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누가복음 4장 설교문] “주의 은혜를 선포하라”(눅4:18-19)

체데크 2020. 9. 2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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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누가복음 4장 설교문 중에서 주의 은혜를 선포하라는 말씀에 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주의 은혜를 선포하라”(눅4:18-19)

 

명제: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영적으로 눌린 자들이 회복된다.

목적: 구약에 예언되신 예수님을 신약에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주님을 보는 자들은 복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자라나신 나사렛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나사렛에 들어가서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입니다. 공교롭게도 그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나사렛에 들어간 것입니다.

 

눅4: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나사렛’ נצר(네체르 5342) 나사렛이며 새로 나온 가지, 싹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נצר(나차르 5341) 지키다, 보호하다, 베풀다, 은밀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나사렛은 예수님이 보호받으신 장소입니다. 헤롯의 눈을 피하여 나사렛에서 사시면서 공생애를 준비하신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보호 속에서 목숨을 지키게 되셨고 때가 되매 사생애의 기간이 끝나고 공생애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역을 시작하시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자란 곳에 예수님이 오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안식일’ שבת(샤바트 7676) 안식일이며 שבת(샤바트 7673) 안식하다, 끊어지다, 없어지다, 폐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자란 나사렛에 들어가셔서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셔서 지금까지 살았던 원죄의 삶을 끊어주시려고 안식일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안식이 없이 살았던 인생들을 빛 가운데로 나오게 하셔서 어둠의 세력들을 폐하시고 사라지게 하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현재 우리들도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없으면 흑암에 갇혀 사는 인생입니다. 영원한 안식이 없이 고통과 환란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이런 인생을 회복시켜 주시려고 지금 이 시간 나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영원한 저주를 끊어주시고 사라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안식을 주셔서 나의 영혼에 빛이 임하게 하시고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시려고 오늘 주일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의 추악하고 더러운 삶이 폐하여졌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받아들이시고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나사렛을 안식일에 들어가신 목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글을 읽으려고 하시는데 이사야의 책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눅4: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우리는 예수님께 드린 이사야의 글이 우연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נתן(나탄 5414) 주다, 넘기다, 구원하다, 내밀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회당에 문서를 담당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랍비들이 성경을 읽으려고 할 때에 필요한 말씀들을 알아서 찾아다가 주었습니다. 이때도 문서 담당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성경을 가지고 왔는데 공교롭게도 이사야의 글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신의 뜻대로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가지고 회당에 나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사렛에 복음을 선포하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해주시기를 원하셔서 예수님을 안식일에 보내신 것입니다. 문서를 담당하던 사람이 예수님에게 즉시 이사야의 글을 넘겨주게 됩니다. 그런데 이 글은 이미 예수님에게 넘겨질 수밖에 없도록 지명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위해서입니다. 나사렛에 있는 선택된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사야의 글을 하나님은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나사렛에서 예수님은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했지만 선택받은 택자는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나사렛의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들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택자인 한 명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들어가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많은 과부가 있었는데도 하나님은 사르밧 과부 한 명을 준비하셔서 엘리야를 보내셨다고 말씀하시고 엘리사 시대에는 많은 나병 환자들이 있었는데도 나아만 장군만 고침을 받았다는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나사렛에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그중에 선택된 사르밧 과부와 나아만 장군과 같은 그 한 명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들어갔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주님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곳에 오셨습니다. 지금 내가 사르밧 과부와 같은 자요, 나아만 장군과 같은 선택된 자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사렛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모두 예수님을 육적으로만 보았습니다. 요셉의 아들로만 보았기 때문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택된 자들은 메시아로 보았습니다. 그럼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육적으로 축복이나 주시는 분이고 요셉의 아들로 오셔서 온 인류를 육적으로 잘살게 해주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나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오신 분입니다. 모든 원죄의 죄악을 끊어주시기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고백할 때에 선택받은 자로서 구원의 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눅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예수님은 많은 이사야의 글에서 찾으시더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포로 된 자에게 보내셔서 자유를 주시고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여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신다는 말씀을 많은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는 왜 이 말씀을 선포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이 말씀이 지금 현재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가 되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주의 영이 예수님에게 임하셔서 기름을 부어주시고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파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בשר(바사르 1319) 선포하다, 전파하다, 기쁜 소식을 즐겁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בשר(바사르 1320) 살, 육체와 연관이 있는 단어입니다. 아름다운 복음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살과 육체가 십자가에서 찢어지고 대못에 박혀 고통을 당할 때에 나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선택받은 자들이 혹시 듣지 못할 일이 있지 않도록 반드시 복음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전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가난한 자들은 누구입니까?

