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53장설교문을 본문으로 주님의 찔림과 징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찔림과 징계”(사53:4-6)
사순절 기간을 지나면서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늘 주님을 생각하지만 특히 사순절 기간은 주님의 고난이 더 깊이 우리의 마음에 다가오게 됩니다.
오늘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성경 구절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내용으로 많은 설교를 들었습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히브리식 사고에 입각하여 말씀을 선포하려고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찔림과 징계’가 얼만 큼의 고통이 있었는지를 묵상해 보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악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쉽게 생각합니다. 나의 죄가 아닌 주님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원문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질고를’이라는 단어는 (חלי홀리)입니다. 이 뜻은 병, 질병, 괴로움, 근심, 슬픔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질병과 인생의 괴로움, 근심, 슬픔을 지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많은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육신적인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어느 누구나 괴로운 문제가 있고, 질병의 문제가 있으며, 슬픔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짐을 우리 예수님께서는 짊어지셨습니다. 나로 나의 문제를 가지고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맞으며’ 라는 단어는 (נכה나카)입니다. 치다, 때리다, 죽이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때림을 받고 고통당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 때문에 고통과 고난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나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을 성경 원전에 확실하게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수동인데 시킴을 받은 수동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바로 호팔 동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나의 죄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죄 가운데 십자가에서 나의 죄로 대신 달리실 것을 명령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내가 대신 달려 죽어야 할 그 자리에 예수님이 대신 죽임을 당하신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고난을 당한다’라는 단어는 (ענה아나)입니다. 압박당하다, 괴롭힘을 당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엄청난 고난입니다. 보통 큰 압박이 아닙니다. 심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입니다. 이 고통도 수동형으로 압박을 당하고 있는데 ‘푸알’ 이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완전히 짓눌리는 고통과 압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고난은 누구 때문에 온 압박과 고난입니까? 바로 나의 죄 때문에 그렇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찔림은’ 이라는 단어는 (חלל할랄)입니다. 꿰뚫다, 찌르다, 모독을 당하다, 관통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찔림은 보통 찔림이 아닙니다. 온 몸에 고통을 당하시고, 명예가 실추되며, 로마 군병에 의해 모독을 당하는 찔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찔림도 푸알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수동적인데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입니다. 피할 수도 없는, 명예가 실추되는 찔림의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가 상함은’이라는 단어는 (דכא다카)입니다. 눌러 부수다, 뭉개다, 분쇄하다, 박멸하다, 꺾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상함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런 상함입니다. 예수님의 뼈를 프레스로 눌러 뭉개버리는 고통과, 몸을 분쇄기에 넣고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그런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 단어도 푸알 동사를 사용함으로 엄청난 고통의 압박을 수동적으로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죄 때문에 나의 몸이 분쇄가 되고 프레스에 눌려 뼈가 뭉개지는 아픔을 내가 당해야 되는데 주님께서 대신 십자가에서 당하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우리는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까? 주님의 은혜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히브리어 원전에는 예수님의 고통과 고난을 적나라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몸으로 느껴지는 고통을 당하신 것을 생생하게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나음을 입었도다’ 라는 단어는 (רפא라파)입니다. 고치다, 치료하다, 건강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질병을 치료하시는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에 채찍과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어떤 고침을 받았습니까? 죄악에서 자유 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질병에서 자유 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수동형 동사를 사용함으로 내가 고침을 받기 싫어도 고침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니팔동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의 은혜를 받기 싫다고 도망 다녀도 소용없습니다. 주님이 이미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에 불가항력적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릇행하여’ 라는 단어는 (תעה타아)입니다. 방황하다, 옆걸음 치다, 허우적거리다, 미혹되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이런 인생이었습니다. 잘못된 길을 들어서 깨지고, 고통당하며, 살았습니다. 잘못된 길에 미혹당하여 죄악의 길로 들어서서 어려움을 당하고 살았던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이 모든 일들을 직접 자신의 몸에 죄악들을 정하시고 십자가에서 스스로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의 양입니다. 그릇된 길이 아닌 십자가의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사역에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나타내야 합니다.
나는 이제 예수님 때문에 나의 모든 고민과 문제가 수동적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나의 공로로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수동은 내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받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내가 나음을 입은 것은 주님의 공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사순절 기간에 주님의 찔림과 징계를 기억하시고 내가 주님 때문에 니팔 수동으로 모든 질병과 사역의 짐과, 죄악의 짐에서 나음을 입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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