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브라함 설교말씀 중에서 아브라함과 롯의 20년 후의 모습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20년 후의 모습(창 13:10-11)
창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창13: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 지라
오늘 말씀의 내용은 아브라함과 롯이 애굽에 내려갔다가 다시 벧엘로 올라와서 롯과 함께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애굽에서 은과 금이 풍부해졌고 가축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애굽의 바로에게서 하사 받은 재물들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동생으로 팔아서 결국 바로에게 큰 재물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믿음은 자신이 죽을까 봐! 사라를 아내라 말하지 못하고 동생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재물과 가축을 가지고 다시 가나안으로 올라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서로 싸우기 시작합니다. 가축이 많아서 서로 풀을 뜯기게 하기 위하여 싸우고, 물을 주기 위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서로 같이 살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결단을 내린 것이 서로 헤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제안을 합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라고. 하면서 먼저 결정권을 줍니다. 결정권을 먼저 받은 롯은 양보하지 않고 자신이 먼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결정을 합니다. 그것이 10절에 나옵니다.
창 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보니 너무나 좋았던 것입니다. ‘요단지역을 바라본즉’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ראה(라아 7200)입니다. 택하다, 주목하다, 정탐하다, 라는 뜻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즉시로 요단 지역을 자신 스스로 바라보았습니다. 이곳은 늘 마음에 동경하던 장소입니다. 그러면서 평소에 마음속에 찜 해두었던 장소이고, 주목하던 장소이고, 늘 정탐하던 장소입니다. 만약에 동경하던 장소가 아니면 즉시로 일어나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고대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물입니다. 그리고 가축을 키우기 위해서는 풀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요단 지역은 물도 넉넉하고, 풀도 많습니다. 그러면서 육신적인 눈으로 볼 때에 너무나 좋은 장소입니다.
‘물이 넉넉하니’는 משקה(마쉬케 4945)입니다. 주류 관리인, 술잔 올리는 자, 음료의 뜻입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의 발달된 타락한 문화를 본 것입니다. 세상적인 타락이 극에 달한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소돔과 고모라는 문명이 발달된 도시이기 때문에 살기가 너무나 좋습니다.
‘요단’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ירדן(야르덴 3383)입니다. 이 단어는 ירד(야라드 3381) 파괴하다, 헐다, 끌어내리다, 떨어짐을 당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사람의 눈에 보기에는 너무나 호화찬란하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파괴시키고, 헐어버리고, 끌어내리는 장소가 됩니다. 그것은 육신적인 타락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롯은 세상의 문화에 젖어 있었던 사람입니다. 애굽에 가서 애굽의 문화를 보니 너무나 좋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단을 보니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롯은 이 땅을 먼저 선택했던 것입니다. 시골에서만 살았던 사람이 갑자기 서울에 오니 정신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전혀 구경해 보지 못한 신기한 것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으니 정신이 쏙 빠진 것입니다. 아브라함 때에 애굽의 문화가 그 정도로 발전해 있었고 소돔과 고모라가 가나안 땅보다 많이 발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롯은 신앙적인 면을 먼저 생각한 것이 아니라 육신적인 것을 먼저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이 20년 후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깨닫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남아 있게 됩니다.
창 13: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롯은 신바람이 났습니다. 얼마나 좋은 땅을 선택했습니까? 아마도 롯의 마음에는 이 땅을 삼촌이 먼저 차지하겠다고 한다면 큰일 날 뻔했다.라는. 생각을 가졌을 것입니다. 남에게 주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땅이었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없지만 원전에는 לו(로)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위하여라는 뜻입니다. 롯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요단을 선택하였고, 신바람이 나서 아브라함을 떠나갔습니다. 많은 재산도 있고 금과 은도 풍부하고, 종들도 많고, 가축들도 많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것들이 다 이루어진 것입니다.
부자가 되었는데 이제는 삼촌이 말하는 대로 살기도 싫고,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데 구속하는 것 같고, 그래서 떠나고 싶었는데 삼촌이 먼저 서로 나누자고 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지금 롯은 너무나 신나고 새로운 세상의 문명에 가고 싶어 미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한 걸음에 계속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갔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남게 됩니다.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제단을 쌓게 됩니다.
창 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아브라함은 헤브론에 장막을 칩니다. ‘헤브론’은 חברון(헤브론 2275)입니다. 이 단어는 חבר(하바르 2266) 결합하다, 연합하다, 구속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 지역에 거하면서 하나님과 결합하고, 연합하면서 구속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마므레’는 ממרא(마므레 4471)입니다. 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강한 하나님을 의지하기 위하여 이곳에 왔던 것입니다. ‘상수리’는 אלון(엘론 436)입니다. 이 단어는 אול(울 193) 권세 있는 자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놀랍습니다.
