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성경에 나오는 숫자의 의미 13부터 666까지를 알아보겠습니다.
<13> 곧 <열 셋>이란 수사가 나타나는 곳은 아래와 같다.
“7왕들이 12년 동안 그돌라오멜(chedorlaomer)을 섬기다가 제<13>년에 배반했다. (창 14:4)
“이스마엘이 <13>세에 할례를 받았다.” (창 17:25)
“솔로몬이 자기 궁궐을 <13>년 동안 건축했다.” (왕상 7:1)
이상과 같이 <13> 혹은 <13>의 배수는 배반(背反), 반란(反亂), 모반(謀反), ‘반역(反逆: rebellion)’, ‘배교(背敎: apostasy)’, ‘분열(分裂)’, ‘나쁜 전조(前兆: ill omen)’등의 개념과 연관이 있다.
<14> 수는 7의 2배수(7×2=14) 이다.
“거룩한 완전(完全) 양적(量的)인 것”이 강조된다. (창 31:41, 46:22, 민 29:13, 왕상 8:65, 마 1:17)
<15> 수는 3의 5배수 (3×5=15) 이다.
“거룩한 완전(完全), 질적(質的)인 것”이 강조되어 있다. 즉 질적인 완성에 은총을 곱한 것으로 3의 5배이다. (레 23:34, 왕하 20:6. 사 38:5)
<17> 수는 두 완전 수(7+10=17)의 합이다. 이 숫자는 “영적인 완전(spiritual perfection)” 혹은 영적 질서의 완전(perfection of spiritual order)을 뜻한다. “에라토스테네스의 체”의 소수(素數)와 같이 성경의 숫자<17>은 어떤 수의 합이 아니고 나눌 수 없는 불가분의 수(數) 즉 기본 소수(素數)이다. 7개의 기본수는 1, 3, 5, 7. 11. 13, 17이다.
<19> 수는 19는 무의미하게 만들어진 수가 아니다. 19는 10과 9의 조합이며 심판과 연관된 하나님의 질서의 완전함을 나타낸다.
<20> 수는 10의 두 배이며 어떤 경우에는 그것의 농축된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의미는 오히려 21에서 1이 부족한 사실과 연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21-1=20 즉 21이 7의 세배이고 영적완전(7)과 관계하는 것처럼 하나님(3)의 완전하심을 나타낸다면 21에서 하나 부족한 20은 기대하는 것이다.
<20>년을 야곱은 그의 아내와 재산을 소유하기 위해 기다렸다.(창21:38, 41)
<20>년을 이스라엘은 야빈의 압제로부터 구원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삿4:3)
<20>년을 이스라엘은 삼손을 통한 구원을 기다렸다.(삿15:20)
<20>년을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에서 기다렸다.(삼상7:2)
<20>년을 솔로몬은 두 집의 완성을 기다렸다.(왕상9:10, 대하8:1)
<22> 는 11의 두 배이므로 특히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되어 강조된 형태 해체와 분열로 그 수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각각 22년을 통치한 가장 악한 이스라엘 왕들 여로보암(왕상14:20)과 아합(왕상16:29)과 연관되어 있다.
<24> 는 12의 배수이며 24는 하늘의 통치와 경배에 연관된 수이며 이스라엘에 있는 통치와 경배가 지상의 형태에서는 단지 모형일 뿐이다. 모세와 다윗은 모두 하나님의 직접계시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방품 같은 성막과 성전의 경배와 관련된 모든 것을 지시했다. 요한계시록 4장에 우리가 하늘의 24장로에 대해 읽을 때 그들은 단지 읽은 것, 즉 하늘의 경배의 지도자들뿐이라고 추측하는 것일까? 24장로는 하늘의 경배에서 천사의 지도자들이 되게 한다.
<25> 는 은혜의 본질을 의미하고 5×5=25이다. 25는 죄 사함을 받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6> 은 주의 복음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27> 은 신약의 숫자이며 3×3×3=27이다. 삼위가 되시는 하나님이 세 번 합쳐짐으로 완전한 은혜를 의미한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을 통해서 십자가에서 완전한 구원을 이루셨고 재림하심으로 완전한 천국을 이루게 된다. 십계명의 율법과 십자가의 승리를 상징한다.
<28> 은 4×7=28 이므로 4의 의미도 가지고 있고, 7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29> 는 기대의 수 20과 심판의 수 9의 조합이다.
