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결혼 주례 설교문 중에서 주례에 사용해도 좋을 아담과 하와가 한 몸을 이루라는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의도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 몸을 이룰 지로다”(창2:22-25)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각각 떨어졌던 지체가 하나로 모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자와 남자를 창조하시고 이제 한 몸을 이루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한 몸이라는 것은 한 생각과, 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생각이 다르고, 마음이 다르면 한 몸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한 몸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이 되어야 하고, 나의 생각이 예수님의 생각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과 진정 한 몸이 된 것입니다.
요 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은 포도나무로 비유를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가지가 나무를 떠나서는 결국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나무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평안할 수 있고, 은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루고 함께 존재해야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과 한 몸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영이 내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에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우리는 예수님과 아니 하나님과 한 몸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과 함께 하는 것이 뜻입니다. 늘 인간과 함께 동거 동락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한 몸이라는 것은 늘 대화하고 마주 보고 있으면 기쁘고, 함께 먹고, 마시고, 즐겁거나, 괴로움도 함께 나누는 것이 한 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고난이 나의 고난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고난은 받지 않고, 축복만 받기를 원한다. 이것은 한 몸이 아닙니다. 교회의 어려움이 오면 함께 짐을 질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성도입니다. 교회에서 즐거운 것, 좋은 것, 복 받는 것, 이런 것들은 1번으로 나오고, 궂은 일, 교회의 어려운 문제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고, 해결하려는 것에는 빠지는 이런 신앙인이라면 이것은 한 몸이 되지 않은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힘들 때에 함께 헤쳐나가는 것이 한 몸입니다. 좋은 때만 부부고 어려움이 오니 헤어지자고 말하는 이런 사람은 한 몸이 아닌 것입니다.
창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하나님께서 아담을 잠재우시고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로 여자를 이끌어 오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끌어 오시지 않으면 절대 아담은 여자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라는 단어는 즉시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끌어 오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역능동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하나님이 모든 것들을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이 이끌지 않으시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보호함을 받게 됩니다.
창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아담이 이 여자를 보고 말하기를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고 부르리라 말합니다. 아담은 이 여자를 보고 즉시로 자신이 스스로 말을 합니다. 우리 성경에는 없지만 원전에는 ‘자 보아라’ 라고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פעם파암)입니다. 이 뜻은 감동하다, 치다, 두드리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이 여자를 보고 감동했습니다. 자신과 같은 존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혼자 있다가 같은 지식과, 지혜와, 생각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를 만났으니 얼마나 감동이 있겠습니까? 너무나 기뻤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내 뼈 중의 뼈요’ 라는 단어는 (עצם에쳄)입니다. 이 뜻은 단단히 묶다, 강하다, 힘세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담의 속에서 여자가 나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우리의 생명을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피로 우리를 단단히 묶어 주셨고, 진리의 말씀으로 강하게 하시며, 주님의 권세를 우리에게 부여해 주심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환난과,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아담 안에서 여자가 나왔듯이 우리는 진리의 말씀 안에서 나온 것입니다.
약 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말씀으로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구원의 말씀으로 낳게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자녀는 모두가 예수님께 속한 자들입니다.
‘살 중의 살이라’ 라는 단어는 (בשר바사르)입니다. 이 뜻은 기뻐하다, 기쁜 소식으로 즐겁게 하다, 좋은 소식을 받다, 라는 뜻입니다. 아담은 여자를 보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이 여자는 자신과 한 몸이고 자기와 똑같은 존재라는 생각에 너무나 기뻤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예수님과 똑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과 같은 능력자가 되기를 원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데도 똑같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면 예수님은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예수님은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똑같이 나와 같은 믿음이 있는 사람을 복제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을 복음의 말씀으로 계속적으로 생명을 낳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구원받은 수가 이 교회에 넘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이라는 단어는(לקח라카흐)입니다. 푸알, 완료시제입니다. 택하다, 불러오다, 빼어내다, 끌어내다, 이끌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갈비뼈를 취했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 있었습니다. 강조수동으로 고통을 당했는데 엄청난 고통으로 빼어짐을 당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고통과 같습니다. 우리의 죄악을 위해서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악에서 택하셨고, 불러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끌어내시고, 죄악 된 세상에서 빼내 주셔서 의인의 삶을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나를 만세 전에 택하신 은혜가 바로 이것입니다.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신 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 속에서 내가 선택함을 받았고, 영원히 예수님과 한 몸이 되는 기적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나는 영원한 주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왜 오셨습니까? 바로 선택된 백성들과 하나가 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신 것입니다. 나와 같은 모습으로 오셔야만 한 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존재로 오셨다면 한 몸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부모를 떠나’ 라는 단어는 (עזב아자브)입니다. 칼, 미완료입니다. 뜻은 의지하다, 토로하다, 맡기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떠나는 것은 주님께로 떠나는 것입니다. 일차적으로는 부모를 떠날 때에 부부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우리가 주님께로 떠나야 합니다. 자신 스스로 주님께 와야 합니다. 그 이유가 세상에서 의지했던 것들을 버리고 이제는 주님께만 의지하고, 어려움이 있으면 주님께 토로하고, 맡기는 것입니다.
