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도행전 8장 설교말씀 중에서 큰 기쁨이 있더라는 말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큰 기쁨이 있더라”(행 8:4-8)
♣명제: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임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이다.
♣목적: 우리의 심령에 기쁨이 넘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40일 동안 함께 동행하시다가 때가 되어 하늘로 승천하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오순절 날에 성령이 임하시고 제자들은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의 핍박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그중에 대표인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스데반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그곳에 사울이라는 청년이 대표로 서있었습니다. 스데반이 죽고 난 후에 사울은 의기가 당당하여 나머지 교회를 잔멸 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여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런 내용이 7장과 8장 서론에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핍박을 하더라도 복음은 더 흥왕 할 것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핍박이 올수록 복음은 더 강력하게 전파될 것이며 능력과 표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절대 굽히지 않고 사마리아 성으로 전파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복음이 선포될 때에 사마리아 성에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사마리아 성은 부정한 곳입니다. 구약에서는 이세벨이라는 여인이 우상의 도시로 만들어 버린 곳이고 북이스라엘을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나라로 만들었던 근원지가 사마리아 성입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이 성에 예수님이 직접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우물가에서 여인을 만나 복음을 선포하셨으며 이 여인이 마을로 돌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빌립도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정하다고 생각했고 유대인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장소입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준비가 되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에 갈급함을 가지고 복음을 사모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제자들을 예루살렘에서 흩어지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들도 사마리아 성과 같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모하시고 준비되어 있으면 심령에 큰 기쁨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는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마음에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시고 기쁨이 넘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첫째, 복음의 말씀을 전파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행8: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율법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여 흩어지게 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들이 예루살렘에만 있으려고 하니 하나님은 핍박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게 하신 것입니다. 복음을 가지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흩어져 다른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성령께서 주신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바로 복음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흩어진’ διασπειρω(디아스페이로 1289) 흩어지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δια(디아 1223) ~와 함께, ~ 때문에, 라는 뜻과 σπειρω(스페이로 4687) 심다, 뿌리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복음을 가진 자들이 율법주의자들에 의해 핍박을 받아 그들의 눈을 피하여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핍박을 받아 흩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들과 함께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세상의 어둠의 권세에게 핍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없었다면 이들은 핍박받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가지고 나가서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여 복음의 씨를 뿌리고 이 복음이 심기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흩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들레를 보게 됩니다. 민들레가 때가 되어 꽃이 피고 홀씨가 만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스스로는 떨어지지 않고 날아가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니 민들레 홀씨가 본체에서 떨어져 바람에 몸을 맡기고 떠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이 홀씨는 어디로 갈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바람에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낯선 장소에 홀씨가 떨어지게 됩니다. 이 홀씨가 그곳에서 정착하게 되고 다음 해에 씨가 발아하여 민들레가 되고 다시 이 민들레는 홀씨를 만들어 똑같은 방법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복음의 영역이 확장되어 가는 것도 역사적으로 이렇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가진 나를 세상으로 보내 그곳에서 복음을 심게 하시고 필요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더니 이것이 홀씨가 되어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흩어지지 않으면 절대 복음은 확장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가진 자들이 핍박을 받아 흩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세상의 핍박도 함께 받는 것입니다. 이런 환란이 있다면 나는 복음을 가진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상급도 주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핍박은 내가 받기 싫어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세상의 환란과 핍박도 겸하여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막10: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땅을 버린 자는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도 버린 것보다 더 크게 축복해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겸하여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세에서는 영생을 반드시 받는다고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할새’ ευαγγελιζω(유앙겔리조 2097) 복음을 전하다, 기쁜 소식을 전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사자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쁜 소식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던 자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할 때에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선포할 때가 있었는데 왕이 세워질 때에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을 세울 때에 복음을 선포했고 전쟁에 승리할 때에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현재 제자들은 왕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시고 사탄의 머리를 십자가에서 짓밟으시고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현재 지금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항상 현재입니다. 과거에 끝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것이지만 지금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내일 전할 거야 하면 늦습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얻어야 할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면 전하는 자들에게도 상급이 있습니다.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지금 당장 복음을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사마리아의 부정한 곳에 복음을 선포하니 기적이 나타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행8:5-7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빌립은 핍박을 받아 흩어졌는데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갔습니다.