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민수기 33장의 짧은 설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옮긴 장소인 릿사, 그헬라다, 세벨산, 하라다의 영적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릿사
민 33:21 립나를 떠나 릿사에 진을 치고
립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진을 옮겨 릿사에 오게 됩니다. 이곳에 새로운 자신들만의 장막을 쳤습니다. 립나에서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하여 하얗게 자신들의 삶이 변화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불순종의 삶에서 순종의 삶으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광야의 여정을 통해 자신들의 삶이 깨어지고 부서져 하나님께 돌아오는 과정입니다.
‘릿사’ רסה(릿사 7446) 릿사,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רסס(라사스 7450) 젖게 하다, 산산이 부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릿사에서 자신들의 신앙과 행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완전하게 삶에 적용하여 살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뜻대로 살았던 삶을 주님의 말씀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으니 나의 죄악 된 행실을 산산이 부수어 주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교회생활을 하면서 주님 앞에서 온전하게 회개했다면 나의 자아와 교만과 오만을 주님의 말씀으로 깨 부셔야 합니다.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오만으로 살아간다면 아직도 완전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시 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도 않습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주야로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나의 교만을 없애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많은 절제가 필요합니다. 회개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에서 절제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아직도 죄악의 자리를 좋아하고 악인들과 어울려 살기를 좋아한다면 말씀으로 나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의의 길로 돌아서야 합니다. 완전한 회개가 일어난 자들은 자신의 행실을 올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여 구원받았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에 합당한 성화의 삶이 필요합니다. 릿사는 바로 성화의 삶을 살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잠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구원받은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이 자체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나는 오직 주님만을 섬기면서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 나의 입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십자가 보혈만을 외치는 자의 삶을 살아갈 때에 성화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립나에서 회개가 일어났다면 릿사에서는 성화의 삶이 일어나야 할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헬라다
민 33:22 릿사를 떠나 그헬라다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릿사를 떠나 그헬라다에 진을 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광야에서 신앙을 연단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하는 코앞에서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여 40년 동안 광야를 떠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인생을 공부하고 믿음을 연단받게 된 것입니다.
‘그헬라다’ קהלתה(케헬라타 6954) 그헬라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קהל(카할 6950) 함께 모이다, 소집하다, 모여들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헬라다의 장소는 지금까지 회개하고 성화의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하나로 모여 예배를 드리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바로 교회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소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교회로 모여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교회를 무시하고 자신 스스로 예배를 드리는 행위는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반드시 구원받은 백성들이 모여야 하는 곳입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구원받은 백성들은 이제 구약의 동물의 제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신령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오직 십자가의 보혈이 있는 곳이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신령한 성전입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신령한 제사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 교회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필요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거부하는 자들입니다. 각 개인이 혼자 예배를 드린다고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구약에 교회를 만들어 놓으시고 부르시겠습니까? 우리가 주일에 한 곳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높이고 찬양하며 하나님께 경배하는 곳입니다.
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신 교회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은 피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며 구원자 되시는 주님께 찬양과 경배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건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교회를 보이는 건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물이 크면 교회가 큰 것이고 건물이 작으면 교회가 작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건물을 가지고 교회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작고 큰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역사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보혈로 사신 교회인가를 보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무리가 모여 있어도 예수님이 나타나지 않고 인간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인간의 모임에 불과 합니다. 작은 무리가 있어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며 피로 사신 교회라면 이 교회가 큰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헬라다의 장소를 통해 진정한 교회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반드시 교회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행 2:46-47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교회는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 곳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말씀을 나누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렇게 했을 때에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헬라다에서 하나님의 교회로 모인 것처럼 우리도 항상 교회생활을 중심으로 인생을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배가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세벨산
민 33:23 그헬라다를 떠나 세벨 산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헬라다에서 떠나 세벨 산에 진을 치게 됩니다. 광야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헬라다에서는 하나님께서 교회로 모이게 하셨습니다. 자신들만의 삶을 하나로 뭉쳐서 하나님께 경배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씩 있는 개체의 삶을 단체로 묶어버리는 역할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힘이 없지만 여럿이 뭉치면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단결력이 생기게 됩니다. 교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뭉쳐지는 곳입니다. 머리가 있다면 우리는 모두가 지체인 것입니다.
‘세벨’ שפר(셰페르 8234) 세벨,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פר(샤파르 8231) 빛나게 되다, 아름답게 되다, 기쁘게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회로 모여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삶을 빛나게 하셨으며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광야에서 아름다운 곳이 어디 있습니까? 모두가 황량한 사막의 벌판이고 돌 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세벨의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하여 그들의 삶에 쉼을 주시고 있습니다. 또한 광야에서 기쁘고 즐거울 일이 없지만 하나님은 영혼의 평안함과 기쁨을 주시고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세벨 산입니다.
