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레위기 설교문 중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사회적 약자”(레19:9-10)
● 명제 : 사회적 약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는 자들을 의미한다.
● 목적 : 하나님은 있는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없는 자의 하나님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사회적 약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뿐만 아니라 성경 시대에서도 사회적 약자는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있는 자들이 없는 서민들의 재산을 탈취하고 세금을 과다 징수하여 자신들의 욕심만 채우다 보니 사회적 약자들은 더 힘들어지고 있는 자들은 더 부자가 되는 현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징계를 내렸습니다. 세상도 타락하고 교회도 영적으로 타락하여 복음은 사라지고 세상과 같이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할 때입니다.
오늘 말씀은 육체적으로 어려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사회적 약자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하는 아주 어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재물이 있는 자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너무나 고통스럽게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보호받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영적인 부분으로도 보아야 합니다. 물질은 많지만 영적으로 사회적 약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아직 복음을 모르고 구원받지 못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사회적 약자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물질이 부족해서 이 세상에서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힘들고 어려워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혼이 이렇게 살아가는 자들도 있습니다. 인간은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을 보기 때문에 육적인 사회적 약자가 먼저 눈에 보입니다. 현재 교회 안에는 영적인 사회적 약자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적인 사회적 약자는 나사로입니다.
눅16: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나사로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도와주셨다.’라는 의미입니다. 나사로는 거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회적 약자입니다. 이런 나사로인데 부자는 전혀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거지는 고통스럽게 인생을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육적으로는 사회적 약자로 이 세상에서 살았지만 죽어서는 구원받고 아브라함의 품에서 영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반면에 부자는 어떻습니까?
눅16: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살면서 이 세상에서 자신의 재물을 가지고 즐기던 자입니다. 육체적으로는 재물이 많은 부자였지만 영적으로는 사회적 약자처럼 가난한 자였습니다. 부자는 자신의 재물을 나사로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돈을 쓰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동정을 주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죽어 구원받지 못하고 음부에서 고통받게 되었습니다. 영혼이 사회적 약자였기 때문에 결국 고통 가운데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은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부자처럼 자신의 욕심을 채우면서 살면 안 됩니다. 내가 영적으로 부자처럼 살면 안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복음을 영적인 사회적 약자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있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묵상해 보겠습니다.
레19:9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이스라엘은 유월 절기에는 보리를 추수합니다. 칠칠 절기에는 밀을 수확하게 됩니다. 가을절기로 넘어와서 초막 절기가 되면 과일을 추수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절기는 항상 추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쁨의 날입니다. 사람에게 추수를 한다는 것은 기쁨이 있습니다. 고생한 것을 보상으로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너희가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라고 합니다. 땅에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라고 합니다. (모퉁이: פאה페아 6285 모퉁이, 편) 하나님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페아’법을 발동했습니다. 모퉁이를 다 추수하지 말고 남겨두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가난한 자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라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럼 사회적 약자가 누구입니까?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입니다.
신14: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하나님은 분깃과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먹고 배부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너에게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인데 가난하다는 것은 정상에서 벗어난 상태를 말합니다. 레위인은 가나안 땅을 받아야 하는데 받지 못했기 때문에 가난한 상태입니다. 객은 나그네로서 집이 없이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가난합니다. 고아는 부모가 있어야 하는데 없기 때문에 가난하고 과부는 신랑이 있어야 하는데 없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자가 육적인 사회적 약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이 먹고살 수 있도록 ‘페아’법을 만들었습니다.
레19:10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은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라고 합니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라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회적 약자를 돌보아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육적인 사회적 약자를 돌보아 주신다면 영적인 사회적 약자를 돌보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도 영적인 ‘페아’법이 있습니다.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는데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영적인 사회적 약자입니다. (가난: 아니 ynI[; 6041 가난한, 비천한, 억압받는) 가난한 것은 다른 사람이 볼 때 물질이 없기 때문에 비천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힘들고 지쳤기 때문에 풍요롭지 못하고 가난에 억압받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럼 영적인 사회적 약자들은 어떨까요? 복음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지 못합니다. 원죄의 압박 때문에 고통받고 살아가면서 결국 영혼은 수치스럽고 비천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자들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복음을 주셔서 천국을 허락해 주십니다. 이런 자들을 도와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복음을 영적인 가난한 자들에게 전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자들을 위해서 곡식을 남겨두지 않으면 이런 자들은 모두 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모퉁이 법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금 이 시대에 교회가 모퉁이가 되어야 합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모퉁이가 되어야 영적인 사회적 약자들이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을 잘 실천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보아스입니다.
룻2:15-16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룻이 보아스의 밭에 이삭을 주우러 갔을 때 보아스가 자기 일꾼들에게 명령하여 곡식 단 사이에서 룻이 곡식을 주울 수 있도록 하고 책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룻을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녀가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룻은 모압 여인으로서 베들레헴에 나오미와 함께 들어온 사회적 약자입니다. 이런 약자를 도와주는 보아스는 주님의 그림자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마음을 갖고 복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내가 구원받았다고 교만하거나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영적 부자가 되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세상에서 지혜 있다고 하는 자들은 모두가 영적인 부자입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영적인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것을 부정한다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려고 하는데 그것을 믿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고전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은 복음이 없는 영적인 사회적 약자를 살리기 위해서 세상의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전도는 미련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전도가 무엇입니까? 모퉁이 법입니다. 영적인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교회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아직도 율법에 빠진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를 해야 합니다. 자신들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내가 현재 영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랑이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는 내가 영적인 사회적 약자이면서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하는 임무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았기 때문에 부자라고 생각하면 나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영적인 사회적 약자입니다. 이 은혜를 받고 율법에 빠져 구원받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사회적 약자에게 전도의 미련한 도구로 복음을 전파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모퉁이를 남기는 자들은 하나님이 보상해 주십니다. 가난한 자를 배부르게 하면 하나님이 네가 하는 손에 복을 내려주신다고 했습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은 영적인 사회적 약자로서 주님의 손길과 보호가 필요한 동시에 또 다른 사회적 약자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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