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다니엘 3장 설교 말씀 중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라는 주제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단 3:8-18)
♣명제: 느부갓네살 왕의 명령에도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 믿음의 절개
♣목적: 나도 죽음 앞에서 주님을 버리지 않는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느부갓네살 왕은 금 신상을 만들어 놓고 모든 사람들이 우상 앞에 절을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만약에 우상 앞에 절을 하지 않으면 뜨거운 풀무 불에 넣으라고 했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신앙을 지켜나가기가 너무나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지 않은 대가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참소하고 죽이기 위해 바벨론 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결국 사탄 앞에 절을 해야 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항상 십자가의 보혈을 기억하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을 굳세게 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느부갓네살 왕이 만들어 놓은 우상 앞에 절을 하지 않는 사실을 갈대아 사람들이 참소하여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왕이 명령하기를 우상에게 절을 하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풀무 불에 집어넣어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입니다. 자신이 섬기고 왔던 여호와 하나님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따랐던 신앙을 가지고 죽기로 각오하고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육체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영혼을 죽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사람들은 몸은 죽일 수 있지만 영혼은 죽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친구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신앙을 가지고 우상에게 절하지 않은 것입니다. 나는 현재 누구를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세상에서 육체의 안락을 위해 하나님을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아니면 육체의 고통이 있다 하더라고 오직 주님을 따라가는 신앙을 가지고 주님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이 두려움은 무서워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단 3:8) 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니라
바벨론 사람이 왕에게 나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갈대아 사람들은 유다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왕이 명령한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고 자신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기회를 보다가 왕에게 나온 것입니다.
‘참소하니라’ אכל(아칼 399) 참소하다, 먹다, 삼키다, 멸절하다, 맹렬하다, 라는 뜻입니다. 갈대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보면서 화가 맹렬하게 났습니다. 타국에서 포로로 끌려와 자신의 나라에서 자리를 잡아가며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바벨론에서 죽이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기회가 온 것입니다. 우상 앞에 절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왕에게 참소하려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왕에게 나와 유대인들의 잘못을 말하려고 합니다. 이 행동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마음을 굳건하게 먹은 행동입니다. 유대인들을 싫어하는 갈대인 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이 왕에게 가는 것입니다. 여호와 신앙을 지키며 살아왔던 유대인들에게 큰 영적 시련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단 3:9-10) 그들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르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왕이여 왕이 명령을 내리사 모든 사람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엎드려 금 신상에게 절할 것이라
갈대아 인들이 왕에게 찾아가 먼저 왕이 명령한 것을 기억나게 합니다. 우상에게 절하라고 했던 것을 깨우쳐 주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이라고 했던 것을 갈대아 인들은 왕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을 참소하기 위한 작전입니다. 사탄은 항상 참소할 때에 약점을 가지고 말합니다. 신앙의 약점을 잡아서 죄인으로 참소하여 결국 죽게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는 절대 사탄에게 신앙의 약점을 잡혀서는 안 되는데 오늘 다니엘의 세 친구는 신앙의 약점이 아니라 굳은 신앙의 절개 때문에 시련이 오게 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명령하기를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모든 악기를 불 때에 소리가 들리면 엎드려 금 신상에게 절을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원래 악기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최초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우상을 섬길 때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수금을 타면서 하나님을 찬양했고 수금을 탈 때에 악한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엎드려’ נפל(네팔 5308) 엎드리다, 죽임을 당하다, 굴욕을 당하다, 패망하다, 라는 뜻입니다. 왕은 우상에게 절하라고 했는데 여호와 신앙을 가지고 우상에게 절하는 사람은 결국 영적으로 죽임을 당하고 하나님께서 굴욕을 당하게 되며 영원히 패망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상에게 절하면 육신적인 죽음은 당하지 않고 바벨론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가 있습니다. 우상에게 엎드리는데 끝까지 엎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다해서 우상에게 엎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주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믿고 따르면 영혼의 복을 받고 천국에서 상급을 받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고통과 고난이 나를 따라다닐 것입니다.
