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누가복음 24장 설교문 중에서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눅:24:36-43)
♠명제: 예수님은 영의 부활이 아니라 육신의 부활이다.
♠목적: 우리의 믿음은 반드시 확인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들어가는 말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꼭 부활 주일만 기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매 주일 기쁨으로 주님께 부활의 주님을 기념하여 예배를 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않고, 직접 눈으로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저히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이 살아난 것을 확실하게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게 됩니다.
성경은 과학적으로 쓰인 책이 아닙니다. 영으로 쓰인 책이며 성령의 감동으로 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이 없이는 성경을 해석할 수 없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야기도 인간적인 머리로는 절대 믿어지지 않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어야 믿어집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늘 나의 구주가 될 때에 우리는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믿지는 않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보고, 들음으로 믿습니다.
(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직접 증명해 주고 계십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된 것이 모두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집약된 것이 바로 부활이라고 증거 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사건을 통해서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구원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동안 있다가 살아난 것도 예수님을 증명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에서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살아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율법에서는 유월절 어린양이 죽고 살아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예수님으로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내가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사실을 믿지는 못했습니다.
(막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제자들은 아직 당하지 않은 일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믿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을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아직 미래의 일들이기 때문에 믿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부활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부활의 사건이 진짜 일어난 나의 사건으로 믿을 때에 우리에게도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축복해 주십니다.
(눅 24: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하지만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을 직접 목격하였고, 돌무덤에 묻어 장례를 치렀기 때문입니다.
“그들 가운데 서서” ίστημι(히스테미)입니다. 서다, 세우다, 멈추다, 무게를 달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말하고 있는 그곳에 이미 계속적으로 서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삶 속에도 이미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이 계신 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그곳에서 함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 속에 힘들고 어려움이 있을 때에 주님은 나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님이 계신 것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눅 24: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평강의 복을 선포할 때에 제자들은 무척 놀랐습니다. 그 이유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모습으로 예수님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어떤 제자들은 무서워 떠는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예수님이 살아서 자신들의 앞에 나타나니 두려웠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생각하기를 예수님이 영으로 자신들 앞에 나타난 줄 알았습니다. 귀신처럼 예수님이 나타난 줄 알고 두려워 떨었던 것입니다.
“무서워하여”는 εμφοβος(엠포보스)입니다. 무서워하는, 두려워하는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정말 무서워 벌벌 떠는 것을 의미합니다.
(눅 24: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눅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직접 자신에 대해서 증명해 주시고 있습니다. 현재 제자들의 모습은 귀신을 본 것처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모습을 아시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주님이 직접 증명해 주십니다.
“의심이”는 διαλογισμος(디알로기스모스)입니다. 심사숙고, 추론, 생각이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마음에 심사숙고하며 생각하고 추론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판단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생각대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그것이 믿음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이 만들어낸 믿음 신념이라고 합니다. 신념은 주님이 주시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직접 손과 발을 보여주시면서 믿으라고 명령을 하십니다.
“보라”는 ειδω(에이도)입니다. 경험하다, 알다, 보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을 직접 보고 경험하여 깨달으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대로 생각하니 직접 만져보고, 깨닫고, 알라고 명령법을 사용하여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무조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의 사건이 진짜라는 것을 주님이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눅 24: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눅 24: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제자들은 주님이 자신들의 눈앞에 있다는 것을 보고 기뻤습니다. 하지만 마음에는 확실한 믿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지만 마음속 에는 불신의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보이시나”는 δεικνυμι(데이크뉘미)입니다. 보여주다, 설명하다, 증명하다, 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직접 보여주시고, 설명하시면서 증명해 주고 계십니다. 손과 발을 보여주시면서 십자가에서 못을 박힌 자국을 보여주시고, 증명해 주심으로 영으로 부활한 것이 아니라, 육신으로 부활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까지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보여주시고 증명해 주셨지만 아직도 제자들은 마음에 불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영은 먹을 수 없지만 육신은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도 주님의 말씀에 동참을 한다고 해도 마음에는 믿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확실히 믿을 수가 없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오늘 내가 부활한 것은 영의 부활이 아니라, 육신의 부활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증명해 주시고 있습니다.
(눅 24: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눅 24: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구워서 드린 생선 한 토막을 그 자리에서 잡수셨습니다. 제자들의 바로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육신으로 부활하셔서 생선을 잡수셨습니다. 이 사건은 바로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으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육신의 부활 사건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해 주시는 부분입니다.
나가는 말
우리는 이 부활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과거에 나오는 전설이나, 우화처럼 믿고 있습니까? 나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여 이런 일을 절대 할 수 없어. 라며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부르시고 창조하여 만드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사건은 바로 영의 부활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마지막 날에 오실 때에도 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육신으로 심판하러 오신다고 했습니다.
이제 영원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반드시 우리를 데리러 오신다고 했습니다. 육신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부활에 동참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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