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평신도 성경공부 설교말씀] 하나님의 심판(審判)이 무엇인가?

체데크 2022. 12. 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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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교회 용어가 많이 나온다. 교회에 처음 나온 평신도들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저 말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목사님의 말씀을 들을 때가 있다. 오늘은 하나님의 심판이 무엇인지를 히브리적 관점과 헬라적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구약과 신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해 보고 하나님의 심판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난 후에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말씀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심판(審判)이 무엇인가?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심판이다. 사람들은 심판이라는 말을 들으면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도 심판이 있다. 축구경기나, 농구 경기나, 배구경기들을 보면 심판이 있다. 심판의 역할은 경기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선수들을 통제하고 서로 싸우지 않도록 중립을 지키는 것이다. 경기에서 뿐만 아니라 법원에도 심판이 있다. 소송이 붙었을 때에 중립을 지켜서 제대로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있다. 심판은 하나님께서 재판하시는 행위를 의미한다. 성도들은 무조건 심판하면 하나님께서 벌을 주시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은 무조건 심판하지 않는다. 공의로운 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분별하셔서 죄가 있을 때에 심판하신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면서 심판이라는 개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심판의 개념을 알지 못하면 막연하게 두려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죄인은 법원에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신의 죄를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가 없는 사람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이 온다. 이 날에 죄인들은 두려워하게 되지만 의인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피로 나의 원죄가 깨끗하게 씻겨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현재 당신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이 있어서 구원이 확정된 사람이다. 우리가 심판을 헤브라이즘 관점으로 공부해 보자.

헤브라이즘 관점에서의 심판

 

구약에서 말씀하고 있는 심판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히브리어 원어를 통해서 심판의 개념을 정의한다면 심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키 아시타 미쉬파티 비디니 야샤비타 리키세 쇼페트 체데크

시9:4 주께서 나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새롭게 심판하셨나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주께서 자신의 의와 송사를 변호하셨으며 보좌에 앉으사 새롭게 심판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다윗은 원수들이 자신에게서 물러갈 때에 주 앞에서 넘어져 망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윗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변호해 주신다고 고백한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모든 일들을 내가 변호한다면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이 변호한다면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변호해야 할까? 나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변호할 때에 이것이 인정이 된다.

 

여기에서 송사라는 단어가 (1779) 심판, 소송, 정죄, 다툼, 변호,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1777) 공정하게 하다, 판단하다, 변론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이 단어는 어떠한 논쟁이 붙었을 때에 소송을 걸어 재판관 앞에서 변론하여 서로의 잘못을 판결받을 때에 사용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억울하게 누명을 쓸 때가 있다. 힘없고 가난하여 제대로 재판을 하지 못하고 억울하게 판결을 받아 감옥 신세를 지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힘없는 자를 도와주는 사람이 변호사다. 변호사는 변호인의 억울함을 대변하여 판사가 올바르게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이 세상에 한 번 태어나면 죽는 것은 정한 이치다.

카이 카드 호손 아포케이타이 토이스 안드로포이스 하팍스 아포다네인 메타 데 투토 크리시스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유한한 존재다. 한 번 이 세상에 태어나면 반드시 죽어야 한다. 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죽고 난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소송이 걸리는 것이다. 검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자가 바로 사탄이다. 사탄은 나를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게 하려고 계속해서 정죄를 한다. 그때에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때에 변호사의 역할을 하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다.

카이 에고 에로테소 톤 파테라 카이 알론 파라클레톤 도세이 휘민 히나 메네 메드 휘몬 에이스 톤 아이오나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여 다른 보혜사를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영원토록 나와 함께 하실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보혜사(파라클레토스 3875) 돕는 자, 중재자, 변호자,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파라칼레오 3870) 호소하다, 간구하다, 격려하다, 애원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보혜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죄인인 나를 하나님 앞에서 도와주고 변호하는 역할을 한다. 보혜사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구원의 확신을 얻어 이 땅에서 열심히 주님을 섬겼던 것을 대신 하나님께 호소하여 간구하는 자이다. 내가 심판대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으면 격려해 주시는 분이고 만약에 하나님이 판결을 잘못 내린다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애원하면서 절대 잘못된 판결을 내리지 못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이 땅에서도 변호사가 이렇게 변호하는데 하물며,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어떻게 변호하겠는가?

