것이 성막입니다. 성막의 시대가 끝나고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신부를 만나기 위하여 성전에 임재하시게 됩니다.

 

성전의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고 그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십계명이 들어있었습니다. 그것을 덮고 있는 것이 속죄소입니다. 이 뚜껑 위에 피를 뿌리면 모든 죄가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성전에서 신랑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룩한 주님의 신부들이 타락하여 다른 신랑인 우상을 섬기게 되자 하나님은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통해서 완전히 폐허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이 무너진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무너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부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전락이 되었습니다. 이때가 B.C. 586년의 일입니다.

 

이렇게 포로생활을 하다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바벨론의 포로생활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을 통해서 해방의 기쁨을 만끽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고레스 칙령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고 자신들이 믿던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성전을 재건하게 했습니다. 이때가 B.C. 536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스룹바벨의 인도 하에 유다 땅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성전을 재건하려고 하자 북 이스라엘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에서 혼혈 관계를 맺은 자들이 자신의 위치가 약화될 것을 깨닫고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함으로 성전 재건은 기초공사만 해놓고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16년의 세월이 흘러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초라한 모습으로 남았으며 많은 이방인들로부터 흉물스럽게 보였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개건 할 수 있도록 학개 선지자에게 임하셔서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학개 선지자는 솔로몬 성전의 화려했던 모습을 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지금의 무너져있는 성전을 보았을 때에 마음은 매우 아팠을 것입니다. 그래서 학개 선지자의 나이가 대략 70세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때가 B.C. 5206월입니다. 이렇게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을 독려하여 4년 만인 B.C. 51610월인 4년 만에 성전을 재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것이 무엇입니까? 나의 심령에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해야 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열심히 하지만 내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이 무너져있다면 하나님은 가슴이 아프며 무너진 성전에 임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하나님께서 임하실 수 있도록 내 안에 무너진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을 회복하시고 주님이 임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큰 은혜가 넘치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학1:1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다리오 왕은 페르시아의 왕의 이름으로서 이 사람은 ‘히스타스페스’입니다. 이 사람은 B.C. 521~486년까지 통치하던 왕입니다. 이때가 성전 공사를 시작하고 멈춘 지 16년이 흐른 후입니다. 이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였습니다. 이때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함께 임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무너진 성전을 보시면서 마음이 아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지도자들에게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다면 스룹바벨을 통해서 행정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고 대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제사의 임무를 수행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학개’ חגי(학가이 2292) 학개이며, 어근은 חג(하그 2282) 축제의 모임, 절기의 희생, 춤추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에게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말씀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랑과 신부가 만나서 기쁘게 춤추고 축제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것을 부탁하시기 위함입니다. 학개 선지자는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정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정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심정을 깨닫고 무너진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힘을 주고 독려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학개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희생의 제물을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을 만나서 기쁘게 춤을 추고 구원의 절기를 지키면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학1:2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학개의 입술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부들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는 신랑과 신부가 만날 수 있는 신방을 건축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부들이 신랑을 만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건축할’ בנה(바나 1129 전치사. 동사, 닢알, 부정사연계형) 건축하다, 세우다, 건설하다, 복구시키다, 라는 뜻입니다. 바벨론에서 귀환한 세대들이 성전건축을 하다가 중단한 지16년이 흘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부를 만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신부들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성전을 건축하여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세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하나님의 성전은 폐허가 된 상황입니다. 이것을 매일같이 보고 있는 신부들은 마음에 동요함도 없습니다. 누구 하나 일어나 성전을 건설하여 복구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의 마음을 아시고 학개 선지자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성전건축을 미루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대략 세 가지로 볼 수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이들은 지속적인 가난과 궁핍과 고난으로 인하여 성전을 건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게으름과 나태와 태만 때문에 성전을 건축하지 않은 것입니다. 혹시 우리들도 이와 같지는 않습니까? 교회를 건축하려고 하는데 나도 먹고 살기 어려운데 교회 건축은 무슨 건축이냐고 말하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영적인 나태와 태만에 빠져 하나님의 집은 무너지고 황폐해져도 전혀 관심이 없는 신앙을 하고 있습니까? 이때에 하나님이 소리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레미야가 선포한 포로기간의 70년이 채워지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들 스스로 계산하여 B.C. 586년 예루살렘이 멸망한 때부터 계산하여 학개가 예언할 당시는 66년 정도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무슨 성전을 건축하느냐는 식의 비아냥거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70년이 훨씬 넘은 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나를 만나기 위해 교회를 건축하기를 서두르고 있는데 나는 내 생각으로 판단하여 재물이 들어갈 것 같으니 교회 건축을 늦추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며 나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은 다릅니다.

