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가인 살인 사건 설교문] “최초의 살인”(창 4:6-10)

체데크 2020. 6. 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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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가인 살인 사건 설교문 중에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최초의 살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최초의 살인”(창4:6-10)

 

 죄악 된 인간이 최초로 살인을 하는 장면이 바로 가인이 자신의 동생인 아벨을 죽이는 사건입니다. 그 이유는 시기와 질투심에서 나온 살인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기 때문에 시기심이 났습니다.

 

 인간은 문제를 자신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신은 열심히 했는데 왜 내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동생 제사만 받아주시는 것입니까? 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모든 인생을 걸고 준비하면서 삶 가운데 예배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신 것인데 이것은 생각하지 않고 결과에만 주목하다 보니 결국 질투심에 살인을 하고 마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았다는 것에 분노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에만 집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가인의 분노는 평상시에 냈던 분노와는 전혀 다른 분노를 내고 있습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은 (חרה하라)입니다. 와우계속, 칼, 미완료, 3인칭입니다. 맹렬하다, 분히 여기다, 분을 품다, 라는 뜻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지 않자 즉시로 하나님께 분노를 자신이 직접 내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작정하고 행동에 옮긴 것입니다. 가인의 분노는 맹렬하게 하나님께 대들고 있고, 분히 여기면서, 분을 삭이지 않고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입니다.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 분노를 품고 있거나, 하나님께 화를 내지는 않습니까? 가인처럼 자신의 일이 뜻대로 풀어지지 않는다고 하나님께 화를 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을 잘하는 사람은 분노를 쉬게 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분노는 말을 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과격하게 말을 하는 사람은 분노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가인은 화를 참지 못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대상으로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은 정말 자신의 성격이 너무나 매정하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인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매일 불평과 불만이 자신의 삶을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 스스로도 괴롭고 힘든 인생을 살아간다고 봐야 합니다.

 

 안색이 변함은’에서 ‘변함은’은 (נפל나팔)입니다. 칼, 완료, 3인칭을 사용하고 어기다, 낙담하다, 쳐죽이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가인은 얼굴이 확연히 변하기 시작합니다. 마음에 분노가 차 오르니 얼굴이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완전한 행동으로 얼굴이 변했는데 3인칭을 썼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로 얼굴에 분노가 차있음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얼굴에 분노가 차니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되고, 낙담하면서 사람을 쳐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화를 세 번만 참으면 살인을 면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조건에 맞지 않으면 화를 냅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모두가 적이 되는 것입니다. 가인은 이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분노를 참지 못하는 사람, 자신의 유익에 보탬이 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제거해 버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주변에 가인과 같은 사람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할 것은 화를 조절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자신 스스로 화를 조절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 노력이 없이는 절대 자신의 마음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잘 드리고 나서 분노를 내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금방 자신의 유익이 없어졌다고 생각을 하니 분노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반드시 가인이 했던 이런 잘못된 인간의 분노를 고치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훈으로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에 네가 선을 행했다면 네가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인은 평소의 삶이 선을 행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못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은 (יטב야타브)입니다. 칼, 미완료, 2인칭입니다. 좋다, 훌륭하다, 아름답다, 쓸모 있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약에 네가 평소에 능동적으로 훌륭한 삶을 살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아름답게 살고, 쓸모 있게 살았다면 어찌 얼굴을 들지 못하겠느냐! 라는 뜻입니다. 그럼 선을 행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에 들도록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볼 때나 하나님이 볼 때에 인정할 수 있는 행동, 훌륭한 인품과 성격을 가지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며, 타인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 보실 때에 선한 행실입니다.

 

 사람에게는 3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바나나 같은 사람입니다. 겉 모습은 색깔이 시꺼멓게 변해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 같았는데 바나나의 껍질을 벗기고 보니 그 속에 하얗게 드러낸 속살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 속살을 먹어보니 너무나 달콤하여 계속해서 먹고 싶은 충동으로 바나나를 모두 먹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겉으로 볼 때에는 멍청해 보이고 쓸모가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속이 꽉 차 있는 사람입니다. 사귀면 사귈수록 배울 점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고 말이나 행동이 모범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계속 사귀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바나나와 같은 사람입니다.

