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예레미야 29장 설교문] “칠십년이 차면”(렘29:10)

체데크 2020. 6. 2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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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예레미야 29장의 설교문 중에서 위 본문을 가지고 70년이 차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는 예언의 말씀이 성취된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칠십 년이 차면”(렘29:10)

 

명제: 칠십 년은 회개의 기간이요 축복받을 그릇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목적: 나에게 칠십 년의 기간은 올바른 신앙의 길로 가는 준비기간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땅에 인도하신 것은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셨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라고 선민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한 일은 우상을 섬기는 일이며 안식년을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대하36:21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말씀을 무시하고 안식년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파기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의 노예로 끌고 가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기간이 70년이 되었고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 땅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과 같이 땅이 안식하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의 예언의 성취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레26:34-35 너희가 원수의 땅에 살 동안에 너희의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 때에 땅이 안식을 누리리니 너희가 그 땅에 거주하는 동안 너희가 안식할 때에 땅은 쉬지 못하였으나 그 땅이 황무할 동안에는 쉬게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수의 땅에서 살 동안 하나님의 주신 땅은 황무하게 될 것이며 땅이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너희의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שמם샤멤 8074) 황무하다, 황폐되다, 짓밟다, 적막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년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땅이 황무하여 완전히 세상의 사람들에게 짓밟혀 고통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대로 예루살렘은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짓밟혔고 황무한 땅으로 변하였으며 성전은 불타 솔로몬의 화려했던 성전은 온데 간 데 없어졌으며 많은 사람들은 적막한 예루살렘을 보고 탄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땅이 황무할 것이 될 것이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 성을 이미 하나님은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에는 하나님을 섬기고 좋다고 했지만 금방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므로 이 땅은 황무하게 하나님께서 70년 동안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닫게 하실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호팔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 동안 쉬지 못했던 땅은 쉬게 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신앙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떠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까? 현재 내가 70년의 죄악 가운데 노예생활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나에게 70년의 고통이 찾아왔다면 이제는 회개하고 돌아올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깨닫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우리는 모든 환난과 고통은 때가 정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렘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보고 선한 말을 성취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약속하시고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בבל바벨 894) 바벨론,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בלל발랄 1101) 뒤죽박죽으로 하다, 섞이다, 혼합되다, 착색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만 섬기지 못하고 우상과 함께 혼합된 신앙을 하고 있으니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하여 70년 동안 노예의 삶을 살게 하시고 있습니다. 바벨론은 이미 우상으로 혼합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곳이며 하나님의 올바른 진리가 아닌 더러운 비 복음의 사상으로 착색된 곳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이곳으로 보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너희들의 신앙이 현재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주셨는데 복음을 거부하고 세상의 더러운 비 진리를 끌고 들어와 예루살렘의 성전을 뒤죽박죽 하게 만들어 하나님 앞에서 혼합된 신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바벨론에 노예로 끌고 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럼 현재 나는 어떠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바벨론처럼 참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과 세상의 비 진리를 섞어 혼합하여 뒤죽박죽 된 신앙생활을 하나님 앞에서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신앙이 좋다고 세상에 발 하나를 담그고 교회에 발 하나를 담가 하나님 앞에 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온전한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혼합된 신앙을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혼합된 신앙을 하고 있었다면 이제부터 온전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돌아오게 하리라’ (שוב슈브 7725) 함께 가다, 회복되다, 돌려주다, 구원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가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노예에서 함께하셔서 다시 신앙을 회복시키시고 예루살렘의 영광으로 다시 돌이켜 구원해 주시겠다는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첫 번째 예루살렘은 율법의 말씀을 어김으로 황폐화되어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첫 언약의 영광도 크지만 결국 말씀을 어김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예루살렘은 복음의 영광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언약을 이루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렘32:40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혼합된 신앙을 하니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 노예로 끌려가게 하셨습니다. 더 이상 혼합된 신앙을 끊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을 갖고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그러고 난 후에 70년이 차서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않으시고 영원한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워주셨습니다.

 

이 언약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언약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은 율법의 돌 판에 새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첫 번째 예루살렘의 성전이 무너질 때에 완전히 하나님께서 언약을 파기해버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70년이 찬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영원한 언약을 마음에 새겨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무너지지 않는 새 언약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언약입니다.

 

그럼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생활이 첫 번째 언약을 의지하여했다면 반드시 포로로 끌려갈 때가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내 뜻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율법의 돌 판을 의지하여 결국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들이 율법을 모두 지킬 수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영원한 언약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심비에 새겨주신 것입니다. 내 안에는 70년이 찬 후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회복된 새 언약의 말씀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물질과 영적인 배고픔과 육체의 질병 가운데 70년을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70년을 채우시고 새롭게 언약하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 눈물이 사라지고 물질의 고통이 사라지며 육체의 고통과 영적인 배고픔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새 언약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성전은 더 이상 무너지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내가 성전이며 내 안에 영원한 언약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혼합된 신앙인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을 누구를 통해서 이루어주셨습니까?

