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고린도전서 13장 설교말씀] “장성한 자의 신앙”(고전13:9-13)

체데크 2020. 10. 2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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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린도전서 13장 설교말씀 중에서 장성한 자의 신앙이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장성한 자의 신앙”(고전 13:9-13)

 

명제: 어린아이의 신앙은 율법적인 신앙이고 장성한 자의 신앙은 복음의 신앙이다.

목적: 율법은 부분적인 것을 알지만 복음은 완전한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중요한 것이 젖을 떼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젖을 먹는다는 것은 아직도 십자가 의의 복음을 체험하지 못한 신앙입니다. 율법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으면 모든 것을 부분적으로만 보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게 되면 모든 것이 완전하게 보여 성경을 볼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율법의 눈에 열려있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의 율법의 눈을 열어주시고 복음에 눈이 열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오면 예언과 방언과 지식이 폐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온전한 사랑이 최고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린아이의 신앙을 버리고 장성한 자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고전13:9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경과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매여 있으면 이런 현상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언하니’ προφητευω(프로페튜오 4395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복수, 1인칭) 예언적인 계시를 하다, 예언하다, 선포하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율법 안에 있으면 성경의 말씀을 선포하고 예언적인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전할 때에 부분적인 것만 말하게 됩니다. 이것이 문자화 된 성경만 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는 십자가 생명이 없고 허공에 치는 메아리와 같은 소리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전하는 예언의 말씀은 부분적으로 선포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매일같이 계속해서 내가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부분적인 것만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와 같이 율법의 신앙에 있으면 계속해서 우리는 정확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고전13: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그런데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게 됩니다. 이 온전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이것이 오게 되면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던 것들이 폐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마지막 주님의 재림의 날에는 더 확실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온전한’ τελειος(텔레이오스 5046) 완성한, 완전한, 장성한, 이라는 뜻이며 이 단어의 어근은 τελος(텔로스 5056) 끝, 마지막, 말세,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온전한 것이 온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지막 주님께서 오시는 재림을 말씀합니다. 이때는 모든 것들이 완성이 되고 온전해져서 부분적으로 말했던 것들이 끝나게 됩니다. 실체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도 완성이 되고 장성한 자의 신앙이 되어 주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현재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얻은 자들은 율법이 완성이 되어 온전한 주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나의 의를 나타내는 어린아이의 신앙을 하지 않고 주님의 의를 나타내는 장성한 자의 신앙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전한 것이 내 안에 온 것입니다.

 

‘폐하리라’ καταργεω(카타르게오 2673 동사, 직설법, 미래, 수동태, 단수, 3인칭) 폐하다, 무효로 하다, 버리다, 제거되다, 라는 뜻입니다. 온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가 내 안에 오니 지금까지 율법에 싸여 있던 신앙들이 폐하여지고 버리게 된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이 완전히 제거되어 복음의 의만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분적으로 신앙생활했던 율법적인 믿음을 모두 무효로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인정한 구원은 아닙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으로 하던 것들이 모두 사라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앞으로 확실하게 올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미래 시제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확실히 있습니다. 마지막 종말의 날에 반드시 주님이 구름 타고 재림하셔서 부분적인 것들을 모두 폐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부분적인 믿음을 가지고 율법 안에서 있었던 신앙을 폐하여 주시는 것은 내 힘으로 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현재 내가 눈이 열려 복음 안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보이고 있다면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전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의 신앙이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체험하면 장성한 사람이 되어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저와 여러분들은 어린아이의 신앙에 머물러 있습니까? 아니면 장성한 자의 신앙을 갖고 있습니까? 내가 교회생활을 하면서 작은 일에 실족하고 있다면 어린 아이의 신앙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이해가 되고 실족하지 않으면 장성한 자의 신앙입니다.

 

‘내가 어렸을’ ειμι(에이미 1510 동사, 직설법, 미완료, 중간태, 단수, 1인칭) 내가 되었다, 나는 ~이다, 라는 뜻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과 깨닫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항상 남들에게 칭찬만 받으려고 하고 자신만 봐달라고 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를 내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 가지려고 고집을 피우는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입니다.

 

이렇게 어린아이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실제로 시험에 걸려 넘어지고 자신의 것만 생각하고 남을 절대 배려하지 않는 욕심에 찬 신앙생활을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체험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이런 신앙으로 교회에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신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만 드러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기를 원합니다. 자기가 보았을 때에 달콤하고 좋은 것은 열심히 하지만 자신의 영광이 드러나지 않는 일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더럽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모두가 남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쉽고 우아하고 이름이 나서 칭찬받은 일에만 열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알까요? 중간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신앙을 빨리 버리고 주님을 모셔 들여야 합니다.