‘가난한 자에게’ ענו(아나브 6035) 온유한 자, 겸손한 자, 빈곤한 자, 라는 뜻이며 ענה(아나 6031) 고난당하다, 괴로워하다, 겸비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고통을 감내하고 나 자신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고통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런 자들이 심령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님이 자신의 살과 육체를 찢어주셔서 살아나는 십자가 복음의 생명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여 천국이 자신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들은 심령이 부자입니까? 아니면 가난하십니까? 가난한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שבר(샤바르 7665) 깨뜨려지다, 산산 조각나다, 파괴당하다, 멸망당하다, 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상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님은 이것을 눈이 멀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눈이 멀어있는 자들에게 다시 보게 만들어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상한 것은 원죄에 빠져 철저하게 영혼이 파괴당하고 깨뜨려져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완전히 멸망당할 인생이며 영혼은 절대 구원을 받지 못할 만큼 망가져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내가 마음이 상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상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은 이미 아담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원죄에 완전히 망가졌으며 내 힘으로는 절대 회복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내가 나는 아담과는 전혀 상관없는 자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인류의 근원은 아담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나도 자연히 죄인이 된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죄가 없기 때문에 나에게 찾아오셔서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셔서 원죄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나의 눈을 치료해 주시고 다시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도록 해주셨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찾아오시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원죄의 흑암에서 소경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나의 원죄를 깨끗하게 씻겨주시고 눈먼 나를 이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주신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들은 눈이 열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포로 된 자에게’ שבה(샤바 7617) 포로가 되다, 사로잡혀 가다, 빼앗아 가다, 라는 뜻입니다. 포로가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우리가 선택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사탄에 사로잡혀 포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행동들이 악한 행동만 나왔고 내가 가지고 있었던 선한 것들은 모두 사탄에게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마음과 하나님이 주신 내세의 축복들 이 세상에서의 축복들을 모두 빼앗긴 것입니다. 내 힘으로 안간힘을 다하여 사탄의 세력에서 빠져나오려고 하지만 절대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때에 주님께서 나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나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사탄의 죄악의 세력에 영원히 죽을 인생인데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죽이시고 나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여 주신 것입니다.

 

현재 여러분들 중에 어둠의 세력에 붙잡혀 있다면 고민하지 마시고 이 자리에 나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자유 함을 얻게 됩니다. 영적인 고통에서 자유 함을 누리게 되고 육적인 괴로움에서 자유 함을 누리게 됩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시는 순간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갇힌 자에게’ אסר(아사르 631) 결박하다, 속박을 받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속박을 받고 결박당하여 고통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영적인 죄 때문에 속박을 받아 꼼짝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탄에게 약점을 잡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의 고통의 결박을 끊어주신 것입니다. 나에게 꽁꽁 묶여있던 죄악의 사슬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시고 나의 고통의 결박을 끊어주셨습니다. 나는 주님을 생각할 때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사건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내가 무엇이 관대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그것도 하나님께서 그 정도로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나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눅4: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님은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럼 은혜의 해는 어떤 해를 의미하고 있습니까? 구약에서 말씀하신 희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희년은 50년째 한 번 은혜를 받는 해입니다.

 

레25:10-11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희년이 되면 노예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원래의 신분으로 돌아가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빚을 진 사람은 모든 빚을 탕감받는 날입니다. 또한 땅을 잃어버렸다면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려주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재 내가 잃었던 천국을 다시 돌려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의 기업을 잃어버리고 살았는데 은혜의 해를 선포하여 다시 돌려주는 것입니다.

 

‘희년’ יובל(요벨 3104) 희년, 양각나팔, 이라는 뜻이며 יבל(야발 2986) 인도하다, 옮기다, 메어가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희년은 어떤 날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여 영원한 저주가 사라졌다고 나팔을 부는 날입니다. 십자가 복음의 나팔 소리를 들은 자들은 더 이상 원죄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의 기업 때문에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생명 책에서 나의 이름이 지워질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나팔 소리가 선포되면 주님은 나를 천국까지 인도하여 주시며 죽음의 자리에 있던 나를 생명의 자리로 옮겨주셔서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이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도 주님은 양을 어깨에 메어가듯이 나를 주님의 어깨에 메어 천국까지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희년입니다. 희년은 내가 은혜를 받기 싫다고 해서 받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희년은 무조건입니다. 노예의 삶에서 무조건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땅을 잃어버렸다면 무조건 돌려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불가항력적 은혜입니다. 이 은혜의 해가 예수님을 통해서 선포되었습니다. 나에게 희년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을 믿으시고 나는 원죄에서 해방되었으며 천국의 기업을 받은 자라는 것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나사렛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를 냈습니다. 이 사람들이 화를 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선택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끌고 나가 낭떠러지에 밀어버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선택받은 자들은 너무나 기쁩니다. 모든 죄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은 어떠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까? 이 말씀을 들으면서 나사렛 사람들처럼 화가 나십니까? 아니면 사르밧 과부처럼 나아만 장군처럼 은혜가 넘치시고 기쁨이 넘치시고 즐겁습니까? 그러면 저와 여러분들은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희년을 마음껏 누리시고 기뻐하시면서 오직 주님만을 높이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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