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열왕기하 6장 엘리사 설교문] 쇠도끼를 물에서 떠오르게 한 기적(왕하6:1-7)

체데크 2020. 6. 23.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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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열왕기하 6장 엘리사 설교문 중에서 엘리사의 기적 중에서 쇠도끼를 물에서 떠오르게 한 기적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보겠습니다.

 

“쇠도끼를 물에서 떠오르게 한 기적”(왕하6:1-7)

 

명제: 쇠도끼는 복음의 능력을 상징하고 있다.

목적: 쇠도끼를 잃어버린 것은 복음의 능력이 상실된 것을 예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불 말과 불 병거를 통하여 하늘로 올라가게 하실 때에 엘리사에게 갑절의 영감이 임하게 됩니다.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겉옷이 떨어졌습니다. 이 겉옷을 주워 요단강을 치니 요단강이 갈라지게 되고 엘리사는 그 요단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겉옷을 주웠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엘리야의 사명이 엘리사에게 넘어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은 겉옷이 생명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엘리야의 대를 이어 엘리사가 생명을 살리는 사역을 하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생명을 살리는 사명자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능력을 부어주어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받고 난 후에 행했던 기적들을 보면 가난한 과부의 집에 가서 기름이 넘치는 사역을 했습니다. 과부의 아들들이 노예로 팔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구해준 것입니다. 이것도 생명을 살리는 사역을 한 것입니다. 그다음에 했던 사역이 수넴 지역에 있는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 여인에게 아들이 없어서 근심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아들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엘리사는 죽은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리는 사역을 하게 됩니다. 생명을 살린 것입니다. 또한 길갈에 들어갔는데 흉년이 들었습니다. 엘리사의 제자들이 국을 끓이게 되는데 그 솥에 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솥에 있는 사망의 독을 없애버리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생명을 살리는 사역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유명한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의 병을 치유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의 병을 깨끗하게 치료하는 기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도 생명을 살리는 사역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타나는 본문이 바로 오늘 물에서 도끼를 떠오르게 하는 사역을 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생명을 살리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예표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엘리사를 통하여 예수님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엘리사처럼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고 죽은 자들을 살리셨습니다. 또한 자신이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생명을 살리시는 사역을 하신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럼 이 시간 우리가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진리는 무엇일까요?

 

첫째, 엘리사의 제자들이 엘리사와 함께 거주할 처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왕하6:1-2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그 곳에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가라 하는지라

 

엘리사의 제자들이 엘리사와 함께 거주할 곳이 있는데도 너무나 비좁아서 처소를 더 넓히기 위해 요단으로 가서 나무를 가져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엘리사의 제자들은 엘리사와 함께 거주하면서 선지 생도로서 엘리사의 사상과 신앙을 배우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사’ (אלישע엘리샤 477) 엘리사,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אל엘 410) 하나님, 이라는 뜻과 (קום쿰 6965) 일어나다, 세우다, 확정되다, 복구시키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엘리사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신다, 라는 의미와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이것을 통해 보았을 때에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이라는 것을 예표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엘리사의 사역은 죽었던 자들을 살리는 사역입니다. 죄악 가운데서 죽었던 자들을 일으켜 세우고 무너졌던 인생들을 다시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복구시키는 사역을 하여 구원이 확정될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똑같이 실체가 되어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엘리사와 같은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구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라면 예수님께서는 신약에서 실체로 오신 분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엘리사의 제자들은 엘리사와 함께하고 싶지만 장소가 비좁아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소를 넓히기 위해서는 나무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나무를 요단으로 가서 가지고 오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처소를 만들기 위해 요단으로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요단으로’ (ירדן야르덴 3383) 요단,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ירד야라드 3381) 내려오다, 강림하다, 복종하게 하다, 파괴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요단이 있는 곳은 큰 강이 있습니다. 이곳은 엘리야가 승천한 곳입니다. 이곳에 있는 나무로 처소를 준비하고 넓히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바로 성령이 내려 강림하는 곳입니다. 요단강에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 임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세례를 받았으며 특히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곳이 바로 요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복종할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막1: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요단강가에 많은 유대 사람들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모여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부정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로 세례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일시적입니다.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막1:8-11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어 일시적으로 준비를 시키는 것이지만 내 뒤에 오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등장하시면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성령이 요단강 가에 비둘기 같이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들려오기를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자신의 아들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받으신 것은 세례 요한의 임무는 끝이 났고 이제부터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세례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요단에 있는 나무를 베어서 처소를 만든다는 의미는 바로 교회를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요단에 성령이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백성들로 교회를 만들어 엘리사와 함께 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영원한 교회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물로 세례를 받은 자들은 어려운 환난이 임하면 교회를 떠납니다. 그러나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들은 주님과 함께 환란을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모여 있는 교회의 처소를 만들겠다고 엘리사의 제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92:10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렘2:21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나무는 사람을 비유로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도 의인은 종려나무와 같으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순전한 참 종자인 포도나무로 심었는데 이방의 포도나무가 되어 악하게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사의 제자들이 요단에 가서 나무를 가지고 오는 것은 구원받은 백성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세례를 받은 자들이며 구원받은 자들로 교회를 채우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이제부터 십자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나가서 선택받은 자들을 불러 모아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여 주님의 집을 채워야 합니다.

