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에스라 9장 설교문] “기가 막혀 앉았더니”(스9:1-6)

체데크 2020. 6. 25. 14:21
반응형

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에스라 9장 설교문 중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타락을 보면서 기가 막혀 앉아있는 에스라의 모습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가 막혀 앉았더니”(스9:1-6)

 

명제 :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 때문에 기가 막혀했다.

목적 : 예수 그리스도도 나의 원죄와 자 범죄 때문에 기막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고 싶어 했던 민족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방인들의 손에 맡겼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B.C. 722년에 멸망을 당하고 남 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했습니다. 남 유다 백성들은 왕족과, 제사장들과, 귀족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할 성전은 훼파되었고 이스라엘 땅은 황폐해져 남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영적 지도자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게 되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자가 없었기 때문에 남 유다에 남은 백성들은 여호와의 율법의 말씀을 배울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년이 차면 다시 이스라엘 땅에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렘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해방시켜주셨는데 고레스 왕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신앙을 버리면 70년이라는 고통의 기간을 주십니다. 신앙을 잊어버리고 내 마음대로 살았던 때에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고레스와 같은 자를 만나게 해 주셔서 하나님은 다시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고레스에 의해서 바벨론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땅인 이스라엘로 귀환하기 시작합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3차의 귀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첫 번째, 스룹바벨에 의하여 B.C. 536년에 귀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두 번째, 에스라에 의하여 B.C. 455년에 귀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세 번째, 느헤미야에 의하여 B.C. 445년에 귀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버리지 않으시고 때가 되매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나를 창세전에 선택하셨기 때문에 원죄의 고통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육적인 고통에서도 때가 되매 해방시켜 주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이 나에게 영육의 문제가 해결이 되고 온전히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고통스럽게 살았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품 안으로 들어와 평안을 갖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에스라가 두 번째로 귀환하여 이스라엘 땅을 밟았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환경이 너무나 좋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70년 동안 남아있던 유다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자신 멋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들과 통혼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우상을 섬길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에스라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기가 막혀서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에스라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주님은 어떨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사라지고 번영 신앙에 눈이 멀어 세상의 육체의 정욕만을 따라가는 신앙을 보면서 기가 막혀하십니다.

 

영혼은 죽어있는데 세상의 권력과, 재물과, 육체의 정욕에 빠져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기가 막혀 멍하니 쳐다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회개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신앙을 버리고 세상의 정욕을 따른 것을 회개하고, 예배를 회복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영혼의 양식을 먹지 않고 육체의 일을 따랐던 일들을 이 시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나의 모습을 보면서 기가 막혀하시면 안 됩니다. 나의 신앙 상태를 보고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에스라가 왜 기가 막혀했는지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스9:1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에스라가 기가 막혀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가나안의 이방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않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우상을 섬기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떠나지’ (בדל바달 914 동사, 닢알, 완료, 공성, 3인칭, 복수) 나누다, 분리하다, 구별하다, 라는 뜻입니다. 70년 동안 남아있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의 우상과 이방 백성들로부터 구별되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했던 이유는 이방 백성들이 섬기는 우상들이 더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들과 분리되어 나누어지기가 싫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우상들과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분리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이방 백성들로부터 구별되기 싫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항상 그들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섬겼던 우상들에서 떠날 수 없었습니다. 닢알,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빛과 어둠을 나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있는 자들이 어둠과 섞여있다면 그들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의 빛을 잃어버리고 어둠과 함께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도 세상의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가증한 일들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9:2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다음은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의 죄가 크기 때문에 에스라가 기가 막혀했습니다. 이방 백성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손들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만드는데 일등공신들이 그 지방의 방백들과 고관들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본을 보여야 할 자들이 우상을 섬기게 만드는데 앞장섰던 것입니다.

 

‘서로 섞이게 하는데’ (ערב아라브 6148 와우접속사. 동사, 히트파엘, 완료, 공성, 3인칭, 복수) 보증하다, 저당 잡히다, 담보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 남아있던 방백들과 고관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세상의 지도자들이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버렸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손들을 이방인의 여자와 결혼을 하는데 담보자로 섰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면 왜 빠질까요? 세상의 유명한 어떤 사람도 자신의 단체에 있다는 말에 담보가 되어 자신의 영혼을 이단에 저당 잡히게 됩니다.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귀환하고 나서 방백들과 고관들이 죄를 더욱 조장하고 앞장선 것에 대하여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거룩한 자손들이 통혼하여 이방인의 피가 흐르게 하는데 한몫을 했습니다. 히트파엘, 강조 재귀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거룩한 자손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이방인 여자들과 통혼하지 않으려고 하면 강제적으로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담보로 저당을 잡듯이 자신의 힘과 권력을 남용하여 약한 자들에게 억지로 통혼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들과 통혼하게 되면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현재 한국 사회도 권력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들이 문제가 많습니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남용하여 힘없는 자들을 억압하고 더 나아가 기독교를 핍박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런 상황을 보시면서 기가 막혀하십니다.

