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다니엘 3장 설교말씀] 풀무의 고난 속에 함께하시는 주님(단 3:19-30)

체데크 2020. 10. 1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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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다니엘 3장 설교말씀 중에서 풀무의 고난 속에 함께하시는 주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풀무의 고난 속에 함께하시는 주님”(단 3:19-30)

 

명제: 풀무 앞에 선 죽음을 각오한 신앙을 통해 주님은 함께 하신다.

목적: 나는 어떤 풀무 앞에 서서 일사각오의 신앙을 지키고 있는가?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에 들어갈 줄 알면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죽음의 풀무 앞에서도 절대 세상의 왕에게 굴복하지 않고 당당했습니다. 나는 세상의 어떠한 풀무 앞에 서있습니까? 물질의 어려움입니까? 육신의 질병입니까? 아니면 영적인 환란의 풀무 앞에 서 있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육신의 풀무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지는 않고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 다니엘의 세 친구를 통해서 나의 믿음을 되새겨 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명령하기를 다시 한번 우상에게 절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풀무에 집어넣지 않으려고 절을 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기회를 버리고 절대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풀무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왕은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자신이 기회를 주었는데도 자신의 말에 복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19)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가득하여’ מלא(멜라 4391) 가득하다, 충만하다, 채워지다, 라는 뜻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세 친구들의 행동에 너무나 화가 나서 얼굴에 충만하게 나타났고 분노가 마음에 가득 채워져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왕의 분노는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행동에 의해 분노가 자신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이 분노는 참기 힘들 정도로 화가 나온 것입니다. 이 분노 때문에 얼굴빛이 바뀌고 신하에게 명령하기를 풀무 불을 뜨겁게 하여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칠 배나’ שבעה(시브아 7655) 일곱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בע(샤바 7650) 맹세하다, 서원하다, 맹세시키다, 라는 뜻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평소보다 더 화가 많이 났습니다. 금 신상을 섬기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자신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는 것은 절대 풀무에 들어가서 살아 나오지 못하도록 신하들과 맹세하는 것이고 자신의 신과 서원하는 것이며 너희들은 절대 이 풀무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보여주기 위해서 맹세시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서는 왕의 명령을 어기면 이렇게 풀무에 들어가서 죽는다는 것을 알리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3:20)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

왕은 군대의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풀무에 집어넣으라고 합니다. ‘결박하여’ כפת(케파트 3729) 결박하다, 결박되다, 라는 뜻입니다. 왕의 명령을 받은 용사들은 세 친구들을 결박하여 완전하게 묶었습니다. 이 묶음은 절대 풀려나지 못하도록 완전히 꽁꽁 묶어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묶어 버렸습니다. 도망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하게 묶었습니다. 이렇게 묶인 것은 많은 사람들의 본보기를 위해서 묶인 것입니다.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자는 이렇게 묶여 풀무에 들어가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세 친구들은 숙연하게 자신이 묶임을 당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풀무에서 건져주실 주님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 친구들의 신앙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정말 고난의 풀무에서 신앙을 버리지 않고 주님을 향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까? 이 믿음이 나에게 있다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48: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하나님께서는 나를 연단하시는데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 연단하시고 선택하셔서 주님의 뜻에 합당한 자녀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나에게 인생의 약이 되며 신앙의 길잡이가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도 풀무에 들어가지만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여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3:21)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이들은 입은 그대로 풀무에 던져졌습니다. 평소보다 칠 배나 뜨거운 풀무에 들어가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마음은 어떠한 마음일까요? 죽기를 각오했기 때문에 부활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죽기로 각오한 자는 부활을 소망하게 됩니다. 내가 죽으면 끝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3:22-23)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

왕은 강하게 명령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풀무에 집어넣으라고 했습니다. 용사들은 뜨거운 용광로 같은 풀무에 접근하기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왕의 명령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에 거역할 수 없어 이들을 붙잡고 풀무에 가까이 갈 때에 용사들을 태워 죽였습니다. ‘태워 죽였고’ קטל(케탈 6992) 죽이다, 죽임을 당하다, 라는 뜻입니다. 세 친구들을 풀무에 집어넣으려고 갔던 용사들이 뜨거운 풀무 불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멀쩡한데 풀무 근처에 갔던 자들이 죽은 것입니다. 이들은 완전하게 타 죽었습니다. 다시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죽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3: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죽이려고 했던 왕이 깜짝 놀랐습니다. 풀무 불에 결박하여 집어넣은 사람은 세 사람이었는데 그곳에 한 명이 더 보이기 때문입니다. 세 사람을 완전하게 결박하여 절대 풀지 못하도록 묶었는데 풀무 속에는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넷째 모양은 바로 신들의 아들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는데’ הלך(할라크 1981) 동행하다, 돌아다니다, 걸어가다, 라는 뜻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풀무 불 속에서 죽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보호하심에 의해 풀무에서 자유 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불 속을 돌아다니며 걷게 됩니다. 너무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엄청나게 뜨거운 풀무 속에서 주님은 함께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나의 고난의 풀무 속에서도 주님은 함께 동행하고 있습니다. 이 동행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동행입니다. 물질의 풀무에 빠져 고통당하고 있을 때 주님은 함께 하셔서 경제의 풀무에서 건져내주시고 질병의 풀무에 있다면 질병의 고통에서 해방되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풀무 한가운데 주님은 거닐고 있습니다. 바로 내가 가장 힘들다고 할 때에 주님은 나와 함께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알고 깨닫고 보고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손길이 보호하시며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도 알고 있습니다.

