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창세기 28장 야곱 설교문] “야곱의 인생”(창 28:10-15)

체데크 2020. 6. 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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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창세기 28장 야곱 설교문 중에서 야곱의 인생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 여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야곱의 인생”(창28:10-15)

 

 우리가 야곱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고난과 환란의 인생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고난을 당한 예수님을 연상하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모진 고난을 당하시고 채찍을 맞으시고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못을 박힐 수밖에 없는 그런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삶을 야곱을 통해서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야곱은 에서의 동생으로 태어나서 형의 장자 권을 탈취하고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하나님의 복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서 야곱의 삶은 고난과 어려움들이 찾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복을 얻게 되면서부터, 부모와 형제로부터 떠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됩니다. 환경이 야곱을 떠나게 했던 것입니다. 결국 리브가의 오빠가 살고 있는 밧단아람으로 떠나게 됩니다.

 

28: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브엘세바는 (באר שבע베에르 셰바) 입니다. 이 단어는 (באר베에르) 라는 단어와 (שבע셰바) 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베에르’는 우물, 구덩이 라는 뜻이 있는데 이 단어의 어근은 선언하다, 분명하게 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셰바’는 일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수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4는 땅 수이고, 3은 하늘 수입니다. 그래서 이 둘이 합쳐서7이 되면 완전한 것입니다.

 

 이 브엘세바는 완전한 구덩이 웅덩이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우물을 파고 그곳 이름을 브엘세바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땅의 최 남단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이곳에서 야곱은 하란을 향하여 길을 떠난 것입니다.

 

28: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야곱은 아무 준비도 없이 급하게 길을 떠나게 되었고 한 걸음에 에서의 눈을 피하여 왔기 때문에 심신이 지쳐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어 한 곳에 머무르게 됩니다. 이 한 곳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15Km 북쪽으로 떨어진 루스라고 하는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브엘세바에서부터 85Km 떨어진 장소입니다.

 

 여기에 ‘이르러는’ 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פגע파가) 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와우계속법, 칼형 능동형, 미완료시제입니다. 이 말은 야곱이 에서로부터 도망쳐서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스스로 피해 온 것입니다. 그리고 미완료시제로서 아직도 야곱은 멀리까지 도망을 쳤지만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안식할 수 있는 곳에 도착했다면 완료형이 되어야 하는데 미완료라는 것은 아직도 마음에 생명의 위협과 앞으로의 두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뜻은 만나다, 도달하다, 중재하다, 탄원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야곱의 마음에서 간절히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중재 역할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에서와의 관계에서 나는 그래도 정당하다는 것을 중재해 달라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탄원하고 싶은 마음이 현재 야곱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야곱은 현재 마음도 불안하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유숙하려고’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לון룬) 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용법도 와우계속법, 칼 능동형 미완료입니다. 현재 야곱의 심정을 잘 대변해 주는 것입니다. 즉시로 야곱은 이 장소에서 쉬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돌을 가져다가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제가 완료가 아니라 미완료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 야곱이 쉬어 잠을 청했지만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뜻은 투숙하다, 묵다, 밤을 지내다, 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밤을 지내기 위해서 잠에 들었지만 계속 걱정이 앞서는 것입니다. 앞 날에 대해서 너무나 두렵고 무서운 것입니다. 현재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외삼촌의 집에 가면 어떠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과연 나의 인생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가 될까?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누워 자더니’ 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이 단어는 (שכב샤카브)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도 와우계속법, 칼형, 미완료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잠을 자기 위해서 무척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와우계속법은 즉시로 자리에 누웠다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는 무척 피곤하고 지쳤습니다. 85Km을 정신없이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을 자려고 스스로 애써보지만 잠은 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미완료이기 때문입니다. 완료라면 잠을 아주 잘 잔 것입니다. 그런데 걱정 근심 때문에 도저히 잠을 제대로 청할 수가 없습니다. 머릿속은 계속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야곱을 만나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근심 걱정에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까? 라고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을 때에 하나님은 꿈으로 응답을 해주시는 것입니다.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야곱은 꿈을 꾸다가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 ‘서 있는데’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נצב나차브) 라는 단어입니다. 호팔형 사역수동형이면서 분사입니다. 이 말은 누군가에 의해서 시킴을 받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닥다리가 서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강력한 명령을 받고 어쩔 수 없이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사형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영적으로 본다면 사닥다리는 땅과 하늘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도저히 갈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서 십자가에서 아들을 죽이시고 화평케 하사 땅과 하늘을 연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영광을 받게 된 것입니다.

 

1:20-22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이제 우리는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야곱이 꿈에서 본 사닥다리가 땅에서 하늘로 연결된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교통 할 수 있고 늘 관계를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닿았고’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נגע나가)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히필 사역능동형, 남성, 단수이고 분사형입니다. 이 말은 하늘에 닿은 것이 스스로 닿아진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하늘에 닿게 하셨기 때문에 닿게 되었다는 것이고 현재진행형으로 계속적으로 닿아진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뜻은 만지다, 손을 대다, 격렬하게 타격하다, 파괴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닥다리가 하나님에 의해서 하늘에 닿아진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 단어가 남성이고 단수라는 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외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수가 없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으로 계속적으로 구원을 받은 자에게 항상 함께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육신이 파괴되셨고, 격렬하게 대못을 박히셨고, 십자가에 박히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만지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다리 위로 많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은 천사들을 통하여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천사도 예수님의 명령대로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모든 천사들은 구원받은 백성들을 섬기는 영으로 보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호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여호와께서 사닥다리 위에 서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서서’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12절의 ‘서 있는데’ 와 똑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니팔형 수동형, 분사를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여호와께서 사닥다리에 서서 말씀을 하시는데 야곱을 위하여 서있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으로 계속적으로 두려워하는 야곱을 지키시고 도와주실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이삭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너도 이와 같이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두려운 마음에 잠을 청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아시고 꿈에 나타나서 약속하시면서 기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닥다리 위에서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이루신 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어떠한 이름도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돌리는 것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만이 하나님께 응답받을 수가 있습니다.