우리도 교회에 나오면 하나님께서 나의 영혼을 기쁘게 해 주시고 빛나게 하셔서 안식을 주시게 됩니다. 세상에만 있으면 영혼의 안식을 누리지 못하지만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혼의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광야 같은 거친 세상에서 앞길이 막막하지만 하나님은 아름다운 곳으로 나의 인생을 인도하여 주셔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 61: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소식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통해 영혼이 구원을 얻었으며 육체적으로는 상한 마음을 고침 받았습니다. 또한 영육으로 갇혀있었던 나에게 자유를 주심으로 죄악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소식이며 광야의 뜨거운 삶에서 나를 건져내주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입니다. 세벨 산에서 은혜를 받았는데 교회에 모였던 자들이 받았던 복입니다. 교회에 모이기를 힘쓰지 않으면 인생을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영혼을 아름다운 천국으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이제부터 교회에 모여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아름다운 천국과 세상에서 쉼을 얻는 축복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하라다
민 33:24 세벨 산을 떠나 하라다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름다운 산인 세벨 산을 떠나 하라다에 진을 치게 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셔서 그들의 삶이 안식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거주할 곳은 아닙니다. 가나안 땅까지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볼 때 이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잠시 머무르는 곳이지 영원히 거주하는 곳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잠시 잠깐 있다가 놓고 가야 하는 곳입니다. 세벨 산이 아무리 좋다고 해서 그곳에서 안주하고 있으면 더 나은 곳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들어갈 수가 없게 됩니다. 그래서 하라다로 출발하여 진을 치게 된 것입니다.
‘하라다’ חרדה(하라다 2732) 하라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חרד(하라드 2729) 전율하는, 두려운, 떠는,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광야에는 많은 불 뱀과 전갈과 들짐승이 있습니다. 항상 위험한 상황에 살고 있습니다. 또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있습니다. 낭떠러지에 떨어지면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위험한 곳을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렵고 마음이 떨려 온몸에 전율이 흐를 정도로 악조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라는 곳으로 모이게 하셔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낮에는 뜨거움 속에 구름으로 가려주시고 밤에는 찬바람을 불기둥으로 보호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구름과 불기둥이 보호하고 있는 한 전갈과 불 뱀들은 절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도 세상의 광야에서 살아갈 때에 많은 험난한 상황이 있습니다. 불 뱀과 같은 존재들에게 걸려 영적으로 죽게 됩니다. 전갈과 같은 자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전파하여 영혼을 죽입니다. 이런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교회로 모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모일 때에 하나님은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양들은 위험한 상황이 되면 정신이 멍해져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예수그리스도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면 사탄의 밥이 되어 죽습니다.
요 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양들이 들짐승 때문에 두려워 떨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선한 목자는 자신의 양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주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자신의 양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삯꾼 목자는 자신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 사자나 곰이 와도 맞서 싸우지 않습니다. 하라다의 장소는 광야의 많은 위험한 곳에서 두려워 떨면서 생활할 때에 주님께서 보호해 주시고 늑대가 양을 잡아먹으려고 하면 맞서 싸워주시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을 생명의 울타리 안으로 인도하여 영원히 광야의 여정에서 떠나지 않고 함께 하시는 주님의 보호하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원어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수기 33장 짧은 설교] 욧바다, 아브로나, 에시온게벨, 가데스 (0) | 2020.05.17 |
---|---|
[인물 비교 설교문] 모세와 예수님의 비교 분석 (0) | 2020.05.17 |
[민수기 33장 짧은 설교] 하스모나, 모세롯, 브네야아간, 홀하깃갓 (0) | 2020.05.17 |
[민수기 33장 짧은 설교] 막헬롯, 다핫, 데라, 밋가 (0) | 2020.05.16 |
[민수기 33장 짧은 설교] 하세롯, 릿마, 림몬베레스, 립나 (0) | 2020.05.15 |
[성경 문화 배경] 예수님은 왜 ‘사흘 되던 날’에 가나 혼인 잔치에 가셨을까? (0) | 2020.05.15 |
[민수기 33장 짧은 설교] 알루스, 르비딤, 시내 광야, 기브롯핫다아와 (0) | 2020.05.15 |
[민수기 33장 짧은 설교] 엘림, 홍해가, 신 광야, 돕가 (0) | 2020.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