<30> 은 3×10=30이므로 알맞은 순간을 나타내므로 하나님의 질서의 완전함을 한 층 더 높여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 사역을 시작할 때가 나이 30이었다.(눅3:23) 그의 모형인 요셉도 같은 나이였다.(창41:46) 다윗도 30에 통치하기 시작했다.(삼하5:4)
<31> אל(엘)은 하나님의 이름이다. 그리고 수 또는 인수로서의 의미는 신성이다.
<33> 은 약속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수이다.
<39> 는 채찍에 맞는다는 상징을 나타낸 수이다.
<40> 수는 4의 10배수(4×10=40) 이다.
“노아 홍수 때 비가 <40>일간 내렸다” (창 7:4,17)
“노아 홍수 시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고 <40>일이 지나 까마귀를 내보냄” (창 8:6)
“모세는 왕궁에서 <40>년간 애굽의 학술을 배우고 (행 7:23), 미디안 땅에서 <40>년을 나그네로 보낸 후 (행 7:30), 이스라엘 민족을 <40>년간 이끌다가 120세에 죽음 (신 34:7)”
“갈렙이 정탐꾼으로 보내어졌을 때 나이 <40>세 였음” (수 14:7)
“12명의 정탐꾼이 <40>일간 가나안 땅을 정탐함.” (민 13:25)
“이스라엘 백성은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함” (출 16:35, 민 14:33-34, 수 5:6, 행 7:36,42)
“모세가 시내 산에서 <40>일을 지낸 후 십계명을 받음” (출 34:28, 신 9:9,11)
“태형도 <40>을 넘기지 못하게 하심” (신 25:3)
“제사장 엘리가 목이 부러져 죽을 때 사사 된지 <40> 년이었음” (삼상 4:18)
“골리앗이 <40>일을 조석으로 나와 조롱함” (삼상 17:16)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이 <40>년” (대상 29:27)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이 <40>년” (열상 11:42)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해 <40>일간 여행함” (왕상 19:8)
“요나가 니느웨를 향하여 <40>일이 지나면 성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였다.” (욘 3:4)
“에스겔이 우편으로 <40>일간 누워서 유다 족속들의 죄를 담당했다” (겔 4:4-6)
“예수님의 <40>일간 금식” (마 4:2)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간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말씀하셨다.” (행 1:3)
이상과 같이 <40> 수는 ‘시련(試鍊 : trial and testing)’ ‘견습(見習 : apprenticeship)’ 준비(準備 : preparation)의 뜻이 있다.
그리고 <40>의 배수(倍數)로는
<400>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라”(창 15:13)
<4,000>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죽임을 당한 자가 <4,000>명 가량이라” (삼상 4:2)
<40,000> “(수 4:13, 삿 5:8, 삼하 10:18, 왕상 4:26, 대상 12:26) 등이 있다.”
<42> 는 영원한 평화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 세상의 교회에 대한 암시라고 본다. 중세의 성경주석 학자들은 42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시나이로 가면서 머물렀던 마흔 두 처소를 연결시킨다.
또한 42는 부정적으로 심판의 수라고도 본다. 이 세상의 심판자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으로부터 42대째 태어났고, 선지자 엘리사는 자신을 놀리던 아이들 중 42명을 암곰에 의해 죽게 만들었다 (왕하 2:24). 고대 이집트의 ‘사자(死者)의 서’에는 망자들을 처리하는 심판관 42명이 나온다.
성막이동과 예수님의 탄생
모세는 출애굽 이후 시내 산에 세 번째 입산하여 40일간 지내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성막에 대한 식양을 계시 받았다. 모세가 지은 성막은 인간의 설계가 아닌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구속의 계시를 담고 있다.
성막을 만든 치수와 재료 등에는 하나님의 모형적인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성막 맨 앞에 있는 번제단과 제물은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상에서의 속죄를 상징한다. 물의 특징은 정결케 하는 것으로 성막 안에 있던 물두멍은 성도들이 구원받은 후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결케 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성전의 일곱 가지의 등잔은 교회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을 상징하며, 등잔의 기름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등잔 앞의 진설병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으로 이 떡을 먹는 자만이 영원히 살 것을 의미한다.
