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창세기 4장 성경 인물 설교말씀] 가인과 아벨의 제사(창4:1-5)

체데크 2020. 3. 1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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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4장 성경 인물 설교말씀 중에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창 4:1-5)

 

4:1-5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우리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서 나의 신앙과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인과 아벨로 끝나라고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접목해 보고 나의 생활에서 말씀대로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출생부터 다르게 나타납니다. 가인은 아담이 스스로 들어가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낳은 자녀가 가인입니다. 그래서 1절에 하와는 득남하였다고 말합니다.

 

4: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하와와 동침하매’ 라는 단어 뒤에 원전에는 את(에트 853)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뜻이 그것 자체, 그일 자체,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글 성경에는 번역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와와 동침한 사건을 지시대명사로 강조합니다. 아담이 하와에게 자신이 능동적으로 스스로 들어간 사건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와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라고 말합니다. ‘말미암아’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את(에트 853)입니다. 이 뜻은 함께, 곁에, ~에게,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인해 결국 영적으로 죽은 삶을 살고 있지만, 하나님 곁에 있기를 원하고 있고, 하나님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서 여호와로 말미암아 가인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득남하였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קנה(카나 7069)입니다. 이 뜻은 돌아오다, 득남하다, 얻다, 만들다, 가지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자신 스스로 1인칭, 단수를 사용하면서 아들을 완벽하게 얻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다시 불순종의 죄들을 회개하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원하고 있고, 다시 하나님과의 언약을 만들기를 바라고 생명과를 가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으로 득남하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그의 열매로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4장 주일설교말씀 나병환자의 규례

 

‘하니라’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אמר(아마르 559)입니다. 이 뜻은 부르다, 인정하다, 아뢰다, 청하다, 선포하다, 생각하다, 외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담은 자신 스스로 하나님께 외쳤습니다. 즉시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부르짖으면서 하나님을 불렀고,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아뢰면서 용서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다시 생각하고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하와는 가인을 낳고 이러한 심정으로 아들을 얻었다고 하나님을 부르는 심정으로 가인을 불렀습니다.

 

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하와가 둘째 아들 아벨을 낳는데 이제는 자신의 생각으로 낳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감동을 주셔서 아벨을 낳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태어난 자녀가 아벨입니다. 구속사적으로 보면 아벨은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형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아벨입니다. 이것은 십자가에서 이스라엘의 형제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도 똑같은 유대인의 손에 의해서 죽었습니다. 아벨은 양을 치던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0:11-12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이것을 볼 때에 아벨은 예수님의 구속사의 그림자입니다. 그래서 아벨의 출생은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사역 능동으로 시켜서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아들은 단순능동으로 사람이 스스로 낳게 됩니다.

 

아벨은 양을 치게 되고 가인은 농사를 짓게 됩니다. 여기에서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이 시대는 농경시대입니다. 보리나, 밀을 재배하여 먹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아벨은 농사를 짓지 않고 양을 키우는 목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농사를 지어야만 먹고살 수가 있습니다. 먹을 양식이 없으면 죽습니다. 처자식도 먹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벨은 양을 치고 있습니다. 양은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가 하나님께서 고기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람이 고기를 언제부터 먹습니까? 홍수심판이 끝난 다음에 고기를 음식으로 주십니다.

 

9:3-4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아벨은 고기를 먹기 위해서 양을 쳤던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양을 쳤습니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양을 쳤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양을 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위해서 양을 쳤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양을 쳤습니까? 아담이 불순종함으로 타락했을 때에 아담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렸습니다.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아담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죽옷을 직접 만들어 입히셨습니다. 가죽옷을 입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를 흘려야 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원시복음이라고 합니다. 구속사적으로 대신 누가 피를 흘려야 살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심으로 죄악 된 인간이 살 것을 말씀합니다. 그것도 스스로 만들어 입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 입혔습니다.