 

 탱자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탱자는 가시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입니다. 이 탱자를 따려면 가시에 찔릴 수가 있습니다. 멀리에서 보니 탱자가 노랗게 먹음직스럽게 열려 있습니다. 이것을 따려고 하니 손에 가시 때문에 상처가 납니다. 그래도 어렵게 탱자를 따서 먹으려고 입에 넣고 한 입을 물으니 신맛이 입 속을 가득 채웁니다. 도저히 시고, 써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핸섬하고 능력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접근해서 사귀려고 하면 많은 부담감이 있습니다. 입술에 가시가 있어서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자신이 최고로 잘난 것처럼 상대를 무시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교만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참고 사귀려고 하니까? 신맛과 쓴맛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알면 알수록 행동과 말이 맞지 않는 사람이고 능력이 많은 것처럼 보였지만 능력은 없고 결국 허풍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쓸모없는 탱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풋사과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과가 빨갛게 익으면 먹음직스러운데 익지 않아서 먹기에는 조금 부족한 사과입니다. 그래도 한 번 먹으려고 하면 너무나 신맛이 나서 먹을 수가 없는 것이 풋사과입니다. 그래서 이 사과는 먹을 수는 있지만 버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됩니다. 이런 사람은 아직도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아서 쓸모가 없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가능성은 있지만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능력만 믿고 연구하거나, 열심을 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평소 삶에서 열심히라는 것은 찾아볼 수가 없고 자신의 능력만 믿고 잘 낫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조직에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입니다. 잠재적 능력은 있어서 쓰고 있지만 열정이 없어서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있으나 마나 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아마도 바나나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인정받고 조직에서나,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인정받아 하는 일이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런 사람을 좋아하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매사에 열정을 내고 열심을 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에서 ‘죄를 다스릴지니라’는 (משל마샬)입니다. 칼, 미완료입니다. 통치하다, 지배하다, 다스리다, 라는 뜻입니다. 이제 가인은 스스로 평생 동안 죄를 지배하게 되고, 통치하게 되고, 다스리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평생에 죄가 가인을 떠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죄악의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인의 삶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우리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가장 힘들 때가 세상의 물질이나, 환경 때문은 아닙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없으면 육신적으로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더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죄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늘 마음이 초조하고, 두렵고, 괴롭습니다. 평생에 죄를 씻지 못하고 사는 것이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한 번 살인을 하고 잡히지 않은 사람이 평생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죄책감 때문에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영적 거리감이 멀어져 있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대화가 없고, 교제가 끊어지면 늘 마음이 지옥입니다.

 

 사람은 영적이기 때문에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답답해서 살지 못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그 하나님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삶의 활력을 찾게 됩니다.

 

4: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가인은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질투를 행동으로 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마음에 품고 있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입술에 불평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그 마음이 있습니다. 가인도 아벨을 죽이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살인 사건입니다. 그것도 피를 나눈 자신의 동생을 쳐 죽이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가인이 일어나’는 (קום쿰)입니다. 와우계속, 칼 미완료, 3인칭, 단수를 사용하고 있고 확정되다, 대적하다, 범하다, 라는 뜻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번역이 되지 않은 단어입니다. 가인이 스스로 능동적으로 즉시로 일어나서 아벨을 죽이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것도 3인칭을 사용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을 정도로 아벨을 죽이는 것이며 단수는 자신 스스로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가인은 아벨을 대적하고, 살인을 범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일 때에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즉시로 완벽하게 죽입니다. 이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죽였습니다. 가인의 마음속에 분노가 아벨을 죽이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음 속에 분노가 가득 차면 사람을 죽이게 되는데 꼭 육신을 죽인다고 해서 살인이 아니라 말로 사람을 죽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도 평생에 잊지 못할 언어 폭행으로 마음속에 고통을 주는 사람도 지금 죽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가인처럼 행동을 했다면 하나님 앞에 빨리 회개하고 행동을 고쳐야 합니다. 가인의 행동으로는 결국 죄만 늘어나지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4: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회개의 시간을 주시기 위하여 즉시로 아벨이 어디에 있냐고 묻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아벨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가인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가인이 한 짓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자복하라는 것입니다. 회개의 기회를 하나님은 가인에게 주고 있는데 가인은 하나님께 즉시로 반문합니다. 내가 아벨을 알지 못합니다. 내가 동생을 지키는 사람입니까? 나는 동생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나에게 더 이상 말씀하지 마세요. 라고 대답합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시기 전에 반드시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데도 이 기회를 깨닫지 못하고 자복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다음에는 진노하십니다.

 우리도 반드시 하나님 앞에 잘못을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잘 못한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내가 살면서 지은 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부지중에 지은 죄들을 하나님 앞에 자복하여 나의 행동을 매일 같이 고쳐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가인은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4: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결국 죄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아우의 억울한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하나님께 호소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더 이상 죄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데 이 기회를 놓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마지막 날에 지옥의 불 구덩이에 빠져 고통을 당하는 인생을 살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늘 마음에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죄 사함을 받고 항상 주님과 함께 동거 동락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가인의 인생은 늘 고난과 괴로움 밖에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가인의 삶을 청산하고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창25: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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