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다니엘 4장 새벽 예배 설교] “느부갓네살 왕의 교만과 회개”(단4:28-37)

체데크 2020. 10. 18.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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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다니엘 4장 새벽 예배 설교 중에서 느부갓네살 왕의 교만과 회개의 설교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교만과 회개”(단 4:28-37)

 

명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목적: 느부갓네살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대로 풀어 주었습니다. 아무도 풀지 못하는 꿈을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해석을 주심으로 왕이 꾼 꿈이 무엇인지도 알았고 그 꿈의 해석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계획을 하나님의 뜻을 둔 자에게는 모두 가르쳐 주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심판할 때도 그냥 하시지 않고 물로 심판할 때는 노아에게 가르쳐 주셔서 미리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불 심판은 아브라함에게 가르쳐 주셔서 예고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자녀의 관계가 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고 알게 됩니다. 다니엘도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지 않으면 절대 왕의 꿈을 해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왕이 교만해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아 꿈의 해석대로 짐승 같은 삶을 살고 난 후에 회개하여 다시 회복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28-29)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열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왕궁 지붕에서 거닐새

 

이 모든 일이 다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의 꿈의 해석이 지난 후에 모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왕에게 임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시간은 꿈을 해석한 이후로 열두 달이 지났습니다. 12의 숫자적 의미는 통치적 완전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12달은 하나님께서 완전하게 느부갓네살 왕에게 말씀이 임하여 통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난 후에’ קצת(케차트 7118) 멸하다, 결정하다, 찍다, 쏟아 버리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의 계시를 주시고 회개할 시간을 주셨습니다. 12 달이라는 회개의 시간을 주셨지만 왕은 절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나라는 태평해졌고 부강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때에 항상 교만해집니다. 다윗도 나라가 평안해질 때에 왕궁의 지붕을 거닐다가 밧세바를 강간하게 되었고 느부갓네살 왕도 왕궁의 지붕을 거닐다가 교만하게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심판받기로 결정되어 짐승처럼 살 수밖에 없는 상태로 쏟아짐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회개의 시간을 무시해 버리면 반드시 심판의 날이 오게 됩니다. 나도 하나님께서 회개의 시간을 주실 때에 납작 엎드려 회개해야 합니다.

 

(4:30) 나 왕이 말하여 이르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느부갓네살 왕의 죄는 무엇입니까? 바로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역사가들은 느부갓네살 왕 이전의 세미라미스라는 사람에 의해 바벨론이 건설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느부갓네살이 건설한 것도 아닌데 교만해서 자신이 했던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건설하지도 않은 것을 건설했다고 하면서 자만과 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신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평안하거나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에 교만해져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시고 서있다고 생각하면 넘어질까 두려워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4:31)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느부갓네살 왕의 입에서 자만과 교만의 소리가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왔습니다. 그 음성은 바로 너의 왕위가 너에게서 떠났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세상의 왕도 하나님께서 좌지우지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만해지면 넘어지고 패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 왕도 교만해져 하나님으로부터 왕위를 빼앗기고 결국 전쟁터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교만한 마음은 패망의 선봉이고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봉이요’ פנים(파님 6440) 앞,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교만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의 표본이 되며 얼굴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잡이라는 말씀도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거만한 마음을 가진 자들도 넘어지는 것의 표본의 얼굴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사울과 느부갓네살이 표본이 되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교만하게 말했을 때에 결국 자신의 자리에서 추락하게 된 것입니다. 마음의 변심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어렵고 힘든 시간을 금방 잊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잘되고 평안해질 때에 하나님께 더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을 통하여 교훈을 삼아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4:32)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왕을 사람에게서 쫓겨나게 하시고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인간에게 책망하시고 징계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왕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7은 완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왕이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완전하게 회개의 기간을 주시면서 하나님을 깨달을 때까지 인간이하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들짐승과 소처럼 풀을 먹고 7년 동안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인간이 짐승과 같이 생각이 되어 행동하는 정신병을 말합니다. 이것을 리칸드로피아라는 정신병입니다. 이 병은 자신이 여우로 생각하여 여우처럼 행동을 합니다. 소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소처럼 풀을 뜯어먹으면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왕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7년 동안 이 정신질환에 걸려 행동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겸손한 자는 높여주시게 됩니다.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하나님께서 겸손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겸손하니 와서 배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겸손입니다. ‘겸손’ ענוה(아나바 6038) 수고하다, 욕보이다, 상하다, 괴로움 받다, 라는 뜻입니다. 겸손은 남을 위해 수고하고 대신 욕보이며 상처를 받아도 복수하지 않고 남의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나에게 이렇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겸손하니 자신에게 와서 배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만 낮춘다고 겸손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처럼 남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이런 행동이 바로 겸손입니다. 주님은 나에게 이런 겸손의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런 겸손을 가르쳐 주기 위해 7년 동안 동물과 같은 정신질환자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4:33)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느부갓네살 왕은 사람에게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왕위에서 쫓겨나 소처럼 풀을 먹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라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으며 손톱은 새 발톱처럼 자라도 자신이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 이하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제는 바벨론 강대국의 최고의 자리에서 호령했던 사람이 오늘은 갑자기 동물처럼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현재 내가 잘되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지 내가 능력이 있어서 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34)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이를 찬양하고 경배하였나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7년이라는 시간이 찼습니다. 이때에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신병에서 놓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기한이 차매’ קצת(케차트 7118) 결정하다, 빼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심판의 시간에서 왕을 빼내 주시기로 결정하신 것입니다. 정신병에 걸려 인간이하의 삶을 살면서 고통당하고 있던 왕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이것도 이제 완전하게 정신병에서 끝이 났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왕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나온 행동이 감사와 찬양과 경배였습니다. 이 감사와 찬양과 경배는 느부갓네살 왕이 온 마음을 다해 더 이상 하지 못할 정도의 힘을 다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고 찬양하며 경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우리도 느부갓네살 왕처럼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잘 깨닫지 못하다가 고난과 환란을 당한 후에 회개하고 하나님께 온전하게 감사와 찬양을 하면서 경배하게 됩니다. 인간이 너무나 미련하기 때문입니다. 시련이 오지 않으면 인간의 죄성이 자꾸 나타나게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배신하게 됩니다.