마흔 두 번의 이동과 42대손 예수
모세의 성막은 그 여정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다. 성막이 지어진 후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간 지내며 수많은 곳으로 옮겨 다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광야를 옮겨 다니는 동안 마흔두번 진을 쳤고(민33:5-49),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길갈에서 마지막 마흔 두 번째 장막을 치면서 노정의 장막 생활을 끝냈고(수4:19) 가나안에서 정착생활을 시작했다. 여기서 제시된 41개 장소는 단순히 지명들의 열거는 아니다. 광야에서 성막의 역사적인 이동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 이후 42대 만에 오실 것에 대한 예표였다.
광야에서 41번을 진을 친 후 가나안에서 마지막 42번째 진을 친 것은 아브라함의 42대인 예수님을 통해 구속사의 여정이 마무리될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으로 예수님의 완전한 구속사역은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이 본래 42대 만에 오셔야 했지만 사람들이 그를 영접하지 못함으로 예수님이 실제로 41대만에 오신 것으로 기록하고, 마지막 42대는 그를 믿는 성도를 통해 마지막 때에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통해서 실현될 것을 암시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한다.
<48> 은 레위인 제사장의 수이며, 성읍의 수이다.
<49> 는 성스러운 수 7의 제곱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이후 제자들에게 성령이 강림하기까지의 기간과 관련이 있다.
<50> 수는 5의 10 배수(5×10)이다. 50은 기쁨과 구원 수이며 성경에는 거의 300회가 나온다.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소돔 성에 의인 <50>인이 있다면 멸하시겠냐고 간청함” (창 19:24)
오순절과 50일간의 숨은 비밀
유대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3대 절기는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이다.(신16:16, 대하8:13) 유월절과 열매의 첫 수확을 기념하는 맥추절 사이에는 신비로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유월절부터 맥추절까지 정확히 50일의 간격을 가지고 있다.
맥추절은 칠칠절, 오순절이라고 한다. 칠칠절은 유월절부터 추수된 첫 열매(보리)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특별한 축제로써 보리 수확을 시작하면서부터 곡식추수가 끝나는 기간이 대략 7주간(7×7)이기 때문이다. 오순절은 유월절 축제이후 50번째 날에 처음 익은 열매의 봉헌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출애굽 후 율법수여까지 50일
‘장자의 죽음이 지나가다’는 뜻을 지닌 유월절과 첫 열매의 수확을 하나님께 바치는 맥추절(오순절) 까지는 50일간의 간격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유월절 이후) 하여 시내 산에서 율법을 수여 받은 날까지 정확히 50일이 된다. 즉 유월절의 시작인 정월 14일부터(레23:5, 민9:5) 50일째 되는 삼월 삼일 시내 산에서 여호와의 강림과 율법수여가 있었다.(출19:1, 11, 16, 출20장 이후)
주후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면서 유대인들은 칠칠절과 시내 산의 율법수여의 날이 결합되었고 이후 오순절은 시내 산에서의 율법 수여를 기념하는 날로 지켜졌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수여받은 날과 소산의 첫 열매를 드리는 맥추절은 동일한 날이다. 이 두 사건은 유월절에 시작하여 50일째 되는 날에 거행되었다.
50일의 숨은 비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날은 유월절이고 약속한 성령강림이 교회에 일어난 것은 오순절(50일째 되는 날)이었다. 원래 성령강림과 맥추절은 같은 날짜이다. 또한 오순절은 언제나 일곱 번째의 안식일 이후(레23:16)인 일요일에 거행되었다.
오순절은 율법 수여의 날과 첫 열매를 드리는 날, 교회의 시작이 일어난 날이다. 50일이란 기간은 이스라엘에게 있어 구원과 관련을 맺으며 죄의 참회와 용서에 대한 우의적인 표현이다. 50은 해방과 구원의 상징인 희년을 연상케 한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고전15:20, 23) 첫 열매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회개운동의 확산이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으로 시작됐다.
<51> 은 하나님의 계시의 수이다. 왜냐하면 24권이 구약이며 27권이 신약이다. 모두 합하여 51권이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조작에 따른 계산이 아니고 사본에서 보인 것처럼 우리의 권위 있는 근거만으로 만든 책들의 하나님의 구별을 포함한 것이다. 유대인과 이교도들의 공상추론은 완전히 다르며 모순되는 수를 만들었다.
<60> 은 교만과 세상적 기쁨을 상징하는 수이다.
<65> 는 13의 배수인(13×5=65) 65는 특히 에브라임과 연관되어 있으며(사7:8) 에브라임지파의 배교를 나타낸다. 삿17장에서 시작된 이 배교는 이후에 에브라임이란 이름으로 흔히 불리어진 열지파의 왕국까지 확장되었다.