 

사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하나님께서는 고레스가 태어나기도 전에 예언을 하셨습니다. 고레스는 페르시아의 왕으로서 바벨론을 정복한 왕입니다. 하나님은 고레스를 내 목자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는 자이며 예루살렘을 중건하게 하는 자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전의 기초를 놓는 자가 되는 사람입니다.

 

‘고레스에’ (כורש코레쉬 3566) 고레스, 라는 뜻입니다. 고레스는 비참함과 상속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가 태어나기 2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회복시켜 줄자가 고레스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고레스는 영원한 언약을 이루어주실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비참하게 선택받은 자들을 위해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에게 천국을 상속시켜 주실 분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고레스는 페르시아의 왕으로서 세계를 정복한 왕입니다. 하나님이 고레스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비참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복종하여 죽으실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레스가 아니면 절대 바벨론의 노예에서 회복될 수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나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면 영원한 죽음인 원죄에서 해방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취하리라’ (שלם샬람 7999) 평안하다, 형통하다, 배상하다, 갚다, 라는 뜻입니다. 고레스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고통 가운데 살았던 것을 다시 회복시켜 준 사람입니다. 고통받았던 것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도와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고 형통의 복을 받을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고레스처럼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회복시켜 주시고 영적으로 평안함을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형통의 복을 주시고 십자가에서 죄인 대신에 죽으신 것입니다. 바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고 하나님 앞에 죄의 대가를 치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이었던 나는 예수님 때문에 죄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죽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갑절의 복을 받아 하나님 안에서 형통의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내가 형통의 복을 누리고 영혼의 평안을 누리게 된 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직도 나는 바벨론과 같은 혼합된 곳에서 타락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께서는 나에게 평안을 주시고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주신 평안을 나에게 주셔서 더 이상 근심하지 않게 하시고 두려워하지 않도록 힘을 주시고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두려움과 고통밖에는 없습니다. 내가 바벨론에서 살고 있다면 근심과 고통과 괴로움뿐이지만 주님의 십자가 안에 들어오니 평안과 안식과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어주신 분이 바로 나의 주님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내가 아직도 바벨론과 같은 혼합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빨리 주님께로 나와 예루살렘을 회복해야 합니다.

 

‘중건되리라’ (בנה바나 1129) 건축하다, 세우다, 복구시키다, 라는 뜻입니다. 고레스는 무너진 예루살렘을 다시 회복시키는 자이며 건축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 수 있도록 복구시켜주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사탄으로부터 짓밟혀 고통가운데 있던 자들의 신앙을 다시 회복시켜 주신 분입니다. 혼합된 신앙을 하고 있는 자들의 신앙을 다시 복구시켜 세워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여 주셨습니다. 나의 몸이 성전인데 전에는 혼합된 성전으로 타락하고 더러운 성전이었습니다. 이것을 십자가 복음의 말씀으로 완전히 깨끗하게 씻겨주셔서 새로운 성전으로 만들어 주시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이 예루살렘이 중건되는데 고레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사용하신 것뿐이지 고레스가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닢알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힘으로 예루살렘이 건축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미완료 시제를 사용함으로 계속해서 건축된 상태로 가는데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이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혼합된 신앙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죄악 된 삶에서 새롭게 중건될 수가 없습니다.

 

‘기초가 놓여지리라’ (יסד야사드 3245) 세우다, 창조하다, 정하다, 견고하다, 라는 뜻입니다. 고레스는 성전의 기초를 놓는 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기초를 놓는 자가 고레스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인 성전의 기초를 세워 죽었던 자들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기초 돌이 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 기초는 절대 무너지지 않고 견고하여 구원의 기초가 되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자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기초가 놓아진 것은 고레스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사용만 하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전의 기초가 놓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닢알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계속해서 기초가 되는데 완성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년과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니 바벨론에 노예로 끌려가게 했습니다. 애굽에서 조상들이 노예의 삶을 살았던 때를 기억하고 회상했다면 거짓된 우상을 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고난이 끝나고 태평이 찾아오면 하나님을 꼭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바벨론에 노예로 끌려가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애굽의 고통의 노예 신세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원죄의 고통을 기억하면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기는 신앙으로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태평한 삶이 오니 바벨론처럼 혼합된 신앙을 가지고 예수님을 멀리하고 있습니까? 이제 70년의 때가 찼습니다.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때입니다. 혼합된 신앙을 버리고 주님께서 다시 새 언약의 말씀을 심비에 새롭게 새겨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함께 섬겼다면 이제부터 버리고 70년이 지난 후에 영원한 언약을 베풀어주신 주님 앞으로 나오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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