 

‘장성한 사람이 되어’ γινομαι(기노마이 1096 동사, 직설법, 완료, 능동태, 단수, 1인칭) 일어나다, 만들어지다, 행해지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의 신앙을 버리고 장성한 자의 신앙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보여주시고 열어주셔서 어른이 된 것입니다. 어른이 되니 아이처럼 보채지도 않습니다. 일이 풀어지지 않아도 하나님께 보채는 신앙이 아니라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의를 체험하고 나니 실제로 장성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지금 현재 장성한 자의 믿음과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성한 자가 된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나에게 장성한 자가 될 수 있도록 행동에 착수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나에게 역사하셔서 장성한 어른의 신앙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내가 장성한 자의 믿음과 신앙이 되었기 때문에 다시는 어린아이의 신앙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가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번 구원받은 자들은 구원이 절대 취소가 될 수 없고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면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버렸노라’ καταργεω(카타르게오 2673 동사, 직설법, 완료, 능동태, 단수, 1인칭) 폐하다, 무효로 하다, 버리다, 제거되다, 라는 뜻입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을 버리고 장성한 자가 된 사람들은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생각했던 것과 깨닫는 것과 말하는 것을 모두 폐하여 제거한 것입니다. 그것도 깨끗하게 완전히 삭제하여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 어린아이와 같은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무시해 버리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어린아이의 신앙을 하면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신앙을 가지고 장성한 자의 신앙으로 교회생활을 해야 합니다.

 

장성한 자가 되니 실제로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게 됩니다. 그 이유가 직설법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나는 어린아이의 행동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것도 하나도 남김없이 완전하게 버렸다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가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를 체험하여 구원을 얻었으니 어린아이의 행동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나의 겉 사람의 행동에서 말과 생각과 깨닫는 모든 것이 장성한 어른의 행동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입니다.

 

고전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게 주님을 보지만 온전한 것이 오면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게 됩니다. 현재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가 되면 주님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하게 주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επιγινωσκω(에피기노스코 1921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단수, 1인칭) 알다, 이해하다, 인식하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을 아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이해하게 됩니다. 어린아이의 신앙에서는 주님을 알 수도 없고 깨닫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나를 알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만세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이 땅에서 장성한 자의 신앙을 가지기 전부터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나를 아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주님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는 ידע(야다 3045 동사, 닢알, 완료, 공성, 1인칭, 단수) 동침하다, 알다, 인정받다, 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의 아는 개념은 나도 알고 주님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서로 이미 동침한 것처럼 알고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전에 예수님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도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음으로 이미 창세전에 나는 주님 안에 있게 됨으로 주님이 나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주님이 나를 절대 놓지 않으시고 끝까지 알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창세전부터 기억하시고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온전히 알리라’ επιγινωσκω(에피기노스코 1921 동사, 직설법, 미래, 중간디포, 단수, 1인칭) 알다, 이해하다, 인식하다, 라는 뜻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고 난 후에는 예수님을 확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이해가 되고 주님의 은혜 안에서 확실히 주님만이 구원자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가 마지막 종말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예수님 안에 있으면 우리는 온전한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렇게 어린아이의 신앙을 버리게 되니 내가 온전한 예수님을 알게 된 사실이 실제로 나타난 것입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먼 미래에 확실히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마지막 종말의 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미래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우리는 확실히 알게 되고 깨닫게 되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전한 것을 보니 깨닫는 것이 확실하게 됩니다. 중간디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성한 자의 신앙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니 내가 깨닫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지 않고 어른과 같은 신앙이 된 것입니다. 어른이 되니 힘들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누리는 것들이 많습니다.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이렇게 장성한 자의 신앙이 된 사람들은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까?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이 땅에서 열심히 살지만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나는 이 땅의 시민권자가 아니라 하늘의 시민권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긍휼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 중에 제일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첫 계명으로 나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나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계명은 네 이웃을 나의 자신과 같이 사랑하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제일입니다. 먼저는 하나님 사랑 그리고 다음은 이웃 사랑입니다. 이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장성한 자의 신앙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체험하여 구원을 얻었으니 두려워하지 마시고 주님의 사랑 안에서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시면서 신앙생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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