 

세 번째는 성전건축을 방해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세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람들이 성전 재건에 브레이크를 걸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전을 재건하려면 이들과 싸우면서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전쟁을 해야 합니다. 이런 고통에 휘말리기 싫어서 성전건축을 미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들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욕심이 생겼기 때문에 성전건축을 미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마음에 성전을 재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성전을 재건하려면 막대한 재물과 노동력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재산에서 출원해야 하고 또한 자신이 직접 성전을 건축하는데 노동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닢알 단순수동과 부정사연계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들의 마음에도 이미 교회 건축은 물 건너간 이야기라고 말하면서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고 마음에 각오한 것은 아닙니까? 이런 마음이면 할 수 있는 환경과 상황이 되어도 절대 동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하나님께서 하시면 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되어도 동참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전을 건축해야 합니까? 현재 무너진 주님의 전을 건축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면서 만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학1: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랑이 거주할 하나님의 성전이 황폐하였는데 신부인 너희들은 백향목과 같은 널판을 두른 집에서 거주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황폐하였거늘’ חרב(하레브 2720) 마른, 건조한, 황폐한, 이라는 뜻이며 어근은 חרב(하라브 2717) 황무하다, 깨어지다, 파괴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속이 상하셔서 신부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은 좋은 집에서 살고 있는데 신랑인 나는 이렇게 황폐하고 건조하여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도 바람막이 하나 없는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현재 파괴되고 깨져서 사람들이 찾지 않고 짐승들만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끔 길을 가다 보면 건축을 하다가 부도나서 몇 년 동안 방치된 건물을 볼 것입니다. 이 건물은 철골들이 썩어서 빨갛게 녹물이 흘러나와 흉물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곳에는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고 짐승들이나 불량한 자들만이 드나들게 됩니다. 현재 하나님의 성전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그럼 영적으로 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내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전이 건축되지 못하고 과거의 율법적인 신앙에 찌들어 복음의 성전을 세우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신앙은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흉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접근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주변에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만약에 사람들이 있다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자들이나 죄를 짓는데 동참하게 하는 자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성전을 세워야 합니다.

 

‘판벽한’ ספן(사판 5603 동사, 칼, 분사수동, 남성, 복수) 덮다, 입히다, 준비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판벽한 집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재료를 준비하여 자신의 집을 꾸미고 덮어서 바람이 불어도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집입니다. 현재 하나님의 집은 황량한 들판에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양심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욕심을 위하여 판벽한 집을 지었습니다. 겉으로는 가난하여 재물이 없어서 성전을 건축하는데 시기상조라고 하지만 자신의 집은 멋지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는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자신의 집을 짓는 데는 최선을 다하여지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칼 단순 능동과 분사 수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집을 멋지게 만들 수밖에 없도록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전은 16년 동안 내팽겨 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가지고 내 아파트, 내 연립빌라, 내 단독주택, 내 별장, 내 원룸을 꾸미는 데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의 성전과 내 마음의 성전을 꾸미는 데는 신경을 쓰지 못한 신앙을 하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황량한 들판에 세상의 이방인들이 보기에 손가락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내 집은 좋은 곳에 있으면서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면 신랑 되신 주님은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신랑과 신부인 내가 영원히 행복하게 살 성전을 꾸미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의 성전을 꾸미고 눈에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의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학1: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말씀합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게 될 것이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게 되고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고 일꾼이 삯을 받아도 품삯이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과 같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많이’ רבה(라바 7235 동사, 히필, 부정사절대형) 많다, 크다, 증가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씨를 많이 뿌려서 많은 수확을 증대시켜 보려고 하지만 수확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도 계속해서 많은 씨앗을 뿌리지만 거두어들이는 것은 수고한 것에 비하면 적습니다. 그 이유가 히필 사역 능동과 부정사절대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곳인 성전에는 사역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자신의 욕심에 계속해서 사역을 하니 소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교회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욕심에 관심이 많아서 사업에서 소출을 내려고 사방팔방 뛰어보지만 매출은 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열심히 뛰어보지만 먹을 수 있는 소출은 증가하지 않는 것입니다.

