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예레미야 3장 주석 복음 말씀] 이스라엘 백성아 돌아오라(렘 3:20-25)

체데크 2022. 12. 14. 12:18
반응형

예레미야 3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오기를 촉구하고 있다. 하나님을 떠났던 인생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돌아와야 한다. 하나님은 항상 기회를 준다.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회개하지 않으면 징계를 한다. 하나님 백성은 이제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예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아 돌아오라(렘 3:20-25)

 

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반역한 것에 대하여 책망하심(20절). 남편을 떠난 음란한 아내같이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반역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과 혼인 계약을 맺었으며 이제 그 언약을 파기하고 하나님께 거짓되게 대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그들에게 친절하고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시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도 거짓으로 언약하는 것은 크게 가증한 것인데 하물며 하나님께 거짓되이 행하는 것은 참으로 반역이 아닐 수 없다.

Ⅱ. 이 책망에 대한 그들의 회개와 자백(21절). 하나님이 그들의 배신을 책망했을 때 그들 중에는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여져서 그들의 비참함과 그들의 죄악 그들이 행한 결과를 슬퍼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들의 애곡 하며 간구했는 목소리가 자산 위에서 들렸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잊고 그들의 길을 악한 곳으로 돌이켰기 때문에 애통하며 슬퍼했다. 다음 사실에 주목하자.

1. 죄는 우리의 길을 탈선하는 것이다. 즉 굽은 길로 빠져서 바른 길을 떠나는 것이다.

2. 모든 죄의 근본 바탕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망각함이 있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눈이 그들 위에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면 그들은 결코 그와 같은 범죄는 하지 않을 것이다.

3. 죄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난처하게 되고 곤고한 일에 빠지게 되고 그것 때문에 이리의 길이 굽게 되는 것이다(애 3:9).

4. 양심이 그들에게 그들의 길이 굽었고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말하는 사람들만이 간구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된다. 사람의 어리석음이 자신의 길을 벗어나게 할 때는 그의 심령은 여호와를 원망하게 된다(잠 19:3). 그러므로 우매함이 하나님 앞에서 녹아 없어져야 한다.

Ⅲ. 하나님이 돌아오라는 부름심(22절). "패역된 자식들아 돌아오라." 하나님은 어린아이들 같이 어리석고 괴팍스러운 그들을 부드러움과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자식들아라고 부르신다. 비록 철 모르고 괴팍스러워도 그의 "자식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고칠지언정 내팽개치지는 않으실 것이다. 비록 그들은 앙탈 부리는 아이들일지라도 자식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식들에 대해서 참으시며 인내하신다. 그들이 인정하고(21절) 죄에 대하여 겸손하면 그리스도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심같이 영접해 주실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이 돌아올 때 주시는 약속은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즉 나는 너희의 배역 때문에 당하는 비통에서 위로할 것이며 배역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당한 고통에서 구원해 낼 것이며 너희 완고함을 치료하고 배역의 본성을 고칠 것이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용서하시는 자비로움과 그의 안정된 평화와 새롭게 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배역을 고치실 것이다.

Ⅳ. 이 부름을 그들이 기쁘게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승낙한다. "보로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이것은 부서진 성벽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목소리와 같이, 상한 심령에서 울려오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메아리이다. 하나님은 "돌아오라" 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우리가 지금 왔나이다"라고 대답하다. 이것은 지체함이 없는 즉각적이고 신속한 대답이다. 즉 "우리는 이후 차차 갈 것입니다"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왔나이다.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이다. "우리는 당신을 향하여 가는 중입니다"가 아니고 "우리가 당신께 옵니다. 우리는 즉시 행동합니다"이다. 그들은 어떻게 만장일치로 "우리가 모두 갑니다"라고 했는지 살펴보자.

1.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것은 것과 같이 그들이 자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헌신하면서 나아왔다. "당신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 이시이다. 우리는 당신을 리의 하나님으로 삼았으며 우리는 또한 우리 자신을 당신의 것으로 던집니다. 이제 우리가 당신이 아니고 어디로 가겠나이까? 우리가 당신을 떠난 것은 우리 죄와 어리석음입니다." 우리가 배역한 후에 하나님께 돌아갈 때에 언약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것임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과 대단히 위로가 되는 일이다.

2. 그들은 하나님 이외에 구원과 해방을 기대하는 모든 것은 포기한다. "작은 산들과 큰 산 위의 떠드는 무리에게 바라는 것은 참으로 허사라. 우리는 이제 피조물을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 속지 말라야 하겠다." 그들은 작은 산들과 큰 산들 위에서 우상을 섬겼다(6절). 그들은 그들 산들 위에 많은 우상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거기에서 어떤 것을 구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이상 더 그들에게 얼굴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좋은 것과 구원 그 자체까지 믿을 수 있음에도 헛되이 우상들 앞에서 무슨 좋은 것을 구하려고 했다.