(3:26-27)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느부갓네살 왕은 당황했습니다. 신의 아들의 형상을 가진 바로 주님께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뜨거운 풀무 속에서도 아무 해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왕은 이들을 불러냈습니다. 바벨론의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이들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고발했던 자들입니다. 이들은 죽은 줄만 알았는데 죽지 않고 해함 받지도 않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않았고 불탄 냄새도 전혀 없었습니다.

‘모여’ כנש(카나쉬 3673) 숨다, 모으다, 가리다, 라는 뜻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풀무에서 살아 나오자 당황한 사람들은 바로 고발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서로 모여 자신들의 잘못을 숨기기에 바빴습니다. 그 이유가 왕에게 자신들이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마음이 불안한 상태에 있습니다. 오금이 저리도록 마음이 답답합니다. 세 친구들이 풀무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당당했던 자들입니다. 과감하게 왕에게 고발했고 자신들의 직위를 걸고 풀무에 넣어야 된다고 간청까지 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보호하심으로 세 친구들을 죽이려고 했던 자들의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이들을 엄습하고 있습니다. 죽을 운명이 자신들에게 처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악한 자들이 죽이려고 할 때에 결국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입니다. 내가 원수를 갚지 않아도 주님이 대신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오직 주님만 믿고 나가면 주님께서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을리지’ חרך(하라크 2761) 불타다, 까맣게 타다, 라는 뜻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절대 까맣게 불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풀무 속에 들어감으로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절대 타지 않음으로 원래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불에 들어가면 뼈도 추리지 못할 정도로 완전하게 녹아 없어질 것인데 원래 상태로 회복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고 마음도 전혀 상처 받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더 큰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개인적으로 이런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도 인생의 고난의 풀무에서 죽을 것 같아도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고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계기가 됩니다. 인생의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벧전 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로 하여금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불과 같은 고난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나를 연단하는 것이며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고난을 통해서 믿음을 더 견고하게 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받는 고난을 이제는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주시는 상급과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3:28)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이르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풀무에서 살아난 것을 보고 하나님을 찬송한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왕의 명령을 완전히 거부하여 신상에게 절하지 않았는데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않았는데 이 하나님께서 이들을 구원하셨다고 왕은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하셨도다’ שזב(셰자브 7804) 자유롭게 하다, 해방시키다, 건져내다, 라는 뜻입니다. 왕은 말하기를 오직 하나님께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풀무에서 자유롭게 하여 건져내어 해방시켜주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구원은 완전한 구원입니다. 이들의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보호해 주신 구원입니다. 육신이 절대 해함 받지 못하게 구원해 주신 것을 말합니다. 이 도움은 바로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며 많은 바벨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그들 앞에서 구원하여 자유롭게 해 주신 것입니다. 나도 고난의 풀무에서 많은 세상 사람들 앞에서 기적의 놀라운 일들을 체험하게 하실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개인적으로 고난의 풀무에서 은혜를 주신 것처럼 나도 내가 당하고 있는 고난에서 건져내어 자유롭게 하시고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3: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바벨론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굳건하게 믿고 섬기게 되니 결국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에서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바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진 것입니다. 왕은 조서를 내려 하나님을 함부로 욕하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욕보이는 자는 거름터로 삼는다고 조서를 내렸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이 일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면 하나님은 너무 기뻐하실 것입니다. 왕은 풀무에서 나온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바벨론에서 더욱 높였습니다. 이들을 고발했던 자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믿음을 견고하게 지키고 갔던 이들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만천하에 높이게 되었고 하나님은 이들에게 복을 주셔서 세상에서 이름이 높아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고난에서도 죽기를 각오하고 주님을 섬기면서 나가면 주님은 반드시 고난의 풀무에서 건져내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상 앞에 절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절대 믿음을 버리지 않고 주님을 섬기며 나가니 주님의 이름이 만천하에 높여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바로 나를 통해 이런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믿음을 통해서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풀무 앞에서도 절대 굴복하지 않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생각하면서 나의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나도 이런 상황에서 육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여 죽기를 각오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오늘 이 시간 나에게도 일사각오의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순교도 내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바로 주님의 권능 안에서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고난의 풀무에 고통당하고 있다면 주님이 고통의 가장 극적인 순간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 신앙을 버리지 말고 오직 주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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