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노아 방주 설교문] 방주(תבה 테바)(창 6:13-16)

체데크 2020. 5. 26.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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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노아 방주 설교문 중에서 노아가 방주를 지은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노아가 만들었던 방주에는 구속사적으로 큰 의미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방주(תבה테바)”(창 6:13-16)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악들을 보시고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모든 죄악들이 충만한 것이 수동형으로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들의 죄악 된 삶으로 인하여 이 세상이 타락의 길로 갔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마음을 터 놓으시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멸하여 버리겠다고 미리 노아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하실 때에 아무런 말씀도 없이 심판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자에게 미리 심판의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홍수심판을 예고하실 때에는 노아에게 말씀하시고, 불로 심판하실 때에는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노아와 아브라함의 삶과 신앙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고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께서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계획과 뜻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열려 있으니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깨달을 수가 있고, 말씀대로 사니 경건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라는 단어에서 ‘포악함’이 라는 단어는 (חמס하마스)입니다. 난폭하게 대하다, 학대하다, 넘어뜨리다, 탄압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통치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는 의로운 나라가 아니라 세상적으로 돈이 있고, 많이 배우고, 육신적인 힘이 있는 자들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다 보니 힘이 없는 사람들은 늘 고통을 당하고 재산도 착취당하고 부익부 빈익빈 시대가 된 것입니다.

있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재산을 탈취하여 부자가 되고, 없는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해도 모두가 있는 사람들에게 빼앗겨 아무것도 없고 힘들고 어렵게 사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힘없는 사람들을 학대하고, 난폭하게 대하면서 정의는 사라지고 불법과 폭행이 난무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를 가지고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더 힘들게 넘어뜨리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세상이 바로 노아 시대의 세상입니다.

 우리도 반드시 말세를 살고 있으면서 생각해야 합니다. 말세 때에는 어떠한가를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4:37-39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지막 때가 되면 주님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영적으로는 점점 더 무뎌져 가고 있고 세상적인 풍요함에 빠져 세상의 즐거움에만 기뻐하고 있습니다. 결국 주님이 오실 때에 모든 사람들은 심판을 받고 죽게 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육신적인 풍요로움에 빠져 영적으로 죽어가고 무뎌져 가면 우리도 죽고 마는 것입니다.

 ‘그 끝 날이’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קץ케츠)입니다. 종말, 끝날, 마지막, 잘라내다, 찍어 버리다, 라는 뜻입니다. 노아의 때가 마지막의 때였습니다. 더 이상 회개할 수도 없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작정하시면 끝난 것입니다. 마지막의 때에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은 잘라내 버리고, 찍어서 버립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잘라 버렸고, 찍어서 불 못에 던져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재도 종말의 때입니다. 이 때에 회개하지 않고 세상에 푹 빠져 살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옵니다. 이때에 우리는 더 열심히 주를 섬겨야 하고, 주님 안에서 영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은 경건한 자들을 찾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믿음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무뎌져 있기 때문에 주님의 진노가 임박했다고 해도 믿지 않고 자신들의 인생만 즐기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깨어나야 합니다. 영으로 깨어나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명령을 하십니다.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방주는 교회라고 볼 수도 있고, 예수그리스도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을 합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라는 단어에서 ‘만들되’가 있습니다. (עשה아사)입니다. 명령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각하다, 실행하다, 순종하다, 부지런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명령을 하시면서 너를 위해서 방주를 조각하고 순종하면서 부지런히 실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선택받은 자를 뽑아내시고 심판을 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미리 살 방편들을 알려주시고 나머지는 심판을 하십니다.