‘절할 것이라’ סגד(세기드 5457) 엎드리다, 굴복하다, 라는 뜻입니다. 우상에게 완전하게 복종하고 엎드려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신앙을 잃어버리면 결국 우상에게 절하여 복종하게 됩니다. 자신 스스로 끝까지 우상을 섬기는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을 가지고 우상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렇게 교묘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을 지키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계략입니다. 주님을 버리고 지옥의 불 못으로 가라고 나에게 접근하여 사탄의 우상을 섬기라고 합니다.
(단 3:11-12)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갈대아 사람들은 왕이 내린 명령을 가지고 유다 사람들을 고소하고 있습니다.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풀무 불에 집어넣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세운 사람인데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갈대아 사람들은 유다 인들이 잘되는 것이 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고소할 거리를 찾고 있었는데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것을 알고 죽이기로 마음을 먹고 왕에게 고발하고 있습니다.
‘맹렬히’ יקד(예카드 3345) 타다, 태우다, 불을 붙이다, 라는 뜻입니다. 풀무 불은 작은 불이 아닙니다. 엄청나게 뜨거운 불이며 이곳에 들어가면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불을 붙여놓은 것입니다. 이 불은 이글이글 타는 불꽃이 나오고 시뻘겋게 불꽃이 살아서 무엇이든지 들어오면 잡아먹을 기세로 불꽃이 강렬합니다. 이런 불은 다른 불과 달라서 우상 앞에 절을 하지 않는 자들을 죽이기로 만들어 놓은 불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이런 풀무 불을 보고도 여호와를 믿는 신앙을 버리지 않았고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엄청난 불꽃이 자신들을 집어삼키려고 하는 것을 보았는데도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나가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육체의 죽음을 두려워하여 주님을 배신하고 우상에게 절하여 나의 신앙을 버린다면 결국 육체는 살지 모르지만 영혼은 죽습니다. 우리는 나의 영혼을 살리시는 주님을 끝까지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이 온다고 해도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붙잡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רמה(레마 7412) 던지다, 던져 넣다, 라는 뜻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명령하여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풀무 불에 집어넣으라고 직접 명령했는데 이 명령은 모두 우상에게 절할 때까지 시행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에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끝까지 뿌리를 뽑아 바벨론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우상을 섬길 수 있도록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이 명령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주님을 향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왕이 세워’ מנא(메나 4483) 명령하다, 세우다, 지정하다, 라는 뜻입니다. 왕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에게 명령하여 바벨론의 공직자로 세워서 바벨론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왕은 바벨론의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력하게 명령을 내려 유다 인들을 바벨론의 공직자로 채용했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하지 못하도록 완전하게 명령했기 때문에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바벨론의 신하들이 유대인들이 공직자가 된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유대인들이 왕이 내린 조서를 어기고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왕에게 찾아와 공직에 있는 자들이 왕이 내린 조서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직에 있는 자들이 신앙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주님을 믿고 따라갈 때에 많은 사람들에게 핍박과 환난을 당할 수 있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일도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우리는 힘과 능력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신앙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단 3:13-14)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고 분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라 말하매 드디어 그 사람들을 왕의 앞으로 끌어온지라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이르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한다 하니 사실이냐
느부갓네살 왕은 화가 났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공직에 임명했는데 감히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금 신상에 절을 하지 않으며 자신이 섬기고 있는 신을 섬기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친구들을 끌고 오라고 했던 것입니다. 갈대아 신하들이 하는 말이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제 세 친구들은 죽을 운명에 처해지고 있습니다. 왕 앞에 갔다는 것은 모든 일들이 밝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왕 앞에 당당하게 서있습니다.