아브라함은 이곳에 이르러 거주하면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럼 아브라함은 어떠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헤브론 지역에서 하나님과 연합하고, 구속의 은혜를 받아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서 아주 강한 권세 있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하나님을 만나고 그곳에 거주하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생활입니다.
그럼 롯은 소돔으로 가서 어떠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처음에는 새로운 문명에 빠져 정신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롯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소돔 땅에 전쟁이 터진 것입니다. 그래서 롯도 포로로 끌려가고 재산과 가족들도 모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에 빠져 살던 롯은 환란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자신의 집에서 키운 318명의 가병들을 이끌고 가서 조카 롯을 구출해 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입니다. 그러나 롯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생명과 가족과, 재산을 찾아준 것에 대한 아무런 고마움도 표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20여년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한지 얼마 못되어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아마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아 힘든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창 18:1-2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아브라함의 삶은 항상 마므레 상수리나무 밑에서 강한 권세 있는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신앙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사람 셋이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었고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경건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듯이 우리도 항상 하나님 앞에 전능하신 자를 깨닫고 영적으로 열려 있어야 합니다. 기도로 열려있고, 말씀으로 열려 있고, 늘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기다려야 합니다. 한 번 했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꾸준히 영적으로 기다리면 어느 날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고, 복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의 신앙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은 날이 뜨거울 때에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에서 ‘뜨거울 때에’ 라는 단어는 חום(홈 2527)입니다. 이 단어는 חמם(하맘 2552) 뜨거워지다, 열정,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하나님 앞에 뜨겁게 기도하고, 열정을 내면서 영적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늘 정오에 맞추어 기도를 했습니다. 히브리 인들은 아침 9시, 정오, 오후 3시에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때가 정오입니다. 아브라함은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잠깐 장막 문에 앉아 있을 때에 하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영적으로 열려있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을 보고 제일 먼저 물을 가지고 와서 씻게 합니다. 아브라함의 평소 신앙을 알 수 있습니다. 늘 겸손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상대의 발을 씻겨 주는 것은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엄청난 부자입니다. 가병만 해도 318명이면 딸린 가족들만 생각해도 거의 1000명이 되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직접 물을 챙겨 씻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겸손의 왕이신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입니다.
아래 영상을 보시면서 글을 보시면 도움이 됩니다.
창 18:6-8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아브라함은 급히 장막으로 들어가서 밀가루를 가져다가 급하게 떡을 만들고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고 급하게 요리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유와 고기와 떡과 많은 음식들을 풍성하게 차렸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문법에 아브라함은 음식을 준비할 때에 보면, 피엘, 강조능동으로 음식들을 준비합니다. 이것은 온 힘을 다해서, 정성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서, 음식을 대접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평소 신앙입니다. 남을 대접할 때에도 항상 최선을 다해서 대접을 했고, 하나님을 섬길 때에도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이렇게 평소의 신앙을 가지고 살다 보니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너는 자식이 없는데 사라에게 아들이 있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창 18: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아브라함은 롯과 헤어진 다음부터 계속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끊지 않기 위하여 늘 의지하고 영적인 삶을 살고 생활면에서는 최선을 다해 나그네들을 섬기고 도와주고, 대접하였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삶입니다.
신앙 면에서 이렇게 살다 보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숨길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창 18: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하나님은 아무것도 아브라함에게 숨기지 않고 말씀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심판하시겠다는 메시지를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소돔과 고모라 성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너무나 악하고 패역하며, 세상의 쾌락에 빠져있는 곳이기 때문에 멸망을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중보기도 합니다. 소돔 땅의 롯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롯이 자신의 조카인데 멸망당하면 안 되기 때문에 의인과 함께 멸망시킬 수가 없습니다. 의인 10명이라도 있다면 멸망시키지 않겠습니까?라고? 마지막까지 중보기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의인 10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과 신앙입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과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획을 말씀하실 수 있을 때까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20년이 지난 롯의 생활은 어떠한지를 알아보겠습니다.