 

14:13-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이제부터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여 하나님이 직접 실행하시는 기도의 응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8: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여기서 하나님은 약속을 하시는데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라고 말씀하십니다. ‘되어’ 라고 하는 단어는 (hy:h하야) 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와우계속법, 칼형, 완료시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하나님의 백성들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시로 스스로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것입니다. 시제가 완료로 만세 전에 구원받을 백성들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만약에 이것이 미완료라면 계속적으로 사람이 어떻게 믿음 생활을 하는지 보시고 선택하시겠지만 완료이기 때문에 선택권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선택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모든 족속들이 야곱과 야곱의 자손을 통하여 복을 받으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복을 받으리라’ 라고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ברך바라크) 입니다. 이 단어는 와우계속법, 니팔형, 완료시제입니다. 그렇다면 복을 받는데 야곱의 족속들을 통하여 복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복을 받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즉시로 시제는 완료이기 때문에 완전히 복을 받되 조금의 남겨짐도 없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녀들을 통해서 믿지 않는 자에게도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야곱을 지키신다고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너를 지키며’ 라고 하는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는 (שמר샤마르) 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와우계속법, 칼형, 완료, 1인칭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는데 즉시로 지키시고 하나님이 능동적으로 지켜주시고, 완료형태로 완전하게 너와 함께하여 지키시는 것을 말씀하고 1인칭은 바로 너를 지키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뜻은 감시하다, 주의하다, 보존하다, 지키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야곱을 감시하고, 주의하고, 보존하게 되고, 지키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도 지키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는 (ילך얄라크) 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칼형, 미완료, 2인칭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오고 가는 발걸음을 능동형으로 스스로 걸어가는 모든 길에 계속적으로 미완료시제를 써서 바로 너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친밀하게 세심한 것까지 지키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발걸음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이 단어는 (שוב슈브) 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와우계속법, 히필 사역능동형, 완료시제입니다.

 

이 뜻은 숙박하다, 보내다, 다시 집으로 불러오다, 회개하다, 보상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다시 약속하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는데 즉시로 돌아오게 하실 것을 약속하고 하나님께서 책임을 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필형으로 안 돌아오면 안 되게끔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제는 완료로서 이 약속을 꼭 지키고 다시 번복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돌아오게 하셔서 회개하고 야곱이 돌아오게 되고, 보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에서를 만나 생명을 구하게 되었고 재산을 보호받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벧엘 지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다시 오지 않고 숙곳으로 내려가서 결국 딸 디나의 강간사건을 통해서 회개하고 다시 벧엘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야곱이 오지 않아도 결국 환경을 통해서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 오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구원받은 백성이 세상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은 결국 하나님 앞에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백성들의 거부할 수 없는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실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허락한 것을’ 이라는 단어는 (דבר다바르) 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피엘 강조능동형, 완료, 1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뜻은 선언하다, 말하다, 가르치다, 발언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허락한 모든 약속을 지키시는데 아주 강조적으로 하나님께서 꼭 약속을 지키실 것을 말씀하고 있고 완료로서 허락한 모든 것을 완전히 도장 찍었다는 것입니다. 1인칭은 바로 개인적으로 이렇게 주셨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원도 하나님은 강력하게 약속하셨고, 1인칭으로 각 개인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복도 하나님께서 각자 개인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복을 선언하시고, 말하고, 가르치셔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꿈을 꾸면서 하나님께 복의 약속을 받습니다. 근심 걱정하여 잠이 들었는데 하나님은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절망 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은 나타나 위로하시고 복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삶을 보면 하나님께 받은 복을 기억하지 못하고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창세기 족장 중에서 야곱은 환란과 고난의 인생이라고 말을 합니다. 야곱은 열심히 일하고 행동하여 복을 받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일을 했지만 재산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다시 일해서 하나님이 많은 양과 염소를 주십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속임을 당하는 일도 생깁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팔고 짐승에게 잡혀 먹었다고 거짓말로 아버지를 속여 자식을 잃게 되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자신의 딸이 강간을 당하게 되는 일도 겪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아내 라헬을 잃게 되는 비극적인 일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뭄 때문에 고향을 떠나서 애굽에서 삶을 마감하고 결국 죽어서 고향 아버지가 묻힌 곳에 장사되게 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야곱의 삶을 보면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많은 고통과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지 않았다면 고난도 없었겠지요?

 

그러나 사람 바로 인자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인자의 모습으로 잘 그린 복음서가 바로 누가복음입니다. 이 복음서는 예수님을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말씀하기 위하여 족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족보는 왕의 혈통을 따라서 나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다윗의 계보에서 왕의 혈통으로 이어져 요셉에 이르기까지 메시아가 나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왕의 후손으로 오셨다는 것을 마태는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마태복음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반면에 누가복음은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주 깨끗한 흠이 없는 사람으로 오신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이방 족속들에게 나타내기 위하여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부터 거슬러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담까지 그리고 하나님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자로서 오신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인자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또 성막에 보면 휘장이나 성막 문에 가늘게 꼰 베실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흰색의 베실은 바로 아무 흠도 없고 죄도 없으신 인자의 모습인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죄도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죄인의 모습으로 달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경의 흐름은 예수님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4: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여기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얼굴이 바로 인자의 모습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고 인자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는 누가복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야곱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깨닫게 됩니다. 나를 위해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기억하시고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깨닫게 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십자가에 고난당하신 예수님이 바로 나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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