 

내가 이 세상에서 열심히 살다가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먼 훗날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이 땅에서 쾌락주의자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코앞에 닥쳐올 일이다. 누구도 죽음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죽는 것은 순서가 없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내가 하나님의 재판 석에 앉을 날을 기억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믿고 구원의 확신을 얻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 갈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보혜사 성령님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나를 변호하지 않는다.

 

세상 법정에서 변호사 없이 검사와 싸운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내가 나를 변호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서 검사와 같이 정죄를 하는 사탄을 맞서 변호할 수 있는가? 그럴 수가 없다. 하지만 법적으로 능통한 변호사가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하고 위로가 되겠는가? 이런 분이 바로 보혜사 성령님이다.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위로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해야 한다.

 

다음으로 심판이라는 단어를 알아보자. 우리가 소송에 걸려 재판정에서 심문하는 심판을 알았으니 이제는 심문한 모든 것을 종합하여 판결을 내리는 심판을 알아야 한다.

할릴라 리카 메아시트 카다바르 하제 리하미트 차디크 임 라샤 비하야 카차디크 카라샤 할릴라 라크 하쇼페트 콜 하아레츠 로 야아세 미쉬파트

창18: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소돔과 고모라 성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여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조카 롯이 걱정이 되어 하나님께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함께 죽이시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닙니까?라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호소한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롯을 위해서 변호하는 것이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 살지만 의인이다.

카이 디카이온 로트 카타포누메논 휘포 테스 톤 아데스몬 엔 아셀게이아 아나스트로페스 에르뤼사토

벧후2: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변호를 들으시고 음란한 행실을 하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의 무법한 자들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롯을 구원해주셨다. 이렇게 변호사의 역할이 크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려고 했을 때에 아브라함의 변호를 통해서 하나님은 의인 롯을 심판하지 않고 구원했다.

 

여기에서 정의라는 단어가 (미쉬파트 4941) 심판, 재판, 법령, 형벌,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샤파트 8199) 재판하다, 판결하다, 징벌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이 단어는 검사와 변호사의 모든 변론을 듣고 나서 판사가 마지막 판결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재판 석에서 판사가 법령에 따라 구형을 내리면 그대로 집행된다. 자신이 받은 형량대로 감옥에서 살아야 하며 그때부터 유죄가 된다.

 

하나님은 마지막 때에 모든 사람들이 죽고 난 후에 심판을 내리시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자들은 보혜사 성령님의 변호를 통해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죄를 지은 사람들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된다. 이것이 계시록에 나오는 백 보좌 심판이다.

카이 에이돈 드로논 류콘 메간 카이 톤 카데메논 에프 아우투 후 아포 프로소푸 에퓌겐 헤 게 카이 호 우라노스 카이 토포스 우크 휴레데 아우토이스

카이 에이돈 투스 네크루스 므크루스 카이 메갈루스 헤스토타스 에노피온 투 데우 카이 비블리아 에네오크데산 카이 비블리온 알로 에네오크데 호 에스틴 테스 조에스 카이 에크리데산 호이 네크로이 에크 톤 게그람메논 엔 토이스 비블리오이스 카타 타 에르가 아우톤

계20:11-12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하나님의 나라에 흰 보좌에 하나님이 앉아 계시고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하나님 보좌 앞에 서 있다. 보좌 앞에는 책들이 펴져 있는데 죄의 책과 생명 책이 펴져 있다. 죽은 자들은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 행위 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정죄를 받아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 심판을 받는다. 생명 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보혜사 성령님의 변호로 영원한 천국으로 심판을 받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 복음이 이렇게 중요하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이 세상에서 심판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내가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뿐이다. 주님의 피가 없이는 하나님의 재판 석에서 어떻게 살아날 수 있는가?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나의 재판을 무죄로 선고해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 대신 모든 형량을 주님이 채웠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다. 이제 내가 심판을 두려워하거나 하나님의 재판정에 앉는 것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내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헤브라이즘 관점에서 심판을 공부했으니 헬레니즘 관점에서 공부해 보자.