 

[아가서 7장 복음 설교말씀] 성숙된 신랑과 신부의 사랑(아 7:1-13)

아가서 7장 복음 설교말씀은 성숙된 솔로몬 신랑과 술람미 신부의 사랑에 대해서 말씀한다. 예루살렘의 여인들은 성숙한 술람미 신부에 대해서 노래를 부른다. 신랑인 솔로몬 왕도 술람미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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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구원의 역사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아벨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가 피의 제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먹지는 못하지만 하나님께 최고의 것을 드리기 위하여 애써가면서 양을 쳤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것이 안 되는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그런데 아벨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양을 치면서 하나님만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물을 드리고 제사를 기억했습니다.

가인은 어떻습니까? 농사를 짓는 사람입니다. 농사는 자신이 짓는 대로 모두 자신의 소유가 됩니다. 열심히 농사를 짓는 만큼 자신의 열매가 됩니다. 그러니 정신없이 열심히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12:16-21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부자가 자신의 욕심만을 부리면서 살다가 영적인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일에만 사는 부자가 하나님께서 영혼을 거두어 가시면 결국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인의 삶이 이런 삶이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욕심에 싸여 인생을 살았지 영원한 천국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가인이 평소에 살았던 인생입니다.

 

 

위 영상을 보시면 가인과 아벨에 대해서 참고가 됩니다.

 

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세월이 흐른 뒤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여기에 ‘지난’ 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קץ(케츠 7093)입니다. 이 뜻은 끝, 마지막, 종말, 끝날,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열심히 세상에서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며 살다가 하나님의 끝 날이 오고, 마지막 종말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받으십니다. 이것이 결말이 날 때입니다.

‘후에’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היה(하야 1961)입니다. 이 뜻은 치다, 계시다, 만나다, 따르다, 이루다, 얻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즉시로 자신 스스로 능동적으로 열심히 주를 위해 사는 것을 말하고 완전한 삶을 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마지막 때에 주님이 오실 때까지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으로 자신을 치면서 회개하고, 죄를 미워하고, 구원을 얻으면서 사는 인생을 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월이 지난 후에’ 라는 것은 결국 마지막 종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시는데 이것은 결말을 짓는 제사입니다. 그때에 제사를 받으시는 사람이 있고, 받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원 받은 사람은 제사를 받으시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받지를 않습니다.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는 마지막 때에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이때에 우리의 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삶을 세상에서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하나님이 오실 때에 알려주십니다.

 

‘땅’ 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אדמה(아다마 127)입니다. 이 뜻은 흙, 토지, 티끌, 세상, 본향,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가인은 땅에서 나오는 것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땅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저주를 받은 곳입니다. 결국 아무리 좋은 것을 드린다고 해도 진노 받고 저주받은 소산입니다.

 

그리고 흙은 죄지은 자가 머리에 회개하기 위하여 뿌리는 재료입니다. 이렇게 세상에 속한 사람은 티끌처럼 마지막에 날아 가버리는 것이고, 세상에 본향을 두고 사는 사람은 마지막에 심판 받고 죽게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 마음을 두고 사는 인생이 아니라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바로 천국에 본향을 두고 살아야 마지막 날에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히브리어성경 단어 성경공부] 거룩한 자(카도쉬)에 대한 히브리어 의미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으며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백성은 거룩한 자입니다.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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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으로’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פרי(페리 6529)입니다. 이 단어는 전치사를 사용하면서 땅의 저주받은 곳으로부터 열매를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이 뜻은 과실, 산물, 결실, 자손, 행실, 행위, 갚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가지고 온 과실과, 결실들이고, 그 행위와 행실을 그대로 갚아주시게 됩니다. 결국 죄악으로 인한 곳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가 악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가는 것은 모두가 악입니다. 하나님이 받지를 않습니다.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아벨도 시간이 흐른 뒤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벨의 제사는 십자가의 구속의 사건의 제사를 상징합니다. 아벨은 양을 제물로 삼아 드렸습니다. 양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모든 죄를 짓는 자들을 위해서 죽어가는 것이 양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습니다.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고 가신 어린양이었습니다..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였습니다.첫 새끼’는 בכורה(베코라 1062)입니다. 이 뜻은 첫 새끼, 장자의 명분, 처음 난 것,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벨은 가장 귀한 처음 것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열심히 기르고 양육하여 드린 가장 값진 것으로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을 하늘에서 보내시고 장자의 명분으로 처음으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분입니다. 아벨은 이런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이런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 나의 온 마음과 목숨을 다해서 드리는 제사 예수님의 피의 은혜와 공로를 의지하여 드리는 제사 이 제사를 하나님은 받습니다.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 기름은 חלב(헬레브 2459)입니다. 이 뜻은 기름진, 살진, 아름다운,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기름은 가장 좋은 부분이고,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고, 살진 부분입니다. 기름은 감사의 생활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아벨은 가장 값진 인생을 드렸고, 제물을 드렸습니다.

