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장 설교말씀은 이삭의 출생과 하갈과 이스마엘을 추방하는 내용이 기록되었다. 하나님의 약속한 이삭이 출생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니 사라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인 이스마엘에게도 육적인 축복을 주었다.
이삭의 출생과 하갈과 이스마엘 추방(창 21:1-34)
이삭을 낳음(1-3)
• 21:1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하나님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잉태케 하시려고 성령으로 감동시키시고 섭리하셔서 여러 면으로 힘주신 것을 말한다. 아가 2:11-12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라고 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권고하시는 역사를 나타낸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권고하셔서 모세를 택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게 하셨다.
또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할 때에 하나님이 권고하셔서 고레스와 같은 좋은 왕을 세워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셨다. 50:25에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예정한 때가 되면 그 말씀대로 자기 백성을 권고하시며 그 뜻을 이루신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권고가 임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겨울에 땅이 얼어붙어 있을 때에는 농사할 수 없지만 봄이 돌아와 눈이 녹고 양춘가절(陽春佳節)이 되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예정한 때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권고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반드시 말씀대로 권고하시는 것을 우리가 깨닫고 어느 환경, 어느 위치에서든지 그대로 순종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권고가 임할 때에는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때를 주지 않으면 가만히 기다리고, 기회를 주실 때에는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만사가 다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전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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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말씀대로 일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믿고 순종하면 반드시 말씀대로 성취된다. 어떤 것은 빨리 성취되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더디 성취되는 것도 있으므로 말씀을 순종할 때에 한 번에 안되면 두 번하고, 두 번에 안되면 세 번하면서 계속 힘써 순종해 나아가면 마침내 하나님의 만능의 역사로 반드시 성취된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속히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계속 순종해 나아가야 한다.
• 21:2-3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사라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하여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이 되매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았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전에 지시하신 대로(17:19)순종하여 지은 이름이다.
이삭을 믿음으로 양육함(4-7)
• 21:4 그 아들 이삭이 난지 팔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이삭이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였다(17:12). 아브라함이 아들을 기르는 일에 있어서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대로 길러 신앙의 후사가 되게 하였다.
• 21:5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 세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을 때에 나이가 백 세였다. 아브라함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삭을 낳게 된 것을 증거한다.
• 21:6-7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이 웃음은 불신앙에서 나온 웃음이 아니고 신앙에서 나온, 기쁘고 즐거운 웃음이다(18:1-12참조). 90세 된 할머니가 아이를 낳았으니 웃을 만한 일이다. 이삭은 사람의 능력과 지각을 초월하여 신적 역사(神的役事)로 출생한 것이니 놀랍고 기뻐서 사라가 웃은 것이다.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90세 된 사라 할머니가 해산했다는 말을 사람들이 들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기뻐하며 웃을 만하다. 사라가 늙도록 자녀를 낳지 못했으므로 사람들의 생각에는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사라가 자녀를 젖먹이겠다고 누구도 감히 아브라함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아들을 낳게 해 주셨으므로 사라가 감사하여 하나님께 찬송한 것이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함(8-9)
• 21: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대연(大宴)을 배설(排設)하였더라 이삭이 자라서 젖을 뗄 때에 아브라함이 잔치를 베푼 것은 육신이 자란 것을 즐거워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서 구원 역사를 이루어 나가실 터인데, 이삭이 젖을 뗄 정도로 장성했으므로 그만큼 구원 역사가 진보 한 것이므로 대연을 배설하고 즐거워하였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육신 중심으로 즐거워한 것이 아니고 이삭을 통하여 많은 사람의 구원 운동이 잘 되어 나가는 것을 감사하며 즐거워한 것이다. 구약 시대에 젖을 떼는 나이는 3-6살 정도라고 하는데(삼상 1:21-23 참조), 이삭이 젖을 떼고 단단한 식물을 먹게 되었으니 그만큼 영이 장성했고 구원 역사가 확장된 것이다.
• 21: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하갈의 소생은 이스마엘이며 그가 13세 때에(아브라함은 99세 때) 할례를 받았으니(17:24-25),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14세 위이다. 보통 3-6세에 젖을 떼었다고 하면 이삭이 젖을 질 때에 이스마엘의 나이는 17-20세쯤 되었을 것이다. 이스마엘이 어린 동생 이삭을 시기하여 심하게 희롱하였고 핍박하였다 (갈 4:29). 이스마엘은 활 쏘는 자였으므로(20절) 이삭에게 활을 겨누고 위협하며 희롱했을 것 같다. 사라가 그것을 보고 잘못하면 이삭이 다치거나 죽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쫓음(10-14)
• 21: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을 내어쫓으라고 요구했다. 갈라디아서 4:29에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라고 했다. 이스마엘은 육에 속한 자요, 이삭은 영에 속한 자이다.