 

‘배부르지’ שבעה(소브아 7654) 만족, 충분, 포만, 이라는 뜻이며 어근은 שבע(사바 7646) 배부르다, 가득하다, 풍성하다, 풍족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먹기는 하지만 마음에 풍족함이 없고 집안에도 충분하게 먹을 것을 쌓아 놓고 살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성전을 무시하고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사는 자들에게 이런 배고픔의 고통을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배고픔의 고통은 참기 힘든 고통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십자가 복음의 말씀이 끊어지는 고통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전을 버리고 가는 자들이 어떻게 영적으로 충만해지고 배부르게 살 수가 있습니까? 성령의 임재가 가득하여 풍성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처럼 성전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에 세상에서 열심히 씨를 뿌려도 소출이 생기는 것입니다. 또한 먹어도 배부름을 체험하게 됩니다. 열심히 먹기 위해 일을 하지만 먹을 것이 적어서 제대로 먹지 못한다면 얼마나 힘이든 삶을 살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켜주셔야 만이 먹을 수가 있고 소출이 생길 수가 있습니다.

 

‘마실지라도’ שכר(샤카르 7937 전치사. 동사, 칼, 부정사연계형) 취하다, 가득마시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건축을 포기하고 있는 자들은 열심히 마실지라도 마음에 흡족하게 마시지 못할 것이며 취할 정도로 가득 마실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갈증은 매우 힘든 고통입니다.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물을 주시지 않으면 마실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위하여 열심히 물을 마시지만 갈증이 해소되지는 않습니다. 그 정도로 가득 채워 마실 수 있는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칼 단순 능동과 부정사연계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성전건축을 포기하고 세상에 가서 열심히 살지만 막상 마실 물은 없습니다. 사업을 해도 신통치 않고 학교에 다녀도 마음에 흡족할 정도의 성적은 없습니다. 직장에서 죽도록 열심히 충성하지만 진급은 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 이유가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너진 성전을 빨리 건축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이 모든 것들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입어도’ לבש(라바쉬 3847 동사, 칼, 부정사절대형) 옷을 입다, 꾸미다, 라는 뜻입니다. 성전건축을 늦추면서 참여하지 않는 자들은 집에서 좋은 옷을 입고 꾸미고 다녀도 따뜻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고대 근동은 날씨가 추워서 밤이 되면 겉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율법에 겉옷을 저당 잡았으면 가난한 자들에게 돌려주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아무리 몸에 치장을 하면서 남들 앞에서 강조하여 다녀도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 이유가 칼 단순 능동과 부정사절대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외모를 치장하고 다녀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세상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몸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멍 뚫어진’ נקב(나카브 5344 동사, 칼, 분사수동, 남성, 단수) 뚫다, 저주받다, 뚫어지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건축을 미루고 있는 자들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품삯을 받아도 구멍이 나서 뚫어진 전대에 넣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결국 열심히 돈을 채워도 어느 순간에 사라지고 없습니다. 전대에 들어가면 계속해서 남아있어야 하는데 없습니다. 이것이 저주입니다. 내가 필요할 때에 저축하여 사용해야 하는데 필요할 때에 쓸 재물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멍 뚫린 전대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관심이 없는 자들은 전대에 구멍이 하나씩 뚫어졌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칼 단순 능동과 분사 수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 앞에서 교회 건축에 관심이 없고 내 마음의 복음의 성전이 무너진 자들은 구멍이 뚫어진 전대처럼 재물이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사업에서 씨앗을 뿌려도 거둘 것이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픔이 찾아오고 옷을 입으려고 해도 입을 옷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벌거벗은 삶을 사니 수치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성전을 내 심령에 세워야 합니다. 먼저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임하시고 나면 눈에 보이는 내가 섬기는 교회를 돌봐야 합니다. 나는 좋은 아파트에서 빌라에서 살고 있는데 교회는 황량한 광야처럼 지하에서 습기가 풍겨 나는 곳에 있다면 성도가 서로 힘을 합쳐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사람도 습기가 찬 캄캄한 지하에 가기를 싫어하면서 하나님을 이곳에 오시라고 한다면 얼마나 죄송스럽습니까? 주님께서는 신랑이 되셔서 나를 만나려고 하는데 나는 교회에 관심이 없다면 신부의 자격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 주님이 내 안에 오실 수 있도록 무너진 심령의 성전을 건축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바댜 1장 설교문] “야곱 족속은 영원하리라”(옵1: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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