창 19:1 저녁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던 사람은 세 사람인데 지금은 두 명만 나타났습니다. 그 이유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만나주시고 하늘로 올라가셨고, 두 천사는 소돔을 심판하기 위하여 온 것입니다. 롯도 저녁 시간에 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롯도 영적으로 열리지 않았다면 천사들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천사들을 보고 절하면서 자신의 집으로 영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대접하는 것과 롯이 대접하는 것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창 19:3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롯은 손님을 대접하는데 무교병을 구워서 대접했습니다. 물론 경건한 자들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을 먹습니다. 이것을 보아 롯도 영적으로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신앙생활을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에서 신앙이 묻어나옵니다. 여호와의 사자를 대접하는데 아브라함은 피엘, 강조능동으로 대접을 했는데 롯은 칼, 단순 능동으로 대접을 합니다. 이것은 그냥 대충대충 자신이 먹고 남은 빵을 준비하여 대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 사라와 종들이 함께 최선을 다해 대접을 했는데 롯은 아내도 어디 갔는지 없고, 두 딸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롯 혼자 집에 있는 무교병을 대충 구워서 대접을 하는 모습 속에서 20년 동안 가정이 엉망이고, 가산은 기울어져 그 많던 종들도 모두 사라지고, 가축도 없어지고, 금과 은도 없어져 무교병만 먹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롯은 영적인 것을 선택하지 않고, 세상적인 것을 선택하여 갔을 때에 자신의 선택이 좋았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가세가 많이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악하다고 소문이 난 소돔 땅에 살고 있고 지금은 심판의 위기에 처해져 있다는 것을 롯은 모르고 있습니다. 롯이 그동안 얼마나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하지 않고 세상에만 몰두하면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롯의 신앙은 결국 세상적인 것에 빠져 예배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 20년 동안 살았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결국 불로 심판받는 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창 19:8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롯의 가정이 얼마나 신앙적으로 서지 않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롯은 자기 자신의 집에 들어온 손님을 지키겠다고 두 딸을 팔고 있습니다. 이 뜻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 여자는 하나의 물건처럼 취급을 받았습니다. 여자의 신분은 남자에게는 하나의 소유 개념이었습니다.여자는 어려서는 아버지의 소유가 되고, 결혼해서는 남편의 소유가 되고, 남편이 죽어서는 아들의 소유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이 소돔 땅이 타락한 지를 알 수 있고 롯도 소돔의 문화에 젖어 가정을 믿음으로 세우지 못하고 자신도 믿음으로 서지 못하는 이런 처지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딸들에게 비극적인 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았던 롯의 신앙입니다.
창 19: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그리고 천사가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 성을 불로 심판하기로 작정했으니 네가 아는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롯이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니까? 사위들은 농담으로 알았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평소 롯의 신앙과 믿음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 없는 행동을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농담으로’는 צחק(차하크 6711) 웃다, 비웃다, 라는 뜻입니다. 문법은 피엘, 분사능동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행동은 전혀 믿음 있는 사람의 행동이 아니었기에 사위들은 장인의 말을 믿지 못하고 조롱하며, 비웃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피엘 강조 능동은 사위들이 전혀 롯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조롱하면서 비웃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나와서 예수님 믿는다고 경건한 척만 하고 밖에 나가서는 전혀 믿는 사람의 행동이 아닌, 세상의 사람보다도 더 못한 행동을 한 다면 롯의 사위들처럼 당신이나 잘 하쇼! 라는 말만 듣고 전혀 믿어주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롯의 신앙이 이런 신앙이니 집안 꼴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창 19: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롯의 신앙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롯은 소돔 성을 떠나기를 지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세상의 미련 때문입니다. 부귀영화에 미련이 있기 때문에 지금 죽게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빨리 나가지 않고 자신 스스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지체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지막 날에 롯의 신앙이 되면, 주님이 불로 심판하시는데도 내 집, 내 돈, 내 사업, 내 땅 하면서 결국 죽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오직 천국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창 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롯의 아내는 결국 세상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말씀을 어겨 결국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이 롯의 부인의 소금기둥이 비슷한 것이 사해 근처에 있습니다. 롯이 얼마나 신앙교육을 시키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부인도 절대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고 소돔에 오면서부터는 전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아브라함과 같이 있을 때에는 믿음이라도 있었는데, 그것마저 모두 버린 것입니다. 집안이 영적으로 깨어 훈련을 받고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전혀, 이런 제사는 없고 세상에 파묻혀 2020여 년의 세월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인도 죽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롯과 두 딸이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그런데 굴에서 살게 됩니다. 20년 전에 가지고 온 모든 금과, 은, 가축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집도 없습니다. 평생 마지막을 굴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 딸들이 아버지와 동침하여 아이를 낳게 됩니다. 두 딸들에게 신앙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롯은 신앙 면에서나, 자식 면에서나,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두 딸이 낳은 자식들이 모압과 암몬의 조상들이 되지만 이들은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지금까지도 복을 받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이 20년 후에는 어떻게 되어 있어야 합니까? 롯과 같은 신앙으로 교회만 설렁설렁 나오면서 세상에 마음을 두는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까? 아니면 아브라함처럼 비록 지금은 척박한 땅에서 살듯이 나의 육신적인 생활이 어려워도 영적인 삶으로 주님을 의지하여 살기를 원하십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0년 후의 여러분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 되기를 원하시는지 그러면 지금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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