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호세아 1장을 본문으로 호세아와 음란한 고멜 그리고 자녀들의 이야기를 올려보겠습니다.
“호세아와 음란한 고멜과 자녀들”(호1:1-9)
♣명제: 호세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고 고멜과 자녀들은 성도들의 그림자이다.
♣목적: 원죄 가운데 있는 자들의 행위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행동만 낳는다.
하나님께서는 북쪽 이스라엘이 번영하고 있을 무렵의 여로보암 2세 때에 호세아 선지자를 불러 예언을 하게 합니다. 호세아는 북 왕국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B.C. 722년경까지 약 40년 동안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은 가장 번성하고 있을 때에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인생의 황금기에 하나님을 섬기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나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사업이 잘 되고 연애가 잘 되고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면서 높은 직위에 올라가고 있을 때에 겸손히 주님을 바라보면서 말씀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고멜과 자녀들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이 오늘 나에게 해당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멜과 그녀의 자녀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셔서 호세아와 같은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호세아와 고멜을 통해서 나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음녀인 고멜을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불러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원죄 가운데 빠져 영원히 심판받을 인생을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나에게 보내주셔서 아내로 맞이하라고 하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우리는 영적으로 고멜과 같은 음녀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런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호1:1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나님께서는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를 부르는 과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유다의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를 거론하고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가 왕이 된 시대에 호세아에게 말씀이 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왕들을 거론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호세아를 불렀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우리는 영적으로 암울했던 시대에 호세아를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브에리’ (בארי베에리 882) 브에리이며 (באר베에르 875) 샘, 우물, 이라는 뜻과 (באר바아르 874) 선언하다, 설명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부르는데 브에리의 아들이라고 말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은 정통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직업을 자녀에게 전수해주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브에리의 이름에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우물에서 생수를 떠서 자녀에게 마시게 하는 것처럼 호세아를 말씀으로 교육시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심히 십자가 복음을 호세아에게 가르치고 설명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준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을 가르치니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부를 때에 기쁨으로 나갈 수가 있었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호세아’ (הושע호셰아 1954) 호세아라는 뜻이며 (ישע야샤 3467) 구원하다, 건져내다, 보호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호세아는 예수님의 이름과 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님처럼 원죄에 빠져 죽어있는 북이스라엘을 구원하여 건져낼 자로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악에서 건져내고 말씀을 가르쳐서 그들의 영혼을 보호해 주는 자입니다. 호세아는 이름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신약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이렇게 호세아를 부르시고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호셰아’의 히브리적 의미는 거룩한 하나님께서 발송하여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못에 박히고 몸이 찢기시며 예언하셔서 눈으로 보게 하여 죽었던 자들에게 숨을 쉬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호세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을 상징하는 자로서 고멜과 같이 타락한 영혼들을 살리는 주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호1: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부르시고 첫 번째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북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크게 음란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תחלה테힐라 8462) 처음, 시작이라는 뜻이며 (חלל할랄 2490) 궤뚫다, 관통하다, 꿰찌르다, 더럽히다, 수치를 당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처음으로 주신 사명은 음란한 여인을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고 더럽혀지는 것입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아무 죄도 없으신 분이 원죄에 죽어있던 음란한 여인과 같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못에 찔려 관통당하시고 창에 꿰뚫어짐을 당하셔서 더럽혀짐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막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복음은 황소 복음이라고 하며 십자가에서 더럽혀지고 고통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책입니다. 이 책의 시작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시작이라’는 단어가 (תחלה테힐라)입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수치당하시고 못과 창에 찔림 받음으로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맞이하여’ (לקח라카흐 3947동사, 칼, 명령법, 남성, 2인칭, 단수) 취하다, 택하다, 데려오다, 장가 들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취하여 데려와 장가들어 혼인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호세아가 반드시 해야만 할 일입니다. 그 이유가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명령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불순종할 수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음란한 여자는 많습니다. 그런데 선택된 음란한 여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음란한 여자인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여 장가들었던 것입니다.
그럼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우리들도 영적으로는 음란한 신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의 남편을 섬기면서 죄악 가운데 살았던 여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많은 원죄 가운데 빠져 죽어있는 음란한 여자 중에 만세전에 선택한 나를 선택하셔서 호세아와 같은 신랑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요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님을 보내주셨는데 성부 하나님의 뜻은 자신에게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나를 선택하여 주셔서 신랑 되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신부로 맞이하여 주신 것입니다. 죄악 가운데 음란한 행위만 했던 나를 신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호1:3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아내로 맞이하였고 고멜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디블라임’ (דבלים디블라임 1691) 디블라임이며, 무화과뭉치, 라는 뜻이며 (דבל다발) 함께 누르다, 떡덩이가 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디블라임은 자신의 딸인 고멜에게 신앙교육을 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무화과 뭉치는 달콤한 양식이 됩니다. 이것을 눌러서 납작하게 떡을 만들어 먹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디블라임은 자신의 딸인 고멜을 세상 적으로 달콤한 것만 먹을 수 있도록 가르쳤다는 것을 영적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니 음란한 자가 되어 많은 남자와 음행 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신앙교육도 받지 못했고 자신도 자신의 뜻대로 인생을 살았던 것입니다. 신앙교육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믿음의 훈련과 말씀을 듣지 않으면 우리들도 세상에서 영적 간음 자가 되어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고멜’ (גמר고메르 1586) 고멜이며 (גמר가마르 1584) 실패하다, 끊어지다, 폐하다, 이루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고멜은 호세아를 만나기 전의 삶은 인생이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많은 남자를 만나면서 음행에 빠져 살았던 인생입니다.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과는 관계가 끊어져 신앙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는 완전히 폐하여지고 육체의 쾌락에 빠져 살았던 인생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자신의 뜻대로 육체의 정욕만 따라 살면서 이룬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살지 못했습니다.