 우리도 마지막 때에 열심히 나를 위해서 주님을 믿어야 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하고, 부지런히 예배에 나와 주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우리도 마지막 때에 결국 죽습니다. 부지런히 주를 믿고 실행해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가 살 길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에는 교회로 들어와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주님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죽습니다. 홍수심판이 일어났을 때에 방주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결국 죽습니다. 심판 때에 살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라는 단어에서 ‘칠하라’ 라는 단어는 (כפר카파르)입니다. 칼, 완료입니다. 속죄하다, 칠하다, 용서하다, 속량하다, 라는 뜻입니다. 방주는 반드시 안팎으로 역청을 바르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이것은 교회는 반드시 예수님의 속죄의 사역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보혈이 흘러내려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에 나온 모든 백성들이 예수님의 죄 사함을 받고 용서함 받아야 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속량을 받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교회 안에서 이런 죄 사함의 은혜가 없으면 결국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 있어도 구원의 은혜는 받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 나와도 반드시 속죄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역청’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כפר코페르) 전치사, 관사를 사용하고 있고 속죄금, 속전, 대속물, 보상, 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안에, 그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역청으로 안과 밖을 칠하라고 한 것은 바로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영적으로 속죄함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예수님이 속죄의 대속물로 이미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신 것을 믿고 오직 그분 안에서만이 구원이 있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관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는 속죄를 받았으니 이제 죄에서 자유 함을 얻어 기쁘고 즐거운 삶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교회 안에서나, 가정에서나 세상의 잘못된 죄악들이 다시 들어오지 못하도록 바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역청을 바르지 않으면 틈 사이로 물이 들어와 방주가 가라앉을 수가 있습니다. 이렇듯이 내가 교회 안에서도 영적으로 육 적으로 믿음을 세우지 못하면 사탄이 틈을 타서 들어와 나를 시험에 빠트리고 결국은 멸망 길로 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6: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명령하여 지으라고 한 것은 방주와 성막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정확하게 사이즈와 치수를 정확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속에서 만이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확 무오 한 분입니다.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그 길이는 삼백 규빗’ 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길이는’ 이라는 단어는 (ארך오레크)입니다. 장수하다, 오래, 영원히,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방주에 들어가면 영원히 안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장수하는 것을 알 수가 있고 이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영원한 천국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심판받아 죽어도 방주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교회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살면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을 방주의 길이를 통해서 이미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삼백의 이라는 숫자는 준비 및 점검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3년은 회개에서 은혜가 임하는 기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뭄도 3년을 겪었습니다. 요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도망가다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있다가 회개하고 나왔으며 예수님의 몸도3일 동안 땅 속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방주 안에 있는 것은 준비하고 점검하는 기간을 의미하는 것처럼 우리의 교회생활도 예수님 안에서 나의 신앙과 믿음을 점검하고 준비하여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 나의 신앙과 믿음은 어느 정도인가? 늘 말씀으로 점검하고 은혜받기 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너비는 오십 규빗’이라는 단어는 (רחב로하브)입니다. 넓게 하다, 입을 크게 벌리다, 영혼을 넓게 열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입을 크게 열어 주님을 고백하고, 기도하고, 믿음을 세워나가고, 영혼을 위해 살 것을 말씀합니다. 방주 안에는 홍수 심판이 일어나면 자신대로 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천국에 있는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영적인 삶을 살게 되고, 오직 영혼을 위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영혼이 잘되기를 기도하고 영혼이 주를 향한 마음이 뜨거워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숫자 5는 은혜를 의미합니다.

 ‘높이는 삼십 규빗’ 이라는 단어에서 ‘높이는’ 이라는 단어는 (קומה코마)입니다. 함께 있다, 거주하다, 살리다, 견고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방주는 주님과 함께 있는 곳이요, 함께 거주하는 곳이고, 생명을 살리는 곳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견고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이것처럼 교회의 생활은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면서 영적인 생명을 살리는 곳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거주하면서 사는 곳이 교회입니다. 방주는 이렇게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교회 안에서 영원히 주님을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그런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6: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하나님은 방주에 창을 내라고 하십니다.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내라고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방주에는 반드시 창을 내야 합니다. 만약에 창이 없다면 어두워서 살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교회는 예수님의 빛이 있어야 합니다. 빛이 없으면 어두워서 죄악들이 들어오고 결국 죄로 인해 타락할 것입니다. 성막에도 어두웠지만 금 등대로 인하여 환하게 비추어 주었습니다.