육에 속한 자가 영에 속한 자를 핍박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일이다. 또 영에 속한 자와 육에 속한 자가 공존할 수도 없다(고후 6:14). 이스마엘과 이삭이 갈라진 것처럼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는 서로 갈라서야 한다(계 18:4).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육에 속한 자(이스마엘)는 약속의 자녀(이삭)와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이스마엘이 종의 소생이긴 하나 역시 자기의 아들이므로 그 일로 인하여 아브라함이 근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21: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아브라함이 가정의 어려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했을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대로 행하라고 하나님의 응답이 내려왔다. 오늘날도 성도들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에는 특별히 기도를 많이 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일을 바로 처리해야 한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하나님이 이삭을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성취시킬 것을 말씀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는 자라야 하나님의 후사가 된다는 뜻이다.
• 21: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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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에 속한 아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에게서 났으므로 하나님이 번성케 하여 그도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 이것은 육에 속한 신자도 번성케 해 줄 것을 의미한다.
• 21: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를 받자 지체하지 않고 즉시로 순종하여 여종과 이스마엘을 내어 보냈다. 즉시 순종하지 않고 지체하면 마귀의 시험이 들어오기 쉽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면 즉시 순종해야 한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을 때에 물질을 많이 주지 않고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만 주어 보냈다. 아브라함이 신앙의 결단을 잘 내렸다. 비록 사라가 내어쫓도록 요구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고 해도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내어 쫓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인정을 끊고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어 쫓은 것을 보면 아브라함의 신앙이 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그 아들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더 크게 여겼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희생하면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위대한 신앙을 가졌다. 비록 아들일지라도 그 인정에 얽매이지 말고 끊을 것은 끊어버리고 내어쫓을 것은 내어 쫓아야 신앙이 바로 된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따로 분가시켜 줄 수도 있고 재산과 종을 많이 나누어주어 옆에서 살도록 할 수도 있으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내어쫓았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영에 속한 자와 육에 속한 자가 갈라져야만 영에 속한 자가 자유스럽게 자라날 수 있다는 뜻이다. 성도가 육신의 생각, 인정, 인본주의를 내어 쫓아야 영적 생명의 길을 힘 있게 걸어갈 수 있다. 우리 속에 있는 육신의 소욕을 그냥 놓아두면 영의 일이 안 된다. 육신도 잘되고 영도 잘되면 좋을 것 같지만 그러나, 영의 일이 안 된다. 그러므로 담대히 육신의 모든 소욕을 끊어버려야 생명 있는 신앙으로 걸어갈 수 있다. 육신의 생각은 늘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고, 영적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일을 방해한다(롬 8:7). 그러므로 육신에 속한 생각을 내어버려야 한다.
교회에서 어떤 일을 처리해 나갈 때에도 육신에 속한 의견을 따라가게 되면 영적인 교회로 자라나지 못한다. 교회는 죄인을 구원해 내는 속죄의 구령 기관(救靈機關)이다. 그러므로 영적 구원 운동에 장애가 되는 모든 세력과 인본주의를 좇아내고 참된 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 개인 신앙에 있어서도 육신에 속한 생각과 인정과 욕심을 내어 쫓고 영적 신앙에 서도록 해야 한다. 쫓겨난 하갈이 이스마엘과 함께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했다. 브엘세바는 헤브론 서남 55km 지점에 있다.
이스마엘로 큰 민족이 되게 하시겠다고 함(15-21)
• 21:15-16 가죽 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 대곡하니
하갈과 이스마엘이 가지고 간 물 한 가죽 부대를 다 마셔버렸으니 아마 며칠이 지난 것 같다. 이렇게 물이 다 떨어져 죽게 되었을 때 하갈이 차마 자식이 죽는 것을 그대로 볼 수 없어 아들 이스마엘을 떨기나무 아래 두었다. 왜냐하면 사막의 태양볕이 너무 뜨겁기 때문에 떨기나무 그늘에서 쉬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는 샘물을 찾으러 떠나가다가 살 한 바탕쯤 가서 아들과 마주 보고 앉아 방성 대곡하였다. 주인을 떠난 종은 죽을 지경을 당하게된다. 살 한 바탕쯤 활을 쏘아 화살이 미치는 거리이므로 약 200m 정도일 것이다.
• 21:17-18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어 주인을 떠나 슬피 우는 하갈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었다. 그리고 그 아들 이스마엘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 21: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하나님께서 하갈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눈을 밝혀 샘물을 보게 하여 하갈과 그 아들이 살도록 해 주셨다. 하나님이 살릴 자는 눈을 밝혀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 생수를 발견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을 자는 눈이 어두워져서 살길을 보지 못하고 곁에 있는 샘도 보지 못하고 목말라 죽는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에게 부르짖는 것이 사는 길이다.
• 21: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이스마엘이 장성하고 강건해져서 광야에 살면서 활 쏘는 자가 되었다. 이와 같이 육에 속한 신자가 세상일에 있어서는 지혜가 있고 힘이 있어서 모든 것을 잘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에게서 나온 열심이요 하나님의 뜻과 지식을 좇은 열심은 아니다(롬 10:2-3).
교회도 이스마엘과 같은 육에 속한 교회가 외부적으로 힘이 있고 강하여 사업도 잘하나 영적 생명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이스마엘이 외부적으로는 건장하고 사냥도 잘하지만, 하나님의 약속과 영적인 일을 이루어 나가는데는 멀리 떠나 있었다. 하나님의 기업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영적 신앙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주어진다.
