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성경 인물 설교문 중에서 여호야다가 아달랴를 죽이고 신앙을 개혁한 이야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여호야다의 신앙개혁”(대하23:16-21)
♣명제: 여호야다의 신앙개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 척결의 예표이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도 심령의 성전에 있는 추악한 우상들을 훼파해야 한다.
오늘 이 시간 여호야다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은 아하시야와 아달랴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아하시야는 솔로몬 이후에 왕국이 나누어지고 난 후에 남 유다의 6번째 왕위에 오른 인물입니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로서 자신의 아들이 예후에 의하여 죽자 자신 스스로 남 유다의 7번째 여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달랴의 가문을 보면 북 왕국 아합의 딸입니다. 또한 북이스라엘을 우상화하여 여호와 신앙을 잊어버리게 한 장본인인 이세벨의 딸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달랴는 남 유다의 구속사의 맥을 끊기 위하여 자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적통이 될 만한 사람들을 모두 죽였는데 다행히 아하시야의 누나인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빼내어 살려주었습니다. 구속사의 맥을 이어가기 위하여 하나님은 아달랴의 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호세바는 누구입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에 나오는 여호야다의 부인입니다. 아달랴가 남 유다의 왕이 되고 나서 이세벨이 섬겼던 바알의 우상이 만연하게 됩니다. 반면에 여호와 신앙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남 유다의 백성들에게 강제로 바알을 섬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달랴가 왕이 되어 6년을 통치하면서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들의 힘도 강력했습니다. 하나님의 제사장들은 힘을 잃어가는 반면에 거짓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세력은 확장되어 갔던 것입니다. 아달랴 통치 7년째 접어들 때에 여호야다라는 인물이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 시간 우리가 여호야다의 종교개혁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첫째,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사이에 중보자가 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대하23:16-17 여호야다가 자기와 모든 백성과 왕 사이에 언약을 세워 여호와의 백성이 되리라 한지라 온 국민이 바알의 신당으로 가서 그 신당을 부수고 그의 제단들과 형상들을 깨뜨리고 그 제단 앞에서 바알의 제사장 맛단을 죽이니라
여호야다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달랴를 처단하려고 할 때에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왕과 백성 사이에 중보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백성이 되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재 요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의 맥을 이어가는 자인데 유다를 통치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모형입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은 아달랴 밑에서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따랐던 죽음에 갇혀있던 성도들의 모형입니다. 이런 곳에서 여호야다가 중보자가 되어 언약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야다’ (יהוידע예호야다 3077) 여호야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יהוה아도나이 3068) 여호와, 라는 뜻과 (ידע야다 3045) 깨닫다, 허락하다, 징벌하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여호야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아달랴와 같은 사탄의 존재를 완전하게 무력화시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여호야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달랴 밑에서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나타나 아달랴를 죽이고 바알의 선지자를 죽이고 난 후에는 사탄의 존재들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으로 돌아서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면서 원죄에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원죄의 속박에서 풀려나게 된 것입니다. 아달랴와 같은 악독한 존재들을 물리쳐 주시고 죄악들을 모두 사라지게 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이었던 나와 하나님의 사이에 가로막혀 있던 것을 허물어주시는 중보자의 역할을 해주신 것입니다.
‘맛단’ (מתן맛탄 4977) 맛단,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מתן마탄 4976) 예물, 몫의 음식, 선물,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여호야다는 바알의 신당으로 들어가서 신당을 부수고 제단에 있는 바알의 형상들을 모두 깨뜨리고 있습니다. 또한 제단 앞에서 바알 우상의 수장인 맛단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맛단은 바알의 제단 앞에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예물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의 몫을 챙기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음식을 먹고 하나님과 연결을 지어주어야 하는 직무입니다.
그런데 맛단은 바알의 제사장으로 우상 앞에 예물을 바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몫을 챙겨 먹고살았던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달콤한 음식을 주는데 바로 거짓된 비 진리를 전하여 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바알 앞에 온 자들에게 육신의 달콤한 선물을 주어 영혼을 죽이게 만든 것입니다. 달콤한 선물이 무엇입니까? 우상의 제단에는 항상 신을 섬기게 하는 여자들과 남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자들과 육체의 성적 관계를 통하여 우상이 예물을 받았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맛단은 이런 것들을 허락하여 육체의 쾌락을 준 것입니다.
왕하23:7 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을 헐었으니 그 곳은 여인이 아세라를 위하여 휘장을 짜는 처소였더라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펼칠 때에 여호와의 성전 가운데 남창의 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우상에게 절하고 섬기는 남창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예물을 드리고 나오면 남자는 여자와 여자는 남자와 성적 관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적 쾌락에 빠지도록 맛단은 허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육신의 선물을 준 자들을 여호야다는 죽이는 것입니다.
요2:13-16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여호야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유월절이 가까이 올 때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을 바꾸어주는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이나 소를 성전에서 쫒아내시고 성전 세를 바꾸어주는 사람들의 돈을 쏟아버리며 상을 엎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비둘기 파는 자들에게 성전에서 가지고 나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호야다의 성전 개혁처럼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집을 개혁하고 있습니다. 탐욕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을 통해 돈벌이로 삼는 맛단과 같은 자들을 성전에서 몰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는 어떠한 성전 척결이 있어야 합니까?