 ‘거기에 창을 내되’ 라는 단어에서 ‘창을’이라는 단어는 (צהר초하르)입니다. 정오, 볕, 대낮, 기름부음 받은 자, 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 기름부음 받은 자는 예수님입니다. 방주에는 반드시 창이 있어야 합니다.

창의 역할은 햇빛이 들어오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어두운 방주를 환하게 비추는 역할을 하고 공기를 정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신선한 공기를 들여보내고 더러운 공기를 밖으로 내뿜어서 안에 공기를 쾌활하게 만들어 줍니다. 창은 밖에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창이 없다면 밖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답답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인 창입니다. 나의 영혼을 어두운 죄악 가운데서 빛으로 임하여 나의 영혼에 환하게 비추어 말씀 안에서 나의 삶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항상 나의 영혼에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어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창이 정화 역할을 하듯이 우리가 세상에서 살 때에 많은 죄악의 더러움이 있을 때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정화시켜주시는 분입니다. 주님의 정화작용이 없다면 우리는 더러워 냄새가 나서 살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영적인 나의 창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가 있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영적인 눈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반드시 예수님의 창이 있어야 합니다. 이 창이 없으면 교회는 반드시 부패하고 썩어져 냄새가 날 것입니다. 모든 죄인들이 정화가 되지 않아 더욱더 타락해져 영혼은 완전히 더러움으로 인하여 가까이 갈 수도 없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예수님의 창이 반드시 우리에게 있어야 하고 교회에 있어야 합니다. 이 창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이 창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집을 지어놓고 창을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면 그 집은 쓸모가 없습니다. 많은 돈을 들여서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집은 다시 허물어 트려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아도 예수님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허물어져야 합니다.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존재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존재라는 것은 결국 심판받는 인생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반드시 예수님의 창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이 창은 위에 내라고 했습니다. 이 창은 하나님과 교통 하는 창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라는 단어에서 ‘위에서부터’ 라는 단어는 (מעל마알)입니다. 솟아 오르다, 승천하다, 통하다, 기도하다, 뜻입니다. 이 창은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위치에 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더 가까이 갈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천국에 갈 것을 항상 바라보면서 살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교회생활을 하면서 천국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땅에 소망을 두는 삶은 결국 망함으로 끝나고 소망도 없이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에 소망을 두는 자는 반드시 흥하고 영원히 주님께 칭찬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고’ 라는 단어는 (כלה칼라)입니다. 피엘, 미완료, 2인칭입니다. 완성하다, 끝내다, 멈추다, 끝마치다, 라는 뜻입니다. 이 창을 내는데 강조능동으로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2인칭을 쓰면서 너에게 라는 것입니다. 이 창을 만드는데 완성시키고, 끝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창을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창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처럼 이 모든 구원사역을 이루신 예수님을 강권적으로 믿어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을 만들되 옆으로 문을 내고 상, , 하로 만들라고 명령했습니다. 창은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하고 문도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상, , 하로 만들라고 한 것은 낮은 자부터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예수님을 통해서 방주에 들어올 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만 왕의 왕이시면서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이유가 낮은 자의 심정을 알고 깨닫기 위해서 입니다. 높은 자의 마음도 깨닫고 알고, 그래서 낮은 자나, 학식이 높은 자나, 모두가 예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상, , 하로 문을 만든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학식이 있는 자나, 못 배운 자나, 모두가 교회에 나와 구원의 말씀을 듣고 믿어 구원받고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사는 낙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로 와야 하고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합니다. 강단에서 예수님이 살아나야 합니다. 반드시 창이 하늘로 만들어져 있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신령한 말씀을 선포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말씀으로 먹고, 마시며 기뻐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빛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둠에 있던 영혼들이 빛 가운데에서 자신들의 죄악들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때에 우리 자신의 방주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방주를 나를 위하여 준비하지 않으면 땅을 치면서 후회할 날이 반드시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방주를 날마다 지어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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