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민수기 33장에 나오는 짧은 설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이동했던 경로 중에 엘림, 홍해가, 신 광야, 돕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엘림
민 33:9 마라를 떠나 엘림에 이르니 엘림에는 샘물 열둘과 종려 칠십 그루가 있으므로 거기에 진을 치고
마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치료의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마실 수 없는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영원한 생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들은 마라에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떠나 엘림에 장막을 쳤습니다.
‘종려’ תמר(타마르 8558) 똑바로 세우다, 종려나무, 라는 뜻입니다. 엘림에 도착했을 때 종려나무 70그루가 있었습니다. 종려나무는 승리와 풍성함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종려나무의 많은 열매가 풍성함을 상징하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어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승리하실 것을 찬양했습니다. 70의 숫자적 의미는 영, 권세, 완전성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풍요와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영원하시며 완전하신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엘림’ אילם(엘림 362) 엘림,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אול(울 193) 권세 있는 자, 지도자, 힘,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림에서 권세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제부터 주님께서 지도자가 되어 광야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곳을 통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광야의 앞길도 모르고 지형도 모르고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지도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광야의 길을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구원받고 나면 종려나무와 샘물을 만나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수가 흘러나오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마시게 됩니다. 또한 종려나무를 통해 많은 대추야자를 먹을 수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풍성한 삶을 살고 십자가로 승리하신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구원받은 자들은 엘림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데 권세 있는 나의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영적 지도자가 되어 앞길을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신부가 신랑이 없을 때에 고난이 있는 것이지 신랑만 있으면 모든 책임을 신랑이지는 것입니다. 신부는 신랑의 말에 따라가면 됩니다. 바로 나의 영적 지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계명을 따라 살아가면 영원한 생수와 대추야자의 달콤함을 맛보면서 신랑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홍해 가
민 33:10 엘림을 떠나 홍해 가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림을 떠나 홍해 가에 진을 치게 됩니다. 엘림에서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이 풍성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계속 살 수가 없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의 마지막은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은 이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천국을 향해 앞으로 전진하여 나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림에서 종려나무의 열매와 샘물을 마실 수 있어도 그곳에서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가나안 땅을 향해 계속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엘림을 떠나 홍해 가에 진을 치게 된 것입니다.
‘홍해 가’ על ים סוף(알 얌 수프 5488) 갈대, 끝나다, 그만두다,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면서 광야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정착하지 못하고 걸어 다녔기 때문에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입니다. 홍해 가에 도착했을 때는 애굽에서 가지고 온 식량도 떨어지고 있으며 먹을 양식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 이유가 다음 장소인 신 광야에 가서 먹을 양식이 없다고 불평하며 모세를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대와 같은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육체의 고통이 따라오고 유익이 없으면 금방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이제는 끝이다. 가나안 땅으로 가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육체적 유익이 없으면 신앙을 포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홍해 가와 같은 신앙을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많고 방금 전에 엘림과 같은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주셨는데 갈대처럼 바로 잊어버렸습니다. 바람에 흔들거립니다. 세상의 유혹에 빠지고 육체의 쾌락에 빠져 사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입에서 항상 나오는 소리가 안 된다. 이제 끝이다. 더 이상 갈 수 없다. 포기할 것이다. 라는 말만 늘어놓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신 광야에 들어가 바로 먹을 양식이 없다고 불평할 자들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아니라 교회생활만 하는 자들입니다. 이제 교회생활만 해서는 안 됩니다. 예배에 나오는 것이 하나님 앞에 엄청난 유세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홍해 가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썩은 갈대를 붙잡고 이것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신 광야
민 33:11 홍해 가를 떠나 신 광야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대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홍해 가를 떠나 신 광야에 들어오게 됩니다.
‘신’ סין(신 5512) 가시잡목, 점토, 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에 도착하여 진을 치고 한 일은 모세와 하나님께 원망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들은 과거의 노예의 삶을 그리워하면서 애굽에서 있으면 고기와 떡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현재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생명의 자리에 있으면서 아직도 죽었던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홍해 가에서 갈대와 같은 신앙으로 신 광야에 들어와 입에서 바로 가시가 돋은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 이유는 먹을 양식이 없고 고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자신들이 먹었던 양식이 바닥을 보인 것입니다. 앞으로 이 광야에서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지 막막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은 가시 돋친 말뿐입니다. 또한 점토처럼 신앙이 단단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소욕에 맞는 대로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잠 4:24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하나님은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고 비뚤어진 말을 입술에서 멀리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신 광야에 들어오는 것처럼 먹을 양식이 떨어지고 은혜가 충만하지 못하면 내 입술에서 가시 돋친 말이 나가게 됩니다. 신경질적인 사람이 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여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주는 상처이지만 어떨 때는 하나님께 악한 소리를 하여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있습니다.
약 3: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신 광야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은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함께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마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점토와 같은 신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점토는 단단하게 굳지 않으면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대로 형상을 만들게 됩니다. 만약에 악한 자의 형상으로 만들어 버리면 그대로 굳어버려 부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됩니다. 또한 선한 형상으로 만들어져서 굳어버리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신앙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나의 입에 저주를 버리고 주님께 가시 돋은 추악한 말을 버려 나의 신앙의 점토판이 주님의 형상을 닮은 믿음으로 굳건해져야 할 것입니다.
돕가
민 33:12-13 신 광야를 떠나 돕가에 진을 치고 돕가를 떠나 알루스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양식이 내리는 놀라운 일을 보았습니다. 또한 고기가 없다고 불평을 했을 때에 메추라기를 보내주셨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광야의 생활 가운데 하늘에서 만나가 계속해서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안식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만나를 찾으러 간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면서도 불순종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양식을 채워주시는데도 입과 몸으로는 계속 하나님께 가시 돋은 말과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돕가’ דפקה(도프카 1850) 돕가,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דפק(다파크 1849) 몰다, 두드리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면서 마음의 편안함을 찾았습니다. 이곳에 머물면서 살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광야로 더 들어가도 먹을 양식도 없을 것 같고 고기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신 광야를 떠나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돕가에 오게 하셨는데 신 광야에 머무르려고 했던 백성들의 마음을 두드려 돕가로 내 모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신 광야에서 1주일 정도 머물렀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들을 돕가로 몰아내셔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돕가도 잠시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고 근심 걱정 없이 살면 세상에 머무르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보다도 현재의 삶에 만족하여 빠져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자들의 마음을 두드려 주님을 모시게 하는 것입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께서는 구원받은 백성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려 함께 거주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마음을 두고 사는 자들의 마음을 두드려서 열게 하시고 그 속에 천국의 소망을 심어주시는 것입니다. 돕가의 장소는 내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을 천국에 소망을 두도록 재촉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이제 발길을 재촉하여 천국으로 발길을 향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고 세상에서 빨리 나와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나를 재촉하여 말씀 안으로 들어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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