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창세기 1장 설교문] “하나님의 창조사역”(창 1:1-5)

체데크 2020. 6. 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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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창세기 1장 설교문 중에서 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1:1-5)

 

오늘은 창세기의 창조사역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을 믿고 있습니다. 진화론은 찰스 다윈이라는 사람이 만들어낸 하나의 학문이며 이것도 정확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주장하는 것은 하나의 ‘종류’에서 많은 종류의 것들이 나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사람도 하나의 아메바 같은 종류에서 코끼리도 나오고, 하마도 나오고, 사람도 나오고, 새도 나오고, 물고기도 나왔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인류의 조상은 누구입니까? 혹자는 원숭이가 진화하여 현재의 인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조상은 원숭이입니까? 그럴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정확하게 창조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조하는 시기는 태초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히브리인 들에게 직접 말씀하신 언어를 보면 정확하게 수가 있습니다. 태초에(בראשית베레쉬트’) 는 히브리어입니다. 이 ‘베레쉬트’는 첫 번째, 최초, 최고의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처음으로 창조사역을 시작한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하나님은 (אלהים엘로힘)입니다. 이 단어는 남성형이고 장엄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세 분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보다는 웅장한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삼위일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한분 하나님으로만 인식합니다.

 

 하나님은 진화론적으로 무엇인가 물질이 있었는데 그것이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점 고등동물로 진화되어 발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 이 단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 단어는(ברא바라)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이 ‘바라’ 라고 하는 단어는 칼형으로 완료형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여기에서 칼형이라는 동사는 히브리어에서 능동형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대로 창조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 완료형으로 쓰여 있기 때문에 이것은 더 이상 손을 댈 필요가 없이 완전하게 창조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사람들은 진화론을 믿고 그것을 학교에서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원어에서 보듯이 정확하게 창조된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사역을 했다는 증거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아직 하나님이 아무것도 창조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보면 ‘공허’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단어는(בהו보후)라는 단어로 공허하고 텅 비어 있고, 황폐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지 않으면 공허하고 텅 비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영혼에 새롭게 창조하지 않으면 나는 늘 황폐한 영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의 죄 된 것을 새롭게 창조하여 새로운 영혼을 만들어 주셔야 되는 줄로 믿습니다.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수면 위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 수면은(פנים또는 פנה파님 또는 파네)입니다. 이 단어는 얼굴, 면전, 사람, 표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와 대면하고 계신 것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운행하시니라 라고 하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단어는(רחף라하프) 로서 피엘 동사를 사용하고 있고 여성 단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피엘 동사는 강조능동형이라는 것입니다. 이 강조능동형은 자신이 하는데 강조해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 여기에 운행을 하시는데 그냥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서 기진맥진하게 운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단어의 뜻에는 알을 품다, 날개 치다, 날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세요. 닭이 알을 품고 있거나 동물이 새끼를 품고 있을 때에 자신보다 더 힘이 센 동물이 와도 겁내지 않고 도망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 적과 싸우는 것입니다.

 

한 번은 새 둥지에 새가 새끼를 낳고 잠시 새끼들의 밥을 구하러 나간 사이에 뱀이 이 새끼를 잡아먹으려고 둥지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것을 본 어미가 필사적으로 뱀과 싸우고 계속적으로 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그래도 도망치지 않으니까 뱀에게 달려들어 부리로 찍는 것입니다. 이것을 멀리에서 본 사람이 와서 뱀을 잡고 그 새끼들을 위험에서 구해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힘이 빠지도록 다니시면서 운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는데 얼마나 나를 사랑하고 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항상 나를 지키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나를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온 힘을 다해서 닭이 알을 품듯이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어디를 가지 아니하시고 지키시는 것입니다. 닭이 알을 품을 때는 절대 딴전을 피지 않습니다. 배가 고파도 절대 알을 품다가 먹을 것을 먹으러 가지 않습니다. 닭도 이렇게 알을 품을 때에 온 힘을 다해서 알을 보호하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온 힘을 다해 우리를 지키시고 먹이시고 보살피실 줄로 믿습니다.

 

3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보면 이르시되 라고 하는 단어는 (אמר아마르)라고 하는 단어로서 칼형 동사 미완료시제입니다. 그러면서 성은 남성이면서 단수입니다. 그렇다면 칼형이라고 한다면 능동형 동사로서 직접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완료가 된 것이 아니라 계속 진행되고 있고 단수로서 하나님은 한 분 이시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אלהים엘로힘)으로서 남성 복수 명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통치자, 재판관, 신적 존재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어라 명령했더니 빛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빛은 미완료형으로서 계속적으로 있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가 끝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창조가 일어날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4절에 보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보시기에 라는 단어에는(ראה라아)라고 합니다. 이것은 증명되다, 분별하다. 즐기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직접 창조를 하시고 기뻐하셨고 분별하셨고 즐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도 기뻐하셨고 즐기셨던 것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낳을 때에는 엄청난 해산의 고통이 있습니다. 고통이 너무나 심해서 기쁘거나 즐거운 것을 모두 잊어 버립니다. 그런데 해산의 고통이 사라지고 아이를 보는 순간 너무나 기쁜 것입니다. 즐거운 것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자신이 낳은 자녀이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엄청나게 힘껏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온 정성을 다해서 나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를 보시고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것입니다. 현재 구원받은 나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도 힘껏 창조사역을 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힘껏 일해야 하고 교회를 섬기고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주님의 기대에 어긋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끝까지 주님께서 명령하신 일을 수행하고 주님의 자녀로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그런데 빛의 의미에는 행복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둠은 죽음, 파멸, 슬픔, 불행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셨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의인과 죄인을 가르는 것입니다. 의인은 예수님 편에 서있는 사람들입니다. 죄인들은 사탄의 편에 서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빛에 거해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고, 즐겁고, 은혜가 충만한 것입니다. 하지만 어둠에 있는 자들은 불행하고, 슬프고, 죽음이 엄습하고, 파멸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은 어디에 서있어야 합니까? 우리는 빛 가운데 서 있어야 합니다.

5:8-9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우리는 이제 어둠의 자녀가 아닙니다. 전에는 어둠 속에서 살았지만 현재는 빛 가운데 사는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동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이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둠을 밤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밤이라는 단어를 보면 (ליל라일)이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에는 빗나감, 역경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흑암 가운데 거하면 결국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가고 죄악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믿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빛을 만드시고 낮과 밤을 나누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은 진화론에 근거한 신앙이 되지 말고 창조론에 근거한 신앙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창조사역 여섯째 날”(창1: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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