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인물 설교말씀 중에서 아미나답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 족보에 올라있는 아미나답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헌신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런 죄가 없는 분이 죄인을 위해서 생명을 희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희생할 조건도 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주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아미나답의 인물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아미나답 עמינדב(암미나다브 5992) 나의 고귀한 백성
♣ 명제 : 아미나답은 자신의 죽음을 헌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
♣ 목적 : 구원받은 백성들은 십자가에서 헌신하신 주님을 통하여 구원을 얻었다.
마1: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람은 가장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으로 보냄을 받으셨지만 선택받은 백성들로부터 높임을 받고 영광을 받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람이 아들을 낳았는데 아미나답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계보에 람까지는 제대로 순서에 맞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람과 아미나답 사이에는 바로 친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창46:12 유다의 아들 곧 엘과 오난과 셀라와 베레스와 세라니 엘과 오난은 가나안 땅에서 죽었고 베레스의 아들은 헤스론과 하물이요
야곱은 70명의 가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중에 유다의 아들로 베레스의 아들인 헤스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헤스론은 야곱의 70명의 가족 중에 들어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상2:9 헤스론이 낳은 아들은 여라므엘과 람과 글루배라
역대상에 정확하게 헤스론의 낳은 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람은 헤스론이 낳은 차자임에 틀림없습니다. 헤스론은 야곱과 함께 애굽으로 들어갔으며 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던 때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상2:10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으니 나손은 유다 자손의 방백이며
성경은 기록하기를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암미나답이 낳은 나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 애굽하여 광야생활 40년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민1:7 유다 지파에서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요
유다 지파의 족장으로서 광야생활을 하면서 유다 지파를 인솔했던 인물이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입니다.
민2:3 동방 해 돋는 쪽에 진 칠 자는 그 진영별로 유다의 진영의 군기에 속한 자라 유다 자손의 지휘관은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요
나손은 유다 진영의 군기에 속한 자로서 유다 자손의 지휘관입니다. 이 사람이 암미나답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람과 암미나답 사이에는 많은 시간의 공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람과 암미나답은 친 자녀로서 구속사 계보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자손 중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유다 지파의 암미나답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 계보에 집어넣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이렇게 람과 암미나답의 사이에 시간적 공백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람은 애굽의 노예생활의 초기의 사람이며 암미나답은 애굽의 노예생활의 마지막을 나타내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출 애굽하여 구속사 계보에 들어간 사람이 바로 나손이라는 인물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살이했던 우상숭배의 기간을 구속사 계보에서 빼버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출 애굽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미나답’은 עמינדב(암미나다브 5992) 암미나답,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עם(암 5971) 백성, 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는 עמם(아맘 6004) 합치다, 감추다, 깨닫지 못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또한 아미나답은 נדב(나다브 5068) 기쁘다, 드리다, 헌신하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아미나답은 고귀한 백성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속사 계보에 올라간 아미나답도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우리는 아미나답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미 만세전에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감추어 놓으신 복음을 깨닫지 못하던 자들이 때가 되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복음을 깨닫게 되어 하나님의 고귀한 백성들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출6:23 아론은 암미나답의 딸 나손의 누이 엘리세바를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는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낳았으며
암미나답은 자신의 딸 엘리세바를 대제사장의 사역을 맡은 아론에게 주었습니다. 암미나답은 대제사장의 가문과 연결되게 됩니다. 암미나답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처럼 암미나답의 신앙을 엿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전2:7-8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만세 전에 이미 감추어졌던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지혜는 이 세대들의 통치자들이 알지 못하는 지혜입니다. 바로 십자가에서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는 지혜입니다. 만약에 세상의 통치자들이 이 지혜를 알았더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미나답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만세 전에 감추어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는 자들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백성들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택한 백성들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1:26-27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아미나답의 이름 속에 감추어있고 깨닫지 못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비밀입니다. 이 비밀이 나타났는데 성도들에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 비밀의 복음은 아무에게나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자녀로 삼아주신 자에게 나타났는데 바로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합쳐짐으로 영원한 영생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만세 전에 감추어졌던 비밀을 깨달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고 혈통이나 육정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만세 전에 감추었던 복음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께서 화목 제물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아미나답의 이름 속에 즐겁게 헌신하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죄로 인하여 죽었던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화목 제사를 드렸습니다.
롬3:25-26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로 세워주셨습니다. 이 화목 제물이 없었다면 나는 영원한 죽음에 처해졌을 것입니다.
‘화목제물로’는 ιλαστηριον(힐라스테리온 2435) 화목제물, 속죄소,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ιλασκομαι(힐라스코마이 2433) 불쌍히 여기다, 속량하다, 진정시키다, 화해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헌신하심으로 인하여 화목 제물이 되어 주셨는데 이것은 성막과 성전에서 대 속죄일에 민족의 죄를 씻김 받을 때에 피를 뿌리는 속죄소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속죄소 위에서 주님이 피를 뿌려주셔서 선택받은 내가 살아났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속죄소 위에서 죽이신 것은 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었던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피로 죄악에서 사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은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으며 예수님께서 속죄소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미나답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진리는 만세 전에 감추어 두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헌신함으로 인하여 살아났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주님이 나의 화목 제물이 되어 주셨으니 영원토록 하나님과 화해되었고 화평해졌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는 것을 감사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섬기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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