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린도후서 4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낙심하지 않는 신앙이라는 설교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낙심하지 않는 신앙”(고후 4:16-18)
♣명제: 겉 사람을 보지 않고 속사람을 볼 때에 낙심하지 않는다.
♣목적: 겉 사람은 늙어가지만 속사람은 날마다 부활되어 간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땅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낙심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육체의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체의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육체의 일을 고민하면 낙심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이 생겨지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없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가 더 어렵게 될 때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우리의 육체의 문제를 보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라는 것의 고민입니다. 이 땅에서의 고민은 육체에 대한 고민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고민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지 말라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며 우리는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나에게 더하여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붙잡고 나가야 합니다. 이 세상의 육체의 일을 생각하면 고민할 수밖에 없고 무엇을 어떤 일을 해서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지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날마다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소리들만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믿음을 가진 우리들은 하늘의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만이 소망이 있습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 때에 힘이 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이 힘을 내고 주님을 바라보는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 것은 바로 겉 사람은 낡아지지만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겉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εγκακεω(엥카케오 1573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복수, 1인칭) 용기를 잃다, 낙심하다, 마음을 잃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마음을 잃지 않고 낙심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마음에서 모든 일을 하게 됩니다. 마음이 낙심되어 떨어지면 순간에 사람이 망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항상 마음을 붙잡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마음을 잃어버리니 어떠한 일을 하려는 용기가 나지를 않습니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획할지라도’ חשב(하샤브 2803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생각하다, 계획하다, 판단을 내리다, 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마음에 어떻게 하면 될까 고민하고 심사숙고하여 생각을 하고 난 후에 계획을 세워서 마음에 확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판단을 내린 대로 되지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낙심될 때가 언제입니까? 마음먹은 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에 사람이 낙심합니다. 열심히 자신이 밤새 구상하고 몇 날을 고민하여 계획을 세웠습니다. 자신이 세운 계획 중에 제일 잘 된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이유가 피엘 강조 능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든 것이 무너지고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이때의 실망감과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낙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 잡게 만들어 주시고 용기를 주셔서 다시 일어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용기를 잃은 자에게 용기를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 현재 매일같이 힘을 주셔서 낙심하지 않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나에게 마음에 힘을 주시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겉 사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속사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낡아지나’ διαφθειρω(디아프데이로 1311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 단수, 3인칭) 파괴하다, 파멸시키다, 부패하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겉 사람을 보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겉 사람은 파멸될 것이며 부패하여 타락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겉 사람은 날마다 낡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반드시 죽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직설법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육체의 몸은 썩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언제 낡아져가고 있습니까? 매일매일 파괴되어 가고 부패되어 가는 것입니다.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육체의 겉 사람은 낡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원죄로 인하여 영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영원히 살려고 해도 살 수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육체를 가지고 영생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거짓된 자들입니다.
‘새로워지도다’ ανακαινοω(아나카이노오 341 동사, 직설법, 현재, 수동태, 단수, 3인칭) 새롭게 하다, 갱신하다, 다시 시작하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속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롭게 갱신되어 다시 시작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부활의 삶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구원을 얻었으면 인생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속사람이 새로워지고 갱신된 일이 실제로 있습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대로 우리들은 속사람이 주님의 보혈로 새로워지고 다시 매일같이 시작하는 것입니다.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속사람을 새롭게 갱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영혼도 내 뜻대로 될 수 없는 것이고 내 마음도 내 뜻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지키시고 나의 영혼을 지킬 때에 낙심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낙심할 이유도 없습니다. 우리는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후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낙심하고 있는 것은 잠시 받는 육체의 환난의 경한 것 때문에 고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려고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루게’ κατεργαζομαι(카테르가조마이 2716 동사, 직설법, 현재, 중수디포, 단수, 3인칭) 이기다, 성취하다, 만들다, 준비하다, 라는 뜻입니다. 현재 내가 고민하고 당하고 있는 겉 사람의 문제는 금방 지나갈 것입니다. 이 환난의 고통 때문에 지극히 큰 영원의 중요한 것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문제들은 내세의 영원한 것을 받기 위하여 준비하는 것이며 큰 상급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의 신앙이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이 땅의 육체의 고민과 환난을 통해서 천국의 영원한 것을 성취하는 일이 실제로 있습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현재 지금 이루어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현재 시제를 쓰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육체의 환난과 고통을 이기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상급이 준비되어 있으며 이것을 속사람이 부활되어 받게 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중수디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의 금방 지나가는 육체의 고민거리는 잊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세의 복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것을 바라보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후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우리는 주님 안에서 구원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주목하는 것은’ σκοπεω(스코페오 4648 동사, 분사, 현재, 능동태, 소유격, 남성, 복수, 1인칭) 주시하다, 관찰하다, 심사숙고하다, 라는 뜻입니다. 현재 우리는 무엇을 주목하여 바라보고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들입니까?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입니까? 우리가 주목할 것들은 내세에 관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심사숙고하여 세상의 일들에 관심을 두지 말고 하나님의 일과 주님의 일들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주시하여 열심히 보면 낙심할 일보다는 소망적인 일들이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낙심된 마음이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들은 언제 주님을 주목하여 바라보아야 합니까?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도 지금 계속해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매일같이 주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갈 때에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분사와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소유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만이 세상의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바라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소유격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βλεπω(블레포 991 동사, 분사, 현재, 수동태, 주격, 중성, 복수) 보다, 바라보다, 주시하다, 관찰하다, 식별하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현재 보이는 것은 잠시 잠깐에 있을 것들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이 세상의 것들은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가 주시하여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주님이 내 안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가 항상 매일같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들이 보여 지기 때문입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는 눈이 닫히고 보이는 것들에는 눈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셔야 만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βλεπω(블레포 991 동사, 분사, 현재, 수동태, 주격, 중성, 복수) 보다, 바라보다, 주시하다, 관찰하다, 식별하다, 라는 뜻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천국을 바라보아야 하고 주시하면서 관찰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천국의 보이지 않는 것인지를 식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늘의 것이 보이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주실 때에 볼 수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눈을 열어주셔서 내세의 것을 볼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내 마음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모든 일을 하려고 하지만 되지 않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고 맡겨야 합니다. 이 땅에서 내 힘대로 될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수동태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내가 열심히 힘을 낸다고 해서 용기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낙심된 마음을 일으켜 세워주시는 분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내가 어떠한 일에 힘이 들어 좌절하고 있습니까? 내 마음이 내 마음 같지 않다고 생각이 될 때가 있습니까? 그때에 주님은 역사합니다. 그때에 주님이 찾아오셔서 용기를 주시고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들은 낙심된 마음을 일으켜 세울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마음에 힘을 주시고 환경과 상황을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들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일들을 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도 마시고 이 땅의 문제 때문에 괴로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낙심하지 마시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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