(단 3:15-16) 이제라도 너희가 준비하였다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이겠느냐 하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느부갓네살 왕은 세 친구들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줍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맹렬하게 타는 풀무 불에 집어넣지 않고 살려주겠다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빨리 여호와 신을 버리고 우상에게 절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풀무 불에서 건져낼 신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말 한마디에 생사가 달려있는 것을 말합니다. 왕은 자신이 신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내 말을 들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절대 왕의 명령에 굴복하지 않고 우상에게 절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명령이 풀무 불에 넣으라고 해도 우리들은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분께서 자신들을 지켜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שזב(셰자브 7804) 구원하다, 건져내다, 해방시키다, 라는 뜻입니다. 왕은 나의 손에서 그 누가 너희들을 풀무 불에서 건져낼 수 있다는 말이냐! 이 나라에서는 내가 왕이기 때문에 내 말에 복종하지 않으면 절대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왕은 교만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권력만 믿고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풀무 불에서 건져낼 신은 이 세상에 절대 없다고 왕은 믿고 있습니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자신의 힘과 권세만 믿고 교만하게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힘만 의지하게 됩니다. 오늘 느부갓네살 왕도 자신이 바벨론의 최고의 통치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가지고 자신만만해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 3:17-18)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세 친구들의 믿음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죽음 앞에 서있어도 여호와 신앙을 버리지 않고 왕 앞에서 당당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맹렬한 풀무 불에서 건져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 주셔서 살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금 신상에게 우리는 절을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것이 신앙인들의 믿음의 지조입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단호하게 우상을 섬기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주님께서 주신 믿음입니다.
‘건져내시리이다’ שזב(셰자브 7804) 구원하다, 건져내다, 해방시키다, 라는 뜻입니다. 세 친구들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자신들을 풀무에서 구원하시고 건져내 주셔서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실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섬겼던 여호와 하나님께서 한 번도 자신들을 배신하지 않고 식언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은 끝까지 완전하게 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풀무에서 한 번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붙잡아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육체를 풀무에서 구원해 주시기도 하지만 영혼을 죄악에서 구원시켜 해방시켜 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악들을 깨끗하게 씻겨주시고 죄에서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 친구들은 왕에게 확신 있게 말합니다. 왕이 아무리 강요하여 우상에게 절하라고 해도 우리는 절대 절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왕은 알라고 직접적으로 말합니다. 이런 담대함은 바로 주님을 믿는 신앙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보통 용기가 아닙니다. 자신이 왕의 명령에 의해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왕에게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주님 안에 확고한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는 어떻게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바벨론 나라에서 어느 정도 권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통치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선택했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죽음을 택했습니다. 나는 어떤 것을 선택할 것입니까? 세상의 부귀영화입니까? 아니면 주님입니까?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세상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영혼을 생각한다면 주님을 선택할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상 앞에 절하지 않은 세 친구들의 모습처럼 나에게 이런 상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잠시 잠깐 육체의 쾌락을 위해 사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여 영원히 천국에서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사탄은 지금도 나를 흔들어 세상 왕에게 복종하게 만듭니다. 바로 인간을 높이는 우상에게 절하게 하고 하나님보다 더 섬기게 만들며 사랑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때에 과감하게 우상을 버리고 주님을 선택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나의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이 시간 모두 버리고 주님을 선택하여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약성경 원어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니엘 4장 새벽 예배 설교] “느부갓네살 왕의 교만과 회개”(단4:28-37) (0) | 2020.10.18 |
---|---|
[다니엘 4장 새벽 예배 설교] “다니엘의 꿈 해석”(단4:19-27) (0) | 2020.10.18 |
[새벽 예배 10분 설교문] “평안할 때 찾아오는 인간의 교만”(단4:1-18) (0) | 2020.10.14 |
[다니엘 3장 설교말씀] 풀무의 고난 속에 함께하시는 주님(단 3:19-30) (0) | 2020.10.14 |
[사무엘하 15장 설교말씀] 압살롬과 잇대의 신앙 비교(삼하15:10; 19) (0) | 2020.10.03 |
[히브리어 신약성경 원문 다운로드] 마태복음 1:1 ~3절 (0) | 2020.10.01 |
[이사야 60장 새벽예배 설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사 60 : 1-9) (0) | 2020.10.01 |
[구약 성경인물 설교말씀] 나단 - 왕의 과실 비판 (0) | 2020.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