‘고멜’의 히브리적 의미는 진리의 말씀이 운반되지 않아서 죄가 씻겨지지 않고 정화되지 않음으로 하늘로부터 거듭나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고멜이 구원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호세아를 만나 인생이 전환되고 깨끗하게 정화되어 진리의 말씀이 운반되어 구원의 은혜를 받은 여인입니다.
우리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고멜처럼 외적으로는 얼굴이 예쁘고 잘생겨서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인기가 많습니까? 어디를 가든지 자신의 외모 때문에 자신만만하지는 않습니까? 이 세상에서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영적으로 빈 깡통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고 십자가 복음의 말씀은 듣지 않으며 죄악 가운데 빠져 살아가는 영적인 고멜이 아니었습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에 내가 이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고백하게 됩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의 삶이 바로 음란한 고멜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있는 증거입니까? 호세아와 고멜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멜은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됩니다.
호1: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말씀하시면서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지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실 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르엘’ (יזרעאל이즈레엘 3157) 이스르엘이며, (זרע자라 2232) 흩어버리다, 쫓아버리다, 라는 뜻과 laE(엘 410) 하나님이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흩어버리시고 쫓아버리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타락하자 하나님께서 도저히 참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후의 집에 갚아주고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이 원죄 가운데 빠져서 이스르엘과 같은 자였습니다. 음란한 자녀가 되어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 떨어져 죽을 인생이었습니다. 도저히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났던 자입니다. 그런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골1:13-1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흑암으로 흩어지고 쫓겨났던 이런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주셔서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스르엘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났던 인생이 이렇게 주님의 십자가 복음으로 인하여 천국으로 옮겨진 사건은 실로 우리의 인생 가운데 대단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호1:6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게 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또 개입하셔서 호세아에게 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지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기지 않고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로루하마’ (לא רחמה로루하마 3819) 루루하마이며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함’이라는 뜻입니다. 루하마는(רחם라함 7355) 사랑하다, 긍휼히 여기다, 불쌍히 여기다, 라는 뜻입니다. 고멜이 낳은 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너를 사랑하지도 않고 불쌍히 여겨 긍휼을 베풀지도 않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로루하마는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긍휼함을 얻지 못할 수밖에 없도록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절대 불쌍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푸알 강조수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렇게 로루하마는 하나님으로부터 전혀 사랑을 받지 못하는 상태로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가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로루하마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살았던 인생은 아닙니까? 구원도 받지 못하고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어둠에서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이며 주님의 빛도 보지 못하는 인생이었습니다. 내 힘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나오려고 발버둥 치며 노력했지만 항상 제자리걸음만 하는 한심한 인생을 살았던 존재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나를 흑암에서 빛으로 나오게 해 주셨습니다.
요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예수님은 빛으로 세상에 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시려고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했던 로루하마와 같은 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에게 보내주셔서 빛이 내 안에 임함으로 흑암에 거하지 않고 빛으로 나오는 자가 되었습니다.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우리가 전에는 어둠과 같은 존재인 로루하마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에게 찾아오셔서 주님 안에서 빛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빛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흑암에 있는 불쌍한 자가 아닙니다. 원죄에 빠져 살았던 긍휼 한 자가 아닙니다. 이제는 당당하게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동해야 합니다.
엡5: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한 행실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세상에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와 의를 나타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 빛의 자녀입니다.
호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고멜이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아들의 이름을 로암미라고 지으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며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암미’ (לא עמי로암미 3818) 로암미이며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로암미는 하나님께서 영원히 너는 내 백성이 될 수 없다는 의미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나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영원히 내 백성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로암미와 같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백성이 될 수 없는 자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조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영원히 심판을 받아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 대신 죽으시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백성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절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나를 아들 삼아 주신 것입니다.
롬8:14-15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우리는 로암미와 같이 영원히 진노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했는데 하나님의 성령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아 내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까?
우리는 고멜과 이스르엘과 로루하마와 로암미와 같이 우상을 섬기고 음행 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원죄에 빠져 살았던 인생들입니다. 이런 인생들에게 호세아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시간 찾아오셔서 나의 신랑이 되어 주시고 영원히 심판을 받아 죽을 인생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죄악들이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하게 씻겨졌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추악하고 더러운 죄악들을 더 이상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피의 세마포 옷을 입었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의 신부로서 깨끗하게 살아가시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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