골3:5-6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아달랴 밑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던 자들처럼 땅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음란과 부정한 행동과 사리사욕에 악한 정욕과 물질의 탐심에 빠져 사는 것이 바알을 섬기는 우상과 같은 것입니다. 이런 우상을 숭배할 때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런 악독한 근성의 죄악들을 뿌리째 뽑아내야 합니다. 어떻게 이런 악독한 우상을 뽑아낼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없습니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의 우상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나의 모든 악독한 우상도 함께 못 박힌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맛단과 같은 존재들을 내 심령 안에서 쫓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여호와의 성전에 찬양이 다시 올려지게 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대하23:18 여호야다가 여호와의 전의 직원들을 세워 레위 제사장의 수하에 맡기니 이들은 다윗이 전에 그들의 반열을 나누어서 여호와의 전에서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자기들의 정한 규례대로 즐거이 부르고 노래하게 하였던 자들이더라
여호야다가 종교개혁을 일으키면서 우상의 제사장을 죽이고 여호와의 성전에서 전담 직원들을 뽑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고 자기들이 정한 규례대로 즐겁게 하나님께 찬양했던 사람들입니다. 전까지는 여호와의 전에서 찬양의 소리가 끊어져 있었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야다의 개혁을 통하여 찬송의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는 하나님을 섬기며 찬양하는 자들이 없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사역을 모두 이루신 후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이 회복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노래하게 하였던’ (שיר쉬르 7892) 신령한 노래, 찬송, 이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는 신령한 주님을 높이는 찬송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다의 개혁을 통하여 신령한 노래가 다시 성전에서 울려 퍼지게 되는 것입니다.
시28: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시편 기자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방패이시며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엄청나게 기뻐하므로 주님께 ‘찬송’ (שיר쉬르)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죽어있던 심령들이 하나님께 영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배의 회복입니다.
요4: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아달랴의 밑에 있었던 남유다 백성들은 참된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지 못했습니다. 바알의 우상 앞에 절을 하고 경배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다를 통하여 유다 백성들은 참된 예배의 회복을 통하여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하면서 찬양이 회복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시대에 아달랴나 맛단과 같은 존재들의 밑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죽어있는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육체의 예배만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있는데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예배입니다. 주님의 영광이 임하는 예배입니다. 이런 예배가 어떤 예배입니까?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받아 나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이러한 예배의 회복이 일어나야 합니다. 내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의 몸이 거룩한 제물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성전에 부정한 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대하23:19-20 또 문지기를 여호와의 전 여러 문에 두어 무슨 일에든지 부정한 모든 자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백부장들과 존귀한 자들과 백성의 방백들과 그 땅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왕을 인도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내려와 윗문으로부터 왕궁에 이르러 왕을 나라 보좌에 앉히매
여호야다는 성전을 척결하고 곧바로 문지기를 세워 여호와의 전에 들어오는 부정한 자들을 막게 하고 있습니다. 깨끗한 성전을 다시는 아달랴와 맛단과 같은 자들이 들어와서 성전을 더럽히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문지기’ (שוער쇼에르 7778) 성문지기, 지키는 자,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ער샤아르 8176) 쪼개다, 떼어놓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여호야다는 성전을 지키는 성전 문지기를 세워 아무나 성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부정한 자들이 들어오면 그들을 성전으로부터 멀리 떼어놓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정결한 자들은 들어올 수가 있지만 부정한 자들은 절대 들어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 정결한 자들은 누구입니까? 제물이 쪼개어져 언약을 받은 백성들은 정결한 자들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쪼개져 저주를 받은 것을 믿는 백성들은 성전에 들어가지만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자신의 힘으로 성전에 들어가려는 자들은 자신의 몸이 쪼개지게 되는 것입니다.
계21: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천국에 들어가려고 할 때도 문이 있습니다. 열두 진주 문이 있는데 열두 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습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습니다. 부정한 자들이 들어가려고 하면 천사가 막아서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들어가는 곳입니까?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인 선택받은 백성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어야 만이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지 않고는 절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럼 내 마음의 성전이 음란과 탐욕과 귀신들의 우상들로부터 깨끗하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눅11:24-26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는데 귀신이 나갔습니다. 이 집이 청소되고 수리가 되어 깨끗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주인이 없습니다. 그랬더니 나갔던 귀신이 다시 들어왔는데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서 이 사람은 전보다 더 심하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의 성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으면 탐욕과 우상숭배에서 깨끗함을 받았다고 해도 전보다 더 악한 상황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호야다의 종교개혁에 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달랴의 종교적인 폭정에 괴롭힘을 받은 백성들이 영적으로 고통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현재 우리는 어떻습니까?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의 권세에 종교적으로 눌려있습니다. 이단들의 세력에 한국교회는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가톨릭의 종교 폭정 속에 하나님은 루터와 칼빈이라는 종교개혁자들을 사용하셔서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단들의 종교 폭정 속에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사용하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복음이 사라지고 있는 이때에 여호야다와 같은 자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습니다. 아달랴와 맞서 싸우는 자들을 하나님은 찾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나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어떻게 아달랴와 맛단과 같은 자들과 싸워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아 나가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능력이 없이는 절대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여호야다도 안식일 날에 종교 쿠데타를 일으켜 아달랴를 처형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교회의 성도들을 약탈하고 있는 거짓된 비 복음주의 자들을 척결해야 합니다. 복음을 선포하지 않고 거짓된 비 복음을 전하는 이단자들과의 전쟁이 선포된 것입니다. 현재 한국교회에는 많은 이단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복음의 빛을 선포하여 어둠에서 속히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여호야다가 아달랴를 죽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칼로 아달랴와 맛단과 같은 자들과 맞서 싸워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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