 

헬레니즘 관점에서의 심판

 

구약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약에도 심판이 등장한다. 헬라어로 심판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오이다멘 데 호티 호사 호 노모스 레게이 토이스 엔 토 노모 랄레이 히나 판 스토마 프라게 카이 휘포디코스 게네타이 파스 호 코스모스 토 데오

롬3: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우리들은 알고 있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은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한다. 율법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율법주의자들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말도 할 수 없다.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변호인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심판이라는 단어가 (휘포디코스 5267) 죄지은, 심판받아야 할, 벌 받아야 할, 심판 아래에 있는,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휘포 5259) ~아래, ~밑에, 라는 뜻과 (디케 1349) 올바른, 공의, 정의, 형벌, 이라는 뜻의 합성어다. 이 단어는 율법의 죄를 지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있지 않으면 죄짓고 심판받아 결국 형벌을 받게 된다. 구원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에 있기 때문에 원죄가 해결되어 영원한 심판을 면죄받았다.

 

하지만 율법에 빠져 자신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은 심판 아래에 있기 때문에 유죄의 인간이다. 지금은 아직 심판대 앞에 서지는 않았지만 검사가 기소하면 바로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율법주의자들은 언제 기소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는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항상 죄 때문에 불안하다.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유죄의 인간이기 때문에 기소를 당하게 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기소를 당할 필요가 없고 기소를 당해도 죄가 없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 현재 나는 어떠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기소를 당할까 봐! 두려워 떠는 신앙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왜 심판이 두려운지 토론해 보자. 만약에 심판이 두렵지 않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서로 토론해 보자.

 

다음은 죄가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재판의 행위를 하여 판결을 내릴 때에 사용하는 단어를 알아보자.

유프라이누 에프 아우텐 우라네 카이 호이 하기오이 아포스톨로이 카이 호이 프로페타이 호티 에크리넨 호 데오스 토 크리마 휘몬 엑스 아우테스

계18:20 하늘과 성도들아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계시록 18장은 바벨론이 멸망당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바벨론은 거짓 교회를 말한다. 복음이 없는 비 복음을 전파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핍박한 자들이다. 복음을 지키면서 살았던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인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셨다. 우리들도 이런 자들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다.

 

여기에서 심판이라는 단어가 (크리마 2917) 결정, 심판, 판결, 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크리노 2919) 심판하다, 정죄받다, 재판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이 단어는 모든 변론이 끝난 후에 하나님이 피고인을 심판하여 죄가 있다고 정죄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땅에서 바벨론 교회는 의로운 성도들을 핍박하여 죽였다. 사탄의 권세를 가지고 누리면서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셨는데 유죄로 판결을 내렸다. 이 결정문은 항소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 하나님은 최고의 판결자이기 때문이다. 억울하다고 항소할 곳이 없다.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는 사람들은 바벨론 교회가 멸망받고 지옥의 형벌의 판결을 받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구원받은 자는 심판이라는 단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유죄의 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판은 죄인이 두려워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의 모든 원죄가 모두 사라졌다. 하나님께서 재판 석에서 무죄로 선포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죄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도 마지막 날에 재판정에 서게 된다. 이때에 우리가 받을 재판은 상급 심판을 받게 된다. 구원받지 못한 자는 형벌 심판을 받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상급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 주님을 열심히 믿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올바른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받을 상급이 없다. 지금 나는 구원의 확신을 얻고 난 후에 상급을 받기 위해서 어떠한 일을 하고 있는가? 토론해 보자. 만약에 하지 못하고 있다면 왜 못하는지 토론해 보자. 이제 심판을 두려워할 것인가? 아직도 두려워하고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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