결혼하여 부부를 이루면 과거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어려운 문제가 오면 부부끼리 해결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을 때마다 부모님을 찾아가 손을 벌리고 도와 달라고 하면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한 몸이 되었다면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주님과 함께 의논하고, 토로하고,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세상과 끊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내와 연합하여’ 라는 단어는 (דבק다바크)입니다. 칼, 완료시제입니다. 뜻은 합하다, 혼인하다, 단단히 붙다, 라는 뜻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이렇게 합하게 되었고, 서로 혼인하였고, 단단히 붙었습니다. 이것은 행위가 멈추어진 완료입니다. 이렇게 끝까지 영원히 한 몸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혼인하고, 영육이 합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 단단히 붙어있어야만 합니다. 다른 곳에 붙어 있으면 안 됩니다.
롬 11:17-18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우리는 원래 돌 감람나무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되어 뿌리의 진액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오셔서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권세가 내 권세가 되었고 예수님의 보호 속에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한 자가 되었으니 단단히 붙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우리를 보전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잘나서 세상에서 권세를 받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있어서 예수님의 권세로 내가 세상에서 잘되고, 복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절대 주님에게서 떠나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신부가 신랑의 권세를 버리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한 몸’ 이라는 단어는 (אחד에하드)입니다. 이것은 한 몸 속에 속하여 라는 전치사를 사용하고 있고 뜻은 통일시키다, 마음을 가라 앉히다, 생각을 정리하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나의 마음을 주님께 통일시켜야 되고, 주님 안에서 마음을 가라 앉히고, 생각을 오직 주님께만 향해야 합니다. 이것이 한 몸이 된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다고 하면서도 세상을 생각하고 있고 날마다 세상이 좋아 그리워하고 있다면 주님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결혼한 신부가 신랑과 함께 살면서 매일 같이 다른 남자가 그립다. 과거에 사귀었던 남자는 잘생기고, 돈도 많고, 부자였는데 하면서 못 잊어 그리워하고 있다면 어떤 신랑이 좋아하겠습니까? 당장 집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결별하지 못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교회 안에 들어왔고, 예수님과 함께 한 몸이 되었는데도 세상이 그립다고 계속 쳐다보고 있고, 세상의 방법을 그리워하고 있다면 신랑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볼 때마다 한탄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창 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벌거벗었으나’ 라는 단어는 (ערום아롬)입니다. 슬기를 얻다, 지혜롭게 행동하다, 발가벗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으면 슬기를 얻습니다. 지혜롭게 행동을 하게 되고,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아담과 여자도 죄를 짓기 전에는 수치를 당하지 않고, 슬기롭게 에덴동산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부끄러워하지’ 라는 단어는 (בוש부쉬)입니다. 히트파엘, 미완료시제입니다. 부끄러워하다, 수치를 당하다, 치욕을 당하다, 라는 단어입니다. 재귀형을 사용하면서 미완료입니다. 부끄러움을 당하는 행동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열심히 살려고 해도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하니라’ 라고 하는 부정사가 붙어 있기 때문에 절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우리는 절대 부끄러움 당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서 치욕을 당하셨고, 수치를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주님을 섬기면서 살면 그 섬긴 일들이 나에게 상급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까? 에덴동산에서 살았던 아담과 하와는 한 몸으로 살 때에는 절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 몸이 떨어져 하와 혼자 있을 때에 뱀의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우리도 예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순간 사탄의 미혹을 받아 죄를 짓고 결국 영원히 지옥 불 못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한 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항상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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