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아모스 4장 주석성경말씀] 이스라엘의 불같은 회개(암 4:6-13)

체데크 2022. 12. 22.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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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4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촉구했지만 그들은 회개를 거부했다. 회개하지 않는 백성에게 하나님은 심판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죄를 지었다면 회개하고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불같은 회개(암 4:6-13)

 

Ⅰ.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내리신 심판 아래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개과천선하지 못함을 불평하신다. 그는 심판을 통해 자기 백성을 겸비시키시고 개선시키고자 하셨다. 그는 여러 가지 표징으로 그들에게 자기의 노여움을 암시하셨다. 그 의도는 그들로 하여금 회개로써 하나님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려는 데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노력은 효과가 없었다.

1.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것은 여기서 엄중한 책망으로서 다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그 의미는 이렇다. "너희는 몇 번이나 징계를 받았으나 그것은 소용이 없었다. 너희는 교화되지 않았고 교정의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너희에게 계속해서 사자들을 보냈지만 너희는 돌아오지 않았고, 제정신을 차리지 않았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사실을 시사한다.

(1) 하나님께서 모든 섭리 상의 책망으로 의도하신 것은 그들을 중순에로 환원시키며, 그들을 감동시켜 자기한테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2) 그들이 만약 자기 하나님께로 돌아왔더라면 하나님께 용납을 받았을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을 환영하셨을 것이고, 그들의 모든 환난은 제거되었을 것이다.

(3) 하나님께서 또 다른 환난을 계속적으로 보내시는 이유는 그 전의 환난이 제 소임을 다 하지 못한 때문이다. 그들이 만약 돌아왔다면 고난을 주는 것이 전능자에게 모든 기쁨이 오겠는가?

(4)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완고함을 통한히 여기셨다. 그는 그들의 징벌을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로 하여금 그 일을 억지로 행하시도록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의 소행을 나쁘게 해석하셨다. "너희는 나와 언약을 맺었지만 내게서 반역하였고, 내게로 돌아오지 않았다. 너희는 기꺼이 맞이하려고 서서 돌아오라고 부르는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2. 그들의 고질적 병폐를 악화시키고, 보다 큰 심판을 부과하는 자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회개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 사용하셨던 작은 심판들을 언급하신다.

(1) 때때로 그 원인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양식 부족 사태가 일어났다(6절).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한가하게 했다. 이는 너희가 씹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씹으면 이가 바쁘게 되고 더럽게 되며, 특히 고기는 이를 불결하게 만든다. 또는 "내가 너희 이를 비게 만들었다"라고 읽을 수도 있다. 이는 입에 채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지주인 양식을 떨어지게 하셨다고 말한다. 이는 "너희가 많이 심되 거두는 것이 거의 없었던 때문이다" (학 1:9). 혹자는 이것이 엘리사 시대에 있었던 칠 년 기근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왕하 8:1). 하나님께서는 곡식단을 그 기한에 운반해 가셨으니(욥 5:8:1). 하나님께서는 곡식단을 그 기한에 운반해 가셨으니(욥 5:26), 이는 그들이 바알에게 바치려고 예비한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께서 곡식을 빼앗아 가셨을 때 그들은 "우리가 본분을 버림으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으니 그에게로 돌아가리라"라고 말해야 마땅했었다. 그러나 곡식의 수거도 그런 효과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여호와께서는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다."라고 말씀하신다.

(2) 때때로 그들에게는 강우량이 부족하였고, 그러자 물론 땅의 소산물도 감소되었다. 이 재앙은 여호와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었노라." 하나님께서는 구름의 열쇠를 쥐고 계신다. 만일 그가 닫으시면 누가 능히 열 수 있겠는가? 강우가 중단되었을 때는 추수하기 석 달 전이었다. 그때쯤 이면 으레 비가 내렸었다. 그러므로 그 강우의 억제는 범상한 일이 아니었다. 자연의 운행이 바뀌었다면 그들은 거기서 자연의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해야 했었다. 그리고 그때는 비가 극히 필요한 때였고 따라서 강우의 부족은 매우 쓰라린 심판으로서 추수기의 수확에 대한 그들의 기대를 무산시켜 버렸다. 특히 이 심판을 매우 괄목할 만한 사례로 만든 것은 일부 지방이 강우 부족으로 곡식이 시들어 버릴 때 인접한 다른 지방에는 비가 풍족하게 내렸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같은 지방의 어떤 성읍에는 비를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비를 내리지 않게 하셨다. 아니, 한 밭의 일부에는 비를 내리게 하셔서 그 쪽은 소출을 많이 내며 곡식이 무성한 반면, 그다음 밭, 울타리 저쪽, 아니 동일한 밭의 다른 쪽에는 전혀 비가 내리지 않고 너무나 오래도록 강우가 없어서 산물이 죄다 말라버렸던 것이다. 이것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었음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주목된 사례는 많이 있었다.