<66> 은 우상숭배를 나타내는 수이다.
<70> 수는 7의 10 배수(7×10=70) 이다. 70의 공통 뜻은 보편성을 상징한다.
70은 예루살렘과 연관된 수이다. 유다가 바벨론에 있는 동안 성은 70년 동안 안식하였기 때문이다.(렘35:11)
“대홍수 후 셈과 함과 야벳의 자손들이 <70>인이었다.” (창 10장)
“야곱이 그 후손 <70>인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갔다.” (창 46:27, 출 15:27)
“유대인이 <70>년 간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였다.” (렘 25:11, 29:10)
“모세는 무리들을 인도하기 위해서 <70>인의 장로들을 택하였다.”(민 11:16)
“<70>인이 기뻐 돌아와 예수님께 귀신도 항복함을 보고함” (눅 10:17)
따라서 <70>수는 ‘보편(普遍)’ 수이며 ‘구원(救援)’의 수이다.
<77> 은 영원한 의와 범죄를 끝내는 것을 상징하는 수이다.
<84> 는 천지창조와 신앙과 교회에 관한 구원을 상징하는 수이다.
<100> 은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수이다.
<120> 은 3개의 40으로 형성된다.(3×40=120) 이것을 시간에 적용하면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수련기간을 상징한다.(창6:3) 사람에게 적용하면 기다리는 기간 동안에 나타내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수를 암시한다.(행1:5)
또한 바벨론에서 귀환한 자들의 수는 42,360의 인수이다.(120×353=42,360)
또한 애굽에서 나온 자들의 수 600,000의 인수이다.(120×5000=600,000)
또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서 대 환난 기간을 통하여 흠이 없게 인침 받을 144,000명의 인수이기도 하다.(120×1200=144,000)
<153>이라는 수는 많은 이들을 고심하게 만든 수이다. 요21:11에 소개된 엄숙한 방법으로부터 이 수에 의미가 매우 깊고 신비스러운 것이 있을 것이라고 모든 이들이 느꼈다. 어거스틴은 두 개의 기적적인 어획량이 나오는데 한번은 그리스도의 사역초기에 다른 하나는 부활 후 말기에 나온다. 다른 주석가들은 마지막 하나까지도 특정적이고 한정적으로 세어졌기 때문에 큰 짝수가 아니라 더 작은 홀수 153을 구성하는 이 수에 구원받은 자들과 연관된 어떤 것이 있으리라 보고 있다.
또한 제롬은 그 수에 더 깊은 의미가 있으며 153 종류의 물고기, 즉 복음의 그물에 걸려든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בני האלהים (베니 하엘로힘) “하나님의 아들들”은 일곱 번 나온다.
ב(2)
נ(50)
י(10)
ה(5)
א(1)
ל(30)
ה(5)
י(10)
ם(40)
이렇게 153이라는 것은 실제적인 물고기를 나타내고 있지만 그물 속에 잡힌 물고기는 구원받은 사람의 상징하는 수이다.
<200> 숫자의 의미는 요6:7에 암시하고 있다.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 하리이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것들에 부족으로 나타나 있는 이 수를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200세겔은 죄로부터 구원하기에는 부족한 것이었다.(수7:21) 압살롬의 머리털 무게 200세겔은 그를 구원하기에 불충분하였으며 오히려 그의 파멸의 원인이 되었다.(삼하14:26, 18:9) 이것은 외모의 불충분을 보여준다.
미가의 새긴 우상은 200세겔로 구입하였고(삿17:4, 18장) 이스라엘에 우상소개와 계시록7장의 축복으로부터 단과 에브라임 지파를 삭제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단순한 신앙의 불충분을 보여준다.
에스라의 200 “노래하는 남녀”(스2:65)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평안” 진정한 영적 경배 혹은 주님 안에 기쁨을 낳기에는 불충분하였다. 올바르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말씀만이 이것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느8:5-9) 이것은 하나님의 경배에서 영원한 것의 불충분과 본성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홀로 받으실 진정한 예배는 반드시 영적인 것이어야 한다.(요4:24)
<220, 284> 는 우정수이다.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형 에서와 맞닥뜨리게 된 야곱은 형을 환대하고 그와 화해하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형이 이 화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싸움을 준비하기도 했다. 일단 그는 형에게 화해를 간청하기로 마음먹고 그 조건으로 선물을 보내게 된다. 그는 연속해서 가축 떼를 선물로 보내는데, 이때 그가 처음에 보낸 양과 염소의 무리는 각각 정확하게 220마리였다.(창32장)
<390> 은 13×30=390 이므로 이스라엘의 수이다.(겔4:5), 65(5×13)가 에브라임의 수이고(사7:8), 40(5×8)이 유다의 수이며(겔4:6), 70(7×10)이 예루살렘의 수이다. 연대학적으로 왕국의 분열에서부터 포로생활까지가 390년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분리된 왕국의 존속기간은 에스겔 4장 5절에 언급된 것처럼 390년이다.