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빌립은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니 사마리아의 성에 있는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빌립의 말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가고 중풍병자와 못 걷는 자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전파하니’ κηρυσσω(케륏소 2784) 전파하다, 가르치다, 전도하다, 라는 뜻입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가서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고 확실하게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가르쳤더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전도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사마리아 성의 사람들을 준비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단어는 설교라는 단어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κηρυγμα(케뤼그마 2782)는 선포하여 설교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십자가 복음을 설교하듯이 선포하여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복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빌립은 복음을 하나하나 쪼개어 확실하게 사마리아 성의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사실이며 이들이 완전하게 복음으로 무장할 때까지 계속해서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말씀대로 계속해서 설교를 해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알아듣기 쉽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따르더라’ προσεχω(프로세코 4337) 주의하다, 따르다, 몰두하다, 받들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προ(프로스 4314) ~을 향하여, 라는 뜻과 εχω(에코 2192) 잉태하다, 알다, 차지하다, 소유하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빌립이 복음을 선포하자 사마리아의 성에 있는 사람들은 빌립의 말씀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세상에서 부정하게 살았던 삶을 주의하면서 다시는 죄악의 길로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몰두하여 최선을 다하고 오직 주님을 받들기 위하여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자들은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방향을 돌린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심령에는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잉태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잉태되어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여 자신의 것으로 취하고 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소유한 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빌립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빌립이 전해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빌립은 설교를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빌립을 우러러보지 않았습니다. 그 설교에 내주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간 것이 확실합니다. 실제로 복음을 따라간 것이며 이 복음을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따라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설교해야 합니까? 우리는 설교를 잘하면 설교자를 따라갈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설교자 때문에 교회에 나간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자는 설교를 할 때에 자신이 나타나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빌립은 절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설교에 빌립이 나타났다면 사람들은 빌립을 따라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빌립이 하는 말을 따라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입니다. 우리들도 복음의 말씀을 따라가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행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사마리아 성에 빌립이 복음을 선포했더니 큰 기쁨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십자가 복음이 이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심령에는 부정한 상태로 살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도 많은 병들이 있었습니다. 자신 스스로 고침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질병을 고쳐주시고 영적으로는 더러운 귀신들을 몰아내 주시니 사마리아 성에 평안이 찾아온 것입니다.
‘있더라’ γινομαι(기노마이 1096) 나타나다, 계시다, 거하다, 라는 뜻입니다. 사마리아 성에는 부정하다고 생각하여 유대인들은 사람으로 취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들어가니 이들은 부정한 자가 아니라 의로운 자가 된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사마리아 성의 사람들에게 놀라운 일이 나타났습니다. 기적과 표적이 나타났으며 병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이 고침을 받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심령에 주님이 항상 계시고 장막을 치듯이 그들이 심령에 거주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거주하시니 기쁨이 넘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의 심령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면 기쁨이 넘치는 것입니다. 화가 나더라도 주님을 기억하고 생각하면서 주님의 평강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마리아 성에 기쁨이 넘친 사실이 실제적으로 있습니다. 그 이유는 빌립의 복음 전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마리아 성에 십자가 복음이 선포될 것이 계획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부정하다가 생각하여 가지도 않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나 이런 기쁨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믿고 의지하고 내 안에 모셔 들였을 때에 나에게 속죄의 기쁨이 넘치게 되며 육체의 질병이 떠나게 되고 영혼의 고통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재 나의 심령의 상태가 사마리아와 같은 척박한 상태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내 자신도 죄인이라고 생각하여 고민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나를 돌아보시고 이미 알고 계시고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의 심령에는 기쁨이 넘치며 좋지 않았던 생각들과 마음들이 하얗게 지워질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의 죄가 아무리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시간 주님은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하찮은 인생이지만 주님은 이미 나를 구원의 계획을 세워놓으시고 이 시간 오셨습니다. 세상의 잘난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비웃고 못났다고 하더라도 주님은 나를 잘났다고 높여주시고 부정하지 않다고 하시며 내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짊어지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육체의 짐과 영혼의 짐을 주님은 십자가에 모두 헐어버리셨습니다. 무거운 짐을 가지고 이제는 고민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나의 모든 육체와 영혼의 짐을 십자가에서 청산해 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짐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미련한 생각입니다.
이제 내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드리시고 십자가 복음의 말씀이 사마리아 성에 들어온 것처럼 내 심령에도 이 시간 스며들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올 한 해는 사마리아 성에 기쁨이 넘친 것처럼 여러분들의 삶에도 기쁨이 넘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을 믿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약성경 원어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넬료 성경인물 설교말씀] “경건한 자 고넬료”(행10:1-8) (0) | 2020.10.06 |
---|---|
[회개 설교말씀] “회개란?”(행11:18) (0) | 2020.10.05 |
[사도행전 10장 설교말씀] “일어나 잡아 먹으라”(행10:9-16) (0) | 2020.10.04 |
[사도행전 5장 설교말씀] “하나님을 속이지 말라”(행5:1-6) (0) | 2020.10.04 |
[요한복음 6장 설교말씀] “무형 교회의 양식”(요6:52-59) (0) | 2020.10.03 |
[요한복음 2장 설교말씀]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요2:13-22) (0) | 2020.10.02 |
[요한복음 세족식 설교말씀]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11) (0) | 2020.10.02 |
[요한복음 19장 설교말씀]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요19:17-22) (0) | 2020.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