[1] 이로써 강우의 억제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와 처분에 의한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땅을 적시는 구름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두루 행하는데 이것은 징벌을 위해서든 토지를 위해서든 긍휼 베푸심을 위해서든 그의 명하시는 것이면 무엇이든 이루기 위함이다(욥 37:12-18). 비는(일반에서 얘기하듯) 유성에 의해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람으로써 보내시는 것이다.

[2] 우리는 비가 내리지 않은 성읍들이 벧엘이나 길갈처럼 악으로 극히 유명했고, 비가 내린 성읍들은 그중에 경건과 미덕을 다소 보유한 성읍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성읍의 밭에는 그 소유주에 따라 비가 내리기도 하고 내리지 않기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호와의 저주가 악인의 집과 토지에 있으며, 그가 정직한 자의 거소는 복되게 하시며, 의인의 들은 여호와가 축복하시는 들이라고 확신하는 때문이다.

[3] 이웃의 밭에는 비가 내려 농작물이 잘 된다는 것은 강우 부족으로 밭이 메마른 자들에게 더 큰 슬픔과 괴로움을 안겨다 줄 것이다. "내 종들은 먹되 너희는 굶주릴 것이라" (사 5:13). 악인들은 이를 보고 슬퍼하게 될 것이다. 아마 학대받던 자들에게는 비가 내려 그들의 손실을 회복하는 반면 학대자들은 강우 부족으로 이득을 상실했을 것이다.

[4] 민족 전체에 대해 이것은 자비와 심판의 이중주였다. 따라서 이것은 회개와 개혁에로의 부름을 강화시켰고, 하나님께 돌아감으로써 모든 자비를 희망하도록 그들을 격려시켜 주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견책 가운데도 자비는 무척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은혜로운 심판을 선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극한적 심판을 완화시킨 은혜로운 심판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 심판의 혜택을 맛보려 하지 않았다(8절). 두 세 성읍이 불안정하게 비틀거리며, 한 성읍으로 가서 거지처럼 물을 얻어 마시러 갔고, 가능하면 좀 가지고 돌아오려 했으나 그들은 만족하지 못했다. 물이 없는 성읍은 많은 반면 물이 있는 성은 여기저기에 하나씩 있었던 때문이다. 그것은 예사 일이 아니었다. 물은 만인에게 무료 하다는 격언이 무색해진다. 물이 있는 자들이라 해서 항상 물이 풍부하란 법은 없었다. 또는 그들 역시 그런 경우를 당할 수도 있었거나 곧 식수가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라" (마 25:9)고 말하면서 물을 조금밖에 주지 못했을 것이다. 온 자들은 물을 마시긴 마셨으나 만족하진 못했으니 이는 그들이 되로 마시고 경황 중에 마신 때문이다. 이 물을 먹는 자들은 다시 갈하게 될 것이다(요 4:13). 그들이 만족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욕망이 탐욕스러웠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이 얻는 것을 축복해 주지 않으신 때문이다(학 1:6). 그러므로 그들이 이 모든 실망을 맛보았을 때는 의당 자기들의 행위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뉘우쳐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도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아니, 이른 비와 늙은 비를 위해 올바른 태도로 기도하기조차 싫어하였다" (슥 10:1). 육욕적 마음의 어리석음을 관찰하자. 그들은 성읍에서 성읍으로, 한 피조물에서 다른 피조물로 만족을 추구하여 계속 방황하고 비틀거리면서 가지만 만족에 미달하기는 여전하다. 그들은 만족하지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하면서도(사 55:2) 결국은 하나님께 돌아오려 하지 않으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분께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복음의 선포는 비와 같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한 지역을 다른 지역보다 복의 선포로써 더 많이 축복하신다. 어떤 나라, 어떤 도시는 기드온의 양털처럼 그 주위 땅은 말랐는데 유독 그곳만 복음의 이슬로 축축해진다. 비를 얻지 못한 곳에서는 모든 것이 마른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자기 신체에 대한 것만큼 그 영혼에 대해서도 슬기로워서 이 비가 자기들 가까이에 내리지 않을 때는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찾는다면 얼마나 다행하겠는가! 만일 그들이 제대로 구하기만 한다면 그들의 찾음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3) 때때로 땅의 소산물들은 팟종이에게 먹히거나 깜부기로 말미암아 스러졌다(9절). 하나님을 원수로 삼는 자들에게는 하늘과 땅이 대항해서 무장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와 노여워하실 때에는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가를 살펴보자.

