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출애굽기 6장 설교문 중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셔서 애굽의 바로에게 가게 하신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다시 명령하시는 하나님(출 6:10-13)
♠명제: 다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
♠목적: 하나님 앞에서는 사명을 핑계 댈 수 없다.
들어가는 말
하나님의 사역을 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일 뿐만 아니라 세상적인 일을 할 때도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서 힘들고 어렵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 일을 포기할 수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역자에게만 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구원 얻은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은 사명을 주셨습니다. 죄악의 고통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입니다. 이런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어려운 환경과, 곤란한 문제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힘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애굽의 바로 왕을 만나 하나님의 백성을 내보내라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절대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놓아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런 바로 왕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로 왕은 모세가 돌아온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혹독하게 다스렸습니다. 더 많은 노동을 시키고, 고통스럽게 통치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봉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너무나 힘들어 모세를 원망까지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아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인데, 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고 사명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모세와 같이 뜻하지 않게 사탄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사탄은 더 거세게 반발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했던 그 사탄은 지금도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기 위해서 파견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의 인생에 끼어들어 복음적으로 살려고 하면, 더 힘들게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명령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바로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죄악의 짐에서 고통당하는 자들을 하나님 편으로 끌고 오라는 것입니다.
마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르시되’라고 하는 단어는 (λεγω레고)입니다. 권면하다, 명령하다, 라는 뜻입니다. 분사를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 능동태, 주격을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현재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도 주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의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주셨으니’라는 단어는 (διδωμι디도미)입니다. 하사하다, 수여하다, 선물하다, 라는 뜻입니다. 직설법, 과거,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권세를 우리에게 이미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직설적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너희에게 준 것이다. 우리는 이미 주님의 권세를 받은 자들입니다. 두려워하거나 떨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예수님의 권세가 과거로 받아진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들에게 이미 권세를 부여하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럼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가서’는 (πορευω포류오)입니다. 나아가다, 걷다, 행하다, 라는 뜻입니다. 명령분사를 사용하고 과거시제입니다. 수동디포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이 뜻은 바로 주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이미 맡겨 놓은 자들을 만나서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수동디포를 사용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영혼들을 준비했다는 것이고, 너에게 맡겨진 영혼들이 있으니 능동적으로 전파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나가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이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놓으셨고 과거로 이미 우리는 받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수동디포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이미 받은 것을 능동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그때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가 받았다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능동적으로 나갈 때에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출 6: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애굽으로부터 사역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패잔병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하나님께 하소연합니다. 바로의 왕은 도저히 말을 듣지 않습니다. 어떻게 신과 같은 존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빼낼 수 있습니까? 너무 힘들어 못하겠습니다. 라는 어조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을 하십니까?
‘말씀하여’ 라는 단어는 (דבר다바르)입니다. 선언하다, 명령하다, 라는 뜻입니다. 피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힘이 빠져 영적으로 낙심된 상태입니다. 영적으로 지쳐서 더 이상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강력한 말씀으로 모세에게 힘을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도 영적 탈진이 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니 영적으로 지치고, 육신적으로 힘이 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위로해 주시고 치료해 주시는 분입니다. 영적으로 탈진된 것은 세상의 방법으로는 절대 회복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는 놀라운 영적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적 탈진과, 낙심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강력하게 다시 명령하시면서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출 6:11 들어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
‘들어가서’ 라는 단어는 (בוא보)입니다. 들어가다, 오다, 라는 뜻입니다. 칼, 명령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힘들고 지쳐서 온 모세에게 다시 애굽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모세는 힘들고 어려운 과제인지도 모릅니다. 애굽의 바로 왕을 다시 만난다는 것이 힘이 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강력하게 다시 애굽으로 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겠다. 라고 하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말하여’라는 단어는 (דבר다바르)입니다. 피엘, 명령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너에게 분부한 것을 직접 그대로 바로 왕에게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에게 맡겼던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이루시겠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모든 상황과 마음을 다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명령을 받은 것은 무엇입니까?
‘내보내게 하라’라는 단어는 (שלח샬라흐)입니다. 뻗치다, 쫓아내다, 라는 뜻입니다. 피엘, 미완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명령을 받았는데, 바로 왕에게 다시 가서 강력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낼 것을 명령받았습니다. 모세가 하지 못하고 온 것을 다시 하나님은 힘을 주어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어떤 고민에 빠져 일을 할 수가 없을 때에 하나님은 강력한 말씀으로 명령을 하시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나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데, 끝까지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용한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나는 포기할지언정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출 6:12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모세는 하나님께 또 핑계를 대기 시작합니다. 바로는 둘째 치고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다시 가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고 올 수 있다는 것입니까? 저는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입이 둔하여 말을 할 수 없다고 하나님께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피할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모세의 마음을 우리는 느껴야 합니다. 무척이나 힘든 일이고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모세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부족하오니 다른 사람을 사용하라고 하나님께 간청하고 있습니다. 핑계를 대고 자신은 빠지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자신의 일이 너무나 벅차고 힘이 들 때에 핑계를 대고 포기하려고 합니다. 나 말고 다른 적임자를 찾아보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들으리이까’라는 단어는 (שמע샤마)입니다. 경청하다, 순종하다, 라는 뜻입니다. 칼, 미완료를 사용합니다. 모세의 걱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를 닫고 절대 듣지 않으려고 한다는데 두려움이 있습니다. 바로 왕은 어떻게 설득을 해 볼 수 있지만 같은 동포들이 인정을 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고향에서 천국복음을 전하실 때에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출 6:1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과 애굽 왕 바로에게 명령을 전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시니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강력한 메시지로 모세에게 힘을 주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사자로 다시 명령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고집도 대단하십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고 모세를 꼭 애굽으로 다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인도하여 내게 하시니라’ 라는 단어는 (יצא야차)입니다. 나가다, 떠나다, 이끌어내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히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세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직접 가나안 땅으로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낼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사자로 가서 말씀을 강력하게 전파하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고나면 역사는 하나님이 진행하시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우리의 인생가운데 모세처럼 낙심하고 힘들고 어려워서 하나님께 하소연하면서 사역을 포기하려고 했다면 힘을 내야 합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고 힘을 주시고 새롭게 능력을 부어 주셔서 갈 수 있도록 길을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사업을 하거나, 직장을 다니거나, 목회를 하거나 다 힘 들 때가 반드시 옵니다. 피해갈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내가 잘 된 것은 바로 영혼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것입니다. 내가 사명을 부여 받은 것은 바로 주님의 일을 위해서 부름 받은 것입니다.
힘이 빠져 애굽에서 돌아온 모세를 다시 힘을 주어 영적 충전을 시키고, 다시 세상 나라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힘이 빠져 의기소침해서 다시 교회로 왔습니다. 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시고 다시 힘을 내서 세상으로 돌아가 세상을 바꾸는 역사가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이제 하나님께 포기하겠다고 몸부림을 쳐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은 요지부동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요지부동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는 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구원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나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고 사순절을 지내면서 다시 한 번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시는 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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