 

우리도 늘 감사의 생활을 하고 우리의 값진 시간을 드리고, 값진 인생을 드려야 합니다. 힘이 넘치는 젊은 때에는 자신의 욕심에 빠져 살다가 죽을 때쯤 되어 하나님께 와서 말년을 드리는 이런 인생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나의 값진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알찬 시간은 자신의 노동과 돈 버는데 시간을 허비하고 자투리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면 안 됩니다.

 

‘제물을 받으셨으나’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שעה(샤아 8159)입니다. 이 뜻은 응시하다, 둘러보다, 눈을 돌리다, 쳐다보다, 앙모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즉시로 제물을 드리는 사람을 보는데, 능동적으로 스스로 완벽하게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해서 드리는 제물을 응시하시고, 둘러보시며, 다른 곳에 마음을 두시다가도 눈을 돌리시고 쳐다보십니다.

 

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은 받지를 않습니다. ‘받지’라는받지’ 단어가 있습니다. 아벨과 똑같은 단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완전히 받지를 않으셨습니다. 가인의 제물을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가인은 분노했습니다. 분하다’는 이 단어는 חרה(하라 2734)입니다. 이 뜻은 분하여하다, 맹렬하다, 성내다, 분노하다, 불평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제사를 받지 않으니 즉시로 분을 내고 불평하고 맹렬하게 성을 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이 제사는 마지막 제사입니다. 다음 기회에 회복할 기회가 전혀 없는 제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들면서 화를 내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고 한다면 다음에 잘 드리자 라고 생각을 하지만 기회가 없다고 생각을 하니 도저히 분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믿음도 마지막 주님 오실 때에는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회복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믿음이 없는 자는 하나님을 욕하고, 주님을 무시하고, 대들고, 분노합니다. 이것이 불신자들의 모습입니다. 가인의 모습이 이와 같은 자들입니다. 교회에 나온 다고 모두가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인처럼 이렇게 제사를 드리면 우리도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벨의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안색이 변하니’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נפל(나팔 5307)입니다. 이 뜻은 죽다, 무너져 내리다, 죽임을 당하다, 쳐 죽이다, 사로잡아가다, 끌려가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심판을 받으니 죽게 되고 죽임을 당하게 되고, 쳐 죽이고 지옥의 불로 사로잡혀가고, 끌려가니 안색이 변하는데 즉시로 완전하게 변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주님을 믿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과 믿음도 늘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벨의 제사가 되도록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매일 의지하고 겸손하게 세상에서 살지만 나의 욕심에 따라 사는 인생이 아니라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드리고 첫 것을 드리고 더 드리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는 삶을 살아야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인색하게 가인처럼 드리면 결국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하고 마지막 날에 제사를 드릴 때에 하나님이 받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에 하나님이 나의 제사를 받지 않으면 나는 지옥의 불로 떨어지고 맙니다. 더 이상 회복할 수 있는 기회도 없고 시간도 없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기름을 평소에 준비해야 합니다. 기름을 매일 같이 준비하지 않으면 주님이 오신 후에는 혼인잔치 집의 문이 닫혀지고 미련한 다섯 처녀가 와서 문을 두드려도 절대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가인의 삶이 아니라 아벨의 삶이되기를 바라고 제사도 아벨의 제사가 하나님께 날마다 드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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