[1] 그들은 해로운 공기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겪었다.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거나 해서 악한 공기의 영향력은 그들의 소산을 모두 스러지게 만들었고 거기에는 식별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힘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힘이었다.

[2] 그들은 악한 동물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의 포도원과 동산은 매우 풍부한 소출을 냈었고, 그들의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도 그러했다. 그러나 열매가 수확에 적합할 만큼 익기 전에 팟종이가 그 열매들을 죄다 먹어 버렸다. 이것은 우리가 요엘서(1:4-6)에서 읽은 것과 동일한 심판이거나 아니면 상기 심판을 경고하기 위해 먼저 보내진 동종의 소심판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4) 때때로 그들 사이에는 염병이 창궐하였고, 전쟁의 칼에 수많은 사람들이 멸절당했다(10절). 염병은 하나님의 사자이다. 하나님은 어느 사람을 쳐 죽이라는 지시와 함께 염병을 그들 중에 보내셨고, 그 일은 그대로 실행되었다. 그것은 애굽에서 한 것과 같은 염병이었다. 그때는 한밤 중에 별하는 천사의 손길로 그들 중에는 사망이 범람했었다. 아마 이 염병도 애굽의 재앙처럼 처음 난 것에 달라붙었을 것이다. 어떤 사본은 "애굽의 길로"라고 읽는다. 그들이 애굽으로 도피하거나 원조를 청하러 가고 있을 때 염병이 도중에서 그들을 엄습하여 그들의 여행을 저지했다. 전쟁의 칼은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칼이다. 이 칼은 명령을 받고 그들 중에 뽑혔다. 그리고는 현재 세대의 간성이요, 다음세대의 근본인 청년들을 죽였다. 하나님은 "내가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노라"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처형을 공언하신다. 여호와께 죽음을 당하는 자는 많다. 적군은 그들의 말도 노략하여 자기들의 것으로 전용하였다. 칼이나 염병으로 죽음을 당한 자들의 시체는 너무도 부지기수였고 살아남은 자는 너무도 적어서 그 시체들은 오랫동안 매장당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진영에서 악취는 그들의 코를 찔렀으며, 그 악취는 해롭고 위험했다. 이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죄가 하나님께 얼마나 역겨운 것이었는지를 능히 상기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이것은 그들을 낮추고 교정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것은 그들을 낮추고 교정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너희는 너희를 치시는 분께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토록 후회스럽고 비애스러운 광경도 그들을 경건스럽게 만들지 못했다.

(5) 이들 심판과 또 다른 심판에서 어떤 사람들은 눈에 띄게 멸절당하여 공의의 기념물이 된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자비의 기념물이 되었다. 이 양자의 대비로 누구든지 언뜻 그들이 감동을 받을 줄로 생각하겠지만, 그들의 마음은 여기에도 목석같았던 것이다(11절).

[1] 어떤 자들을 완전히 멸망당했다. 그들의 가족도 전멸하여서 자연히 그들은 당대에 단절되었다. "내가 너희 중 얼마를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같이 무너뜨렸노라." 아마 그들은 소돔처럼 벽력으로 회신되었거나 아니면 그 가옥들은 다른 방법으로 불에 타 쓰러지고 그 거민도 멸망당했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기로 내정되었으며, 후세의 본이 되었다고 일컬음을 받는다(벧후 2:6). 하나님께서는 온 땅을 소돔의 무너짐처럼 훼멸 하겠다고 경고하셨다(신 29:2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경고하시기 위해 일부 특정 장소부터 먼저 심판을 시작하셨다. 또는 하나님께서는 그 죄가 심판에 먼저 이르는 일부 특정인부터 먼저 심판하셨을 것이다.

[2] 다른 자들은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살아남았다. "너희 중 다수는 불이 거의 너희 위에서 붙었을 때 소돔의 롯처럼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같이 되었다. 그런데도 너희는 너희에게 임한 위험 때문에 죄를 더 미워하지도 않고, 너희를 위해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을 인해서 그를 더 사랑하지도 않았다. 그처럼 현저하게 구원받고 그토록 눈에 띄는 방법으로 구출당한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Ⅱ.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에서 드디어 자기 백성에게 그들의 평강에 속하는 일들이 목전에서 감추어지기 전에 깨달아 알라고 촉구하신다(12, 13절).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의 심판보다 더 쓰라린 심판을 내리겠다고 그들을 위협하신다. "너희가 지금까지의 징벌에 감화되지 않으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라." 그는 어떻게 행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까지 임했던 것보다 더 혹심한 심판이 될 것이다(요 5:14). 또는 "내가 계속해서 이와 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애굽의 재앙처럼 완전히 끝장을 볼 때까지 한 가지 심판이 끝나면 또 다른 심판을 보내리라." 개혁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죄 많은 백성의 멸망을 예방할 수 없다는 것에 유의하자. 그들이 만약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도 돌이키지 않으시며, 그의 손은 여전히 펴져 있을 것이다. 율법에는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칠 배나 더 칠지라" (레 26:23, 24)고 기록되어 있다.