3. 그들은 하나님만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의지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진실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있나이다." 그는 "여호와" 이시다. 그러므로 그만이 구원하실 수 있다. 모든 다른 구조자들과 구원자들이 실패할 때도 그는 구원하실 수 있다. 그는 우리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뜻과 경륜의 때 안에서 우리의 구원을 행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행하신 것은 죄에서 구원하시는 위대한 역사에 대단히 적절한 것이다. 즉 바로 그것이 "여호와의 구원," 그의 "위대한 구원"이다.

4. 그들은 자기들이 고통 중에 빠진 것에 대하여 하나님을 정당화해 드리면서 그것은 오직 저들의 죄 때문이라고 스스로들 심판한다(24.,25절).

(1) 그들은 모든 비참한 일들이 그들이 우상에게 속했기 때문이며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을 뿐 아니라 많은 불운만이 초래하게 된 결과가 모두 그들 자신에게 있다고 했다. "부끄러운" (우상, 즉 수치스러운 일) 그것이 "우리 열조에 산업을 삼켰다." 여기에 대해서 몇 가지 주목해 보자.

① 참된 회개란 죄를 "수치"라고 할 수 있어야 된다. 즉 그들이 멸시하고 부끄럽게 여기던 불명예스러운 것도 물론이려니와 그들이 기뻐하고 자랑해 온 가장 사랑하는 우상까지도 그것을 부끄러운 것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된다.

② 진정한 참회는 죄가 사망이며 파멸임을 알고 그들이 당하는 모든 불행이 죄의 결과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죄가 우리의 열조가 애써 우리에게 물려준 모든 좋은 것들을 다 삼나이다. 우리는 우상 숭배가 우리의 번영을 파멸시킨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보아 왔나이다." 흔히 자식들은 부모들이 애써 이루어 놓은 것을 쾌락으로 낭비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만일 마침내 그들이 그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그런 악행이 그들의 재산을 낭비하고 그들의 조상의 수고를 헛되게 하는 수치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정말 아름다운 일이다. 그들의 우상들이 집어삼켜 버린 열조의 산업들 중에서도 특별히 "양 떼와 소떼와 아들들과 딸들"이라고 여기서 말하고 있다. 첫째, 그들의 우상 숭배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여 그들에게 파국적인 심판을 내리게 했다. 이 심판은 그들의 땅을 황무케 하며 가족들을 파멸케 하고 그들의 소유가 희생 제물이 되고 자식들이 원수의 손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런 일들을 자기들 스스로가 만든 결과였다. 둘째, 오히려 이런 것들이 그들의 우상들에게 희생으로 드려졌고 그리하여 부끄러운 일에 빠졌다(호 9:10). 그리고 우상은 그들을 몰인정하게 삼켰고 제물의 기름을 삼켰으며(신 32:28) 사람의 희생까지 먹었다.

(2) 그들은 스스로 그들의 죄의 수치와 어리석음을 자취하였다(25절). "굴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수치 중에 놓겠고 우리의 혼동이 엄습하며 즉 이것들은 우리의 형벌이요 징벌의 수치이다. 죄는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의 책망 아래 두게 하며 우리를 수치로 둘러싸고 수치로 가득 채움같이 우리 자신을 양심의 가책에 눌리게 한다. 이것은 우리가 죄를 범했기 때문이며 수치가 죄와 함께 둘러싸고 수치로 가득 채움같이 우리 자신을 수치가 죄와 함께 들어왔고 더욱이 죄에 시중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태부터 죄인이며 범죄와 타락을 물려받았다. 우리와 우리 열조가 범죄 하였다. 우리는 일찍부터 죄인이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죄를 범했다. 우리들이 계속 죄 속에서 살아왔고 비록 종종 회개하고 죄를 버리기도 했으나 오늘날까지 죄를 범해왔다. 죄가 가지고 있는 부패성과 최악의 상태는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이다. 우리가 범죄 했을 때 죄를 금하고 회개하라고 명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못했다."

이제 이 모든 말을 볼 때 이것은 포로로 잡혀갔던 자들이나 본국에 남아 있던 자들이나 열 지파인 이스라엘이 회개했다는 말로 들린다(20절). 예레미야는 유다의 사람들이 거룩한 싸움으로 돌아가도록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의 회개의 사실을 환기시킨다.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왕을 모시는 일에 앞섰을 때 자기 골육인 유대 장로들에게 왕을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는 것은 수치라고 말하면서 이 말을 사용했다(삼하 19:11, 12). 이와 같이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회개했으니 유다도 회개해야 된다고 외친다. 이방인들의 작은 열심이 우리로 하여금 그들 앞에서 더욱 분발하게 하고 선한 일에 그들 앞서 가게 하는 것이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다.

[역대상 6장 성경 좋은 주석 말씀] 레위의 아들들(대상 6:1-30)

 

[역대상 6장 성경 좋은 주석 말씀] 레위의 아들들(대상 6:1-30)

역대상 6장에서는 레위지파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레위의 아들들의 족보가 기록되었다. 레위지파는 하나님을 섬기는 지파다. 레위지파는 성막을 운반하는 직무를 맡았다. 레위지파는 회막

cdk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