• 21:21 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이스마엘이 애굽 여인을 취한 것은 이방 결혼이므로 잘못된 것이다. 이스마엘이 애굽 여인을 취했듯이 오늘날 교회가 신신학, 해방신학, 에큐메니칼 운동, 그릇된 신비주의와 짝하여 나가는 일은 육에 속한 운동이요 땅에 속한 운동이다. 이것은 성경에 위반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아비멜렉이 와서 맹약함(22-34)
• 21:22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군대 장관 비골과 함께 아브라함을 찾아왔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는 것을 이방인까지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말씀으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많은 축복을 해 준 것을 보고 안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방패와 상급으로 삼고 말씀대로 믿고 나아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났고, 많은 재물과 큰 세력을 얻게 되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그것을 보고 두려워하여 아브라함에게 불가침 조약 맺기를 원하여 찾아왔다. 또 헷 족속과 모든 사람들도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방백으로 존경하게 되었다(23:5-6).
누구나 하나님을 잘 섬기면 아브라함과 같이 창성하여 큰 세력이 된다. 성도가 믿음으로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인간 지각에 뛰어난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는 큰 세력이 되게 하신다.
• 21: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전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거짓되이 행하였으므로 아비멜렉의 집에 있는 모든 여자들이 질병으로 태(胎)가 닫혀졌고 수치를 당하고 물질적으로 손해가 있었다. 그러므로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다시는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맹세하라고 하였다. 자기 아들과 손자에게까지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맹세하여 서로 후대하면서 공존하기를 원하였다. 이는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다시 손해를 볼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여러 가지로 후대한 것처럼 아브라함도 아비멜렉을 후대하는 것이 마땅하다. 성도는 남의 신세를 진 다음에 배은망덕하지 말고 반드시 갚아 주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 21:24-25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의 말대로 맹세하겠다고 약속했다. 상대방이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면 즉시 허락하는 것이 좋다.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였다. 그 지방은 고원 지대이기 때문에 물이 귀하고 목축을 하는 자들에게 우물은 큰 재산이며 생명줄이었다. 그리하여 우물로 인해 가끔 분쟁이 일어났다. 전에 아브라함의 종들이 파 놓은 우물을 아비멜렉의 종들이 빼앗은 일이 있었으나 아브라함이 지금까지 말하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책망한 것이다. 이와 같이 책망은 적당한 때에 해야 효과가 난다(잠 25:11-12).
• 21:26 아비멜렉이 가로되 누가 그리 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이야 들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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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멜렉은 그 일에 대하여 알지 못했다고 사과하였다. 아브라함 자신이 그 사실을 아비멜렉에게 알리지 않았고 아비멜렉도 그 사실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아브라함이 우물을 빼앗기고도 직접 그들과 싸우지 않고 잠잠히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오직 하나님을 방패와 상급으로 삼아 믿음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세력을 강하게 해 주시고, 모든 면에 창성하게 해 주셨다. 사람이 서로 물고 찢으면 피차 망하게 된다.
• 21:27-30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아브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뇨 아브라함이 가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웠다. 그 때에 특별히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았다. 구약 시대에 양을 약조의 증거물로 주는 예가 있었다.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이 우물은 본래 아브라함의 것인데, 아비멜렉의 종들이 늑탈했다가 아브라함에게 다시 돌려주었으므로 그 증거품으로 일곱 암양 새끼를 아비멜렉에게 준 것이다. 보통 전쟁이 끝나고 평화 조약을 맺을 때에도 빼앗았던 것을 다 돌려주고 조약을 맺는다. 아비멜렉도 빼앗은 우물을 돌려주고 조약을 맺었다.
• 21: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곳을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이 맹세의 내용은 서로 해(害)하지 않고 서로 후대(厚待)하자는 것이었다(23절).
브엘세바는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으로 그들이 그 우물을 증거로 삼아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삭의 때에 아비멜렉이 또 빼앗았다(26:15-22). 사람은 서로 계약을 하고도 곧 마음이 변하기 쉽다. “세계의 모든 조약은 대포 한 발이면 다 깨어진다”는 말이 있다. “불가침 조약”이니 “평화 조약”이니 하여 서로 조약을 맺어도 인간이 맺은 언약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평화를 위해 사람이 노력하는 데까지는 해야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다. 시편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했다.
• 21: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돌아갔고
아비멜렉과 군대 장관 비골은 브엘세바까지 찾아와 맹약을 하고 그곳을 떠나 다시 그랄로 돌아갔다.
•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에셀”은 “수풀”이라는 뜻이 있다.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많은 나무를 심어 수풀을 만든 것 같다.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아브라함이 영생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생의 길을 날마다 걸어가며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하나님은 영생의 하나님이시며 날마다 생명을 살려 나가시는 하나님이심을 아브라함이 믿었다. 또 자기 속에 새 생명이 날마다 역사하였으므로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우리도 날마다 영적 생명이 소생(蘇生)하고 자라나면서 하나님을 부르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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