 

눅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예수 그리스도의 혼인잔치 집에 사람들을 복음으로 강권하여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주님의 십자가 복음이 아니면 채울 길이 없습니다. 세상의 지식과 능력으로 절대 채워지지 않습니다. 복음의 능력만이 하나님의 교회를 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복음을 선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제자들은 엘리사와 함께 가자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왕하6:3-4 그 하나가 이르되 청하건대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가리라 하고 드디어 그들과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제자들이 엘리사와 함께 할 처소를 만들기 위해 요단으로 떠나려고 할 때에 엘리사에게 함께 가자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엘리사가 흔쾌히 가겠다고 말하면서 따라갔습니다.

 

(יאל야알 2974) 시작하다, 청하다, 원하다, 만족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원문에는 있지만 번역이 되어있지 않은 단어입니다. 제자 한 명이 엘리사에게 함께 가자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명령법을 사용하여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반드시 함께 가셔야 만이 나무를 베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엘리사와 함께 가는 것이 만족하며 마음에 원하는 일이고 시작도 엘리사와 함께 하고 마지막도 엘리사와 함께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최고인 줄 알고 내 힘으로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 최고인줄 알고 전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최고인 줄 알고 그 능력으로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뒷전으로 빼놓고 자신이 앞에 나갈 때에는 절대 복음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제부터 주님과 함께 어디를 가든지 함께 가야 합니다. 복음을 전파할 때에 나의 권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명령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절대 주님께서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다시 재림하실 때까지 함께하셔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반드시 쇠도끼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엘리사의 제자들이 열심히 나무를 요단에서 베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 생도가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도끼는 빌려온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하6:5-7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쇠도끼가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이르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 하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르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이르되 너는 그것을 집으라 하니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그것을 집으니라

 

이 도끼는 다른 사람에게 빌려온 것이기 때문에 생도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때 당시에 쇠도끼는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잃어버리면 자신이 도끼 주인에게 노예로 팔려가야 합니다. 도끼 대신 자신이 노예가 되어 값을 치러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물에 빠져 잃어버린 도끼를 다시 되찾아 주고 있습니다. 물에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졌더니 쇠도끼가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도끼를 잃어버린 생도가 손을 내밀어 잡고 있습니다.

 

‘쇠도끼’ (ברזל바르젤 1270) 쇠도끼,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꿰뚫다, 찌르다, 라는 어근에서 온 단어입니다. 바로 십자가에서 꿰뚫림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복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도끼가 물에 빠졌다는 것은 복음의 상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있어야 만이 세상에 나가 사람들을 말씀으로 찍어 데리고 올 수가 있습니다. 오직 도끼만이 나무를 벨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도끼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빌려온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복음의 능력과 은사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나무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에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찌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게 하여 나무를 벨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크고 굵은 나무라 할지라도 도끼 앞에서는 못 당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굳어있는 심령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 앞에서는 꼼짝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도끼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버렸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는데 도끼가 빠진 것입니다. 생도는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이 도끼를 찾지 못하면 노예 신세로 전락되기 때문입니다.

렘28: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쇠 멍에를 만들어 바벨론의 왕으로 하여금 고난을 주시며 노예의 삶으로 떨어지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도끼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래서 도끼를 잃어버린 것은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 노예의 삶으로 떨어지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잃어버린 자들의 수치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엘리사는 잃어버린 쇠도끼를 다시 떠오르게 하여 회복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의 능력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회복된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쇠도끼를 잃어버리면 노예의 삶이 되어야 하는데 주님께서는 이미 십자가에서 모든 값을 치러주셨기 때문에 이런 노예의 삶을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한 생도에게 복음을 회복시켜 주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열심히 하는 자들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물에서 떠오른 도끼를 잃어버린 생도가 붙잡았습니다.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취했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이 도끼가 자신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깨달은 진리가 무엇입니까? 나에게 하나님의 은사가 나타나고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어깨가 나도 모르게 으슥하게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도끼는 내 것이 아니라 빌려온 것입니다. 처음부터 내 것은 없었습니다. 나무를 베어 오기 위하여 빌려와서 열심히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나에게 하나님의 은사가 나타나면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능력이 있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복음을 알고 능력이 나타나면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복음과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선물입니다.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일을 마치면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빌려주었다면 쓸 수 있는 권한도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열심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할 때에 잘못하여 도끼가 빠져나갈 수도 있습니다. 나의 의도와는 정반대의 일들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모두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자신이 자만하여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열심히 자신의 뜻대로 하다가는 실수할 수가 있다는 것을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항상 주님과 함께 주님의 뜻을 묻고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라는 것이며 자만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내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시인해야 합니다. 모든 은사가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고 시인하고 나는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을 시키시면 필요한 도구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도구의 소유는 하나님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부족할 때에 채워주시는 주님을 기억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리사 설교]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눅10:4, 왕하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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