 

스9:3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에스라는 남아있었던 자들의 행동들과 지도자들이 행동했던 일들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했습니다.

 

‘찢고’ (קרע카라 7167 동사, 칼, 완료, 공성, 1인칭, 단수) 찢다, 찢어서 조각을 내다, 라는 뜻입니다. 에스라가 자신의 옷을 찢었다는 것은 극도의 분노를 의미합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한 회개를 할 때와 슬픔에 빠졌을 때에 옷을 찢습니다. 에스라는 영적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짓는 모습과 권력을 가진 지도자들의 죄를 듣고 화가 났습니다. 분노가 일어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옷을 찢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의분이 일어난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성전에서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돈을 바꾸어 주고, 비둘기를 파는 자들을 향하여 분노를 내셨습니다. 상을 엎어버렸습니다. 주님도 성전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보시고 화를 내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보면서 화를 내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장사하려는 것을 보고 기각 막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육적인 장사와 축복의 도구로 사용하려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막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육적인 축복을 주시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육적인 번영의 복에서 돌아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영혼이 구원을 얻는 방향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스9:4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유다 땅에 남은 자들 중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떠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고 다시 회복되어 돌아온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에스라에게 모여 오기 시작했습니다. 에스라는 저녁 제사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서 멍하니 앉아있습니다.

‘모여 오더라’ (אסף아사프 622 동사, 닢알, 미완료, 남성, 3인칭, 복수) 모으다, 거두어들이다, 영접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에 남은 자 중에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있는 자들은 에스라에게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에스라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고 에스라를 하나님의 영적 지도자로 인정하고 영접했기 때문에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모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현재 상황이 모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닢알, 수동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마지막 날에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들은 복음을 찾아 모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갈증을 내기 때문에 세상의 지혜를 듣기 위함이 아니고 영혼의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생수를 찾아 모여지게 됩니다. 우리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생수를 마시기 위해 모여야 합니다. 세상적인 복을 받기 위해서 교회에 모인 것이 아닙니다.

 

‘기가 막혀’ (שמם샤멤 8074 동사, 피엘, 분사능동, 남성, 단수) 오싹하게 하다, 깜짝 놀라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에스라는 거룩한 방백들이 찾아와 현재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죄를 짓게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가 막혀했습니다. 이것은 에스라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일을 당하면 소름이 돋듯이 에스라도 마찬가지로 몸이 오싹해지고 전율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에스라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까지 우두커니 앉아있습니다. 너무나 황당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피엘, 강조 능동을 사용한 것은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일 때문에 너무나 황당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신앙을 포기하고 세상에 빠져 살면 에스라와 같이 기가 막혀하십니다. 주님이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말씀하시는데 자신은 행위로도 얼마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면 기가 막히게 됩니다. 현재 저와 여러분들은 어떠한 기가 막힐 일이 있습니까? 육적인 일입니까? 아니면 영적인 일입니까? 나의 영혼이 죽는 줄도 모르면서 세상에 빠져 산다면 이것이 기가 막힐 일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께 저녁 제사를 드리면서 기도를 합니다.

 

스9:5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에스라가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손을 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너무나 커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유대인들이 하는 짓을 보면서 통탄하시는 모습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고 모든 죄를 위해서 에스라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하나님을 향하여 소리치셨습니다. 이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는 표현입니다. 에스라도 이런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저녁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스9: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에스라는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께 얼굴을 들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죄악이 많아서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너무나 커서 하늘에 미치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나의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나의 원죄가 너무나 커서 기가 막히고 나의 자 범죄가 정수리에 넘쳐서 하늘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나의 죄를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에서 속죄해 주셨습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위해서 회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에스라가 기가 막혀하는 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도 나의 원죄와 자 범죄를 위해서 기가 막혀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받았다고 말하면서 나의 행동은 아직도 세상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나를 주님은 바라보면서 기가 막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세상과 가까워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은 애통해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사라지고 세상의 정욕을 따라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은 슬퍼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결단할 때입니다. 주님이 나의 모습을 보고 지금까지 기가 막혀했다면 이제는 나의 생활에 변화가 일어나 영혼이 똑바로 서고 육신의 삶은 거룩한 주님의 백성의 삶으로 돌아오는 결단이 일어나야 합니다. 전에는 세상의 정욕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주님의 일을 위해 사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원죄와 자 범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여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70년 만에 포로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에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나를 고통의 시간 속에서 벗어나게 해 주셔서 육적인 물질의 고통과, 생활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육적인 고통의 포로에서 벗어나게 해 주셨으니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면서 신앙이 회복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보실 때에 기가 막혀하는 자가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주님께 회개의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야다 설교] “여호야다의 신앙개혁”(대하23:16-21)

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호야다가 아달랴를 죽이고 신앙을 개혁한 이야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여호야다의 신앙개혁”(대하23:16-21) ♣명제: 여호야�

cdk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