2.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과의 화해를 생각하라고 각성시킨다. "내가 너희에게 이렇게 행하고 달리 구제책이 없다는 것을 보거든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1) "너희는 투쟁자로서 하나님을 만날 수없다는 것을 생각하라." 혹자는 이것을 반어나 도전의 표현으로 생각한다. 너와 싸우러 오시는 하나님과 만날 준비를 하라. 너는 어떤 갑옷을 입을 수 있느냐? 너는 어떤 용기로 무장할 수 있느냐? 오호라, 그것은 소멸시키는 불 앞에 찔레와 가시를 걸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사 27:4, 5). 너는 일만 명도 못 되는 군사로써 이만 명 이상의 군사를 거느리고 너를 대적하러 오는 자를 맞이할 수 있느냐?(눅 14:31)

(2) "그러므로 너는 참회자로서 그를 만나려고 결심해라. 겸허한 탄원자로서 네 하나님되신 분을 만나고 너와 언약을 세우신 분께 복종하며, 더 이상 버티지 않겠다고 다짐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길에서 그를 만나려고 예비해야 하며(사 26:8) 화해하기 위해 그의 힘을 굳게 붙잡을 수 있도록 예비해야만 한다는 데 주목하자.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도망할 수가 없으므로 그와 만날 준비를 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규례 가운데에서 그를 만나기로 되어 있을 때에는 그를 만나도록 준비해야 하며, 그를 찾으려고 준비해야 한다.

3. 그는 우리를 왜 하나님과 만날 준비를 갖춰야 하는지 그 이유로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의 권능을 제사한다(13절). 하나님이 만약 여기에 묘사되고 있는 것과 같은 신이시라면 그런 신과 다툰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그와 화해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이자 이익이다. 그를 우리의 친구로 삼으면 유익하고, 그를 우리 원수로 삼으면 해롭다.

(1) 그는 산들을 지으시고, 그중 가장 든든한 부분인 땅을 조성하셨으며, 그의 권능의 말씀으로 아직도 산과 땅을 버티고 계신다. 영원한 산들의 산물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조성하셨다. 작은 산과 큰 산에서 어떤 구원을 소망하든지 간에 그것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시 89:11, 12). 큰 산을 지으신 분은 그 산들이 자기 백성의 구원에 방해가 될 때는 그 산들을 평지로 만드실 수 있다.

(2) 하나님은 바람을 창조하신다. 공기의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유래하며, 그의 지시를 받는다. 그는 자기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며, 어느 방향에서 불 것인지 명령하신다. 바람을 지으신 자는 그 바람을 지배하신다. 바람과 바다조차 그에게 순종한다.

(3) 그는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신다. 그는 자기 종 선지자들을 통해 그의 의향을 인간에게 알리신다. 그는 회개하지 않는 죄인에게 대한 그의 공의로우신 생각과 회개하는 자들에게 대한 그의 자비로우신 생각을 알리신다. 그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도 능히 알리신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생각을 완전히 아시기 때문이다. 그는 멀리서도 그 생각을 아시며, 심판날에는 죄인의 악한 생각들을 그의 다른 죄 가운데 나열하실 것이다.

(4) 그는 가끔 아침도 어둡게 하신다. 해가 밝고 영화롭게 뜨자 말자 하늘에 짙은 구름을 깔으심으로써 아침을 어둡게 만드신다. 그와 같이 우리가 형통과 기쁨을 바랄 때 하나님께서는 바라지 않던 어떤 재난으로 우리의 기대를 무산시키실 수 있다.

(5) 하나님은 땅의 높은 데를 밟으신다. 그는 가장 높은 곳보다 더 높으실 뿐만 아니라, 만유를 다 지배하기도 하시므로 교만한 자들을 짓밟으시며, 극히 높은 곳에서 숭배받는 우상도 밟으신다.

(6) 그의 이름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다. 왜냐하면 그의 존재는 그 스스로에게서 나오며, 만유의 근원이시며, 천지간의 모든 무리가 그의 명령 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낮추며, 그와 만날 준비를 하며, 부지런히 그를 우리 하나님으로 삼자. 하나님을 자기 신으로 삼으며, 하나님의 이 모든 권능을 이용할 수 있는 백성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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