 

(4:35)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대에게든지 땅의 사람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고 할 자가 아무도 없도다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깨닫게 됩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없는 것 같이 여긴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늘의 군대든지 땅의 사람이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신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최고의 왕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혼합된 종교의 나라의 왕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종교를 타파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벨론의 신 마르둑을 무찌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바벨론을 이길 만한 나라는 현재 없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을 무너트린 것은 바로 세상의 종교를 무너트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천 하지에 온전하고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는 사건이며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이끌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4:36) 그 때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의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찾아오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받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고백한 후에 정신병에서 놓임을 받고 총명이 다시 돌아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나라의 영광과 위엄과 광명이 자신에게로 돌아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완전한 회복을 말합니다. 이렇게 사람 구실을 하게 되니 신하들이 왕에게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사람에게 쫓겨났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왕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세움을 받고’ תקן(테칸 8627) 정돈되어 있다, 제자리가 잡혀있다, 세움을 받다, 라는 뜻입니다.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왕위에서 쫓겨남을 받았는데 7년 동안 징계를 받고 회개하여 하나님을 인정하니 다시 모든 삶을 정돈하여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었고 왕위에 다시 세움을 받아 바벨론 제국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시킴이 아니면 절대 왕위에 오를 수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이 왕위에 세워진 것은 더 이상 인간이 쫓아내지 못할 정도로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세워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면 인간들이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4:37)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경배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라

 

느부갓네살 왕은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사람인데 이제는 하늘의 왕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분을 칭송하며 경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배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경배입니다. 환란이 사람을 만든 것입니다. 회개하라고 환란 없이 회개의 기간을 주었을 때는 자만하고 교만해서 회개하지 않았는데 고통의 시간을 겪고 나니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으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자만과 교만의 안경을 쓰고 있으면 절대 하나님을 만나거나 볼 수가 없습니다. 안경을 벗기 전에는 주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자만과 교만의 안경이 언제 벗어집니까? 바로 고난의 풀무 속에 들어갈 때에 벗겨지는 것입니다. 고난의 풀무에서 고통을 당할 때에 주님은 만나주시고 건져내주십니다. 그리고 고난 가운데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48: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하나님께서도 연단하였지만 은처럼 하지 않고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재 내가 고난의 풀무에 있다면 회개의 시간을 주시는 것이며 하나님을 만나는 기간입니다. 오늘 느부갓네살 왕을 통하여 배울 교훈은 교만해지면 낮아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원래의 자리로 올려주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멸망시키려고 고난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인정하라고 환란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환란은 연단입니다. 더 새로운 존재로 만들기 위해 환란의 풀무에 집어넣는 것입니다. 금덩이가 있어도 풀무에 들어가지 않으면 새로운 아름다운 반지나 목걸이로 변하지 않습니다. 금과 돌로 섞여있으면 사람들이 찾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불에 들어가면 새로운 존재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귀중하게 되는 존재로 바뀌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교만하거나 자만에 빠지면 하나님은 나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교만을 뽑기 위해 고난의 풀무에 잠시 넣었다가 빼내서 완전히 다른 회개의 사람으로 만들어 겸손하게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내가 현재 고난의 풀무에 있다면 감사하면서 주님이 풀어주실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항상 기간이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도 7년이라는 기간이 있었습니다. 이 기간이 차면 하나님은 풀무에서 놓아주실 것입니다. 이 시간 주님만을 기억하면서 어렵고 힘든 시기가 왔더라도 풀어주실 주님을 기억하면서 힘차게 달려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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