<400> 은 (8×50=400) 하나님의 완전한 기간이다.
이삭의 출생으로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의 성취로부터 출애굽까지가 400년 동안의 기간이었다. 스데반은 그 씨로부터 연대를 추정하여 언급하고 있다.(행7:6)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창15:13)을 말씀하신 그 순간부터 연대를 계산하신다. 이것은 흔히 완전히 다른 430년의 기간과 혼동된다.
<430> 은 체류기간의 수이다.
아브라함의 부르심 혹은 부르실 때 그에게 하신 약속(창12:3)으로부터 출애굽까지 430년이다. 이것은 체류 전 기간을 포함한다. 창15:13과 행7:6에서와 같이 아브라함의 씨가 아니라 아브라함 자신의 체류 이것이 약속으로부터 율법까지의 기간으로 갈3:17에 언급된 것이다. 또한 출12:40에도 언급되었다. 여기에서 체류가 동사의 주격인 반면 “애굽에 거주한” 이란 문장은 그들에 관한 중요한 시한을 삽입하여 한정하는 관계절이다.
<490> 은 예루살렘의 수(70)이며 영적 완전수이다.(7)
이것은 7×70=490년이다. 따라서 70의 7배인 수이다. 다니엘은 기도 중이었으며 그는 예레미야가 예언한 70년에 관하여 염려하였다.(단9:2, 렘25:11, 12, 29:10) 그리고 응답은 그 정해진 70년들의 회복과 축복으로 막 끝내려고 하지만 다른 70년의 일곱 배의 기간이 결정되었으며(단9:24-27) 그것은 전자의 70년을 끝내는 그 포고(느2장)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666> 은 이름과(계13:17, 18) 적그리스도와 인간의 교만과 사탄의 수이다.
6은 세속적인 혹은 인간의 수라면 66은 동일한 사실의 강조표현이 되고 666은 농축된 표현이 된다. 그러므로 666은 인간적 완전의 삼위일체, 철저한 불완전,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는 인간적 교만함의 절정과 그리스도를 대적하는데서 나타난다.
666은 악마의 숭배와 관련된 고대 이교도들의 비밀의식의 은밀한 상징이었다. 오늘날에는 이것이 고대의 신비종교들과 강신술, 점신론 등에 그들의 현대적 활동 사이의 은밀한 연결고리가 된다.
옛 앗수르 제국의 존속기간은 바벨론에 의해 정복되기 이전 666년이었다.
예루살렘이 로마제국에 의해 유린당한 기간은 악터움(Actium) 전투, 주전 31년부터 사라센 정복 주후 636년까지 정확히 666년이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공언한 원수로 성경에 나오는 세 사람이 있다. 이들은 각각 그 의미를 놓칠 수 없는 수 6으로 낙인찍혀 있다.
1. 골리앗, 그의 키는 6규빗이고, 그는 6조각의 갑옷을 가졌다. 그의 창날 무게는 철 600세겔이었다.(삼상17:4-7)
2. 느브갓네살, 그가 건립한 우상은 높이가 60규빗이고 폭이 6규빗이며(단3:1) 6종류의 악기로 음악이 연주될 때 절하게 하였다.
3. 적그리스도 그의 수는 666이다. 첫 번째에서는 육체적 강함의 교만과 관련된 하나의 여섯(6)을 알 수 있다.
두 번째에서는 완전한 주권의 교만과 관련된 두 개의 여섯(6)을 알 수 있다.
세 번째에서는 사탄의 인도의 교만과 관련된 세 개의 여섯(6)을 알 수 있다.
솔로몬에게 가져온 금 달란트는 1년에 666이었다.(왕상10:14) 그러나 이런 금권의 완전함은 “헛되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일 뿐이다.(전2:8,11, 딤전6:10)
예수는 888, 주님의 수
소돔은 999, 심판의 수
다메섹은 444, 세상의 수
짐승은 666, 인간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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